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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법 수련자를 대량 학살한 중국공산당은 반드시 멸망할 것

글/ 석명(石銘)

[명혜망] 명혜망은 최근 ‘5천여 명의 파룬궁수련자들이 중국공산당(중공)의 박해를 받아 사망’이라는 문장을 발표했다. 글에서는 지난 24년간 파룬궁수련자를 잔혹하게 박해한 중공의 죄악을 일부 열거하며, 중공의 삼엄한 정보 봉쇄를 뚫고 신원이 확인된 사망한 수련자가 이미 5010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명혜망 데이터베이스에 수록된 정보에 따르면, 중공 장쩌민 일당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1999년 7월 20일부터 2023년 11월 20일까지 24년간, 중공의 박해로 사망한 파룬궁수련자의 수는 이미 5010명에 달했다. 중공의 잔혹한 박해로 빚어진 이 피비린내 나는 학살 사건들은 피해자의 명확한 신원, 목격자 증언 등 자료들이 있고, 모두 명혜망 데이터베이스에 고스란히 저장됐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한 후, 구타와 강제 음식물 주입 등 고문, 생체 장기적출 등 박해를 받아 직접 사망한 수련자 이외에도, 이전에 받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사망한 수련자들도 많았다. 또한 고문이나 약물 주입으로 정신적으로 심각한 손상을 입거나, 심지어 이로 인해 초래된 정신이상으로 사망한 이들도 있었다. 그밖에 공안의 지속적인 괴롭힘과 협박을 당하며 가족들도 핍박받는 상황에서 정신적 스트레스와 공포로 인해 이전의 고질병이 재발해 사망하거나, 박해 우려와 공포 때문에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타지에서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세상을 떠난 이들, 또 구타로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서 살아있는 채로 공안에 의해 강제로 화장터로 보내져 사망한 이 등등이 있었는데, 그야말로 충격적인 학살의 연속이었다.”

기사에 따르면, 파룬궁 박해가 가장 심한 상위 10개 성(省), 시(市) 및 박해 사망자 수는 다음과 같다. 헤이룽장성 646명, 랴오닝성 629명, 허베이성 560명, 지린성 530명, 산둥성 464명, 쓰촨성 320명, 후베이성​ 233명, 허난성 190명, 후난성 174명, 베이징시 147명.

기사에는 또 일부 수련자들의 박해 사망 사례가 실렸다.

전 란저우화학공업회사 직원 자오쉬둥(趙旭東·남·34)은, 2003년 12월 7일 자택에서 어머니 바이진위(白金玉) 등 수련자 몇 명과 함께 교류하던 중, 란저우시 안전국 요원인 페이화이웨이(裴懷偉), 왕쥔(王軍) 등 수십 명의 악인과 스파이들에게 납치돼 안전국이 마련한 호텔에 불법 감금됐다. 2004년 2월 8일, 영안실에서 경찰, 의료진과 함께 자오쉬둥의 시신을 마주한 지인과 직장 상사, 동료, 가족은 그의 온몸 구멍에서 출혈이 발생했고, 귀와 코가 솜으로 막혀 있었으며, 입안에는 핏덩이가 있는 것을 목격했다. 게다가 시신의 손목, 발목에 매우 뚜렷하고 깊은 수갑 흉터를 보았다. 등 전체가 검푸른 자줏빛으로 변해있었으며 관자놀이에도 뚜렷한 상흔이 남아 있었다. 자오 씨의 원래 새까맣고 윤기 나던 머리카락은 겨우 50일 만에 3분의 2가 하얗게 변했고, 80킬로그램의 체중도 다 말라 피골이 상접한 모습이었다.

장쑤성 화이안(淮安)시 수련자 장정강(張正剛·남·36)은 2000년 3월 2일 공안에 납치돼 의식을 잃을 때까지 구타당한 뒤 병원으로 이송돼 응급처치를 받았다. 3월 30일, 아직 살아 있던 장 씨는 공안에 의해 강제로 화장터로 이송돼 화장됐다.

