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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도 않는 중공군, 장기이식은 세계 제일(사진)

글/전쥔(甄鈞)

【명혜망 2009년 11월 17일】 중국 공산당의 통제를 받는 중공군대는 1989년 6.4 천안문 사건 때 학생과 시민들에게 발포한 이후 지금까지 20여년이 넘도록 그 어떤 외부 전쟁에도 참여한 적이 없다. 중공군의 해외 파병은 공병부대가 유일하다. 하지만 전투도 치르지 않는 중공군대가 도리어 지난 10년 동안 세계최고기록을 세운 분야가 있으니 바로 장기이식수술이다. 이 분야에서 중공군은 전 세계 모든 군대 중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위이다.

현재 인민해방구 총후근부(總後勤部) 위생부장이자 전 제2군의대학 교장인 장옌잉(張雁靈) 소장(少將)은 신화 사이트에 “1978년 전체 군병원 중 겨우 3곳에서만 신장이식수술을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간장, 신장, 심장, 폐장이식 및 다(多)장기 연합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만 이미 40개가 넘는다. 이는 전국 총수의 4분의 1에 달하는 수치이다.”라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파룬궁박해국제추적조사(CIPFG)에 따르면 중국에 있는 150여 개의 군병원 중 대다수가 장기이식수술을 시행하고 있다. 이는 이들 병원의 사이트를 방문해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군부대에서 시행하는 장기이식수술의 수는 깜짝 놀랄 정도로 많은데 웬만한 병원에서는 1년에 수십에서 백여 건에 달하는 수술을 한다. 이를 모두 합하면 그 수가 놀랄 정도로 많다. 더욱이 이들 수치는 관방에서 발표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뿐이며 사실 비공개적으로 실시되는 수술 건수는 이보다 훨씬 많다.

해방군 총병원(301병원) 간담과(肝膽科) 외과주임인 둥자훙(董家鴻)은 충칭(重慶)시 제3군의대학 서남(西南)병원에서 간이식만 약 700건을 집도했으며 2006년에 베이징으로 옮겨왔다. 서남 간담외과병원은 2001년 해방군 간장이식중점실험실로 지정되었고 2005년 3월에는 총후근부에서 중국인민해방군 간장이식센터로 인가 받았다.

이 병원은 동시에 6건의 간이식을 수행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매년 200차례의 간이식을 하고 있다. 이곳은 또 장쑤(江蘇), 산둥, 광둥, 산시(陝西), 윈난, 쓰촨, 신장, 구이저우, 푸젠, 광시 등지에 있는 21개 의료기관에 간이식수술을 보급하고 도와주는 간이식기술훈련센터가 되었다.

 

사진1: 해방군 총병원 간담외과 주임 둥자훙

제2군의대학 소속의 창정(長征)병원 해방군 장기이식연구소는 2003년 12월 해방군 총후근부로부터 정식 설립을 인가받았으며 2005년 4월 22일부터 4월 30일까지 9일 동안 16차례의 간이식과 15차례의 신장이식을 진행했다. 이 병원 내부 사이트에서 표방한 것에 따르면 이는 “단위시간 내에 가장 많은 장기이식을 한 신기록”이라고 한다.

쓰촨에 있는 해방군 452병원은 2000년 병원설비가 낡고 의사가 부족해 부채만 약 천만위안에 달해 향진(鄕鎭)병원으로 불렸다. 2002년 이 병원 원장 장충(張聰)이 한 지방기업가와 협정을 맺고 800만 위안의 투자를 받아 병원과 공동으로 신장이식과를 운영했다. 공동 경영기간에 투자자는 매년 병원에 120만 위안을 투자하고 무상으로 봉사했다. 그 결과 452병원은 331건의 신장이식수술을 완수해 이 부문에서 쓰촨성 최고가 되었다. 2007년에는 병원 수입이 700만 위안에 가까운 기록을 세웠으며 이중 400만 위안을 주고 원래 투자자가 설치한 모든 설비와 운영권을 넘겨받았다. 452병원의 이런 방법은 중공군 위생계통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다른 군병원들도 이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사진 2: 452병원 병원장 장충

중간 정도 규모의 지난(濟南) 군구(軍區) 총병원 비뇨기외과에서는 이미 1500여 건의 신장이식수술을 했고 99년 이후 매년 13차례 이상의 신장이식을 해왔다.

쓰촨 청두(成都) 육군총병원에서는 5일 동안 8명에게 신장이식수술을 해주었다. 2006년 5월 23일 《랴오시상바오(遼西商報)》에 ‘한 군의관의 고상한 경지와 추구’라는 제목의 문장이 실렸다. 문장 중에 진저우(錦州)시 해방군 205병원 비뇨기과 주임의사인 천룽산(陳榮山)이 지난 수년 동안 “모두 합쳐 568건의 신장이식수술을 집도해 성공률이 100%에 달하는데 1년 생존율이 98%가량 된다. 그의 뛰어난 기술은 랴오시에서 독보적이다. 그의 명성을 듣고 찾아오는 환자들이 끊이지 않으며 대만과 싱가포르, 한국, 말레이시아 등지의 환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라고 했다.

