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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를 공경하며 근본을 잊지 않은 목건련이 일념(一念)으로 돌아오다

—고대 수련 이야기 두 편

글/ 예문(睿文)

[명혜망] ‘스승을 존중하고 도를 중시함(尊師重道)’은 중화 전통문화의 전통적 미덕이다. 5천여 년의 유구한 문명 속에서 고인들은 스승을 존중하고 도를 중시하며, 품행을 수양하고 도덕을 승화시켰다. 《후한서·공희전(後漢書·孔僖傳)》에는 “신이 들으니 명왕(明王)과 성주(聖主)는 스승을 존중하고 도를 귀히 여기지 않는 이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예부터 “삼교(三敎, 유불도)의 성인은 스승이 없는 이가 없고, 천고의 제왕은 스승이 없는 이가 없다”라고 했다. 스승을 존중하고 스승을 믿는 것은 성인의 도이다.

스승을 공경하고 스승을 믿는 것은 문화적 전승일 뿐만 아니라 더욱 깊은 층차의 내포를 갖고 있다. 일반인의 이해 범위를 초월한 일이 발생할 때 사람들은 흔히 “있다고 믿을지언정 없다고 믿지 말라”고 한다. 고인들은 천인감응(天人感應)과 신의 보호를 깊이 믿어 의심치 않았으며 ‘마음이 정성스러우면 영험하다’고 했다. 경배하는 신에 대해 경건하고 공손한 태도를 가지면 종종 신의 응답을 느낄 수 있었다.

사부를 공경하며 근본을 잊지 않은 목건련이 일념(一念)으로 돌아오다

불가 경전 중에는 석가모니불의 제자 목건련(目犍連)의 행적이 기록되어 있다. 많은 제자 중에서 목건련은 ‘신통제일’로 불렸으며 그는 수련 중에 매우 큰 신통을 갖고 있었다.

석가모니불이 설법할 때 인류 이 공간의 제자들만 듣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공간에도 많은 생명들이 듣고 있었다. 부처님 설법의 법음(法音)은 일정 범위의 우주 공간 중의 생명들이 모두 들을 수 있었다.

목건련은 이런 신성한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어느 날 목건련은 얼마나 큰 범위의 우주 공간에서 석가모니불의 설법을 들을 수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목건련의 원신(元神)은 몸을 떠나 고층 공간에 들어갔고 어느 공간에 도달해도 석가모니불의 설법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점점 더 높이 날았고 석가모니불도 목건련이 얼마나 큰 우주 공간에서 사부의 설법을 들을 수 있는지 탐측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목건련이 ‘광명당(光明幢)’이라는 불국 세계에 도달했을 때 이곳의 신들은 매우 컸다. 어떤 이가 작은 목건련을 보고 말했다. “어느 곳에서 작은 벌레 하나가 와서 우리 이 그릇 위를 걷고 있는가?” 이 불국 세계의 법왕이 신들에게 말했다. “이는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 중생을 도화하는 석가모니불의 제자다.”

이때 석가모니불은 불법신통으로 목건련에게 변화를 나타낼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목건련은 석가모니불의 가지(加持) 하에서 매우 커지고 몸에서 광명을 발했으며 빛 중에는 또 무량한 연꽃이 나타났다. 매 연꽃 자리 위에는 모두 석가모니불이 설법하고 있었다. 이 불국 세계 중의 보살들이 모두 합장하며 공경했다.

목건련은 신통변화를 나타낸 후 이 천국의 왕에게 말했다. “저는 이렇게 요원한 세계에 왔는데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래의 자비로 저를 도와 사바세계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천국의 왕이 그에게 말했다. “당신 목건련의 능력으로는 한 겁(268억 년)을 경과해도 사바세계로 돌아갈 수 없지만, 한 가지 묘책이 있으니 바로 근본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마음이 당신의 사부님을 떠나지 않고 극진히 정성스럽게 스승을 공경하며 당신 사부 석가모니불의 명호를 부르면 돌아갈 수 있습니다.”

목건련은 그대로 하여 극진히 정성스럽게 그의 사부인 석가모니불의 명호를 염했고 일념(一念) 사이에 석가모니불에 의해 사바세계로 돌아와 계속 수련했다.

