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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비승’에 대한 고증 (1)

글/ 문사예(聞思睿), 장우징(張宇澄)

[명혜망] 동서양 문헌에는 모두 백일비승(白日飛昇: 대낮에 날아오르는 현상), 공중부양에 관한 기록이 있다. 예를 들면 인도의 요가 수행자, 은사(隱士)와 행각승 중에는 공중부양할 수 있는 사람이 적지 않고, 서양에도 ‘하늘을 나는 수도사’에 대한 기록이 있다.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불도(佛道)를 공경하고 수련하는 민족과 지역에서는 이런 초자연적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동서고금에는 이런 현상에 대한 목격담이 적지 않은데 아래 몇 가지 사례를 들겠다.

1. 공중부양하는 네팔 승려

2011년 미국에서 ‘초자연주의자(The Supernaturalist)’라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됐다. 이 다큐는 미국의 마술사 댄 화이트(Dan White)가 공중부양술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네팔 승려를 찾아가는 과정을 담았다. 댄은 “마술은 서양에서 오락으로 여겨지나 동양에서는 이 우주에서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 설명하는데 이용된다”라고 말했다.

다큐에서 댄은 네팔에 도착한 후 우여곡절 끝에 히말라야 깊은 산 속의 한 절에서 초능력을 가진 승려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승려는 가부좌하고 공중부양하는 모습을 보여주길 거부했다. 그를 설득하기 위해 댄은 빈손으로 달을 사라지게 하는 마술을 보여줬다. 이에 그 승려는 잠시 고민하더니 댄과 제작팀에게 공중부양술을 보여주기로 했다. 다큐 제작진은 승려의 정면과 측면에서 그가 1미터가량 공중부양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촬영했다.

아래는 다큐멘터리 ‘초자연주의자’에 나오는 네팔 승려의 공중부양 모습을 캡처한 것이다.

图1:丹与僧人见面了。
댄 화이트가 승려를 만나는 모습
图2:僧人:打坐只是为了我个人,不是为了别人。
“수행은 자신을 위한 것이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图3:僧人:你的魔术很精彩,但……
“당신의 마술은 매우 환상적이지만….”
图4:僧人:但是我们是不一样的。
“그러나 우리 불가 수행과는 달라요.”
图5:僧人坐下,并开始念咒诀。
가부좌하고 주문을 외우는 승려의 모습
图6:僧人冉冉起空。
서서히 공중으로 떠오르는 승려의 모습
图7:起空中的僧人特写
공중부양한 승려의 모습
图8:演示结束后,僧人叮嘱丹:“记住:保持头脑开放,并且……
“개방적인 사고를 유지하세요.”
图9:要持续学习。”
“그리고 끊임없이 배워야 해요.”

2. 중국 황제도 존재를 인정한 백일비승

1) 여러 역사 자료에 기록된 여도사의 백일비승

중국의 수많은 역사서 중에서 당나라 말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심분(沈汾)의 ‘속선전(續仙傳)’은 초능력자들을 가장 자세히 기록한 서적이다.

심분은 오대십국 시대 남당(南唐) 율수(溧水) 현령 겸 감찰어사를 지냈으며, 남강(南康) 공주와 결혼해 부마가 됐다. 그는 국사에 신선 이야기가 들어가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하며 당나라와 오대십국 시대의 기인 총 36명의 이야기를 수집해 책 3권을 썼는데, 동진의 갈홍(葛洪, 284∼364)의 ‘신선전’을 이어서 쓴 것이라 하여 책 이름을 ‘속선전’(혹은 ‘속신선전’)이라고 했다.

‘속선전’ 상편에는 장지화(張志和) 등 하늘을 날았던 기인 16명을 기재했고, 중편에는 손사막(孫思邈) 등 다른 공간에 몸을 숨길 수 있는 기인 12명을 기재했다. ‘속선전’에 기록된 총 36명의 기인 중에는 도사 외 사회 다양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이 포함됐다.

아래는 이들 중 한 명인 사자연(謝自然)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녀는 중국 사상 유일하게 관청의 인정을 받아 정사(正史)에 기재된 백일비승 초능력자다.

당덕종(唐德宗) 정원 10년(794년) 11월 12일, 당나라 과주(果州, 지금의 쓰촨성 난충시)에서 신기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27살이었던 도사 사자연이 백일비승해 수천 명의 군중이 목격하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송나라 ‘태평광기(太平廣記)’ 기록에 따르면, 사자연은 어려서부터 조용한 환경을 좋아했고, 성격이 온화하고 예의가 밝았으며 ‘도덕경’을 즐겨 읽었다. 조상들은 연주(兗州) 출신이고, 아버지 사환(謝寰)은 과주 남충에 살았는데 효렴(孝廉) 천거를 받아 지방 관리가 됐으며, 어머니 서(胥) 씨 역시 읍에서 지체 높은 가문의 딸이었다.

사자연은 7살부터 3년간 차례로 비구니 두 명을 따라다니며 수행했고, 10살이 된 후에는 집에 돌아와 대방산[지금의 시산(西山)] 정상에 있는 태상노군 절에 들어가 혼자 수행했다. 14살 때 갑자기 음식이 구더기로 보여 먹을 수 없다고 한 후부터 백일비승할 때까지 13년간 더 이상 속세의 음식을 먹지 않았다.

