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락부자’, 과연 좋은 일인가?

글/ 우징(宇澄)

[명혜망] ‘벼락부자(一夜暴富)’란 어떤 기회나 수단을 통해 신속하게 거액의 부를 축적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 중국 사회에서 이는 많은 사람이 깊이 생각하지 않고 좋은 일로 여기며, 얻지 못해 안달하는 대상이 됐다. ‘벼락부자’, 과연 좋은 일인가?

1. ‘벼락부자’의 출현

중국 사회에서 ‘벼락부자’에 대한 숭배는 주로 개혁개방(1978~1990년대) 이후, 특히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나타났다. 미국의 도움으로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고 경제와 인터넷 기술이 폭발적으로 성장함에 따라 벼락부자가 될 기회가 더욱 두드러졌다. 이는 일부 사람에게 자유사회 중산층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한 정상적인 물질적 삶을 누리게 했지만, 동시에 중국공산당(중공)의 부패 통치와 인권 박해에 물질적 기반을 제공했다. 불과 30~50년 만에 중국 사회의 경제 환경, 인생 가치관, 사회 도덕에 홍수나 맹수와 같은 파괴적인 작용을 일으켰다.

1) ‘벼락부자’를 숭배하는 시기와 배경

지난 세기 80년대에서 90년대 초반, 중국에는 국가 정책 지원이나 선점을 통해 부를 얻은 집단이 일부 나타났다. 이때의 부 축적이 완전히 ‘벼락부자’ 상태는 아니었지만, 경제 자유화가 진행되면서 돈 벌 기회가 많아지자 가치관이 변질되기 시작했다. 불로소득을 노리거나 투기, 사기를 통해 벼락부자가 되려는 사람이 늘어났다.

진정한 의미에서 ‘벼락부자’에 대한 숭배는 2000년대에 나타났다. 2000년 이후 인터넷과 모바일 기술이 보급되면서 많은 사람이 온라인 쇼핑몰, 주식, 온라인 마케팅 또는 가상화폐 등을 통해 거액의 부를 얻었다. 이런 현상은 전통문화 교육을 받지 못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지만, 전통 세대의 눈에는 명백히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전통 매체든 뉴미디어든, 영화·드라마·소셜 플랫폼이든 만화·서적이든 가리지 않고 ‘벼락부자’가 조회수를 올리는 치트키가 됐다. ‘벼락부자’라는 네 글자가 포함된 제목, 글, 사진이 사람들의 스마트폰과 컴퓨터 화면에 버젓이 나타나 끊임없이 이런 사상을 주입한다.

고대 소설 ‘금병매(金瓶梅)’는 ‘음란함과 도둑질을 가르치는(誨淫誨盜)’ 책으로 불린다. ‘음란함을 가르친다’고 하는 주된 이유는 중국 고대 소설 중 처음으로 남녀의 사정(私情)과 성행위를 대량의 지면을 할애해 지속적으로 묘사하며 이야기 전개의 핵심 동력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도둑질을 가르친다’고 하는 주된 이유는 첫째, 작중 인물이 획득하는 부가 대부분 불의한 재물(不義之財)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서문경(西門慶)이 불의한 재물로 집안을 일으키는 과정을 상세히 묘사하지만 즉각적인 도덕적 징벌은 결여돼 있다. 둘째, 관직 사회의 부패를 ‘정상 상태’로 묘사했다. 관직에 정가표가 붙어 있고, 법률은 금전으로 조작될 수 있으며, 공권력은 철저히 사익을 위해 복무한다.

사회적으로 욕망을 목적으로 하는 성행위를 고취하고, 이익의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된다고 선전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방종하고 부도덕한 관념을 주입하는 것과 같다. 그런 상세한 묘사가 교사(敎唆)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그러나 인륜을 파괴하고 천리에 어긋나는 생활 방식은 신에 대한 모독이나 다름없다. 오늘날 ‘금병매’의 작가가 지옥 어느 층에서 업보를 치르고 있는지는 논하지 않겠다. 다만 말하고 싶은 것은 사회적 영향력이 큰 언행일수록 반드시 신중하고 자중하며 천리(天理)를 꺼려야 한다는 점이다. 천법(天法)은 인정(人情)을 봐주지 않으며 돈은 더더욱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2) ‘벼락부자’ 주입이 초래한 결과

‘벼락부자’ 사상은 중공의 ‘부패치국(腐敗治國)’이 구현된 것 중 하나다. 이것이 널리 퍼지고 부의 빠른 축적을 고도로 숭배하는 풍조가 만연함에 따라, 수천 년간 유(儒)·불(佛)·도(道) 3가가 중국인을 위해 확립해 놓은 가치관이 전복됐다. 또한 전체 사회 풍조와 도덕적 최저선의 붕괴를 놀라운 속도로 촉진했다. 중국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시비를 따지지 않고 선악을 전도하며 눈 하나 깜짝 않고 사람을 죽이는지 보면, 이런 파괴 효과가 얼마나 보편적이고 심각한지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사회의 도덕적 최저선이 계속 무너져도 자신과는 무관하며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런 느낌은 인지상정일 수도 있다. 마치 쓰나미가 다른 나라, 다른 도시를 삼켜도 자신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 홍수가 집 대문 앞까지 들이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것과 같다.

