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의 속마음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와 수련생들을 박해한 지도 어느덧 27년이 지났다. 그동안 진상을 깨달은 수많은 민중과 가족, 친지들은 대법의 위대함을 목격했으며 모두 혜택을 받았다! 여기에서 파룬궁수련생 가족과 친지들의 이야기 몇 가지를 공유하고자 한다.

이야기 1: 거센 파도 속에서 목숨을 건지다

나는 59세의 국제 해원(일등 항해사)이다. 나는 무신론자라 아내가 파룬궁 수련을 하며 파룬궁 진상을 알려주고 진상 자료를 줘도 전혀 보지 않았다. 아래의 경험은 나의 인식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몇 년 전 어느 날(정확한 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가 탄 배가 일본 해역을 항해하던 중, 갑자기 초속 수십 미터의 강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지며 무서운 거센 파도가 덮쳐왔다. 배는 즉시 격렬하게 흔들렸고, 이때 멀지 않은 앞에 있던 다른 배가 거센 파도에 뒤집혀 순식간에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우리도 곧 똑같은 운명에 처할 것을 보며 나와 동료들은 정말 극도의 공포와 절망에 빠졌다.

나는 집을 떠나기 전 아내가 주머니에 찔러 넣어준 진상 호신부(護身符)가 갑자기 생각났다. 이때 나는 즉시 호신부를 꺼내 양손으로 머리 위로 치켜들고 “대법 사부님 살려주십시오!”라고 크게 외쳤다. 약 30분이 지나자 점차 해수면이 평온을 되찾았다.

나는 격동되어 호신부를 치켜들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대법 사부님께서 우리를 구해주셨어, 정말 신이 존재해. 우리 앞으로는 더 이상 중공의 선전을 믿지 말자! 어서 탈당해!” 해원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했다. 그 후로 나는 이 생명의 은인인 진상 호신부를 매우 소중히 여기며 한시도 몸에서 떼어놓지 않았다.

또 한번은 배의 설비를 유지 보수할 때 실수로 2m가 넘는 갑판에서 떨어졌다. 일반인이라면 높은 곳에서 떨어질 경우 가볍게는 골절이고 심하면 목숨을 잃었을 텐데, 나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 나는 대법 사부님께서 다시 한번 나를 보호해주시고 구해주셨음을 깊이 알고 있다. 진심으로 사부님과 파룬따파의 생명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이야기 2: 파룬따파는 사람을 구하고 중공 악당은 사람을 해친다

노모는 올해 78세로 파룬궁을 수련한 지 근 30년이 되었는데, 쾌활하고 몸이 정정하시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세 딸을 키우시느라 매우 힘드셨다. 우리가 결혼해 가정을 꾸린 후 어머니는 혼자 사시면서 집 안팎의 모든 일을 다 하셨다. 자식들이 모두 바쁘다는 것을 아시고, 특히 나는 개인 식당을 운영하기 때문에 어머니는 절대 우리에게 부담을 주거나 폐를 끼치지 않으셨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어머니의 정신과 신체가 곧 80세가 다 되어가는 사람 같지 않다고 말한다. 마을에서 어머니와 연배가 비슷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 병 아니면 저 병에 걸려 큰돈을 들여 병원에 입원하고 자녀들의 보살핌과 간병까지 받아야 하니, 기진맥진하고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는 20여 년 동안 약 한 알 드시지 않았고 병원에 입원한 적은 더더욱 없으며 게다가 스스로 생활을 꾸려가시니 이 얼마나 큰 차이인가! 우리는 어머니가 파룬궁을 수련해 우리집에 복을 가져다주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온 가족이 모두 파룬따파가 좋다는 것을 알며 어머니의 대법 수련을 매우 지지한다.

그런데 뜻밖에도 작년 11월, 어머니 집에 갑자기 파출소 경찰 무리가 들이닥쳤다. 그들은 상자와 장롱을 뒤지며 구석구석을 다 들쑤셔놓았고, 어머니가 법공부하는 대법서적과 연공 음악 재생기 등 물건을 모두 강탈해 갔으며 게다가 불법적으로 ‘취보후심(取保候審, 보석 상태에서 수사·재판을 받는 조치) 1년’을 통보했다.

