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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로 두 발이 동상에 걸린 왕신춘의 염원

글/ 더위안(德元)

[밍후이왕] 최근 밍후이왕에 중국 파룬궁수련자들의 박해 관련 비디오가 실렸다. 비디오의 대부분은 2007년 이후에 찍은 것으로 박해당한지 1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지속적으로 박해당하고 있는 비참한 현실을 반영했다.

첫 번째 비디오는 헤이룽장(黑龍江)성 이춘(伊春)시에 있는 파룬궁수련자 왕신춘의 사연이다. 그는 전에 췌장암에 걸렸다가 1998년 파룬궁을 수련한 후로 회복되었다. 전에 베이징(北京)에 청원하러 갔다가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불법 노동교양을 당했다. 2002년 초, 왕신춘은 파룬궁 진상을 알리다가 경찰에게 추격당했는데, 깊은 산속에서 영하 30도의 엄동설한에 갇혀 있다가 두 발이 동상을 입었다. 그가 납치당한 후 또 짜오펑거우(遭豊溝)파출소 소장 왕웨이(王維) 등은 강제로 뜨거운 물을 끼얹어 왕신춘의 멀쩡하던 두 발이 썩어버렸다. 왕신춘이 박해로 장애를 입은 후에도 관련 당국은 지속적으로 그에게 소란, 구타와 그의 생계를 끊어버리는 등의 박해를 했다.

박해로 잃은 두 발

2002년 초, 왕신춘은 악당 강(江)씨 집단이 거짓말과 유언비어로 뒤집어씌운 비열한 수단을 폭로하고 파룬궁과 잔혹한 혹형으로 파룬따파(法輪大法) 제자에게 박해한 죄행을 폭로하기 위해 파룬궁 진상 전단지를 배포했다. 전단지를 배포하다가 악경들에게 추격당해 영하 30도 넘는 깊은 산속에서 실수로 강에 빠져 털신이 흠뻑 젖고 말았다.

동북에서 자란 사람들은 동상은 불로 쬐거나 뜨거운 물에(40도가 넘는 뜨거운 물에 담그면 오히려 동상을 가중시킨다)담글 수 없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 왕신춘은 비디오 동영상에서 당시 경찰이 오전 내내 뜨거운 물에 발을 담그게 했는데 그 후 그는 두 발을 움직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왕신춘이 악경에세 납치당한 후, 원 펑거우파출소 소장 왕웨이 등은 비인격적이며 강제적으로 왕신춘의 두 발을 뜨거운 물에다 담그게 해서 왕신춘의 멀쩡하던 두 발이 썩어버렸다. 왕신춘을 박해했던 두 경찰도 발에 동상을 입었지만 그들은 차가운 물에다 씻은 후에 별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두 발을 잃은 후, 왕신춘은 괴롭힘을 당해 빈사상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그는 휠체어에 앉아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었다. 당시 경찰은 그의 집 근처에서 그를 전문 감시했고 매월 270위안의 수당을 받고 있던 삼림농장 소방대원 왕펑촨(王鳳全)은 그와 휠체어를 2미터 깊은 구덩이로 발로 차서 빠지게 했고 또 발과 주먹으로 그의 두 태양혈을 때렸다.

파룬궁이 왕신춘의 목숨을 구했다

왕신춘은 연공 이전에 췌장암에 걸렸다. 어디에서도 치료할 수 없었는데 파룬궁을 수련한 후에 모두 완치되었다. 보통 췌장암은 종양에서 악성정도가 가장 높고 또한 사망율도 가장 높다. 췌장암의 평균생존기는 3~6개월이고 5년 생존율은 5%를 초과하지 못했으며 췌장암이 스스로 사라지는 경우는 아주 적었다. 왕신춘은 1998년에서부터 현재까지 이미 12년을 살았다. 이것은 이미 의학에서의 기적이었다.

2002년 그가 이춘시 진산툰(金山屯) 원펑거우판출소 소장 왕웨이에게 박해로 장애를 입었을 때, 진산툰병원 원장, 펑마오(豊茂) 주임은 모두 왕신춘이 3개월을 넘길 수 없다고 말했다. 어느 한 병원 주임은 “그가 만약 약을 먹지 않고 나으면 나는 이 주임노릇을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왕신춘은 매일 『전법륜』을 보고 연공했다. 7년이 지났지만 그는 아직도 잘 지내고 있다. 오히려 몸은 이전보다 더 건강해졌다. 만약 여러 번 박해당하지 않았다면 발은 일찍 완치되었을 것이다. 매 번 박해로 인해 발의 상처가 커졌고 경찰들은 박해할 때 전적으로 발이 끊어져 장애를 입은 다리를 때렸다.