‘벼락부자’ 사상을 주입한 후 초래된 결과는 다음 몇 가지 측면이 있다.

(1) 공리주의: 공리주의와 불로소득 사상은 갈수록 많은 사람, 특히 젊은이들이 ‘빠른 보상’을 추구하게 만들어 조급하고 불안하게 하며 인생의 궁극적인 문제를 생각할 겨를이 없게 만든다. 허영심과 비교 심리가 유행하면서, 비슷한 방식으로 신속하게 부를 축적하지 못한 많은 젊은이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 자기 인생 가치를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2) 사회 양극화 심화: ‘벼락부자’ 현상의 유행은 중공의 죄악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을 돌리고, 사람들(미국인 포함)이 중공에 대해 허망한 환상을 유지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빈부격차가 극단적으로 분화하고 급격히 확대됐다. 소수가 혈연, 인터넷 창업, 부동산 투자나 주식 투자를 통해 벼락부자가 됐지만, 대다수 사람은 오히려 이 과정에서 소외돼 인간의 존엄과 인간으로서 갖는 가치를 더욱 상실했다.

(3) 불법 행위 조장: ‘벼락부자’ 문화에 대한 숭배는 대량의 투기 행위를 촉진하고 조장한다. 많은 사람이 단기간의 부를 쫓기 위해 주식, 부동산, 가상화폐, 도박 등 고위험 활동에 참여하는 등 모험적이고 비이성적인 투자 방식을 취할 수 있다. 이는 금융 시장의 불안정을 초래하고 더 많은 부정한 수단을 낳아 불법 자금 모집, 사기, 가짜 불량 상품, 사회적 신용 붕괴 등 일련의 악순환을 초래했다.

(4) 중국인과 전통 가치관의 괴리: 전통적인 중국 문화는 ‘근면 성실하게 노력해 부자가 되기(勤勞致富)’, ‘성실과 신용(誠信)’, ‘남과 선하게 지냄(與人爲善)’,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림(人命關天)’, ‘자존자중(自尊自重)’, ‘타인 존중’, ‘경로애유(敬老愛幼, 노인을 공경하고 어린이를 사랑함)’,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라(己所不欲勿施於人)’를 강조한다. 이에 비해 ‘벼락부자’에 대한 숭배는 젊은이들이 전통문화 속의 이런 올바른 사상과 순수하고 바른 가치관을 경시(심지어 멸시)하게 만들어 타락한 행위에 대한 저항력을 점차 상실하게 한다.

2. ‘벼락부자’에 대한 중국 전통문화의 견해

중공이 정권을 훔치기 전, 중국인은 유가·도가·불가의 영향을 비교적 깊이 받았다. 사람은 ‘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지 말아야 하며’, 남에게 손해를 입히고 자기 이익을 챙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덕(德)을 잃어 응보를 받게 되며,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여겼다.

유가 문화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말한다. 유가의 눈에 부(富)는 나무랄 데 없는 것이지만, 부의 축적은 반드시 도덕규범에 부합해야 하며 근면과 지혜를 통해 얻어야 한다. 요행을 바라고 지름길을 찾으며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근시안적인 사상이나 언행은 모두 취할 바가 못 된다.

도가는 ‘무위이치(無爲而治)’를 주장하며 자연과 도덕의 법칙에 순응할 것을 강조한다. 도가가 보기에 부는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니며, 심지어 과도한 부와 물욕은 사람 내면의 평화를 어지럽힌다. 그래서 간단하고 소박하며 본진(本眞)으로 회귀하는 생활 방식을 제창하고 사람이 하늘, 땅, 자연을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누군가 급공근리(急功近利, 눈앞의 성공과 이익에만 급급함)의 방식으로 ‘벼락부자’가 된다면, 도가는 이런 행위가 ‘도(道)’에 위배되며 사람이 본심을 잃게 한다고 볼 것이다.

불가는 재물을 ‘무상(無常)’한 것으로 여겨 영원한 즐거움을 가져다줄 수 없고 도리어 탐욕과 고통을 낳기 쉽다고 본다. 따라서 재물은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부정한 수단으로 빠르게 부를 획득한다면 불가는 이를 지혜롭지 못한 것으로 보며, 더 많은 고통과 불행을 초래할 수 있다고 여길 것이다. 물론 현재 중국은 불교 사찰이든 도교 도관이든 모두 온갖 더러운 것을 감추고 있어 더는 청정하지 않다. 이것이 바로 세간에 있으되 마음은 세간 밖에 있는 파룬궁수련자가 사람들에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라고 가르치는 이유다. 이 아홉 글자를 진심으로 염하면 선념(善念)을 유지하고 내면의 평온을 찾는 데 도움이 되며 신불도(神佛道)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북송(北宋)의 매화시(梅花詩)는 이렇게 말한다. “뜰 가득한 배꽃 봄 주인이 있으니(一院梨花春有主) 밤새 비바람 몰아쳐도 근심할 것 없네(連宵風雨不須愁).” “세상에 절로 태평한 날 있으리니(寰中自有承平日) 사해를 집 삼은들 누가 주인이고 손님이랴(四海為家孰主賓).”