어머니는 더없이 소중히 여기는 대법서적과 매일 꼭 사용하는 수련 물품을 빼앗겼다. 이 갑작스러운 타격으로 어머니는 한순간에 의식을 잃고 갑자기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으며 손발도 말을 듣지 않았고 가끔 혼수상태에 빠지기도 하셨다.

다급해진 우리는 즉시 어머니를 병원으로 모셨고 의사의 진단 결과,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에 뇌졸중이 온 증상이라는 것이었다. 의사는 또 촬영한 엑스레이를 가리키며 “사진에 보면 이 부위가 이미 한 번 막힌 적이 있어 환자가 입원 치료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 자매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아닌데요, 어머니는 거의 30년 동안 병에 걸린 적이 없고 입원한 적은 더더욱 없는데요.” 의사는 매우 이상하게 여겼다. “그럴 리가요? 이건 분명히 치료받은 흔적인데 어떻게 모르실 수가 있죠?” 나중에야 우리는 알게 되었다. 예전에 어머니의 모든 병증을 대법 사부님께서 고쳐주셨던 것이다. 대법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는 우리가 아는 것도 있고 우리가 모르는 것은 더 많았다. 우리는 대법에 대한 감사를 어떤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대법은 너무나 신기하고 대법 사부님은 너무나 위대하시다!

남을 배려하는 선량한 노인인 어머니가 까닭 없는 괴롭힘과 박해를 당하는 것을 보며, 우리는 파룬따파는 사람을 구하고 중공 악당은 바로 사람을 해치고 있다는 것을 절실히 보았다!

현재 다른 수련생이 어머니와 함께 한 글자 한 문장씩 천천히 법공부를 하고, 어머니의 팔을 들어 올려 연공을 도와주시고 있다. 끈기 있고 세심한 도움 아래 어머니는 점차 정상을 회복해 글자를 모르고 줄을 찾지 못하던 데서 순조롭게 법을 읽고 법공부를 할 수 있게 되셨으며, 우리에게 다시 한번 대법의 기적을 목격하게 해주셨다.

이야기 3: 폐암 말기인 내가 아직 살아 있다

나는 과수원 농부로, 산골과 농경지에서 평생을 뒹굴며 살아온 농촌 사람이며 올해 71세다. 많은 사람이 모를 수도 있겠지만, 농사와 과일나무에 의지해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매우 고된 일로 그야말로 끊임없는 쇠사슬처럼 아침부터 밤까지 다 하지 못할 일들이 있다. 특히 가을이 되거나 가뭄이 들면 정말 밤낮없이 짐승처럼 일해도 좋은 수확을 얻는다는 보장조차 없다.

2020년 여름, 나는 몸이 유난히 불편하고 말할 수 없이 괴로웠지만, 매일 무거운 농사일에 바빠서 이런 것을 느낄 겨를도 없었고 더군다나 집에 누워 쉴 수도 없었다. 산더미 같은 일을 아내 혼자 할 수 없었기에 나는 억지로 버텼다.

가을이 되자 가슴이 심하게 아팠고 온몸이 괴로워 살고 싶지 않을 정도였으며 정말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아내는 내 상태를 보고 둥잉(東營, 친척이 있는 곳)의 큰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검사 결과는 아내에게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암 말기였다!

아내는 감히 내게 말하지 못하고, 옌타이(煙台)에서 일하는 아들을 불러 나를 현지 빈저우(濱州) 부속병원으로 데리고 가 다시 검사를 받게 했지만 결과는 똑같이 암 말기였다! 병원에서도 받아주지 않았다. 의사는 “수술해도 소용없고 돈만 낭비합니다. 집에 가셔서 드시고 싶은 거나 드시게 하세요”라고 말했다. 장례를 준비하라는 뜻이었다! 아내는 누나와 여동생을 모두 병원으로 불러 어떻게 할지 의논했다. 이때 나는 아직 영문을 몰랐지만 그들이 모두 내 뒤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서야 이것이 분명 좋은 병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했다.

