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화상으로 분신자살의 거짓을 보다(사진)

글/ 윈롄(雲蓮)

[밍후이왕] 2001년 1월 23일에 발생한 천안문 분신(焚身)자살 사건은 중국 공산당(이하 중공)이 파룬궁(法輪功)에 뒤집어 씌운 비극이다. 오늘 우리는 이 사건에 관련된 사람이 입은 심각한 화상에서 중공이 이 사건에 대하여 특별한 배치를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천안문 분신자살사건에 대하여 중공 매체는 모두 똑 같이 보도했으며, 더욱이 중앙 TV ‘초점방담’ 프로그램에서도 이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인 사람은 왕진둥(王進東)이었다. 몇 분 뒤에 하오후이쥔(郝惠君), 천궈(陈果)모녀와 류춘링(劉春玲), 류쓰잉(刘思影) 모녀가 잇따라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중공의 보도에서 우리는 볼 수 있는 바 당시 하오후이쥔, 천궈, 류춘링, 류쓰잉 몸의 불을 끄는 시간은 1분 반도 걸리지 않았고 왕진둥 몸의 불을 끄는 시간도 1분이 채 되지 않았다. 당시 매 사람마다 모두 4 ~ 5개의 소화기를 들고 그들을 둘러싸 불을 끄고 있었다. 첫 번째로 불을 붙인 왕진둥에게 불을 끄려고 시도 했을 때 왕(王)은 거절 했다. 신화사(新華社)는 “많은 경찰들이 온 힘을 다해 구해주려고 했을 때, 이 남자는 계속 ‘x교’ 구호를 높이 외치면서 끊임없이 그의 몸에 덮여 있는 소화담요를 젖히면서 거절했습니다.”라고 이렇게 보도했다.

央视焦点访谈节目的录像:王进东在天安门广场上安稳地坐着,警察拎着灭火毯在他身后静静地站立,等王进东对着镜头喊完台词,才盖上灭火毯;而且王进东两腿中间的塑料汽油瓶在大火中不燃烧、不变形。

중앙 TV ‘초점방담’ 프로그램에서 왕진둥은 천안문 광장에서 차분하게 앉아 있었고 경찰은 소화 담요를 들고 그의 뒤에서 조용히 서 있다가 왕진둥이 카메라에 대고 대사를 외친 후에야 소화 담요를 덮었다. 게다가 왕진둥 두 다리 중간의 플라스틱 휘발유 병은 큰 불에서 타지 않았고 변형도 되지 않았다고 했다.

19살 천궈가 입은 화상 면적은 80%였고 3도 화상이 50%를 차지 했으며 머리, 얼굴 부위는 4도 화상을 입어 흑색 부스럼 딱지가 되었다. 12살 된 류쓰잉의 온 몸 화상 면적은 40%였으며 머리, 얼굴부위는 4도 화상을 입어 두 눈꺼풀은 밖으로 뒤집어 지고 얼굴, 두 손은 거의 훼손되었다.

하오후이쥔을 만났던 사람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비록 딸 만큼 엄중한 화상을 입지 않았지만 화상을 입어 한 쪽 눈이 멀었고 남은 한 쪽 눈도 콩알만한 구멍으로만 볼 수 있다고 했다. 입술도 화상을 입었고 머리도 화상을 입어 머리가 자라지 않았으며, 손목에는 수건 하나를 감고 있었다고 했다. 손을 잃어 그녀는 수건으로 입에서 나오는 침을 닦아야 했으며 보기엔 마치 나무 인형 같았다. 그 모녀 두 사람은 24시간 동안 전담 간호원이 간호해 주었다.

왕진둥만 가장 가벼운 화상을 입었다. 비록 판결을 받았지만 그가 파룬궁을 비판하는 태도가 가장 철저했고 또 기자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또 책을 쓰기도 했다. TV 방송에 출연했을 뿐만 아니라 또 빈번히 기타 불법으로 감금 당한 파룬궁수련자가 있는 곳에 나타나 연설을 했기 때문에 그를 만났던 사람들이 비교적 많았다. 그는 화상을 거의 입지 않았고 머리도 멀쩡했다.

