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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사부님만이 우리 부부를 구할 수 있었다

글/ 대륙 신수련생

[ 명혜망 2005년 2월 19일] 나는 2004년 12월 6일에 비로소 대법을 얻었는 데, 《전법륜》을 다 보고 나서 비로소 천재일우의 귀중한 서적이라는 것을 알았다.

내가 법을 늦게 얻게 된 이유는 나의 배우자가 85년에 한동안 이상한 병에 걸렸기 때문에 ‘신선’을 찾아서 보이게 되었다. 그 해부터 ‘여우, 족제비, 뱀'(狐蛇仙)을 모시고 숭배하였다. 나의 배우자는 ‘족제비 신선'(仙)을 형님으로 모시고는 절하고 읍하면서 그 중에서 ‘이점’을 얻었다.

2002년에 나는 3개월간 불교를 믿었다. 절의 거사는 나에게 ‘신선’을 모셔서는 안 된다고 알려 주었다. 나는 곧 청리하려고 생각하여 청리하기만 하면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오전 9시 나는 ‘신선’을 떨쳐 버리겠다는 말을 하자 급기야는 나의 배우자가 2미터되는 높은 곳에서 떨어져 인사불성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감히 ‘신선’을 청리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불(佛)을 배우려는 마음이 간절하였기 때문에 ‘신선’을 청리하려고 했더니, 결국 그 날 저녁에 나의 남편이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온 얼굴이 피투성이여서 병원에 갔다. 그래서 여전히 청리하지 못했다. 나중에 부처를 수련하는 사람이 말하기를, 그것을 청리할 수 없으면 자리를 옮겨보라고 하여서 나는 위패를 북쪽 방으로 옮겼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큰 일이 벌어졌는 데, 나의 손은 즉시 부어올라 젓가락을 들고 밥을 먹을 수 없었고, 8일 동안 혼미 상태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병원에 가서 검진을 하여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지만 3개월 동안 걸을 수 없었으며 힘이 하나도 없어 집의 농사도 짓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신선’을 청리 할 수 없었다.

이렇듯 내가 막다른 궁지에 빠졌을 때, 2004년 운 좋게 대법을 얻었다. 법학습을 통하여 진짜로 우리 부부를 구출한 것은 파룬궁이었다. 법을 얻은 후, 내가 잠을 잘 때 사부님의 법신이 우리 집에 두 번이나 오셨다.

첫 번째 나에게 알려 주시기를, “집안이 지저분하니 서둘러 청리하라, 청리후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둘째 날에는 이른 아침부터 내가 모셨던 가짜 ‘신선, 불상, 불교 책 , 재물 신’을 전부 깨끗이 청리해 버려도 그 결과는 평안 무사했으며 마음은 아주 통쾌했다. 그때부터 나는 여러 해 동안 쓰고 있던 돋보기를 사용하지 않고 책을 보아도 매우 똑똑히 보였다. 남편은 내가 법을 얻은 후 변화 된 모습을 보고는 대단히 감동하였다. 그래서 나의 이끌음으로 남편도 법을 배우고 연공하여 음주, 흡연, 도박 등 나쁜 습관을 떼어 버렸는 바, 오직 대법만이 진정으로 한 사람을 개변할 수 있었다.

나는 40세 때 한번 다리 수술을 하였는데 다리를 굽힐 수 없어 가부좌를 할 수 없었다. 그랬더니 밤에 잠을 잘 때, 사부님의 법신이 우리 집에 오셔서 나의 다리에 두개의 금 고리를 설치해 주시고는 떠나실 무렵 나에게 엄숙하게 말씀하셨다. “당신이 속인 중에 미혹되어 법을 너무 늦게 얻었는데 당신은 반드시 다그치고 다그치고 또 다그쳐야 한다.” 당시 나는 눈물이 비오듯이 흘러 내렸는데 감동되어 울면서 잠에서 깨었다. 나는 오직 사부님만이 이런 능력이 있어 우리를 보호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오직 대법만이 세인을 구도할 수 있다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되었다.

나는 법학습을 1개월 넘게 하고 있는 신수련생이라 노수련생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러나 이 법을 만나서 이익을 얻은 것이 적지 않으며, 깊은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의 감상을 쓰면서 나자신이 법을 늦게 얻은 것을 뉘우치게 된다. 앞으로 반드시 법학습을 많이 하고 사부님의 지도를 명심하여 다그치고 다그치고 또 다그쳐 배워, 사부님께서 나에게 자비로 제도해 주신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정법 노정을 따라 수련의 길을 잘 걸어 갈 것이다.

부당한 부분이 있으면 동수들이 자비로 지적해 주시기를 바란다.

문장 완성: 2005년 2월 18일
문장 발표: 2005년 2월 19일
문장 갱신: 2005년 2월 19일
문장 분류:【천인 사이】
중문 위치: http://minghui.ca/mh/articles/2005/2/19/957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