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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을 도와 악행을 저지른 대륙매체 책임들이 악보 당한 사례

응당 매체는 민중을 위해 진실을 제공하고, 사회를 위해 객관적이며 공정한 보도로 각 행정부처를 감독하는 작용을 해야 한다. 하지만 중공매체는 일단 독재정치의 대변자로서 이들을 감독할 수 없을뿐만 아니라 도리어 중공의 사악한 힘이 되어 부채질하고 있다.

며칠 전 중공신화사는 또 다시 10년 전 “천안문분신” 사건을 보도해 세인을 독해하고 파룬궁을 비방했다. 2011년 『칭도(青島)조간신문』, 산시시안(陝西西安)『화상신문』, 『지난시보』등은 사람을 해치는 보도를 했다. 바로 매체의 위력은, 한편의 공정한 보도는 세인들에게 진상을 분명히 알릴 수 있으나, 한편의 비방보도는 곧 수많은 독자들을 해친다. 그러므로 일단 이런 양심 없는 일을 하면 그 죄의 크기가 하늘과 같아 하늘의 징벌을 받을 것이다. 아래에 다만 몇 개 사례를 들기로 하자.

천안문분신사건을 모함, 조작하여 급사하다

“분신” 사건의 CCTV 특별프로그램 제작자는 천멍(陳虻)이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제작한 뒤 10월에 『둥팡스쿵(東方時空)』주관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승진은 모두 양심을 판 댓가로 건립한 것이다. 예를 들면 2001년 그는 쟈저우(加州)의 어느 연구 토론회에서 말하기를 “내가 보기에 뉴스는 진실성이 없다.”, “누가 나에게 밥을 주면 나는 목숨을 바쳐 일할 것이다.” 고 했다. 뜻밖에 그의 용맹스러웠던 그의 한 마디는 그의 미래운명을 결정했다.

2008년 12월 23일, 계속 승진하려던 천멍은 위암이 발견되어 9개월 후 북경의 종류 병원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갔는데 그 때 나이는 겨우 47세 였다. 동료들은 모두 놀랐는바 술 한 방울 마시지 않았던 천멍이 위암으로 죽다니? 위암치료 중 또 암세포가 간 부위에 전이된 것을 발견했다. 잇따라 간암은 더욱 심하게 아팠다. 결국 그는 비록 직장 없는 아내와 11살인 아들이 있었지만 스스로 더 살려고 하지 않았을 만큼 고통스럽게 300여 일을 지내다 고통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죽기 전 그에게서는 사람모습이 없었다.

뉴스네트워크 대변자가 림프 암으로 죽다

당시 천멍과 함께 북경 종류병원에서 동무하던 중앙뉴스네트워크 대표인물 뤄징은 중공의 대변자로 근무했는데, 파룬궁을 모함하는 많은 거짓말 모두 그의 입을 통해 전해나갔다. 뤄징은 림프 암에 걸려 치료를 받은 뒤 기본적인 건강을 회복했다. 그러나 그는 그 당시 마음으로 돌아가서 거짓말하는 대변자를 지속하려 했다. 그 결과 하루 밤 사이에 병세가 악화되어 당시 뤄징의 구강궤양이 너무 심각해서 마취약으로 입을 가시고 약을 먹었다. 밥을 먹거나 물을 마실 때마저 아파서 죽을 것 같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내막을 아는 사람들은 쑥덕거리며 이야기하기를, 뤄징이 입으로 사람을 속여서 결국 그의 입을 저렇게 썩게 만들었다고 하면서 정말 보응이다!고 했다. 죽을 때 뤄징은 48세였는데 천멍 보다 한 살 위였다.

네이멍구『츠펑일보(赤峰日報)』주필 왕란(王然)과 부 주관 편집 잔궈룽(展國龍)은 파룬궁을 비방해 보응을 당해 사망하다

네이멍구『츠펑일보』는 1999년 7월 20일부터 중공사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파룬궁을 비방하는 문장을 대량으로 발표해 수많은 세인을 독해하고, 현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하는 형세를 격화했는데, 주필 왕란이 그런 중대한 책임을 맡았었다. 2005년 왕란은 암에 걸려 1차 수술을 하고 2006년에 다시 간 이식수술을 했으나 치유되지 못하고 결국 사망했다. 그해 약 53-4세였다.

『츠펑일보』부 주관 편집(원『홍산석간신문』주필) 잔궈룽은 2008년 자가용을 운전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중형화물차 뒤를 들이받는 교통사고로 그와 그의 모친, 가정부 세 사람이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그해 49세였다. 잔궈룽이『홍산석간신문』주필을 하는 기간 파룬궁을 비방하는데 열심히 참여해 결국 이렇게 비참한 말로를 당했다.

『허난일보』신문출판업계 이사장이 파룬궁을 비방하여 닻이 명을 앗아갔다.

