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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의 정법(政法)계통을 틀어쥐고 박해를 실시한 뤄간의 6가지 죄 (그림) -편집문장

글 / 중 얜

[명혜망 2005년 12월 20일] 2005년 12월 17일, 명혜망에서 보도한 두 가지 소식이 특별히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34세의 쑨 꾸이펑이 싼둥성 법제 양성센터에서 시달려 사망”, “깐쑤성 豫극단 피파 연주사 류즈팡 ‘법제학교’에서 박해로 사망”. 무모하고 선량한 두 생명이 똑같이 잔인한 방식으로 생명을 빼앗겼다. 안건은 비록 부동한 두 개 성의 부동한 곳에서 발생했지만 안건 발생지점은 똑같이 “법제”라는 꼬리표가 달렸다.

교묘한 일치인가? 아니면 우연한 일인가? 모두 아니다. 만일 명혜망을 살펴본다면 곧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법제양성센터”, “법제학교”, “전화반” 각 급, 각종 파출소, 노교소, 구류소 등 이런 곳에서 발생한 박해사실은 너무나도 많다. 법률 집행부문과 국가기구는 응당 공민의 인신안전과 기본권리를 보장, 보증해 줘야 한다. 그러나 파룬궁 수련자가 신앙을 포기하고 진상 알리는 권리를 포기하게 하기 위하여 이런 이른바 “법제” 부문들은 철두철미한 위법 범죄기구로 돼버렸고, 사용하고 있는 박해방식은 혹형, 정신적 시달림(세뇌), 성 침범 및 인신모욕 등이다.

본문은 지금 여전히 중공 권력층에 있는 뤄간이 중공 정법계통의 대권을 틀어쥐고 무고한 중국 공민을 박해한 6가지 죄를 열거하였는데, 한 방면으로는 더욱 많은 민중들이 박해진상을 요해하기 바라며, 다른 한 면으로는 더욱 많은 중국 사람들이 중공악당의 본질을 똑똑히 보아내고 사악에서 벗어나 자신을 구하는 길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 첫 번째 죄: “610” 주범으로서 폭력으로 진리를 타격

99년 장쩌민은 질투가 나서 파룬궁 탄압을 결정했다. 6월 10일, 장은 직접 명령을 내려 파룬궁을 전문 집압하는 기구 “610사무실”(간칭 “610”)을 건립하였다. 610은 뤄간과 리란칭의 직접적인 지휘를 받는데 전국도시, 시골마을, 기관학교에 모두 있다. 6년 남짓한 동안 뤄간은 파룬궁에 대하여 “명예를 더럽히고, 경제상에서 무너뜨리며, 육체를 소멸”하는 멸절정책을 실행하는 면에서 있는 힘을 다하였다.

국제추적조사 결과에 따르면 7월 20일 후 뤄간은 장쩌민의 파룬궁에 대한 “군체멸절” 정책을 실시하는 면에서 주도적으로 작용을 하였다. 1999년부터 오늘에 이르기 까지, 그는 파룬궁 탄압을 점차 승화시키는 탄압정책 제정에 직접 참여하였다. 뤄간은 또 여러 차례의 회의와 연설 중에서 전국의 정법기관 등에서 파룬궁에 대한 진압을 힘차게 추진할 것을 직접적으로 요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직접 전국각지로 다니면서 감독하고 머무는 등 그가 가는 곳이면 현지에서는 파룬궁에 대한 체포, 혹형박해와 사망안건 사례가 모두 증가되었다.

최근에 명혜망에 실린 소식을 예로 들어보자. “2004년 10월 중앙정법위 서기 뤄간, 공안부장 쩌우융캉이 허난에 온 후 허난 대법제자에 대한 또 한 차례의 박해를 직접 배치하였다. 각 시(市) 악도들은 미친 듯이 대법제자들을 체포, 납치하여 세뇌반에 보냈고, 불법 감금된 형기가 찼거나 초과된 대법제자들을 세뇌반에 보내 계속적인 박해를 가하였다.”

명혜 2004년 11월 24일 보도. “믿을만한 소식에 의하면 우두머리 뤄간은 최근 후난에 와 있다. 뿐만 아니라 성 소재지에서 이른바 “X교를 징벌하는 골간 양성반”을 조직하였다. 화이 화의 여러 명의 수련자들이 납치되었다.”

