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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이야기

글/ 진위(金玉)

[밍후이왕]

1. 머리카락에 남겨진 신의 흔적

인간은 신의 걸작이다. 서로 다른 신이 서로 다른 사람을 만들었으니 우리는 머리카락에서 서로 다른 신이 남긴 선천적인 흔적을 볼 수 있다. 황인종은 검은색의 생머리, 백인종은 담황색의 물결 머리, 흑인종은 세밀하게 곱슬곱슬한 검은 머리이다.

다윈의 진화론에서는 인간이 환경에 적응해 가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점점 진화되었다고 하는데, 이는 사실 잘못된 황당무계한 논리이다. 우리 머리카락을 예를 들어보자. 사람에게 머리카락은 주로 여름철 햇볕 차단, 겨울철 방한, 미용의 세 가지 용도가 있다. 앞의 두 가지 용도는 거의 무시할 수 있다. 많은 대머리를 가진 이들이 잘 살고 있지 않은가? 진화론의 관점에 따르면 햇볕 차단과 방한 등으로 환경에 적응하는 데는 인간의 얼굴에도 이러한 필요가 있으며, 마찬가지로 모발을 길러 보호해야만 한다. 왜 미구(眉丘)에만 눈썹이 자라고, 이마와 뺨에서는 털이 자라지 않는가? 이는 머리카락과 눈썹이 자라는 부위는 ‘선천적인 설정’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며, 어떠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이렇게 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머리카락과 눈썹은 모두 머리에 있지만, 성장 속도가 다르고, 형태도 다르다. 신의 배치는 대단히 절묘하다.

다시 미적 감각을 말하자면 마땅히 먼저 어떤 사물이 있고, 그 다음에 미적 감각이 있어야 한다. 눈썹이 미구에서 자라기 때문에 우리가 보기 좋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가 미구에서 자라는 것을 좋게 보기 때문에 거기에서 자라는 것일까? 확실히 전자다. 만약 창조주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사람의 이마에서 긴 털이 자라게 하고, (일단 그것을 이마털이라고 하자) 머리에서 자라지 않게 했다면 인류는 오늘날 틀림없이 이마털을 아름답게, 머리털을 추하게 여겼을 것이다.

게다가 미적 감각은 인간 심리 활동의 일부로, 인간에게 미치는 작용이 매우 제한적이다. 오랜 세월 동안 인류는 비상하는 독수리를 찬미했고, 자유롭게 나는 작은 새를 좋아했다. 한 쌍의 아름다운 큰 날개는 인류에게 있어서, 실용적 가치(편리한 이동)뿐 아니라 충분한 미적 감각을 부여한다. 그러나 인류가 아무리 머리 아프게 생각해도 한 쌍의 날개를 자라게 할 수는 없다! 당신은 “사람이 얼마나 대담한가에 따라 땅도 그만큼 생산한다.”라는 중공의 주장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가? 불가능하다.

겉보기에 하찮아 보이는 머리카락의 뒷면에는 사실 많은 비밀이 있으며, 이 모든 것은 하늘의 조화인 것이다.

2. 머리카락과 나이

머리카락에서 생명의 흔적을 볼 수 있으며, 사람의 나이에 따라 일반적으로 머리카락이 다르다.

중국인들은 종종 아이들을 황발(노란 머리) 녀석, 황발 계집애로 부른다. 어린 아이의 머리카락이 노란색을 띠기 때문이다. 청년기의 머리카락은 검고 윤기가 있다. 고대 여자아이는 15살이 되면 ‘급계(及笄)’라고 불렀다. (계는 고대에 사용한 비녀를 뜻한다) 남자가 20세가 되면 관례를 올려 성인이 되었음을 나타냈는데, 아직 장년이 되지 않았으므로 ‘약관(弱冠)’으로 칭했다. 사람이 늙으면 머리카락이 점점 잿빛에서 백발로 변하는데, 양쪽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해지면서 백발이 성성해진다. 특히 장수하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머리카락이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변하기도 한다. “황발(黃髮)과 수초(垂髫) 모두 편안하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었다.” [도화원기(桃花源記)]에서 ‘황발’은 노인을 가리키며, ‘수초(垂髫, 아이의 땋아 늘어뜨린 머리)’는 어린아이를 가리킨다.