우리는 묻고 싶다. 가장 먼저 분신을 시도한 왕진둥은 왜 가장 가벼운 화상을 입었는가? 경찰이 그가 ‘분실자살’할 때, 설령 불꽃을 보고 즉시 이것이 분신자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우선 소화기를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보도에 따르면 5명의 분실자살자 중에서 오직 왕진둥 만이 구조를 거절했다고 명백하게 말했다. 어느 한 면에서 분석한다 해도 첫 번째로 점화한 사람인데 가장 가벼운 화상을 입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가장 엄중한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은 보편적인 정황이고 보편적인 도리이다.

만약 우리가 이 의문점에 따라 분석한다면 분신자살의 ‘배치’는 상당히 세밀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 배치는 오직 이 사건을 감독한 중공만이 알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사람은 반드시 타 죽어야 하고 어떤 사람은 어느 정도의 화상을 입어야 하는 이 배치는 반드시 매우 세밀하게 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분신자살 후에 조성한 현실에 대해서 답변을 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우선 사망한 류춘링 모녀를 말해보자.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지에서 2001년 2월 4일 첫 면, 첫 번째 문장에서 ‘분실자살의 불꽃이 중국의 흑막을 밝게 비춰 주었다 – 대중 앞에서 분신자살의 동기는 파룬궁에 대한 투쟁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조사 보도가 발표되었다. 필립 판 기자는 직접 중국 현지 카이펑(開封)에 가서 조사했다. 이웃 주민들은 누구도 류춘링이 파룬궁을 연마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류춘링의 화상과 죽음은 이미 다 결정되었던 것이었음을 볼 수 있었다. 왜냐하면 파룬궁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 분신자살을 한다면 그녀에게 분신자살의 의문이 너무 많을 수 있다. 때문에 사람들의 비할 바 없이 비참한 심리적인 고통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한 사람은 현장에서 죽어야 했다. 이렇게 류춘링은 중공에게 선택되었다. 이것은 다큐멘터리 「위화」에서도 아주 명확하게 폭로한 바 있었다. 중앙 TV에서 방영한 영상에서 류춘링을 사망하게 한 것은 그녀의 머리를 향해 타격했던 물체였음을 볼 수 있었다. 재빠르게 불을 끄는 가운데서 사람을 죽이려면 아마 이런 방법밖에 없었을 것이다.

央视天安门自焚镜头的慢动作重放
중앙TV 천안문 분신자살화면을 느린 속도로 다시 방영한다

류쓰잉의 죽음은 더욱 잘 해석할 수 있다. 어찌 한 아이만 남길 수 있는가? 이 아이는 어떤 지력으로 이 세계 매체의 의문에 직면할 수 있겠는가? 그 아이는 당시 12살이었다. 이후 몇 년의 세월 중에 그 아이가 알고 있는 실제 정황을 말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있겠는가? 그 아이는 구급차에 실려가면서 고통스럽게 “엄마” 라고 외쳤다. 또 기관을 절개한 후 또렷하게 파룬궁에 누명을 뒤집어 씌우는 기자들의 문제에 대답했으며 사람들에게 파룬궁에 대한 증오를 일으킨 후, 그 아이의 죽음은 필연적이 된 것이다.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류쓰잉은 생명 위험에서 벗어난 후 어떠한 징조가 없는 정황에서 죽은 것이다.

违反医学常识的央视自焚录像:小女孩刘思影在做了气管切开手术几天后带着插管,声音清晰地接受采访并唱歌。记者不穿卫生服,不戴口罩,直接采访。
의학 상식을 위반하는 중앙 TV 분신자살 사건 비디오에서 어린 여자아이 류쓰잉은 기관 절개 수술한지 며칠 후에, 호스를 꽂은 상태에서 목소리는 또렷하게 기자의 취재를 받으면서 노래까지 했다. 기자는 위생복을 입지 않았고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취재했다.