2005년 6월 29일 명혜보도. “뤄간 쓰촨에 기어들어간 후 2명의 청두 대법제자가 납치”, 11월 3일 명혜보도. “10월 18일, 난창지역 3명 파룬궁 수련자를 체포, 후에 또 9사람이 불법적으로 체포되었고, 지금 12명 파룬궁 수련자가 난창 따이쟈산 세뇌반에 감금……. 믿을만한 소식에 의하면 쩡(칭훙) 뤄(간) 두 사람은 10월에 난창에 왔었다. 10월 19일, 사람 붙잡는 일이 즉시 나타났다.”

* 두 번째 죄: 법률을 능가하고 박해에 수단을 가리지 않다.

국제추적 조사결과에 따르면, 뤄간 등 사람들이 개인의 권력을 이용하여 국가 정부의 이름으로 제정한 파룬궁에 대한 일련의 정책, 규정, 실시로 인하여 억만 파룬궁 수련자들이 상해를 받았고 몇 십만 파룬궁 수련자들이 불법적으로 구류, 노교, 판결을 받았다. 이는 중국의 형법 제 14조, 헌법 제 37조와 감옥법 제 16조의 규정을 엄중히 위반한 것으로서 이미 범죄가 구성되었다.

뤄간은 획책하고 지시, 종용하여 공안집법 부문이 지법범법하게 하여 중국 헌법 제 37조, 38조, 41조, 51조와 민법 통칙 75조 및 형법 제 13조, 14조, 243조와 254조의 규정을 엄중히 위반하여 이미 엄중한 범죄를 구성하였다. 그 외, 뤄간은 중국이 서명한 “국제 반혹형 공약” 및 “군제 멸절성 도살 반대 유엔 공약” 의 유관 조례를 범하였다.

뤄간은 파룬궁 진압에 수단을 가리지 않는다. 가장 전형적인 것은 파룬궁 수련자 가오룽룽이 박해 받은 사건이다. 파룬궁 수련자 가오룽룽이 신앙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여 선양시 중산 교양원 경찰한테 전기충격을 받아 얼굴이 훼손되었다. 2004년 10월 5일, 파룬궁 수련자 몇 명이 성공적으로 그녀를 구출하였고 잔혹한 박해로 훼손된 얼굴 사진을 세상에 공포하였다. 공안부는 가오룽룽의 탈출사건을 “26호 대안건”으로 정하고 뤄간이 직접 지시하여 성, 시로부터 현, 구에 까지 층층으로 회의를 전달하고 수색할 것을 명령하였다. 료닝성 정법회, “610사무실” 검찰원, 사법, 공안 등 부문은 손잡고 가오룽룽의 소식을 엄밀히 봉쇄하였다.

그 기간 선양 주변의 각 시, 구역의 공안국과 철도, 민항, 유전의 공안 부문은 선후로 모두 가오룽룽을 붙잡으라는 지시를 받았고 선양시 사법국의 “조사협조 통보”를 받았다. 이 통보는 또 시 구역의 가도 판사처, 아파트 구역, 거민 위원회, 각 소식점, 방산중개소, 가정복무공사 등 곳에 하달되었다.

료닝성, 선양시 “610사무실”, 선양시 공안국과 공안국 국보 대대는 뤄간의 지시에 따라 엄밀히 배치하여 대량의 공안, 특무들을 정거장, 부두, 모든 공공장소에 비밀리에 파견하여 밤낮으로 감시하였다. 모든 수단을 다 이용하여 현지 파룬궁 수련생들에 대하여 도청, 정찰, 뒤를 밞았다. 한 면으로는 가오룽룽을 붙잡고 한 면으로는 진상을 알리고 가오룽룽 구원에 참가한 수련생들을 박해하였다.

구원에 참가하였던 파룬궁 수련생 쑨스유는 납치된 후 선양시 공안국 테시 형사경찰대대에서 매를 맞고 음부에 전기충격을 당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다른 곳에 전기 충격하면 보이기 때문에 (가오룽룽의 얼굴훼손을 가리킴)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 곳을 지진다.”고 지껄이면서 큰 바늘을 손톱에 박아 넣었다. 쑨수유의 장모(마랜소우), 아내, 처제도 “26호 대안”에 연류되어 장스 교양원 세뇌반에 갇혔다. 펑깡 등 파룬궁 수련생들도 구원에 참가한 것으로 납치되어 장스교양원 세뇌반에 갇혔다. 소식에 의하면 펑깡은 단식한지 13일 만에 마싼자 감옥병원에 갇혔는데 지금 정황은 조사중에 있다. 체포된 사람중에는 펑깡의 아내 왕잰이 있다. 류밍칭도 구원에 참가하여 2005년 2월에 납치되어 지금 선신교양원에 갇혔다.