가족들은 내가 이대로 집에 돌아가 죽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며칠만 이곳에 머물며 결정하게 해달라고 병원에 간청했다. 그래서 이곳에서 링거를 맞으며 버티고 있었다.

어느 날, 둘째 누나와 셋째 누나가 침대 곁에 앉아 나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셋째 누나가 말했다. “너 지금 당장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워. 네 셋째 매형(의사) 동료랑 난치병 환자 몇 명이 파룬궁을 수련하고 나았어. 나랑 매형은 매일 이 아홉 글자를 외우고 파룬궁수련생이 집으로 보내주는 진상 자료를 자주 보는데, 봐봐 우리 둘이 지금 얼마나 건강하고 아무 병도 없잖아. 또 우리 막내 여동생을 봐, 예전에 얼마나 허약했던 애야, 아이를 낳고 나서는 더 온몸에 병이 많았는데 파룬궁을 수련한 이후로는 정신과 기질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변했어. 나는 예전에 매일 양팔이 저리고 열 손가락이 퉁퉁 부어서 가끔 밤에 아파 잠을 못 잤어. 그런데 막내가 우리집에 와서 하룻밤만 같이 자고 나면 그날 밤은 잠도 잘 자고 양팔도 안 아프더라니까. 네 매형 말로는 막내가 연공해서 에너지장이 좋아서 그렇대. 참 신기하지.”

둘째 누나도 이어서 말했다. “나도 생각나는 일이 있어. 너희도 알다시피 내가 어릴 때부터 겁이 많았잖아. 아들 결혼할 때 신혼집을 비워주려고, 나와 네 둘째 매형은 오보호(五保戶, 마을에서 자녀가 없는 노인들을 위해 마련한 집)가 살던 방 두 칸짜리 낡은 집을 샀어. 그런데 이사 간 지 얼마 안 된 2011년에 네 매형이 세상을 떠날 줄 누가 알았겠어. 예전에 여기 살다 돌아가신 오보호 노인들만 생각하면 매일매일 무서웠어. 가끔 밤에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감을 때면 무언가 내 몸을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정말 무서웠어. 그래서 어두워지면 집 안에 감히 있지 못해서 아들이 매일 밤마다 와서 같이 있어 줬지.”

“어느 날 아들 내외가 처가에 가서 일을 돕겠다며 밤에 오기로 했어. 날이 어두워지자 나는 마음속 공포를 덜려고 텔레비전 소리를 크게 틀어놓고 기다렸지. 밤 12시가 다 되도록 안 오길래 알고 보니 일을 다 못 끝내서 처가에서 하룻밤 자고 온다는 거였어. 이때 텔레비전 소리를 계속 크게 틀어놓으면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잖아. 그래서 텔레비전을 껐더니 갑자기 주변이 쥐죽은 듯 조용하고 컴컴해져서 무서웠고 온갖 공포스러운 생각이 치밀어 올라 가슴이 조마조마해져서 겁에 질려 당장 문밖으로 뛰쳐나갔어. 한밤중이라 누구 집에 가서 문을 두드려도 다들 깜짝 놀랄 텐데, 나는 길거리에 서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막막해서 근심스레 눈물만 줄줄 흘렸지. 그때 막내가 예전에 내게 어려움에 부딪히면 진심으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고 대법 사부님께 도와달라고 빌라고 했던 게 생각났어. 그래서 나는 양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기도했어. ‘대법 사부님, 저를 도와주세요, 무섭지 않게 해주세요, 집에 돌아가게 해주세요! 저는 파룬따파가 좋다는 걸 믿습니다.’ 이렇게 수없이 말하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는데 별로 무섭지 않았고 온돌에 누워 스르르 잠이 들었어. 그 후로 나는 매일 이 아홉 글자를 외웠고, 무서운 생각이 점점 옅어지더니 나중에는 무섭다는 생각조차 전혀 안 나더라고. 나는 이것이 틀림없이 대법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주신 것임을 알아.”

