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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에 대한 깨달음

글/우밍(吳名)

【밍후이왕 2010년 4월8일】신앙이란 사람이 모종의 이론, 학설, 주의에 대한 복종과 이를 존경하고 받드는 일이다. 또한 그것을 자신의 행위 준칙과 활동의 지침으로 여긴다. 그것은 한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의 근본준칙과 태도이다. 신앙은 신념에 속하며 신념의 일부분으로서 신념에서 가장 집중되고 최고의 표현형식이라 할 수 있다. 신앙은 사람이 인생관에 대한 선택과 소지(持有)이다.

옛말에 신이 사람을 만든 후 흙으로 만들어진 사람은 너무 연약하여 비바람만 맞으면 쓰러지는 것을 발견했다. 하여 신은 사람에게 등뼈를 심어줬다. 등뼈는 사람이 어떠한 비바람속이든지 또 얼마나 어렵든지 사람더러 우뚝 설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이 등뼈가 바로 신앙이다.

종교를 믿는 신도에게 있어서 신앙의 본래 모습은 부처, 선인, 보살, 예수, 마리아와 이들이 사람에게 가르친 도리이다. 현재는 물결 따라 알게 모르게 세간의 명예와 돈을 신앙하고 있다. 전의 종교의 성지는 거의 찾아볼 수 없고 금전교역과 헛된 명예를 교역하는 곳으로 전락됐다. 화상과 도사, 목사마저 탐욕에 빠졌으며 인정과 같은 속인의 마음에 젖어있고 욕망을 구하고 있다. 진정으로 사람을 순정케 하고 속세를 초월할 수 있는 신앙은 어디가야 찾을 수 있겠는가?

파룬궁 역시 신앙군체이다. 파룬궁 수련생은 수련에 성공하려면 곧 ‘공으로 몸을 연마하고 경으로는 그 마음을 닦아야 한다.’ 5가지 공법 외에 파룬궁에서 가장 주요한 것은 《전법륜》이다. 무엇이 수련이고 어떻게 수련하며 어떻게 하는 것이 쩐(真)이고 싼(善)이며 런(忍)인지, 연공해도 왜 공이 자라지 않는가? 등등 의문점이 모두 이 책속에 들어있다. 진정으로 수련하는 자는 읽을수록 천기를 발견해 나갈 수 있고 공성원만하게 된다. 중사(中士)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보배를 얻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늘 파룬궁을 일반적인 기공으로 오해하고 있다. 연공하려면 연공만 하면 되지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 왜냐하면 파룬궁은 일반적인 기공에 비길 수 없으며 신체건강만 위한 것이 아니며 더욱이는 심령의 충실함을 얻게 된다. 파룬궁은 체조가 아니다. 체조는 코치가 신체 훈련하는 것을 가르치면 그만인데 파룬궁은 도대체 무엇인가. 《전법륜》을 보기만 하면 사람마다 초급적인 인식을 가질 수 있다.

진정으로 수련하는 제자도 필경 사람으로부터 시작하며 각자의 기점에서 시작한다. 출가하지 않고 절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속인사회에서 수련하며 출가하여 절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쉬우면서 어려울 수 있다. 사람마다 서로 다른 업과가 있고 특성이 있다. 부동한 생활경력은 부동한 관념의 장애를 형성했다. 어떻게 복잡하고 험악한 환경에서 연꽃같이 티 없이 초탈할 수 있고 원만한 인생을 이룰 것인가. 그것은 속세보다 높은 신앙과 법리의 지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오직 법을 공부하고 법리에 대한 이해가 깊어갈수록 비로소 굽은 길을 적게 걷고 제고할 수 있으며 진보가 빠를 수 있다. 또한 속세의 먼지를 털어버리고 본성을 되찾을 수 있으며 진정으로 반본귀진할 수 있다.

문장발표: 2010년 4월 8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0/4/8/221155.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