전쟁에는 장기이식이 필요하지 않아

전쟁 부상에 관한 미군 보고서 중 가장 상세한 것이 WDMET 보고이다. 이 보고서에서 월남전 기간 사상자수를 분석한 통계에 따르면 전체 치명적인 손상의 37.2%가 두부(頭部)손상이며 36.4%는 흉부손상이었다. 복부손상으로 인한 치명상은 겨우 9.2%에 불과했다. 또한 미군 방탄복은 몸통 부분을 중심으로 보호하기 때문에 실제로 부상당할 확률은 몸통보다는 팔다리부분이 훨씬 높다. 전선의 미군 군의관들은 보통 부상치료를 담당하는 일반외과나 정형외과의사들이다. 전쟁터에서 간부위에 치명적 손상을 입을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

크로아티아 내전 기간에 현지 병원에서 치료한 7928명의 부상자 중 겨우 2.2%만이 간부위에 손상을 입었고 대부분의 환자들은 폭발물에 의한 파편에 관통된 상처를 입었다. 이곳에서 간부위에 손상을 입은 환자들의 주 치료수단은 상처를 소독한 후 혈관을 봉합한 것이며 간혹 대량출혈의 경우에나 간부위에 압박을 가해 지혈할 필요가 있었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요하네스버그 병원에서 304명의 간부위 손상환자를 치료한 경험에 따르면 대다수의 부상자들이 단순하고 작은 수술로 성공적으로 치료되었다. 수술방법도 상처를 씻고 간 주위를 눌러 압력을 가한 후 지혈하는 것이었으며 간을 절제하거나 이식하는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점은 이들이 치료한 환자들 대다수가 고속으로 발사된 탄환에 의한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전장에서 부상당한 상황과 아주 흡사하다.

이상을 통해 알 수 있다시피 전장에서 간에 손상을 입을 확률은 아주 낮으며 설사 손상을 입었다 해도 목숨을 구하기 위해 간을 교환할 필요는 없다.

한편, 신장(腎臟)은 구조적으로 등 쪽에 위치해 있고 앞에는 복부와 복강 내 장기들이 보호하고 있기 때문에 뒤로 돌아 달아나거나 혹은 자기가 쏜 총에 부상당할 확률이 비교적 높은 곳이다.

이라크 전쟁 당시 미군 부상자 중 신부전 증상이 나타난 사람은 긴급 후송되었다. 왜냐하면 전선에는 신장투석실을 설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캘리포니아 대학 어바인 분교 신장이식과 주임교수인 포스터는 일찍이 이라크 전선에 초빙된 적이 있는데 이는 그가 신장이식 전문가라서가 아니라 일반외과의사로 상처치료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언론과 인터뷰하던 중에 그는 “전선에는 CT가 없고 화학실험 장비도 없으며 우리 병원과 같은 완벽한 시설이 없으며 전부 응급수술이라 기본적으로 지혈하고 배를 갈라 검사해야 했다.”라고 회상했다.

전에 미군 신장센터주임을 역임했던 도나디오(Donadio) 의사는 월남전 당시를 회고하면서 “신장투석이 필요한 사람들도 종종 신장 자체에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 아니라 파편이 많이 박히면서 신장기능이 심하게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부상은 사망확률이 80%가 넘는다. 신장투석을 한다해도 단지 며칠의 시간을 벌 수 있을 뿐이며 최종적인 사인은 신부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즉, 전쟁터에서는 신장을 이식할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필요하지도 않다는 말이다.

약 50년 동안 끊임없이 전쟁을 치러온 미군, 그중에서도 의료조건이 가장 좋은 곳은 육군병원이다. 월터 리드 육군병원에서는 매년 약 30차례의 이식수술을 진행한다. 미국에는 약 250개의 병원에서 이식수술을 하는데 이중 오직 8곳만이 군병원 또는 퇴역군인을 위한 병원이다. 아울러 이들 병원들은 미국 지방병원 의사들에 의뢰해 수술을 진행하고 군병원은 단지 설비만 제공할 뿐이다. 때문에 미국의 군병원에서 이식수술을 할 경우 모두 인근 대형병원과 함께 한다.

가령 미국 포틀랜드 군병원은 미국 군병원 중 간이식을 가장 많이 하는 병원으로 1989년부터 지금까지 약 252차례의 수술을 진행했다. 그러나 서남간담외과병원은 불과 1년 동안 200여 건의 간이식을 수행했다. 이는 비슷한 규모의 미군병원에서 20년 동안 수술한 결과를 다 합친 숫자에 해당한다.