하오후이쥔과 천궈 모녀는 분신자살자 중에서 가장 아름다웠다. 특히 천궈는 중앙 음악대학의 대학생이었고 꽃다운 나이에 꽃다운 용모가 있었다. 그녀의 사진에서 그녀는 아름답고 날씬했고 순수했다. 하오후이쥔은 음악교사였고 뛰어난 기질을 지니고 평범하지 않은 외모가 있었다. 그러나 왜 그 모녀들만 남겼는가? 명백한 것은 이 번 분신 자살에서 소위 증명을 남겨야 했기 때문이었다. 무엇을 증명하는가? 이 두 모녀는 기자 답변에서, 또 이후에 중공이 파룬궁 ‘전향(수련을 포기함)’을 위한 연기 역할에서 사람들은 이 모녀 두 사람이 자신이 소위 직접 겪은 경험으로 온 힘을 다해 파룬궁을 모함했다는 것을 보기 어렵지 않다.

우리는 이 각도에서 아주 쉽게 중공 분신자살사건의 거짓을 볼 수 있다.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할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을 태워 버렸고, 파룬궁과 어떠한 관계도 없는 사람의 입을 막았다. 물론 또 도처로 돌아 다니면서 선전하는 대표가 있어야 했으며, 그는 그때 당시 가장 ‘확고’한 것처럼 표현해야 했고 구조를 거절하고 또 크게 구호를 외쳐야 했다. 이런 배치는 정말로 많은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사람들의 한가지 간단한 의문이 이 일체 위장을 모두 벗겨버렸다. 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모습이 완전히 바뀌고 왜 파룬궁과 관계가 없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맞아 죽었고 이후에 또 살해당했는가? 가장 먼저 분신한 사람은 왜 약간의 상처도 없는가?

물론 또 하나 상응된 의문이 있다. 이 사람들은 당시 바로 아주 적당하게 중공이 필요한 정도로 화상을 입은 것이 아닌가? 병원에서 당한 것은 아닌지?

천안문 분신자살사건은 9년이 넘었지만 세상 사람들이 그것에 대한 의문을 전혀 멈추지 않았다. 어떤 일들은 당사자 자신도 잘 모르고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찌 자신 스스로 그 추한 것을 폭로하겠는가?

중공이 어떻게 뒤 덮는다 해도 거짓이 남겨준 흔적은 결코 폭로될 것이다. 인권단체 ‘국제교육발전기구’는 2001년 8월 14일 유엔 회의에서 강력하게 ‘천안문 분신자살사건’은 중공 당국의 ‘국가 공포주의 행동’이라고 질책했다. 즉 소위 ‘천안문 분신자살사건’은 파룬궁에 대한 모함이고 사람을 놀라게 하는 음모와 모살에 관련된다고 했다. 성명에서 비디오를 분석하고 표명한 바 전체 사건은 ‘정부가 단독으로 감독한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중공 대표단은 확실한 증거에 직면하면서 변명하지 않았다. 이 성명은 이미 유엔에서 기록으로 남았다.

더욱더 중공을 부끄럽게 한 것은 2003년 11월 8일 씬탕런 T V에서 제작한 ‘천안문 분신자살사건’을 폭로했던 시리즈 「위화」는 각 나라에서 대회에 참여한 600여 편의 영화에서 두각을 나타내 제 51회 콜럼버스 국제 영화 TV제전에서 명예상을 받았다. 「위화」는 놀라운 화면과 엄격한 분석으로 ‘분신자살’ 사건의 많은 의문점을 폭로했다. 아울러 전체 사건은 중공이 파룬궁을 모함하려고 조작한 가짜 사건이었음을 증명할 수 있었다.

문장발표: 2010년 8월 19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8/19/22853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