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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님의 자비로운 가호로 비바람을 뚫고 지나다

글/ 베이징(北京) 대법제자

【밍후이왕 2009년 11월 14일】 이 제목을 쓰고 마음이 감개무량했다. 나는 1995년 11월에 법을 얻었으며 현재까지 이미 14년간 대법수련을 해왔다. 이 우주에서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지는 짧은 세월이 인간세상에서는 도리어 하나의 기나긴 세월이다. 나를 진흙탕에서 건져내어 깨끗이 씻어 주신 사부님께 감사 드립니다. 14년간 보잘것없는 일에도 자비롭게 가호하여 나는 많은 대법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비바람 속에서 굽은 길을 걸어 왔으며 대법 중에서 끊임없이 승화하고 거대한 난 속에서 이성이 성숙되고 새 우주의 제일 순정한 하나의 입자로 되었다.

법 얻은 초기에 나의 수련은 기본적으로 사부님께서 이야기하신 그런 “지식인이 大法을 배움에”, “바로 大法을 일반속인 중에서 이론 저작을 학습하는 방법으로 간주하여 배우는 것이다. 마치 알맞은 명인 어록(名人語錄)을 선택해서 자신의 행동에 대조하여 배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비록 생활 조건은 비교적 우월하나 법공부와 연공에 힘썼으며 명리정도 얼마간 놓아 스스로 수련을 괜찮게 했고 법리상에서 높이 깨달았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때 나는 비록 많은 법리에 명백했지만 사실 수련할 줄 몰랐고 생활과 업무를 수련과 완전히 갈라놓았으며 특히 매우 자아적이어서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았고 많은 일에서 잘 처리하지 못했으며 자신의 근본 집착을 인식하지 못했다. 다만 자신이 놓으려 하거나 놓을 수 있는 것만 놓았을 뿐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수천 수백 년이래 뼈 속에서 형성된 사람의 이치는 도리어 수련하여 버리려 하지 않았고 건드리려 하지 않았다. 결국 수련하는 목적은 그래도 사람 속의 생활을 더 잘하고 더 편안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므로 구세력이 시작하여 파격적으로 대법제자를 검증할 때 나에게서 근본적인 문제가 들어났다. 사부님의 경문 「뿌리를 캐다(挖根)」를 보고 나는 매우 진동이 컸으며 자신이 근본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 여전히 안으로 찾을 줄 몰랐고 기점을 바로 잡지 못했으며 많은 이유를 찾아 자신을 변명했다.

1999년 ‘7.20’ 사악은 전면적 탄압을 시작했다. 당시 나는 막 북경을 떠났는데 소식을 듣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당일 비행기로 북경에 돌아와 국무원 신방반(信訪辦)에 청원하러 바로 갔다. 당시 원만을 위해서가 아니었고 자신의 이전 생각이 틀렸다고 여겨 이번에는 꼭 사부님과 대법의 요구에 따라 하려고 했으며, 나의 마음은 대법을 위하여 지불해야 한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충만 되었다. 그러나 내심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하는지 이성적인 면으로부터 똑똑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수 차례 청원하고 북경에 온 많은 외지의 동수들과 교류했으며 그들을 걸어 나오라고 격려하여 많은 동수들이 보기에는 ‘영웅’같은 인물로 되었다. 나는 스스로 매우 만족했고 자신이 대법을 위하여 지불한 것이 많고 매우 잘했다고 여겼으며 도리어 자신이 강렬한 쟁투심, 환희심, 과시심과 자아를 실증하는 요소가 너무 많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사부님께 협조하여 중생을 구하고 법을 실증하는데 대하여 정확하게 이해할 수 없었고 진정으로 대법에 용해되고 일체가 되어 대법의 한 입자로 될 수 없었다.

