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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른베르크 나치 전범재판과 전 세계 장쩌민 재판

[밍후이왕] 1945년 11월 20일 오전, 독일 남부 도시 뉘른베르크는 세계가 주목하는 초점이 됐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곧 국제군사법원의 대심판이 시작되는데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유럽의 나치동맹국 전범과 민족차별 범죄인 반인류 범죄에 대해 공개재판을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범죄의 원흉 히틀러와 다른 몇 명 고위급 나치 두목이 뉘른베르크 재판이 시작되기 전에 이미 자살했거나 실종됐다. 21명의 나치 전범이 피고로 법정에 올랐다. 방청석은 물샐틈없이 사람으로 빼곡했고 250명의 기자가 현장에서 이 시각을 기록하고 또 목격했으며, 전 세계는 모두 이 대심판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21명의 전범 중 죄악이 가장 깊은 사람은 나치 공군 원수 헤르만 괴링인데 그는 극히 악명 높은 나치 비밀기구인 ‘게슈타포’의 창립자다. 그는 교수형 판결을 받았지만 처형 전 독약을 먹고 자살했다.

“우리가 심판하고자 하는 이런 죄악은 일찍부터 아주 면밀하게 계획됐고 지극히 악독했으며 파괴적이었다. 인류 문명은 이를 재판하지 않도록 홀시할 수 없으며 또한 그들이 다시 부활하는 모습은 더더욱 용인할 수 없다.” 이는 역사에 기재된 이번 대심판 중의 로버트 잭슨 대법관의 진술이다.

7개월 남짓 걸린 재판에서 최종적으로 18명이 ‘전쟁범죄’와 ‘반인류죄’로 판결 받았고 그 중 12명이 사형판결을 받았다.

뉘른베르크 대심판에서 수없이 많은 죄악을 저지른 대부분의 전범들은 자신의 변론에서 “나는 죄가 없다. 나는 직책을 충실히 지켰을 뿐이다. 범죄에 대해 책임질 수 없다. 당신들은 나를 심판할 자격이 없다” 등등을 말했다. 그들이 교활하게 변명하는 이유는 군인은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유태인을 살해한 것은 국가 법률에 따라 행사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1945년 8월 8일, 미·영·불·소 4개국 정부는 런던에서 정식으로 유럽동맹국 주요전범 고소와 처벌 협정을 맺었고 국제군사법정 헌장을 통과시켰다.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규칙을 확립했는데 바로 ‘반인도죄, 반평화죄와 전쟁죄’이다. ‘전쟁의 발생 전과 발생기간에 어떠한 평민에 대한 비인도적인 죄행이나 박해도 그가 범죄관할국의 법률을 위반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오직 그 박해가 본 군사법정의 판결 권한 내이거나 그와 상관되는 것에 속하기만 한다면 모두 이 죄에 속한다.’ 그러므로 공평과 정의의 자연법칙으로 가늠하면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후 제정한 민족차별대우법과 ‘강자는 죄가 없다’는 야만적인 전쟁법은 모두 악법이고, 누가 이러한 악법을 적극 집행한다면 이 때문에 초래한 죄악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뉘른베르크 대심판은 인류 문명사적 이정표로서 악을 강력하게 제압해 두려워 떨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인류의 평화를 보호했고 또한 양심적 도덕 표준을 수립했다.

그러나 이 역사적 교훈이 지난 지 겨우 50여년 만에 중국공산당 독재의 소인배 장쩌민은 파룬궁 창시자에 대한 질투에다 갈수록 많은 사람이 ‘진선인(眞善忍)’을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두려워 1999년 7월에 잔혹한 박해를 발동했다. 그는 자신이 장악한 국가 최고 권력으로 국가 군대, 무장경찰,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당정기관, 경제수단 등 자원을 통제해 맨주먹뿐인, 신앙을 추구하는 자국민과의 투쟁을 선포했고 아울러 “3개월 내에 파룬궁을 소멸하겠다”고 미친 듯이 부르짖었다.

히틀러와 다른 점이라면 장쩌민은 음험하고 교활하다는 점이다. 장쩌민은 거짓말로 자신을 자랑하고 날조, 모욕, 죄를 씌우는 등 수단으로 파룬궁을 비방했다. 히틀러는 자기 민족의 혈통이 가장 우수하다고 줄곧 여겨왔기에 갖은 방법을 다해 유태인을 살해했다. 장쩌민은 오히려 ‘진선인’의 표준에 따라 자신을 수련하는 자기민족의 가장 우수하고 선량한 백성에 대해 잔혹한 학살을 감행했다. 그 잔혹한 정도는 악명이 자자한 나치 수용소도 비할 바가 못 됐다. 더욱이 파룬궁수련생에게서 산채로 장기를 적출해 폭리를 챙겼으며, 국가기관인 군대, 무장경찰, 공검법, 위생부가 주도한 살인산업이 빚은 천인공노할 죄악은 장쩌민 이후 역대 집권자마저도 국제사회를 향해 감히 말할 수 없게 했고, 전 국민에게도 감히 말할 수 없게 한 극악무도한 일이었다. 이는 또한 하늘이 중국공산당을 소멸[天滅中共]시키는 중요 원인이기도 하다.