산둥성 주청(諸城)시 청관(城關)진 타오자링(陶家嶺)촌 수련자 양구이전(楊桂眞·여·40)은, 2000년 9월 파룬궁 진상 자료를 사람들에게 배포했다는 이유로 주청시 구치소에 불법적으로 감금당했다. 9월 14일 심문을 받을 때 그녀가 ‘사교분자(邪敎分子)’라고 적힌 란에 서명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구치소 몇몇 경찰은 죄수들을 시켜 양 씨를 심하게 구타하게 했다. 또 양 씨를 4일 밤낮 ‘쇠의자’(고문 도구 중 하나)’에 수갑을 채워 앉히고, 이 기간에 먹거나 마시거나 용변 보는 것을 금지했다. 17일, 화장실을 갈 때 양 씨는 이미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져 결국 실신해 쓰러졌고, 구치소 직원이 인중혈을 꽉 꼬집어 겨우 깨어났다. 의식을 되찾은 양 씨는 다시 ‘쇠의자’에 묶여 고문 박해를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선량한 농촌 여성은 결국 사망했다.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아청(阿城)구 신화(新華)진 수련자 왕더천(王德臣·남·50)은, 2016년 5월 6일 오후 1시 물품을 배달하던 중 경찰에 납치됐고, 불법적인 가택조사로 재산을 몰수당했다. 이후 왕 씨는 아청 제2구치소에 감금됐다. 그의 아내는 경찰의 만행을 목격한 뒤 너무도 놀란 나머지 정신이상이 됐다. 2016년 12월 28일, 아청구 법원은 왕 씨가 10년 형을 선고받았고, 또 벌금 2만 위안을 납부해야 한다고 왕 씨 가족에게 통보했다. 왕 씨는 이후 후란(呼蘭) 감옥에 불법적으로 감금됐고, 겨우 3년 반이 지난 2019년 11월 17일에 고문학대로 사망했다. 감옥 측은 경찰 두 명을 파견해 시신을 지키게 하면서 가족들의 접근을 막았고, 또한 가족들이 화장에 동의하도록 강요했다. 가족들은 아직도 왕 씨의 진정한 사망 원인을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다.

산둥성 타이안(泰安)시 수련자 쉬구이친(徐桂芹·여·38)은, 2001년 음력 12월 시장에서 과일을 파는 한편,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며 진상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그는 진상을 모르는 사람의 신고로 경찰에 납치돼 불법 구류를 당한 후, 다시 지난(濟南)시 소재 산둥성 제1여자노동수용소 1대대로 납치돼 불법적인 강제노동 1년을 받았다. 쉬 씨는 강제노동을 받는 동안에도 시종일관 자신의 굳건한 신념을 유지했다. 석방되기 이틀 전, 경찰 과장 왕 씨는 그녀에게 수련을 포기하겠다는 ‘보증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했지만 그녀는 단호히 거절했다. 왕 씨는 다시 그녀에게 계속 파룬궁을 수련할 것인지 물었다. 쉬 씨는 변함없이 수련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한편 왕 씨의 악행을 질책했다. 그러자 왕 씨는 그녀를 몇 시간 동안 구타했고 그녀는 맞아서 온몸이 멍과 타박상으로 성한 곳이 없었다. 경찰은 범죄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쉬 씨가 석방되기 전, 중추신경에 손상을 입히는 약물 4병을 그녀에게 주입했다. 이로 인해 쉬 씨는 정신이 흐릿해지면서 얼굴이 붓고 혀가 굳어지며 온몸에 마비 증세가 생겼고, 잇따라 거식증이 생기고 기억력도 심하게 감퇴했다. 가족이 그녀를 집에 데려가려고 왔을 때 경찰은 가족에게 “그녀를 잘 감시하고 도처로 뛰어다니지 못하게 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해질 겁니다”라고 말했다. 집에 돌아온 후 쉬 씨는 점차 정신 이상증세가 생기더니 9일째인 2002년 12월 10일에 결국 사망했다.

장시성 가오안(高安)시 수련자 류자오후이(劉朝暉·남·30대)는, 2001년 음력 12월 말 파룬궁 수련을 이유로 재차 장시성 제2노동수용소(가오안 노동수용소)에 감금됐는데, 이에 그는 즉시 단식으로 항의했다. 그러나 설날 직후인 2002년 정월 초에 결국 박해로 사망했다. 노동수용소 측은 이 소식을 극력 차단했고, 류 씨의 감시 임무를 맡았던 수용소 내 수감자들에게도 이 소식을 퍼뜨리지 말라고 위협했다.