2005년 3월 6일, 가오룽룽은 다시 붙잡혔다. 붙잡힌 후 줄곧 단식으로 박해를 저지하였고 마싼쟈 교양원에 불법 감금되어 있었다. 료닝성 검찰원에서는 가족에게, 안건은 “전안조”에 귀속시켜 중앙 610이 직접 이 일을 조종한다고 알렸다.

2005년 6월 10일, 가오룽룽의 부모들이 마싼쟈에 가서 사람을 내놓으라고 요구할 때 성이 “왕”가라는 원장(남, 신임원장, 원래는 관리과의 과장이었음)이 말하기를, 처음부터 우리는 가오룽룽을 받지 않으려고 했으나 “위에서” 요구하였다. 지금 “위에서” 언제 만나게 하면 언제 만나고, 언제 내놓으라고 하면 언제 내놓는다. 우리는 “위”의 말을 듣는다.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가오룽룽이 병원에서 긴급 구급치료를 받는 기간 어느 부문의 사람들인지 알 수 없는 내력이 불명확한 많은 사람들이 병원의 모든 출입구들을 엄밀히 지키고 있었다. 2005년 6월 16일 가오룽룽은 의과대학 병원 응급실에서 세상을 떠났는데 그때 나이 37세였다.

* 세번째 죄: “분신자살”을 연기하여 여론을 속이고 탄압을 위하여 준비하다.

2000년 말에 장쩌민은 자기가 발동한 파룬궁 탄압운동을 견지하기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때 뤄간은 그를 위하여 “천안문 분신자살” 사건을 조작하였다.

2001년 1월 23일 오후, 천안문 광장에서 이른바 다섯 사람의 “분신자살” 사건이 발생하였다. 신화사는 사건발생 두 시간 후에 곧 전 세계를 향해 영어뉴스로 발송하였는데 그들은 파룬궁 수련자라고 딱 잘라 말하였다. 통상적으로 보면 매 하나의 뉴스는 모두가 상급의 층층으로 되는 비준을 거쳐야 하는데 이번 이 보기 드문 큰일의 보도는 반상적으로 신속하였다! 사건 발생 후, 해외 파룬궁 수련자들은 중앙 TV의 녹화 화면을 느린 장면으로 분석을 했는데 그 속에서 많은 의문점들을 발견하였다. 이 “분신자살” 사건은 완전히 음모로 꾸민 거짓말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홍콩잡지 2001년 4월 보도. “소식이 영통한 인사의 폭로에 따르면 국가안전부는 “천안문 분신자살사건”은 획책 온양 단계로부터 시작하여 전부가 뤄간의 지시에 따라 배치한 것이며, 분신자살자의 매 하나의 행동은 모두 국안부의 조종과 감시하에 진행되었다고 승인하였다. 국안부는 이번 일의 배치를 아주 주밀하게 하였다. 분신자살 후의 불끄는 시간, 구급차의 준비, 신문보도의 어휘선택과 발포할 시간까지도 모두 여러 차례 비밀리에 회의를 열고 공을 들여 배치한 것이다. 막후 조종자는 장쩌민, 뤄간이다. “분신자살안건” 획책에 참가했던 일부 국안 일꾼들은 파룬궁이 억울한 죄를 씻을 날이 있을 것이란 것을 알고 있으며 장쩌민, 뤄간은 악독한 인간들로서 사람을 죽여 증거를 없애려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이미 사건 과정을 쓴 보고문과 녹음테이프를 친척들에게 보관시켜 만일을 방지하려 하고 있다.”

일찍이 2000년 9월 6일, 해외 중문매체 가 보도한 적이 있다. “베이징 고층인사의 폭로에 의하면 파룬궁 수련자를 기만하여 자살하게 한다는 것은 어려움이 대단히 크다. 그러므로 뤄간이 직접 지휘하여 파룬궁 내부에 잠복한 공안인원 한 패를 희생시켜 공안기관에서 달랜 후 죽은 후에 파룬궁 수련자가 자살한 것처럼 해야 한다. 현장을 공들여 잘 꾸며야 하며 죽은자가 고통스러운 표정을 나타내서 파룬궁에 해를 입혀야 한다. 사망자 매 한 사람에게 공안기관에서 배상금 3만원씩 그 가족에게 준다고 중앙 정법위가 결정하였다. 파룬궁 내부에 혼입한 공안기관 사람들의 혼란과 공황을 방지하기 위하여 중앙 정법위는 비밀을 절대적으로 지킬 것을 요구했다.”

* 네 번째 죄: 선을 타격하고 악을 부추기며 죄를 범하게 하다.