물론 예외도 있다. 많은 노인이 수련을 거친 후에 젊음을 되찾아 백발이 검게 변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고서에 수많은 기록이 있고, 오늘날 파룬궁 수련자들 사이에서 매우 흔한 일이다.

고대 시(詩)문에는 머리카락으로 나이를 지칭하는 유명한 구절이 많다. “흑발부지근학조 백수방회독서지(黑髮不知勤學早,白首方悔讀書遲 – 머리가 검을 때 열심히 공부할 줄 모른다면 백발이 되어 공부가 늦은 것을 후회하리.)” “다정응소아 조생화발(多情應笑我,早生華髮 – 다정하여 나를 보고 웃으리라. 벌써 백발이 되었다고)” “군불견 고당명경비백발 조여청사모성설(君不見,高堂明鏡悲白髮,朝如青絲暮成雪 – 그대여 보지 못하였는가, 고대광실 맑은 거울에 백발 슬퍼함을, 아침에 파릇했던 검은 머리칼이 저녁엔 눈처럼 희나니)” “휴장백발창황계(休將白髮唱黃雞 – 백발이 됐다고 세월을 탓하지 말게나.)”

3. 머리 모양

시대에 따라 다른 머리 모양이 유행했으며, 머리 모양에서 그 시대의 정신적 풍모를 보아낼 수 있다.

고대에는 중국이 화하(華夏)라고 불렸다. 공영달(孔穎達)은 ‘춘추좌전정의(春秋左傳正義)’에 이렇게 썼다. “중국은 예의지국임으로 하(夏)라 칭하고, 아름다운 복식을 가져 화(華)라 칭한다.” ‘화하’는 문명 예의지국이다. 중국인의 조상들은 복식과 머리 모양에 있어서 모두 상당히 신경을 썼다.

고대의 아이들은 대부분 ‘수초’ 스타일이었다. 조금 더 크면 머리카락을 좌우 반으로 갈라 빗어 올려 머리 꼭대기 양쪽에 양의 뿔 모양으로 묶은 아이를, ‘총각(總角)’이라 했다. ‘총각지교(總角之交)’는 어릴 적부터 사귄 친구를 말한다. ‘유학경림(幼學瓊林)’에 나오는 “사이좋은 총각, 손책(孫策)과 주유(周瑜)”는 손책과 주유가 어릴 적부터 절친한 친구였다는 얘기다. 남자는 15세가 되면 총각을 풀어 하나로 묶었는데, 이를 ‘속발(束髮)’이라고 했다. 여자는 15세가 되면 비녀를 꽂고 ‘급계’라 했다. ‘예기(禮記)’에는 이런 말이 있다. “여자는… 15세에 계(笄-비녀)를 하고.”

우리는 고서와 옛 그림을 통해 각 왕조마다 성인이 각양각색의 머리 모양으로 아름다움을 겨루었음을 대략 알 수 있다. 고대 시 ‘맥상상(陌上桑)’에서는 “머리는 와타계(窩墮髻), 귀에는 명월주(明月珠-밤에 광채를 발하는 옥구슬)”로 나부(羅敷-진나라의 미녀)가 묘사되었다. ‘와타계’는 곧 타마계(墮馬髻)로, 정수리의 묶음머리를 좌우 한 쪽으로 늘어뜨리는 형태다. ‘목란사(木蘭辭)’에서는 화목란(花木蘭-영어로 옮겨놓은 이름 뮬란)이 집으로 돌아온 후의 모습을 묘사했다. “창가에서 운빈(雲鬢)을 다듬고, 거울을 마주하여 노란 꽃잎을 붙였다.” ‘운빈’은 구름 같은 까만 머리이다.