허베이성 정딩(正定)현 난춘(南村)진 수련자 자오펑녠(趙豊年·남·48)은 생전에 스자좡시 정딩현 공상행정관리국 공상소 간부였다. 2001년 4월 29일, 그는 파룬궁의 결백함을 입증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가서 당국에 청원했으나 심한 구타를 당해 부상을 입었고, 이후 소속된 직장에 의해 현지로 연행돼 돌아온 뒤 계속 박해받았다. 5월 5일 저녁, 자오 씨는 돌연 직장에서 사라졌고 가족들은 나중에야 자오 씨가 이미 살해돼 매장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제야 파출소 측은 가족들에게 사망 사실을 통보할 수밖에 없었다. 파출소 측은 한편으로 자오 씨가 자살했다고 누명을 씌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도둑이 제 발 저리듯 몰래 시신을 매장해버렸다. 자오 씨의 생전 직장과 현지 파출소 측이 정보를 엄격히 차단했고, 가족들에게 협박과 유인책을 가해서 상세한 피해 상황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2014년 12월 26일 다싱구 ‘610 사무실’(파룬궁 박해 전담기구) 우두머리 마춘위안(馬春元)과 창즈향 종합관리사무실(綜治辦) 직원 등 10여 명은, 베이징시 다싱(大興)구 창즈(長子)향 러치잉(靳奇營)촌 수련자 장슈샤(張秀霞·여·60)의 집을 다시 찾아가 소란을 부리며 그녀를 괴롭혔다. 이들은 장 씨 아들과 며느리를 교직에서 해고하겠다고 위협하면서 그녀에게 파룬궁 수련을 포기하라고 강요했다. 당시 장 씨는 돌연 호흡곤란 증상이 오며 위독한 상태에 빠졌고, 마춘위안 등은 책임질까 두려워 서둘러 도망쳤다. 장 씨의 병세는 갈수록 심해졌고 그녀는 결국 2015년 3월 19일 밤 세상을 떠났다.

후베이성 마청(麻城)시 바이궈(白果)진 수련자 왕화쥔(王華君·여·30)은, 2001년 4월 파룬궁 수련을 이유로 악인에 의해 마청시 공안국으로 연행됐고, 그곳에서 모진 고문과 구타를 당해 위독해졌다. 2001년 4월 18일 심야에서 19일 새벽 사이에, 그녀는 현지 중공 정법위 서기 쉬스첸(徐世前)에게 구타당해 의식을 잃은 채 진차오(金橋) 광장으로 끌려갔고, 경찰은 그녀에게 휘발유를 붓고 산 채로 불태워 죽인 후 오히려 ‘분신자살’했다고 죄를 뒤집어씌웠다.

허베이성 화이라이(懷來)현 베이신바오(北辛堡)향 찬팡잉(蠶房營)촌 수련자 왕롄룽(王連榮·여·65)의 네 자녀 중 3명은, 1999년 7월 20일 중공의 파룬궁 박해가 시작된 이후부터 2004년 11월 5일까지 박해받아 차례로 사망했으며, 남은 큰딸 역시 감옥에 갇혀 박해받았다. 2005년 1월, 왕 씨와 남편 천윈촨(陳運川)은 파룬궁 수련을 이유로 재차 납치당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집을 떠나 타지에서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다. 2006년 8월 4일 오전 11시, 중공의 불법 박해로 인해 7년간 상상할 수 없는 커다란 고난을 겪어 온 왕 씨는 억울함을 품은 채 결국 타지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후 남편 천 씨(파룬궁 수련자)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중공이 파룬궁에 박해를 가한 24년은 선량한 중국인들이 잔혹하게 박해한 24년으로, 이 과정에서 부당하고도 억울한 사건이 수없이 발생했다. 어떤 이는 박해받아 사망한 파룬궁수련자들을 ‘5천 원혼(冤魂)’으로 형용하는데, 어찌 5천 명에만 그치겠는가! 박해에 가담한 자들은 고개를 숙이고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수천수만 명, 백만 명, 심지어 이보다 더 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각종 박해를 당하고 억울한 죽임을 당했는데 아무 말 없이 그저 지나갈 수 있단 말인가? 정법(正法)을 박해한 행위는 하늘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정법 수련자를 학살한 행위는 신께서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공이 반드시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아직까지 양심과 선념을 지니고 있는 모든 중국인과 국제사회 인사들이 파룬궁수련자들이 당하고 있는 박해와 부당한 대우에 관심을 기울여 주시길 바란다. 중공의 탄압과 박해를 받는 중국인들이 처한 곤경에 관심을 갖고 함께 노력해, 공동으로 사악한 중공을 해체함으로써 24년 넘게 지속된 잔혹한 파룬궁 박해를 종식시킬 수 있길 바란다! 아울러 한 세기에 걸쳐 이어져 온, 전 인류에 대한 공산주의 악령의 잔혹한 박해가 종식되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3년 12월 7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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