뤄간은 금전, 명예와 지위 등을 미끼로 각급 불법관리 및 경찰들을 자극하여 박해 역량을 크게 하였고 선을 누르고 악을 부추겼다. 신화사는 2001년 2월 26일, 뤄간을 포함한 중앙 610사무실과 파룬궁 탄압에 참가한 백여 개 단위와 271명을 표창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이 표창 중에는 때리고, 붙잡고, 빼앗으며 천안문 광장에서 평화청원을 하는 파룬궁 수련생을 붙잡는 일을 책임진 베이징시 공안국, 천안문지역 분국 정위 천유,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 수단이 잔인하기로 소문이 자자한 료닝성 마싼쟈 교양원 여자 2소 소장 쑤징 등이 있었는데 그들은 표창 대회에서 발언하여 3천명 대회 참가자들에게 (대부분은 박해 참여자)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한 경험을 선전하였다.

* 다섯 번째 죄: 있는 힘을 다해 탄압을 연속

탄압 발동자 장쩌민이 고층권력에서 물러난 후, 뤄간, 쩡칭훙은 자신들의 죄책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죽기 살기로 있는 힘을 다해 박해를 끝까지 진행하려 한다.

신당인 TV의 보도에 의하면, 2005년 9월 쩡칭훙과 뤄간은 중국 내에서 자기가 틀어쥐고 있는 특무계통과 공안계통을 조종하여 파룬궁에 대한 새로운 한 차례의 대대적인 체포를 감행하였다. 9월 7일부터 헤이룽장성 허깡시에서 90명을, 따칭시에서 천창쓔 등 16명을, 하얼빈시에서 장웨방 등 14명 파룬궁 수련생을 체포하였고, 료닝, 지린, 허베이, 꽝둥, 후베이, 싼둥, 스촨, 허난, 베이징, 안후이 등 성시에도 이와 같은 대규모의 대 체포가 있었다. 보도는 이것은 쩡칭훙, 뤄간과 장쩌민이 후진타오와 원쟈보를 끌어내려 그들에게도 파룬궁을 탄압했다는 책임을 지우려는 것이다. 라고 썼다.

명혜보도에 따르면 2005년 9월, 후진타오가 북미를 방문할 무렵 꽝둥에서는 북방으로부터 500여명의 경찰, 특무 심지어 방화부대까지 출동하여 광쩌우에 가서 대법제자를 박해하고 감시하는데 참여시켰다. 뤄간이 직접 조종했다고 한다. 잇따라 꽝둥의 가오쩌우, 광쩌우, 윈부, 주하이, 썬쩐, 싼터우, 초우양, 모우밍, 번위, 제양 등지에 대규모적이고 계통적이며 조직적으로 파룬궁 수련생들을 납치하는 행동이 있었는데 적어도 몇 십 명이 붙잡혔다.

* 여섯 번째 죄: 해외에 지시하여 탄압

12월 중순, 태국과 아르헨티나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은 중공영사관의 지시를 받은 태국 경찰의 교란과 중공영사관이 고용한 깡패폭도들의 매를 맞았다. 요해한데 따르면 해외에서 중공이 시켜서 파룬궁 수련생을 때린 사건은 이미 미국, 캐나다, 호주, 홍콩, 태국, 아르헨티나 등에서 있었다. 탄압을 주관하는 뤄간은 그 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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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14일, 아르헨티나 파룬궁 수련자들이 국회 앞에서 뤄간 등 중공대표단에 국내 파룬궁 수련자에 대한 잔혹한 학살에 항의를 표시하고 있을 때, 중사관은 깡패폭도들을 파견하여 수련자들을 때리고 손에든 현수막과 전시판들을 빼앗아 갔다. 경찰은 수수방관하였으나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수련자들을 보호해 주었다.

맞은 사람의 서술에 따르면 사건 발생시 뤄간은 아르헨티나 국회로 부대통령을 접견하러 가고 있었다……. 당시에 또 많은 기자와 시위단체들이 그곳에서 중사관이 민중을 때리는 과정을 목격하였다.

법망은 넓어 성기면서도 빠뜨림 없네. 목전 중국대륙을 제외하고 파룬궁을 박해한 두목 뤄간은 이미 유엔, 필리핀, 스페인, 독일, 타이완, 한국, 이이슬랜드, 필란드, 에르메니아, 몰도바, 아르헨티나 등 나라에서 “혹형”, “반인류” 및 “군체멸절” 등 죄명으로 기소되었다. 뤄간은 또 캐나다 황가기병 경찰의 감시명단 및 미국정부의 입경금지 명단에도 올랐다.

문장완성 : 2005년 12월 19일

문장발표 : 2005년 12월 20일
문장갱신 : 2005년 12월 21일 10: 48: 44

문장분류 : 시사평론

원문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12/20/116960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