파룬따파는 왕신춘의 목숨을 구해줬다. 그는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진상과 불법적인 박해를 알리는 이것은 가장 기본적인 인성과 양지의 표현이다.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지불한 대가

왕신춘이 박해를 당하는 중 2개의 중요한 사실이 있다. 하나는 그가 두 발이 경찰에게 데었지만 여전히 구치소로 보내져 박해 당했다는 점이다. 당시 기타 범인과 출근했던 사람들은 모두“이런 사람을 데리고 와서 무엇을 하려고, 빨리 되돌려 보내세요. 너무 비인격적입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경찰들은 사람을 풀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또 그의 사지를 족쇄에 채워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했다. 또 하나는 왕신춘이 집으로 돌아온 후, 한 삼람농장 소방대원은 매월 다른 소방대원보다 20위안을 더 받기위해 파룬궁수련자들을 감시하고 또 직접 감시당하는 장애인에게 악독한 수단을 쓰기도 했다. 이 두 가지 사실은 박해의 잔혹함을 설명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더 현재 중공이 당문화에 세뇌당한 중국사회의 슬픔을 설명해 주기도 한다.

중공이 정치를 장악한 이래 중국인을 박해하는 여러 번의 정치 운동 중에서 후방효과를 조성함으로써 중국 사회는 운동이후 사회적으로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게 되었다. 중국인은 지금도 여전히 중공에 의해 발생한 문화대혁명의 대가를 치루고 있다. 박해에 참여한 많은 사람들은 문화대혁명을 겪었다. 중공이 일으킨 문화대혁명은 많은 사람들의 양심과 인성을 파괴시켰을 뿐만 아니라 또 많은 사람들에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중공이 세운 ‘계급적(阶级敌人)’으로 여겼던 사람들을 비판하고 투쟁하며 박해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특히 파룬궁 박해에 참여한 사람들이 인성을 소멸하는 폭력적이고 야만적인 것은 상당 부분은 당시의 중공폭정이 그들의 마음에 새겨진 것 때문이다.

지금의 중국사회는 바로 중공이 국가의 미래를 막고 파룬궁을 박해하는 특수한 역사시기에 처해 있다. ‘진(眞), 선(善), 인(忍)’에 대한 박해를 교과서에 써 넣었다. 도덕을 지키고 높은 표준으로 좋은 사람으로 되려는 이들이 오히려 사회에서 짓밟히고 심지어 박해를 당하고 있다. 좋은 사람이 되려면 막대한 대가를 치러야하는 결과는 전체 사회로 하여금 진정한 신념이 드러나게 했다. 백성이 신념이 없으면 최후에는 최소한의 양심의 가책도 없이 어떤 나쁜 일이든 모두 할 수 있다. 또 사회전체에는 살인(杀), 독(毒), 거짓(假)이 남무 할 것이다.

최근에 중국에는 “분유로 00을 소멸한 후, 시험으로 90소멸한 후, 집값으로 80을 소멸한 후, 실업으로 70을 소멸한 후, 퇴직으로 50을 소멸한 후, 이주로 40을 소멸한 후, 의료 개혁으로 30을 소멸한 후..”이런 말이 유행하고 있다.

사회전체의 증오와 사회모순의 격화가 생생하게 나타났다. 선량과 관용을 위배하는 이것은 바로 사회전체가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위해 지불한 대가 중의 하나이다.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10년 동안은 중국의 사회도덕이 가장 빨리 아래로 미끄럼질 한 10년이었고 또한 중국사회의 현재와 미래가 지불한 대가가 대한 가장 큰 10년이었다. 한 사회의 주권자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이런 사회가 얼마나 큰 대가를 지불해야 유지할 수 있겠는가, 또 미래에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가?

중공은 머지않아 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넘기면서 해체될 것이며 중공통치하에서 생활하고 있는 중국인은 잘못이 없다. 중공의 본질을 지적하고 진상을 알리는 것은 중국인을 위해 중공이 없는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서이지 중공에 박해당하는 전체 중국인을 비평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진상을 알고 이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에서 여전히 중공에 대한 환상 혹은 인정하는 태도를 품고 있다면 이것은 바로 주동적으로 중공과 한 패가 된 것이며 중공과 같이 대가를 지불하고 중공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선택했기 때문에 역사에게 도태당할 것이다. 중공이 조성한 중국사회의 현실을 말하는 것은 파룬궁을 위한 것이 아니며 실제로 당신과 당신의 다음 세대를 위한 것이다.

왕신춘은 마음속으로 말했다. “만약 내가 겪은 고통으로 사람들의 양심과 선념(善念)을 일깨워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모두 파룬궁진상을 알고 파룬따파는 좋다는 것을 기억해주길 희망합니다.” 중공의 이런 박해 하에서 파룬궁수련자는 당신의 어떠한 것도 가지려고 하지 않았고 반대로 거대한 희생으로 당신에게 진상을 알리고 선택의 기회를 주었다. 이런 포부와 노력, 그 배후의 중대한 의미는 당신이 심사숙고해야 하지 않겠는가?

문장발표: 2010년 8월 25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8/25/2288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