‘자곡자(炙轂子)’에는 “한무제(漢武帝) 때에 서왕모[王母-西王母약칭(고대 신화 속의 여신)]가 내려오니 신선의 묶음 머리가 인간 세상의 것과 완전히 달라 황제가 궁중에서 본받을 것을 명했고, 비선계(飛仙髻)라 칭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나라 무제 시기에 서왕모가 인간세상에 내려오니 사람들이 신선의 아름다운 묶음 머리 모양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무제는 궁중의 여인들에게 신선을 본받으라 명했고, 이를 비선계라 했다) ‘채란잡지(採蘭雜誌)’에는 위문제(魏文帝)의 아내 견(甄) 황후는 궁중에 한 마리의 청사(靑蛇)의 형체를 본떠 영사계(靈蛇髻)를 만들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중화고금주(中華古今注)’에는 “수나라에 능허계(凌虛髻), 상운계(祥雲髻)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머리 모양은 머리 꼭대기에 운판(雲盤)이 걸린 것처럼 흔들리지만 떨어지지 않는다.

​당(唐)나라는 중국의 국력이 가장 왕성하던 시기였고, 머리 모양도 평범하지 않았다. 나계(螺髻), 백합계(百合髻) 등 그릇을 포갠 형태의 머리 모양은 당나라에서 비교적 많이 등장했지만, 가장 광범위하게 유행한 묶음머리는 당나라가 흥성한 시기에 나타난 쌍도계(雙刀髻), 조천계(朝天髻), 원보계(元寶髻) 등의 반관식(反綰式) 묶음머리였다. 주방(周昉)의 ‘잠화사녀도(簪花仕女圖)’와 장훤(張萱)의 ‘도련도(搗練圖)’ 등의 명화에는 당시의 장엄한 단편이 충실히 기록되어 있다. 그림 속 여인은 매끄럽고 통통한 얼굴, 풍만하고 건강한 몸매, 화려한 의상, 높은 묶음머리에 금, 은, 보석, 비취 등의 장신구를 달아 번영했던 당나라의 우아하고 호화로운 심미적 기풍이 반영되어 있다.

고굉중(顧閎中)의 유명한 그림 ‘한희재야연도(韓熙載夜宴圖)’는 5대(5代-907년에서 960년에 걸쳐 황하 유역의 중원 지방에 잇달아 세워진 다섯 나라) 시기의 생활 모습을 그린 것으로, 그림 속 궁녀의 머리 모양은 모두 뒤로 높게 걷어 올렸고, 다양하고 아름다운 장식과 어울려 우아하고 다채로운 자태를 뽐낸다.

‘장대기(妝台記)’에는 “송이종(宋理宗)의 비(妃)가 묶음머리를 정수리에 높이 빗어 올려 우뚝 솟게 하고, 고추계(高椎髻)라고 하였다.”라고 기재했다. 송나라 산서(山西) 진사(晉祠)의 여인 조각상에 이런 머리 모양이 있다.

불교의 보관(寶冠)과 도교의 연화관(蓮花冠)의 영향을 받아 당(唐), 송(宋) 시기 사람들은 또 머리에 연화관(蓮花冠), 봉황관(鳳冠), 중루자관(重樓子冠) 등 다양한 화관을 쓰는 것을 좋아했다. 송나라의 가장 특색 있는 화관은 ‘일년경(一年景)’이다. 육유(陸遊)는 ‘노학암필기(老學庵筆記)’에 이렇게 썼다. “송나라 많은 여인이 ‘복숭아, ​​연꽃, 국화, 매화’ 사계절 꽃으로 머리를 장식하매 ‘일년경’이라 일컬었다. 고운 쪽머리와 화사한 화관이 서로 어울려 아름답기 그지없다.”

수련인은 또 다른 모습이다. 출가를 위해 승려는 ‘삼천번뇌사(三千煩惱絲)’를 깎고, 가사를 입고, 희미한 청등불과 오래된 불상 옆에서 수행을 한다. 도사는 정수리가 반질반질한 도사계(道士髻)에 도포 한 벌을 입어 세속을 초월한 풍격을 드러낸다.

변이된 현대인에게는 아무런 규율이 없고, 머리 모양도 괴상망측하다. 모히칸, 사마터(殺馬特-2000년 중반 중국 현란한 형광색머리와 화려한 옷차림을 유행시킨 단체), 버섯머리, 폭탄머리, 반춘(板寸-스포츠머리 형), 쑨샤오궈(孫小果) 식의 흑사회 두목 헤어스타일(목에는 굵은 금목걸이)…… 형형색색이다.