한시기 지나 나는 소침하기 시작했고 다시 청원하지 않았으며 동수들과 연결이 갈수록 적어졌고 매일 집에서 법공부와 연공하는 것으로 자신은 정진한다고 여겼다. 이때 동수가 나를 찾아 교류하고 지금은 마땅히 대대적으로 광대한 민중에게 진상을 알려야 한다고 나에게 알려주었다. 나는 매우 배척하면서 이런 행위는 ‘정정당당’하지 못하다고 여겼다. 비록 잘 이해가 되지 않지만 나는 그래도 많은 진상 자료를 배포하고 붙이고 또 독립적으로 자료점도 했다. 이때 나는 여전히 감성적이고 일하는 출발점은 다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두려워’ 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려는 것이며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하여 ‘정법노정을 따르지 못한다’는 말이 두려워서였다. 그러므로 분주히 일만하고 법공부와 연공을 불규칙적으로 했으며 마음을 안정하고 이런 부정한 점을 잘 깨달을 시간이 더욱 없었다. 많은 집착은 예를 들면 색욕심, 명리심, 이성적이지 못함 등등을 버리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구세력에 의해 커졌으며 또 그것들이 나에 대해 손을 대는 구실로 되었다. 한 번 나는 사오한 자(邪悟者)가 밀고하여 엄중한 박해를 받아 아주 긴 시간 굽은 길을 걸었으며 다른 사람이 보기에 행복하고 안일한 속인의 생활을 했으며 어쩔 수 없이 마비되었었다.

대법을 얻고서부터 나는 한 순간도 대법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자아를 너무 집착하여 박해 앞에서 무능했으며 마치 심연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없는 것 같았으며 나의 손과 발은 비끄러맨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대법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진정으로 알았다. 나는 매일 스스로 고통스러운 지경에 빠지는 것을 느끼고 어찌할 바를 몰랐으며 나는 자신이 하나의 정정당당하고 진정한 대법제자처럼 할 수 있기를 너무나 갈망했다!

사부님께서는 나 이 못난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셨고 줄곧 자비롭게 점화해 주시며 격려했다. 이전에 잘 아는 한 동수가 이리저리 다니다가 나를 찾아와 새로운 경문, 수련생들의 체험 문장, 진상자료 등을 주었는데, 우리는 역시 늘 법에서 교류했다. 나는 갑자기 놀라 깨어났다. 나는 자신이 정법시기의 제자이고, 나의 책임과 사명을 알게 되었다. 나는 자신에 대해 책임지고 자신의 중생에 대해 책임지며 새로운 우주를 위해서 책임지겠다. 그리고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세 가지 일을 잘하겠다.