정원 6년(790년) 4월, 과주에 새로 부임한 자사(刺史.감찰관) 한일(韓佾)은 사자연이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말이 믿기지 않아 그녀를 주북당(州北堂) 동각에 수개월간 가둬 놓고 사실인지 보려 했다.

수개월 뒤 방문을 열었을 때 사자연의 건강 상태는 들어갈 때와 다를 바 없었고 목소리에도 힘이 넘쳤다. 당시 한일은 일가족과 함께 사자연을 보러 왔는데, 즉석에서 자신의 딸 한자명(韓自明)에게 사자연을 스승으로 모시게 했다.

이 일이 있기 전에 사자연의 아버지 사환도 그녀를 집안에 가둔 적이 있었다. 당시 여러 해 출타했다 집에 돌아온 사환은 딸이 도법을 수련하면서 음식을 먹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유교를 따랐다. 삼강오륜 외의 것은 선왕의 법이 아니다. 이건 사람을 미혹하려는 요괴의 짓이다.” 그래서 사환은 딸을 안채에 40여일 간 가뒀는데 사자연은 얼굴이 더욱 예뻐졌다. 이에 사환도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도법을 믿었다.

정원 9년(793년)에 이견(李堅)이 과주 자사에 새로 부임했다.

이듬해인 정원 10년 3월 3일, 사자연은 관청이 금천산(金泉山)에 새로 지어준 도장(道場)을 찾았는데, 그날 날씨가 좋았고 오색구름이 하늘에 떠 있는 등 경치가 평소와 달랐다. 그녀는 이날 천상의 진인(眞人)과 신선들이 금천산에 모였다고 했는데, 숲속에서는 사슴들이 뛰놀면서 사람을 피하지 않았다.

사자연은 수련을 엄격하게 대하면서 평소 부모에게도 수도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견은 도를 숭상했기에 이런 몇 마디 말을 했다. “경을 읽는 효과는 정성에 달렸지 횟수와는 상관없습니다. 도를 닦다가 중도에 그만두면 손해가 커서 원래 도를 모르는 사람보다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 반드시 신중해야 합니다!”

정원 10년 11월 9일, 신선들과 소통하며 백일비승 준비를 마친 사자연은 이견을 찾아가 “저는 이달 중순 떠나려 합니다”라고 하며 작별을 고했고, 더 이상 수련하는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 후 11월 20일 진시(辰時)에 사자연은 금천 도장에서 백일비승했는데, 수천 명의 주민이 그 과정을 목격했다. 그녀의 할머니 주 씨, 어머니 서 씨, 여동생 사자유(謝自柔), 제자 이생(李生)은 “근면히 수련해야 도를 얻을 수 있습니다”라고 하는 그녀의 작별 인사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오색구름이 산천을 뒤덮었고 천상에서는 선악(仙樂)이 울렸으며 기이한 향기가 퍼져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사자연은 백일비승할 때 하늘의 신선이 준 옷을 입었고, 평소 입던 옷과 비녀 10여 점은 모두 방에 남겨뒀는데 옷 단추는 풀리지 않은 채 그대로 있었다.

사자연은 백일비승 전 안채 동쪽 벽에 52자를 적었다. “부모님과 다른 가족들께서 슬퍼하지 말고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부지런히 공덕을 쌓고 선을 베풀며, 부처님께 공양하고, 채식하며 경을 읽으면 백 겁이 지난 후 선한 연으로 깨끗한 곳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자사 이견, 서천 절도사 위고(韋皋)는 이 일을 황제인 당덕종 이적(李適)에게 고했고, 황제는 조서를 내려 사자연을 칭찬했다. 이견은 또 금천 도장에 비석을 세우고 그녀가 도를 얻어 승천한 과정을 새겨넣었다.

현재 중국 쓰촨성 지방지(地方志) 사무실이 운영하는 쓰촨성 정망(情網)에는 당덕종의 ‘과주 여도사 사자연 백일비승에 관한 칙서’가 수록돼 있다.

图10:唐德宗《敕果州女道士谢自然白日飞升书》碑刻
당덕종의 ‘과주 여도사 사자연 백일비승에 관한 칙서’가 새겨진 비석

자사 이견도 ‘동극진인전(東極眞人傳)’ 제1권에 사자연의 이야기를 적었다. 이 책은 이미 유실됐으나 이십사사(二十四史) 중 ‘신당서(新唐書)’ 제65권에 ‘이견 『동극진인전』 제1권-과주 사자연’이란 한 구절로 책 이름이 수록돼 있다.

사자연의 백일비승은 당시 세상을 놀라게 했던 만큼 엄연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 사실을 믿지 않고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당나라의 저명한 문학가 한유(韓愈)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는 사자연이 신선이 된 이야기를 들은 후 500자에 달하는 ‘사자연시’를 써서 그녀의 수련 과정, 백일비승 당일 상황, 관리들도 목격자였다는 사실과 매미가 허물을 벗는 듯한 백일비승 과정 등을 아주 자세하게 적었으나, 마지막에 도를 닦아 신선이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이단(異端)이라고 주장했다. 한유가 이런 결론을 내린 것은 그가 평생 불도(佛道) 신앙을 배척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자연이 백일비승한 사실에 대해서는 부인하지 않았다.

(다음 편에 계속)

 

원문발표: 2023년 9월 11일
문장분류: 천인(天人)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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