황천화가 스승을 배반하고 근본을 잊어 살신지화를 당하다

《봉신연의(封神演義)》에서 황천화(黃天化)는 도를 배우고 하산하여 강자아(姜子牙)를 보좌해 무도한 주왕(紂王)을 토벌했다. 마침 강자아가 사대천왕(四大天王)에게 곤경에 빠져 있었다. 상생상극의 이치에 따르면 황천화가 바로 사대천왕의 극성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황천화가 마례청(魔禮靑)과 첫 전투에서 20합도 안 되어 마례청이 쓴 백옥금강탁(白玉金剛鐲)으로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다행히 그의 사부가 구해줘서야 다시 살아났다.

황천화는 왜 살신지화(殺身之禍)를 당했을까? 그의 사부는 이렇게 말했다. “이 못된 놈! 하산해서 고기를 먹은 것이 첫째 죄요, 복장을 바꿔 근본을 잊은 것이 둘째 죄다. 강자아의 체면을 봐주지 않았다면 결코 구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의 수도인들은 채식을 했는데 황천화는 하산 후 속인들과 함께 고기를 먹었으니 이는 계율을 어긴 것이었다. 또 수도인은 도복을 입어야 하는데 그는 하산 후 “쌍상투를 틀고 왕복(王服)을 입고 속발관(束髮冠)을 쓰고 금액(金額)을 두르고 대홍복(大紅服)을 입고 금쇄갑(金鎖甲)을 입고 옥대(玉帶)를 찼다.” 강자아가 보고 그를 일깨웠다. “황천화여, 자네는 원래 도문(道門)인데 어찌 하루아침에 복장을 바꿨는가? 나는 재상의 지위에 있으면서도 감히 곤륜(崑崙)의 은덕을 잊지 않았네. 그런데 자네는 어제 하산하자마자 오늘 복장을 바꾸고 또 비단끈으로 몸을 묶었구만.” 복장을 바꾸는 것은 도를 따를 것인가 속세를 따를 것인가의 선택을 의미했고, 세속 복장을 선택한 것은 황천화가 근본을 잊은 행동이었다.

한 사람이 근본을 잊으면 근원 없는 물이고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 수련의 근기를 벗어나면 그의 신통도 사부가 보호하는 법력을 갖지 못하게 되고, 격전 중에 황천화는 천왕 마례청에게 기회를 잡혀 죽임을 당한 것이다. 수련문화에는 ‘초심을 잊지 않아야 끝을 얻는다’는 말이 있다. 외재적 복식이나 표현은 중요하지 않고 관건은 내심에서 명예와 지위에 집착하는지, 덕을 쌓고 마음을 수련하는 것을 실천에 옮기는지 여부다.

중화문화는 신전문화(神傳文化)로서 세속 측면에서는 조상을 제사지내고 하늘을 공경하는 면으로 체현되고, 수련 측면에서는 스승을 존중하고 도를 중시하는 내재적 제약이 있다. 심성이 높고 낮고, 좋고 나쁨은 모두 사람의 내심에 숨어 있기에 다른 사람은 보지도 만지지도 못하므로 나쁜 일을 하고 스승을 속이고 근본을 잊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재화(災禍)라는 것을 모른다.

동서양 문화에는 모두 신에 대한 신앙이 있다. 영국 작가 샬럿 브론테는 작품 《셜리(Shirley)》에서 “신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은 신께서 항상 단련시키신다”고 썼다. 만나는 모든 고난과 불행은 하나님이 한 사람을 성취시키기 위해 단련시키는 것이다. 이런 시련을 어떻게 대하는가는 한 사람의 신앙이 견고한지 여부를 가늠하는 관건이다. 사람이 세상에 있으면 습관이 되어 전혀 깨닫지 못하고, 일단 수많은 중생 속에 섞이면 신성의 근기를 잃고 명예, 이익, 정 중에서 물결에 따라 흘러가는 범인(凡人)이 된다.

영국 소설가 월터 스콧은 일찍이 이런 명언을 남겼다. “오직 신만이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판단하실 수 있고, 범인은 오직 행동으로만 사람들의 동기를 볼 수 있다.”

역사상 많은 정신정념(正信正念)의 이야기가 남아 있다. 신에 대한 믿음에 의지해 순수하고 확고하게 신의 보호를 기원하면 일념(一念) 사이에 재난이 사라지고 위험이 평안으로 바뀐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21일
문장분류: 천인(天人)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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