1. 얼굴을 맞대고 진상을 알리다

나는 몇 백 명의 동창 모임에서 다시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첫 발자국을 내디디었다. 수년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 이미 좀 서먹하여 모임 진행자는 매개 인이 자기소개하기를 요구했다. 나의 속마음은 투쟁이 매우 격렬했다. 마침 한 보험을 하는 동수가 자기 소개할 때 그의 보험을 이야기 했다. 그러자 한 동창생은 우스개 소리로 “모모는 바로 이렇다. 어느 때나 그의 보험을 잊지 않는다.” 고 말했다. 또 한 동창도 “그러게 말이다. 그는 가는 곳마다 말하는데 그래 정말 효과가 있단다.”고 말했다. 나는 몹시 쿡쿡 쑤셨다. 대법제자로서 이렇게 많은 생명이 내가 구도하기를 바라는데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은 두려움이 있는가! 나로 하여금 몸과 마음이 이익을 얻게 한 우주대법에게 하나의 정확한 위치를 줄 수 없으므로 나는 수치스럽다! 그리고 나는 간단하게 준비하여 몇 백 명 동창들 앞에서 자신이 대법을 수련한 아름다움을 이야기를 하고 불법적으로 잔혹하게 박해를 받은 것을 고백했다. 나의 태도는 단정하고 엄숙하며 어조는 부드럽고 진실했다. 분위기는 굳어진 것 같았고 넓은 연회장 상공에 크고 작은 불(佛), 도(道), 신(神)들이 엄숙하고 숙연하게 가득 앉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5천년 동안 만들어 온 인류문명은 본래 대법제자들이 휘황찬란함을 펼치는 무대였다! 나는 다 말하고 나니 눈에 눈물이 가득했으며 열렬한 박수소리가 울렸다. 나는 사부님과 수많은 정신(正神)들이 배후에서 나를 돕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날 많은 동창들은 대법의 진상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신변의 비교적 익숙한 친구들과 동창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다. 나의 가정은 비교적 특수하다. 가족 간의 모순과 원한이 쌓여 친척 간에 다수는 내왕하지 않았다. 나는 각종 통로를 이용하여 그들을 찾아 연결하고 어떤 친척은 전화를 하고 친척이 비교적 집중된 곳에는 특별히 열차로 한 번 찾아갔다. 나는 어려서부터 비교적 우수하고 성격은 청렴하면서도 괴상했으며 오만함에 역시 이름이 나있었다. 친척들은 내가 대법을 수련한 후 부드럽고 진실하게 변한 것을 보고 모두 나의 말을 믿고 따랐으며 절대 다수 친척과 친구들은 모두 삼퇴를 했고 대법이 좋다는 것도 알았다. 소수 사당의 독해가 비교적 심한 것에 대해서 나는 급히 성사시키려는 마음을 개변하고 늘 그들과 전화연락을 갖고 매번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에서 조금씩 이야기 했으며 나는 신심이 있었다. 나와 그들과 연분이 있는 대법제자가 그들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구세력도 그들을 감히 경솔하게 움직이지 않을 것이며 비록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들은 꼭 대법의 구도를 받을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동창들과도 본래 교제하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적으로 각 계층의 동창들과 모두 연결을 했으며 나는 모임이거나 사사로이 내왕하는 것을 이용해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고 연결된 동창들 대부분은 모두 진상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친숙한 사람은 필경 제한이 있고 나는 자신의 생활 속에서 진상을 알릴 많은 시간과 기연을 낭비했다고 느꼈다. 나는 대법사이트에서 낯선 사람과 얼굴을 맞대고 진상을 알리는 것을 소개한 수련생의 문장들을 많이 보았으며 잘한 동수들이 매우 부럽고 나도 그렇게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나는 한가한 시간에 밖에 나가, 길에서 돌아다니며 처음에는 3 – 5명에게 삼퇴를 권했지만 사람을 많이 만나도 입을 열 수 없었다. 나는 너무나 괴로워 매일 잠자기 전에 하루에 만났던 사람들 중 진상을 알리고 삼퇴 권유에 성공한 것과 성공하지 못한 것, 잘 알린 것과 그렇지 못한 것, 경험과 교훈을 한번 회상하고 심지어 꿈에서도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나는 안으로 찾았는데 자신의 많은 집착들은 내가 입을 열고 낯선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장애가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허영심, 체면을 차리는 심리, 마치 주동적으로 다른 사람과 말을 하면 다른 사람보다 한 등급 낮다고 생각했고 두려워하는 마음, 분별하는 마음 등이 있었다. 나는 자신이 수년간 속인 생활에서 형성된 소위 ‘경험’으로 가서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을 가늠하고 그들이 탈퇴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했으며 이 사람에게 위험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했다.

그날 나는 온종일 어떻게 자신의 그런 장애를 돌파하고 그런 집착을 버리고 더욱 많은 낯선 사람들에게 삼퇴를 권하겠는가 생각했다. 이런 집착은 당신 스스로의 수련, 개인의 제고를 위하여 그것을 버리자면 쉽지 않으며 작고 작은 집착이 아마 하나의 산처럼 막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하여 오직 우리들이 인식하기만 하면 그것들을 서서히 옮기게 된다. 사실 우리가 표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 가져다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얼굴을 맞대고 진상하는 관건은 각종 사람들과 말을 거는 기교가 아니고 심태라고 여긴다. 집착하는 것이 적으면 대법은 자연히 우리에게 지혜를 준다.