듣고 나서 나는 마음에 와닿는 것이 있었다. 둘째 누나는 벌써 76세인데도 몸이 아직 아주 건강해서 온종일 아들을 도와 밭일을 하고 있다. 누나는 대법을 매우 믿으며, 막내를 도와 집집마다 대법 진상 자료를 여러 번 배포하기도 했다.

막내 여동생은 현(縣) 소재지에서 일해서 집과 멀어, 명절이나 되어야 매제와 아이들을 데리고 집에 와서 모인다. 막내는 예전에 여러 번 내게 대법 진상을 알려주고 각종 파룬궁 소책자, ‘9평 공산당’ 책자, 진상 CD를 주었지만, 나는 중공의 세뇌를 받아 보지도 않고 믿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진상 CD를 산속 과일나무 끝에 매달아 새를 쫓는 데 쓰기도 했다.

이때 온 가족이 결과가 어찌 되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결정했다. 며칠 후 옌타이 위한딩 병원에 가서 수술을 받기로 했다.

다음 날 막내와 조카가 차를 몰고 와서 나를 데리고 나가 바람을 쐬자며, 식당에 가서 술을 사주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시켜주면서 수술 후에는 오랫동안 이런 걸 못 먹을 거라고 했다. 그러고는 내게 ‘천사홍복(天賜洪福)’, ‘금종자(金種子)’라는 간행물 두 권을 주며 막내가 말했다. “오빠는 이 책에 적힌 걸 믿기만 하면 대법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실 거야.” 나는 이때 처음으로 마음을 다해 파룬궁 자료를 보았고 그 안의 내용이 정말 맞고 좋다고 느꼈다.

수술 당일 내 마음은 무거웠고 살아서 나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가족들은 모두 수술실 문 앞까지 따라와 기다렸고, 누나와 여동생들은 내게 속으로 꼭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라고 신신당부했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녁 8시에 수술실에 들어가 7시간이 넘어서야 수술이 끝났고 과정은 매우 순조로웠다. 나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대법 사부님께서 내가 생사의 고비를 넘기도록 도와주셨음을 느꼈다.

기억하기로, 현지 빈저우 부속병원에 있을 때 내 이웃도 종양내과에 입원해 있었다. 그는 나보다 병세가 가벼워서 내 병실로 나를 보러 오기도 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때 마을 사람들은 내가 수술해 봐야 소용없고 죽을 거라고 쑥덕거렸다. 내가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것을 보고는 또 5년 고비를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고, 실제로 수술 후 5년도 안 돼서 사망하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병에 걸리기 전 1년 동안 40세에서 60세 사이의 마을 사람 41명이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나는 지금 6년이나 지났고 매번 병원에 가서 재진을 받아도 모두 매우 정상이며 예전처럼 무거운 육체노동을 하고 있다. 가을에 사과를 수확할 때 35kg이 넘는 사과 바구니를 삼륜차에 실었다 내렸다 하며, 따는 것부터 파는 것까지 하루에 몇 번이나 하는지 모른다.

2022년 추석 전, 막내가 명절 선물을 주러 집에 왔을 때 내게 삼퇴에 대해 말해주었고, 나는 가입했던 소년선봉대 탈퇴를 흔쾌히 승낙했다. 가을걷이가 끝나자마자 좋은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마을에 갓 선출된 서기가 나와 사이가 좋았는데 내게 마을의 산림 보호 및 방화(防火) 업무를 맡아 달라고 했다. 비록 한 달에 600위안밖에 안 되지만 경제적 수입이 없는 농촌 노인에게는 바라마지않는 일이었다. 나는 내가 탈당을 올바르게 해서 얻은 복임을 안다. 대법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대법 사부님께서는 언제 어디서나 제자들을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시시각각 선량한 민중도 보우해주신다. 왜냐하면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모두 사부님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중생에게 복을 내려주신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부처님의 은혜가 호탕하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온갖 고생을 다 겪으시며 자비롭게 제도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24일
문장분류: 천인사이(天人之間)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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