해방군 총병원 제1부속병원 전군(全軍)장기이식센터 주임 스빙이(石炳毅)는 최근 1580여 건에 달하는 신장이식과 360여 건에 달하는 간이식을 완수했다. 이는 미군 최대병원의 1년 전체 이식수술 횟수보다 10배 이상 많은 수치이다.


사진3: 해방군 총병원 제2부속병원 전군장기이식센터 주임 스빙이

전투도 않는 군대가 이식에 매달려

1980년대 개혁개방이래 중국 군병원은 사회적으로 유료서비스를 실시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군병원이 추구하는 것은 더 이상 ‘효용극대화’가 아니라 ‘이윤극대화’가 되었다. 1990년대 초 의료시장 개혁 이후 의료서비스는 이익을 추구하는 상업행위로 변질되었다. 군병원에 대해 말하자면 이는 단비와도 같은 조치였다.

군 내부의 서비스는 지표만 채우면 그만으로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았지만 대외 서비스는 이윤을 추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곧 군병원은 군인들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장애물이 되었다. 의료개혁이 시작되면서부터 군인들을 밖으로 밀어내기 시작했고 지금은 완전히 일반 지방병원이나 고급 장교들을 위한 ‘요양병원’이 되었다. 군병원은 이미 “병사들을 위해 복무한다”는 애초의 취지가 사라졌고 “관(官)을 위해 복무하고 돈을 위해 복무한다”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중국에서는 모든 군대병원과 지방병원의 수가 표준이 완전히 동일하다. 대다수 군병원의 약제비는 총수입의 절반이상을 차지한다. 부대병원은 사실상 일반 지방병원에 불과하지만 차이점이라면 비용을 군사비에서 전액 지출하고 의료진이 군복을 입고 진료하며 군 당국에서 관리한다는 점뿐이다.

중공 군병원은 장기이식이 잠재적으로 거대한 수익이 된다는 것을 발견하고 대대적으로 이식수술을 보급했다. 게다가 일반 지방병원에 없는 대규모 장기공급창고(파룬궁 수련생)를 가져 장기이식에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희망지성 국제라디오방송 기자가 2006년 4월 28일 베이징 칭화대학 부속 제2병원 위취안(玉泉)병원 신장이식센터 주임 리훙후위(李宏輝)를 취재한 바에 따르면 그는 쓰촨 청두에 이식용 장기가 많아서 현지 부대병원에 파견되어 지원을 나간 적이 있다고 한다. 공군 청두병원에서 22년 경력을 지닌 쉬(許)주임은 본인이 집도한 신장이식수술만 500여 건에 달하는데 최근 2, 3년 동안 매년 평균 100여 건을 수술했다. 그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이 병원에서 사용하는 이식용 장기가 파룬궁 수련생들의 신장이라고 했다.

해방군 총병원 간담외과 주임인 둥자훙이 신화사이트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간암환자가 간 절제 수술을 받으려면 3갑(甲) 성립(省立)병원에서 평균 2-3만 위안이 필요하지만 간장이식에는 이보다 10배가량인 20만 위안 이상을 받는다고 한다. 아울러 장기이식을 받은 사람은 평생 면역억제약물를 복용해야 하는데 이 비용이 또 연간 5만에서 10만 위안에 달한다. 때문에 장기이식수술은 단지 수술자체의 거대한 이윤뿐만 아니라 환자가 평생 복용하는 약값을 통해 병원 측에 끊임없는 수입을 창출해준다. 마치 정기예금에 매년 이자가 붙는 것과 유사하다.

캐나다 독립조사단 보고서에서 인용한 2002년 4월 설립된 해방군 총병원 제309 임상부 장기이식센터는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한 증거를 통해 “이식센터는 우리 부서에서 중점적으로 이익을 창출하는 곳이며 2003년 수입이 1607만 위안, 2004년 상반기 수입만 1357만 위안에 달해 금년(2004년)에 3000만 위안을 돌파할 것이 기대된다.”라고 했다.

보수적인 군대의 특성과 엄격한 위계서열 때문에 대부분 군대병원의 관리자와 실무 책임자들은 아직도 문화혁명 무렵에 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전문 수준은 낮지만 소위 ‘(중공을 위한) 정치적 각성’과 ‘관리수준’은 높게 유지하고 있어 상사가 중간 간부들을 억압하는 것은 아주 흔한 일이다. 때문에 상부의 뜻에 따라 중공의 정책을 관철하는데 여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데 파룬궁 수련생 장기이식은 군병원의 이익 추구와 파룬궁 박해정책이란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구비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중공 부대병원에서 장기이식수술이 급속히 성장하게 된 것이다.

문장발표 : 2009년 11월 17일
문장분류 : 시사평론>참고자료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9/11/17/212749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