나는 자신이 차츰 말할수록 더 잘하고 자비심도 갈수록 커지고 지혜도 나올수록 더 많아진다고 느꼈다. 반나절이나 에돌아 주제로 가던 데로부터 제 삼자의 신분으로부터 대법제자의 신분으로 직접 말했다. 다만 구두로 말하던 것이 앞에서 자료를 주고 한 사람과 말하던 데로부터 여러 사람들과 말했다. 매일 아침 나는 스스로 상화(祥和)하게 웃음을 지니고 산뜻한 얼굴로 문을 나서도록 했으며 신심이 기본적으로 ‘느슨하면서도 해이하지 않는 상태’로 반나절에 매일 사오십 명을 탈퇴시킬 수 있었다. 거리에서 걷는, 길은 묻는, 길을 지나는 행인, 버스에서나 물건을 파는 사람들에게 한 사람 만나면 하나하고 말하고 하나 말하면 바로 탈퇴했다. 어떤 때 나는 차를 운전하고 나가 길목에서 교통신호등을 기다릴 때 작은 광고를 돌리는 사람, 구걸하는 사람, 옆에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 길을 지나던 사람들을 매우 짧은 몇 분간에 모두 삼퇴를 권할 수 있었다. 아이가 여름 방학 때 매일 나와 함께 아침 일찍 나갔다가 밤늦게 귀가하면서 내가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할 때 훌륭한 조수로 되었으며 어떤 때 상대방이 말 상대하기 힘들 때 아이는 주동적으로 다가가서 빙그레 웃으면서 말로 상대한다.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거절하는 사람이 없다. 일반적으로 일손을 멈추고 우리와 말을 몇 마디하며 나중에 매우 순조롭게 탈퇴한다. 아이는 갈수록 철들고 매일 점심에 맥도널드 음식을 먹겠다고 떠들던 데로부터 구운 떡 하나만 먹고 바삐 길을 재촉하며 하나라도 더 삼퇴를 권하려 했는데, 많이 철들었다고 느낀다.

금년에 나는 갑자기 사악에게 납치되었다. 경찰서와 구치소에서 만난 사람, 경찰, 한 감방의 피의자들에게 모두 내가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대상이었다. 그들은 절대 다수가 모두 진상을 알고 사당에서 탈퇴했으며 잠시 하지 않아도 내가 그들을 위한 일편 선심을 감수했을 것이며 나중에 구원을 받을 기연을 심었다. 진상하는 과정은 사실 사악을 해체하는 과정이다. 10여 일 후 나는 정념으로 뛰쳐나왔으며 다시 정법의 홍류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자신이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며 하는 말이 순정한 에너지장을 형성하고 환경을 개선하며 타인을 개선하고 자신도 개선함을 감수했다. 매일 나는 매우 많은 사람들과 “真(쩐)、善(싼)、忍(런)은 좋습니다”,“파룬따파는 좋습니다(法輪大法好)”를 말했으며 집에 돌아가는 길에서도 나는 자신도 모르게 “真(쩐)、善(싼)、忍(런)은 좋습니다”,“파룬따파는 좋습니다(法輪大法好)”를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렇다. 대법이 만들어 낸 한 생명이 인간 속에서 사부님을 도와 정법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이고 행복한 것인가! 이때 나는 스스로 미래 우주의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음을 느낄 수 있었으며 나는 꼭 사부님께서 안배한 수련의 길로 걸어 나가자고 결심한다.

2. 나도 한 떨기 작은 꽃이 되었다

2008년 가을 자료점의 한 동수가 사악에게 납치되었다. 당시 우리 모두 매우 놀랐고 의아했는데 이 동수는 보기에 상태가 그래도 괜찮았기 때문이다. 나중에 우리는 동수를 위해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며 매우 강한 의존심이 존재하며 대법자료를 기다리고 의지하여 동수에게 매우 큰 압력을 조성하여 법공부와 연공에 영향주어 이것 역시 동수가 박해 당하도록 조성한 중요한 요소이다.