​4. 모발과 건강

머리카락이 몸 표면에서 자라지만, 인체의 모든 부분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머리카락 한 올을 수천 배로 확대하면 마치 큰 기둥과 같으며, 그 안에는 거대하고 기묘한 세계가 있다. 수련자는 대주천(大周天)이 통하게 되면 기가 전신을 관통하며, 머리카락 한올 한올을 지나간다.

중의학에서는 머리카락이 혈액, 신장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며, “피는 머리카락의 근원”, “신(腎-콩팥)의 꽃은 두발이다” 등의 말이 있다. 고명한 중의사는 ‘보고, 듣고, 묻고, 맥을 짚어 보는 일’을 통하여 ‘바라보고(望)’ 진찰하는 사람의 머리카락을 관찰해 신체 상태를 알아낸다. 건강한 사람의 머리카락은 일반적으로 검고 윤기가 나며,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의 머리카락은 흔히 누렇게 푸석푸석해지며, 마른 풀처럼 갈라지고 끊어지기 쉽다. 경험 많은 이발사는 죽어가는 사람의 머리카락은 몹시 뻣뻣하다고 말한다.

5. 머리카락과 개성

상유심 이라는 옛 말이 있다. 머리카락으로도 사람의 개성적인 특징 일부를 엿볼 수 있다.

굵기로 보면, 일반적으로 머리카락이 굵고 단단한 사람은 의지가 굳고 집요하며, 가늘고 부드러운 사람은 보통 용의주도하다.

이마의 머리카락 경계를 보면, 머리카락이 난 언저리 부분이 위쪽으로 치우친 사람은 비교적 활달하고 지혜롭다.

대다수 사람의 이마 라인이 약간 평평하고 완만하게 둥근 반면, 극소수 사람의 이마 라인은 마치 ‘산(山)’ 자와 같이 정중앙이 뚜렷하게 뾰족한 모양으로, 관상 책에서는 이것을 ‘참차(參差)’라고 한다. 머리칼이 난 언저리가 참차인 사람은 일반적으로 성깔이 대단하다.

머리카락의 색깔과 관련해 시골에서 떠도는 말이 있다. “노란 머리는 악하고, 흰 머리는 선하며, 곱슬머리는 다루기 힘들다.” 뜻인즉 머리카락이 노란 편이고, 특히 붉은색을 띠면 일반적으로 성격이 난폭하고 성질이 급하다는 것이다. ‘수호전(水滸傳)’에서 적발귀(赤髮鬼-붉은 머리털의 귀신처럼 생긴 자) 유당(劉唐)이 바로 그런 인물로, 공을 먼저 세우기 위해 항주성을 가장 먼저 입성하여 공격했다. 머리카락이 하얀 사람은 일반적으로 비교적 온화하다. 곱슬머리인 사람의 성격은 조금 괴팍하다.

물론 일률적으로 논할 수 없으며, 구체적인 상황은 구체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6. 머리카락 이야기

‘노발충관(怒髮衝冠 – 성난 머리카락이 관을 찌르다)’

인상여(藺相如)는 진왕(秦王)이 자신을 경멸하고 무례한 태도를 보이면서 성을 절대로 넘겨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채고 말했다. “그 화씨벽에 약간의 흠이 있사오니 신이 대왕께 보여 드리기를 청하옵니다.” 그는 화씨벽(和氏璧)을 손에 받아 들고 즉시 몇 걸음 물러나 기둥 가까이에 섰다. 그가 극도로 분노하자 머리카락이 곤두서면서 모자를 밀어 올렸다. (‘인상여가 옥을 들고 물러나 기둥 옆에 서니 노하여 머리카락에 관(冠)이 솟구쳤다.’ 여기서 관은 모자를 뜻한다.) 인상여는 노기충천하여 말했다. “대왕께서는 저를 조정에서 접견하지 않으셨고, 옥을 받으신 후에는 결국 빈들에게 돌려가며 구경하게 하시어 면전에서 저를 희롱하셨사옵니다. 그런 연유로 제가 옥을 되찾아왔사옵니다. 만약 대왕께서 저를 위협하신다면, 저는 머리와 옥을 함께 기둥에 부딪쳐 부수겠사옵니다!” 진왕은 급히 사과하면서 5일 동안 재계한 후에 옥을 받기로 승낙했다. 인상여는 진왕이 성을 넘겨주지 않는다는 것을 예측하고, 조용히 사람을 써서 옥을 조(趙)나라로 돌려보냈다. 이것이 바로 ‘완벽귀조(完璧歸趙)’ 이야기다.

