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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비의 시로 본 지극히 진실하고 선한 충(忠)의 경지 (2)

글/ 밍신(明心)

[밍후이왕] 천백 년간 중화의 자손들은 대대로 남송 시대 악비(岳飛)의 ‘정충보국(精忠報國)’ 사적(事蹟)을 전하며 칭송하고 우러러보았다. 악비가 금나라와 맞서 적을 섬멸하고 여러 차례 출중한 전공을 세우며 중원을 보위한 것은 사람들 귀에 익숙하고 또 상세하다. 희곡부터 평전까지, 소설부터 영화까지 서로 다른 시대에 각양각색의 표현 형식이 있었다.

‘시로 그 뜻을 말하는 것’은 중국의 오래된 전통이다. ‘악무목집(岳武穆集)’, ‘전송사(全宋詞)’에는 악비가 남긴 일부 시문을 수록했다. 이런 시(詩), 사(詞), 상소문, 기록 등 통해 시인이 표현하는 심지와 백성의 마음을 담아내는 초연한 포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전문에 이어)

[소흥(紹興) 3년] (1133년)

‘만강홍(滿江紅)’

怒髮衝冠, 憑欄處, 瀟瀟雨歇
성난 머리칼은 투구를 찌르는데, 난간에 기대서니 오던 비도 그치네

抬望眼, 仰天長嘯, 壯懷激烈
눈을 치켜뜨고 하늘 우러러 울부짖으니, 비장한 마음 끓어오르는구나

三十功名塵與土, 八千里路雲和月
삼십 년 쌓은 공명 티끌 같고, 팔천 리 전선에는 구름과 달빛뿐이네

莫等閒, 白了少年頭, 空悲切
어느 때 한가했던가, 젊었던 머리카락 백발 됐으니 공허하고 슬프고 애절하구나

靖康恥, 猶未雪
정강의 치욕 아직 설욕하지 못했으니

臣子恨, 何時滅
신하로서 이 한을 언제 풀 수 있으리

駕長車, 踏破賀蘭山缺
전차 타고 하란산 어귀를 밟아 무너뜨리리라

壯志飢餐胡虜肉, 笑談渴飲匈奴血
장부가 뜻을 세웠으니 주리면 오랑캐 살 뜯어 먹고 목마르면 흉노의 피를 마시며

待從頭, 收拾舊山河, 朝天闕
진두에 서서 빼앗긴 산하를 수복한 후 천자의 궁궐에서 알현하리라

소흥(紹興, 고종의 두 번째 연호) 3년, 악비는 이 천고에 빛나는 ‘만강홍’을 썼다. 충의의 기운이 얼굴을 덮치고 심금을 울린다. 비록 천백 년이 지났지만 생생하게 표현한 강직함과 기개, 비장함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산을 흔들기는 쉬워도 악가군(岳家軍) 흔들기는 어렵다.” 악비는 수양이 깊고 또 일에 부딪혀도 침착하며 갑자기 적을 만나도 움직이지 않았다. 적의 포석(炮石)이 몰려오면 다른 장졸은 놀라 좌우로 피했지만 악비는 우뚝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싸움터에 임할 때마다 악비가 탄 말이 앞장서 적진 깊숙이 들어가는데, 가는데 곳마다 대적할 자가 없었다.

악비의 출병은 덕을 앞세워 무고한 사람을 해치지 않았다. ‘송사(宋史)’에 의하면, 건주(虔州) 전투에서 황제의 어머니 융우(隆佑) 태후가 매우 놀라니, 황제가 악비에게 건주성을 점령한 후 성안 민중을 도살하라는 밀령을 내렸다. 악비가 적의 수괴는 주살하되 협박에 못 이겨서 복종한 자는 사면하기를 청했으나 고종은 불허했다. 악비가 재삼 간청하자 고종은 비로소 사면을 허락했다. 이에 성안 백성들은 악비의 은덕에 감격해 악비상을 그려 모셨다.

바로 악비군의 구호가 ‘얼어 죽을지언정 민가에 침입하지 않고, 굶어 죽을지언정 약탈하지 않는다’였다. 병사들이 밤에 숙영하자 백성들이 방문을 열어 병사를 방에서 쉬게 하려 했으나 함부로 들어가는 사람이 없었다. 병사가 병이 나면 악비가 직접 약을 조제했다. 장군들이 원정을 가고 없으면 아내를 그들 집에 파견해 위문했다. 장병이 전사하면 악비는 비통하게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고아를 키우거나 전사한 장병의 딸을 거둬들였다.

사서 기록에 따르면 악비는 조정에서 추가로 수여한 ‘소보(少保, 종일품)’ 관직을 다섯 차례 사직하고 잃어버린 중원을 수복함에 뜻을 두었다. 조정의 상여금과 위문품 모두 부하에게 나눠주고 그 자신은 조금도 갖지 않았다. “제일의 공을 세웠으나 악비는 언급하지 않았다.”

군량을 징집할 때마다 악비는 “동남지역 백성의 재력 소모가 극에 달했다”면서 백성을 걱정했다. 형호 지역이 평정된 후 백성을 모집해 밭을 경영하고 둔전(屯田, 주둔병이 경작함)을 실시해 매년 식량의 절반을 절약했다.

악비는 충효를 근본으로 했다. 북상해 중원을 평정했기에 악비는 장기간 어머니 곁에서 효도할 수 없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그는 집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위해 효도할 수 있기를 청했다. 그리고 “효로써 충으로 이행하며 일에는 본말이 있습니다. 만약 안으로 부모를 모시는 효를 다하지 못한다면, 밖으로 어찌 주상을 모시는 충신이 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효와 충은 같은 이치이고 가정의 일도 나라의 일과 같다. 만약 한 사람이 효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면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할 수 있겠는가?

악비를 음해했던 장수 장준(張俊)이 일찍이 악비에게 용병법을 물었는데 악비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인의, 지모, 성실, 용감, 엄격, 어느 하나도 모자라면 안 된다.”(계속)

 

원문발표: 2022년 7월 14일
문장분류: 문화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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