『허난일보』신문출판업계 이사장, 양융더(楊永德)는 중공사당을 따라 적극적으로 악행을 했다. 그의 수중에 있던 여러 신문사를 통해 파룬궁을 모독했고, 거짓말을 퍼뜨려 민중을 독해했다.

양융더는 부하를 사주해 정저우(鄭州) “610”(짱저민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조직한 불법조직이고 공안 검찰 법원을 능가했다.)과 공안악도를 도와, 자신의 회사에 다니던 파룬궁수련생 허싼프(和三普)을 잔혹하게 박해했다. 아무런 이유없이 부처장급 대우를 취소하고 노동교양소로 납치해 심각한 피해와 고통을 주었다. 노동교양만기 후 석방하지 않고 직접 세뇌반에 끌고가 5개월간 감금한 뒤 세뇌를 시켰는데, 허싼프를 그 후로도 세 번 세뇌반에 납치되어 박해 당했다.

그 기간 국내외 수련생들이 반복해서 그에게 전화를 걸어 선을 권했지만, 유감스럽게 양융더는 시종 잘못을 고집한 채 깨닫지 못하고 신불의 자비한 구도를 포기하고는 서서히 궁지에 빠져 들었다.

2007년 2월 9일 유람선 한 대가 베트남 망제(越南芒街) 인근해변에서 항해하던 중 갑자기 선객 양융더의 핸드폰 소리가 울렸다. 선실 안이 시끄러워서 그는 선창 밖에 나가 선측에 서서 전화를 받았다. 당시 미풍에 잔잔한 파도가 일면서 좋은 날씨였음에도 갑자기 순식간에 하늘에서 한조각 구름이 밀려들더니 신속하게 해면을 감싸더니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유람선은 계속 항해하고 있었고 양융더는 계속 통화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갑자기 “퉁”하는 요란한 소리가 울리더니 유람선과 석탄운반선이 부딪쳤고, 선체가 맹렬하게 흔들리면서 양융더를 바다에 던졌다. 양융더는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고, 유람선은 긴급히 닻을 내리며 멈췄지만 무거운 쇠로된 닻이 곧장 양융더의 정수리를 내리쳐 그의 64세 생명을 앗아갔다.

원『장춘일보』그룹총재 모함 문장을 실어서 사람을 해쳐 암으로 사망

왕쿤(王坤) 여 55세 중공사당당원 원 『장춘일보』신문사 그룹총재다. 재임기간 사당을 바싹 쫓아 뉴스를 선전하고 “610”을 따라 수차례 당원 지도자회의에서 당보기구 지도자와 당원은 파룬궁 연마를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녀가 사주하여 『장춘일보』,『장춘석감신문』을 통해 대량으로 파룬궁을 모함, 날조하는 문장을 싣도록 하여 광대한 독자들을 독해했는바, 그 영향이 매우 나빴다.

왕쿤은 엄중이 덕을 잃어 품행이 변이되고 회사 내 악풍을 상승시켰는바, 뇌물 주는 악습을 되풀이 하여 7-8명 지도자가 사법기관의 법적 처분을 받았고, 그녀는 철직당하고 관련된 유관 문제에 대해 설명을 요구했다. 2009년 구정기간 55세인 왕쿤은 악보를 받아 암으로 죽었으며 선악은 보응이 있다는 교훈을 검증했다.

『간수일보』사 사장 악보로 사망

쓰싱광(石星光)은 1945년 간쑤성민친셴에서 (甘肅省民勤縣) 태어나 1970년 서북사범대학 중문과를 졸업한 뒤 장예스에서 근무했다. 1999년 1월부터 2005년 3월 성위 선전부장에 『간쑤일보』사 사장직을 겸임했다. 『간수일보』는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동안 요언과 거짓말을 전파하는 공구가 되어 세인을 독해하는 극히 나쁜 작용을 했으므로 쓰싱광으로 말하자면 큰 죄업을 졌다. 2005년 11월 16일 10시 쓰신광은 란저우(蘭州)에서 형이 만기돼 석방된 사람이 들어가서 그를 살해했다.

십년간 중국대륙에서 요언 선전에 참여한 언론인들이 악보 당한 사례가 허다하다. 교통사고, 인재, 병사, 가족까지 재앙 당하는 등등의 보응이 올 때 사람은 회천할 힘이 없다. 공자가 말하기를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다.”고 했다. 파룬궁은 고덕대법이고 “真善忍진선인”을 수련하며 난세에 중생을 구도하고 있다. 대법은 자비와 위엄이 함께 있고 박해와 비방은 절대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마다 대법홍전시기에 있으므로 모두 평등한 기회가 있으며 모두 자신의 위치를 가늠해 정하고 있다. 중국대륙 매체 대변자로서 양심을 지킬 수 있는가? 다시 중공사당의 사람을 해치는 공구가 되지는 않는가? 되도록 중공의 요언과 박해당한 증거를 수집하는 것은 역시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다.

문장발표: 2011년 1월 28
문장분류: 고금논담
문장위치: http://zhoubao.minghui.org/mh/haizb/199/A05/816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