악비의 ‘만강홍(滿江紅)’ 첫 문장은 이렇다. “머리카락이 곤두서 관을 떠 받쳐 들만큼 화가 나서, 높은 곳에 올라 난간에 몸을 기대니 세찬 비가 금새 그쳤다.”

‘할발대수(割髮代首 – 목 대신 머리카락을 자르다)’

한 차례 조조가 군대를 거느리고 출정하는데, 바로 밀이 무르익는 시기였다. 조조는 밀을 훼손하지 말라는 명을 내렸고, 만약 밀밭을 밟는 사람이 있으면 본보기로 참수형에 처하겠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행군하는 중에 조조의 말이 놀라서 밀밭에 뛰어들었다. 조조는 즉시 수행 관리를 불러 자신의 죄에 대해 벌을 다스리도록 요구했다. 주부(主簿)가 말했다. “어찌 승상을 벌하겠사옵니까?” 조조가 말했다. “내가 한 말을 지키지 않으면 누가 명령에 따르겠느냐?” 그리고는 보검을 꺼내어 스스로 목을 자르려 했다. 주부가 말했다. “‘춘추(春秋)’에 이르기를 지존에게 법을 적용하지 않는다고 했사옵니다. 승상께서는 대군을 이끄는 중책을 맡고 계신데, 어떻게 자결하실 수 있사옵니까?” 조조가 오랫동안 깊이 생각한 후에 말했다. “고서에 그런 설이 있다고 한 이상, 나에게는 또 천자가 내린 중책이 있으니 그렇다면 내 머리카락을 잘라 나의 머리를 대신하겠다.” [(고인(古人)들은 몸과 머리카락과 피부를 부모로부터 받았으니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함부로 머리카락을 자르는 것은 불효의 큰 죄를 저지르는 일이었다.] 그래서 조조는 머리카락을 잘라 군기를 세웠다.

‘두현량(頭懸梁 – 머리카락을 들보에 매달다)’

동한(東漢)의 손경(孫敬)은 늘 밤을 새워 공부했다. 그는 책을 읽는 동안 졸음을 막기 위해 끈으로 머리카락을 들보에 묶었다. 혼미해져 머리를 숙이기만 하면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그를 깨웠다. 그는 분발하여 공부한 끝에 고금에 통달한 대학자가 되었다.

‘절발연빈(截髮延賓 – 머리카락을 잘라 귀한 손님을 맞이하다)’

도간(陶侃)이 어렸을 때, 집안이 가난했다. 어느 날 대설이 내리는데, 친구인 범규(范逵)가 찾아왔다. 도간은 친구를 어떻게 대접해야 할 지 난처해하자 그의 어머니 담(湛)씨가 그를 안정시키며 말했다. “너는 손님만 맡아라. 나에게 방법이 있다.” 어머니는 침상에 깔았던 건초를 잘게 잘라 범규의 말에게 배불리 먹였고, 머리카락을 잘라 돈으로 바꾸어 쌀과 채소를 샀다.

도간은 고대 학자와 관리의 본보기였다. 사람들은 그의 성공이 지혜롭고 덕망 있는 어머니 덕분이라고 말한다. 담씨는 중국 역사상 4대 현명한 어머니 중 한 명이다.

‘오자서(伍子胥) 소관(昭關)을 지나니, 하룻밤 사이에 백발이 되다’

초평왕(楚平王)은 중상모략하는 말을 곧이듣고 오자서의 아버지와 형을 죽이고, 몽타주를 곳곳에 걸어 오자서를 수배했다. 오자서는 먼저 송(宋)나라와 정(鄭)나라로 도피했지만, 모두 불리하여 다시 오(吳)나라로 도피했다. 오나라로 가려면 반드시 소관을 지나야 했는데, 소관에도 그의 초상화가 붙어 있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의인 동고공(東皋公)의 집에서 잠시 지내야만 했다. 조급함과 상심 등으로 인해 오자서의 머리는 밤새 하얗게 세었다. 머리가 하얗게 세었기 때문에 다음날 오자서는 소관을 순조롭게 통과해 오나라에 도착했다.