장쩌민은 가짜 법률의 명의로 실제로 사악한 일을 했다. 자신이 발동한 남에게 보일 수 없는 명령이 거침없이 집행되도록 하기 위해 그도 히틀러처럼 국가 행정기구 위에, 국가 법률 위에 게슈타포와 비슷한 사악한 조직인 ‘610사무실’을 설립해 전문적으로 파룬궁수련생을 체포, 구류, 수감, 판결, 세뇌, 고문 등등을 행하는 것을 책임지도록 했으며 공안, 검찰, 법원은 그것의 괴뢰와 졸개가 되게 했다. 여러 해 동안 중국공산당에 길들여진 법 집행자들은 또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법률이 없다”, “우리에게 법률을 말하지 마라”, “파룬궁하고는 법률을 말하지 않는다”고 큰소리치며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이런 법 집행자들이 법을 위반하게 된 것은 장쩌민이 자기가 원하는 바에 따라 파룬궁에 대한 성질규정을 했기 때문이며, 또한 박해에 참여한 사람에게 살인허가증을 발급해준 것과 같기 때문이다. 파룬궁에 대해서는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를 파탄시키며, 육체를 소멸하고’ 맞아 죽었으면 죽은 것이고 신원조사 없이 직접 화장했다. 이는 원래부터 도덕적 한계가 없고 늘 시기하며 권세에 빌붙고 승진하고 돈을 버는 데 수단을 가리지 않는 그런 사람들을 이용했다. 이들에게 좋은 사람을 해치는 것을 더욱 극성스럽게 하도록 만들었으며 인성이라고는 전혀 없게 만들었다. 이 모두는 장쩌민이 그들에게 주입한 사악한 에너지의 결과였다.

대비해 보면 장쩌민의 사악한 명령을 집행해 파룬궁을 박해한 사람은 나치 전범과 무슨 구별이 있는가? 애석하게도 오늘까지 여전히 진상을 듣지 않는 사람은 아직도 공산당, 장쩌민이 하라고 한 일은 잘못이 없다고 여기고 있으며,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잘못했던들 어떻단 말인가? 오직 공산당이 무너지지만 않으면 나는 아무 일이 없다”고 말한다.

나치 전범 역시 스스로 괜찮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들은 국제군사법정의 피고석에 앉아 자기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대가를 감당하게 됐다. 장쩌민을 바짝 따라 파룬궁을 박해하던 저우융캉, 최초 ‘610사무실’주임 리둥성, 군사령관 쉬차이허우의 잇따른 낙마와, 고문으로 파룬궁을 잔혹하게 해친 왕리쥔, 보시라이가 심판을 받은 것은 장쩌민 악의 집단이 바야흐로 멸망될 것이며 장쩌민이 심판대에 오를 날이 머지않았음을 이미 증명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승국 연맹은 파쇼 침략을 직접 받은 나라이므로 그들은 나치 전범을 토벌, 심판하는 공통적인 인식을 형성하기 아주 쉬웠다. 그러나 장쩌민이 발동한 파룬궁 박해 운동은 단지 수련 단체만 겨냥한 것이므로 당초 국내외에서는 모두 유력한 지지를 얻지 못했다. 하지만 16년을 지속한 끊임없는 진상 알리기를 통해 악을 폭로해 갈수록 많은 각국 정부와 국내의 기만당했던 민중이 진상을 알게 됐고, 2억여 명이 형성한 탈당 물결은 이미 중국공산당의 운명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널리 백여 개 국가에 전해진 파룬궁은 모두 세계 각국의 환영을 받고 있으며 갈수록 많은 국제 정의로운 인사들이 중국공산당을 비난하고 즉각 박해를 중지하라고 호소하는 정의의 물결 속에 가입하고 있으며, 많은 나라에서도 파룬궁을 표창하고 지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악한 중국공산당을 배척하고 박해를 폭로하는 정의의 거센 흐름에 가입하고 있다.

이번의 정사(正邪)의 대결에서, 파룬궁 수련생은 직접적으로 명예, 경제, 육체적으로 중국공산당 장쩌민 악의 집단의 잔혹한 박해 대상이 됐다. 그들이 지나온 길은 고난 중에서도 중국인을 각성하게 한 한 부의 역사다. 하늘이 중국공산당을 소멸하고 전 세계가 장쩌민을 공개 재판할 그날은 틀림없이 올 것이다. 반인류죄, 집단학살죄, 고문죄를 저지른 장쩌민이 법망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문장발표: 2015년 5월 20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5/5/20/3096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