3. ‘벼락부자’에 대한 서양 전통의 견해

고대 그리스, 고대 로마 문화와 유대교, 기독교는 서양 문명의 초석이다. 그중 고대 그리스 문화는 이성적 사고, 민주 정치, 철학적 탐구와 예술 미학을 강조해 서양의 사상 체계와 정치 체제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고대 로마 문화는 법률, 정치 제도(공화정과 제국 제도 등), 공학 기술 등의 면에서 서양 문명에 심원한 영향을 줬다. 그리고 유대교와 기독교는 서양의 도덕, 윤리, 법률 체계를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서양 문화, 정치, 교육 등 각 분야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렇다면 서양 전통문화의 관점에서 사람들은 ‘벼락부자’를 어떻게 볼까?

1) 고대 그리스

고대 그리스인은 ‘미덕(virtue)’과 지혜, 특히 이성적 사고를 통해 얻은 성취를 숭상했으며 재물에 대한 시각이 단순한 물질주의가 아니었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은 재물 자체가 추구해야 할 최종 목표가 아니며, 진정한 행복은 ‘우아한 삶’과 ‘내면의 균형’에서 비롯된다고 여겼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인의 눈에 ‘벼락부자’는 미덕이 결핍되고 지나치게 공리적인 인생 추구로 보일 수 있다.

2) 고대 로마

고대 로마에서도 재물은 인생의 일부분으로 간주됐다. 전쟁, 정치,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것은 어느 정도 받아들여질 수 있었고, 지혜나 합리적인 상업 수단을 통해 부를 축적하면 일정한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은 ‘명예’와 ‘평판’이었다. ‘벼락부자’와 유사한 현상은 의문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며, 특히 부정한 방법으로 부를 얻었다면 사회 질서와 도덕 기준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됐다.

3) 유대교와 기독교

‘십계명’은 여호와가 유대인의 선지자이자 인도자인 모세를 통해 유대인에게 반포한 신앙과 생활 율법이며, 기독교인의 인생 지침이기도 하다. ‘십계명’은 정직, 생명 존중, 가정과 타인 존중을 제창하며, 이런 가치관은 서양 사회의 법률과 윤리 관념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위증하지 말라”와 같은 윤리 규범은 오늘날까지도 서양 법률의 핵심 원칙 중 하나다. 기독교인의 ‘구약’과 ‘신약’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하나님과의 도덕 및 신앙 계약을 강조했을 뿐만 아니라,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은총, 그리고 인간을 위해 고난을 겪은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에게 가져다준 사면(赦免)을 강조했다.

덧붙이자면 기독교에서 말하는 ‘만인 평등’은 현대적 의미의 정치, 법률, 복록수(福祿壽)에서의 태생적 평등이 아니다. 이는 누구나 하나님(창세주)이 창조했고, 누구나 원죄(업력)가 있으며, 누구나 하나님(창세주)의 구원이 필요하다는 의미에서의 평등이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하며, 지위가 높거나 재산이 많다고 해서 도덕적 심판을 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왕, 귀족, 농민은 ‘죄와 구원’ 문제에서 평등하다.

기독교는 재물이 단순히 개인의 자기만족과 과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타인을 섬기기 위한 것이라고 제창한다. 여러분이 예전에 봤던 티베트인들, 즉 한족(漢族)에게 오염되기 전의 티베트인들도 재물과 보화에 대해 추호의 탐욕도 없었다.

이런 도덕적 전제하에서 ‘벼락부자’는 비록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았다 해도 자신의 남은 인생의 복을 대량으로 소모하게 된다. 만약 불법적인 행위로 얻은 것이라면 서양 전통문화가 강조하는 인간의 도덕 및 사회적 책임과 완전히 배치된다.

맺음말

동양이든 서양이든 전통문화는 모두 인간의 도덕, 내적 수양,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 하룻밤 벼락부자 현상은 단기적으로 개인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도덕, 윤리, 심리적 차원에서 보면 모두 취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사람은 태어날 때 본성이 착하기도 하지만(人之初 性本善), 악하기도 하다(性本惡). 누구나 불성(佛性)이 있고 마성(魔性)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류에게는 악, 교만, 이기심을 선택하기 쉬운 천성적인 경향이 있다. 부와 권력이 불러일으키는 것은 흔히 인간의 교만, 탐욕, 질투 등 마성이다. 특히 하룻밤에 벼락부자가 된 사람은 감사와 보답을 모르고 향락 추구, 안하무인, 물욕 팽창의 소용돌이에 빠지기 쉬우며 심지어 철저히 타락해 헤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평안이 복이다. 건강이 복이다. 타인을 선하게 대할 수 있는 것(善待)이 복이다. 신 앞에서 겸손과 감사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복을 아끼는(惜福) 것이며 인생에 필수적인 대지혜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4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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