‘천균일발(千鈞一髮-삼만근의 무게를 한 올의 머리카락으로 지탱하는 것과 같은 위태롭고 중요한 상황을 말함)’​

매승(枚乘)은 서한(西漢)의 유명한 문학가로, 오왕(吳王) 유비(劉濞) 휘하에서 낭중(郎中)을 지냈다. 유비가 조정에 모반을 일으키려 하자 매승이 그를 말리며 말했다. “한 가닥 소임에 천균의 무게를 묶어 위로 끝없는 높이에 매달고, 아래로 가늠할 수 없는 심연이 드리우게 했으니 비록 어리석은 사람일지라도 장차 그것이 끊어짐을 알 것이옵니다.” [머리카락 한 올에 천균(鈞)의 무게를 묶어 위로 끝없이 높은 곳에 매달고, 아래로 끝없는 심연에 걸치게 하니 이런 광경을 보면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극히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 균(鈞)은 고대의 무게 단위로, 30근이 1균이다.] 그러나 오왕은 간언을 듣지 않았고, 매승은 즉시 양효왕(梁孝王)의 문하에 들었다. 후에 오왕이 전쟁에 패하여 나라가 멸망했다. 사람들은 매승의 선견지명에 감탄했다.

7. 신주(神州)

중국의 옛 명칭은 신주(神州)로 신들의 고향이라 하여, 셀 수 없는 기적과 신기한 일이 현현(顯現)되었다. 중화 문화는 신이 전한 문화로, 그 넓고 심오함은 여러 면에서 구현되었다. 대련(對聯)만 보더라도 중국어 특유의 예술 형식으로, 세계의 다른 언어에는 대련이 없다.

옛날 이발소에는 “수운호모기예, 각시정상공부(雖雲毫毛技藝,卻是頂上功夫-비록 솜털만한 기예라 할지라도 알고보면 최고의 솜씨이다.)”라는 대련이 있었다. 단 열두 글자에 불과하나, 중의적인 표현으로 이발사 직업의 특징인 머리 손질, 정수리 작업을 밝힐 뿐 아니라, 이발사의 손재간이 비록 작지만, 실력이 뛰어남을 재치 있게 나타내고 있다! 신이 전한 문화는 정말 무릎을 치게 한다!

세계의 수많은 민족이 오늘날의 인류에 대해 예언을 남겼는데, 이 예언들은 놀랍게 일치한다. 말겁(末劫) 시기 인류의 도덕성이 크게 파괴되어 수많은 자연 재해와 인재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또한 시기가 되면 동방의 위대한 성인(聖人)이 인간 세상에서 법(法)을 전하여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고 중생을 구한다는 것이다.

명나라의 유명한 예언자 유백온(劉伯溫)은 ‘소병가(燒餅歌)’에서 세상을 구하는 성인을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승려 같지 않고, 도사 같지 않고, 머리에는 사량양융모(四兩羊絨帽 – 4냥의 양털 모자)를 쓰고 있다.” 뜻인 즉, 그 성인은 승려도 아니고, 도사도 아니며, 세속적인 모습으로 인간 세상에서 법을 전하는데, 그의 머리에는 머리카락이 있다는 것이다. (‘사량양융모’는 두발모양을 비유적으로 가리키는 말이다).

동양으로 시야를 넓히면 현재 사람들에게 신을 믿고 덕을 중시하는 것을 가르치며,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은 중국의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이 유일하다! 그가 1992년 5월 13일에 전한 ‘진선인(真·善·忍)’으로 수련을 이끄는 파룬따파(法輪大法)는 현재 세계 백여 개 국가와 지역에 널리 전파되어 전 세계 억만 명의 사람에게 혜택을 주고 있으며, 게다가 여전히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다!

신주에서 성인이 나온다는 것은 허황된 말이 아니었다!

저자 주: 인터넷에서 ‘잠화사녀도’, ‘도련도’, ‘한희재야연도’와 ‘고대의 묶음머리’ 모양을 검색할 수 있다.

 

원문발표: 2022년 6월 17일
문장분류: 문화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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