그리하여 우리 몇은 어떻게 가정 자료점을 설립할 것인가를 함께 상의했으며 스스로 진상자료를 해결하자고 했다. 아주 긴 세월 동안 나는 기계를 조작하는 것이 나의 약점이라고 여겼으며 나는 늘 농담조로 “보아하니 나 이 생명은 너무 오래된 것이다” 라고 말한다. 나는 현대 공업 생산품에 대하여 일종 자연적인 배척과 반감이 있었으며 늘 이렇게 만들어 낸 것은 품질이 나쁘다고 여겼다. 자신의 관념을 고수하여 이런 기계들도 나의 말을 듣지 않으며 이삼 일이면 고장이 나서 나로 하여금 풀이 죽게 했고 그럴수록 자신의 원래 생각이 옳다고 여겼다.

동수는 내가 포기하려 하지 않은 관념을 고수하고 정법의 요구, 정법 속에서 중생을 구도하는 요구를 1위에 놓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나는 다시 자신이 문제를 보는 기점을 바로 놓았으며 일체는 모두 정법의 요구를 봐야 하고 일체 정면 작용을 할 수 있는 생명을 잘 응용해야 하며 그것들로 하여금 대법자료를 빠르고 또 좋게 만들도록 했다. 관념의 전변은 기계의 고장을 신기하게 고쳤다.

가정 자료점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이 매우 강한 이익에 대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그것이 나의 근본 집착 중의 하나였다. 나는 자신의 금전관념은 특별히 부패하고 변이되었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나는 나의 수입을 자신의 것으로 보았고 남은 것 혹은 액 외의 것, 의외의 수입만이 비로소 대법의 것이라고 보았다. 편면적으로 대법의 자원을 이해하고 속인 중에서 잘사는 것을 가장 높게 놓았다. 평시에 돈을 물 쓰듯 쓰고 자신은 ‘속인의 상태에 부합된다’고 여기며 자료점이 돈을 필요로 할 때 도리어 낼 수 없었고 경제 조건이 좋은 동수와 비교하며 속으로 동수가 돈을 내놓기 싫어한다고 원망했다. 반 경제 반 박해란 구실로 자신의 더러고 나쁜 이익지심을 보호하는 등이다. 나는 우리의 일체는 모두 대법이 준 것이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금전은 속인 생활에 쓰든 지를 물론하고 그래도 진상을 알림에 써야 하며 사실 모두 대법의 자원이다.

이런 강렬한 집착은 모두 내가 이전에 의식하지 못했던 것들이며 그러므로 너무 많은 대법의 자원을 낭비했고 역시 내가 줄곧 구세력의 경제 박해를 받은 하나의 중요한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3. 법률의 형식을 이용해 동수를 구출하다

나는 속인에게 삼퇴를 권할 때 늘 자신의 자비심을 감수할 수 있으나 동수가 나에게 일하는 마음이 있다고 지적하면 나는 동수에 대하여 왕왕 그렇게 선하게 대할 수 없었다.

늘 접촉하는 몇몇 동수 중에서 나는 비교적 문제를 발견하는 재간이 있는 편이다. 이전에 늘 체면으로 동수의 앞에서 지적할 수 없었으며 어떤 때 동수를 뒤에서 논했다. 나중에 나는 차츰 앞에서 말할 수 있었으나 어조와 선심은 모두 부족하고 사람의 마음을 가졌으며 동수가 감수한 것은 질책과 원망이었다. 이런 불평은 동수지간에 매우 큰 간격을 만든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는데, 문제에 봉착할 때 우선 안으로 찾고 자신도 같은 문제가 존재하는가를 보고 나중에 선의적으로 동수에게 지적해야 한다. 그러나 그래도 부족하다. 동수가 말하는 것이, 나의 방식은 너무 간단하여 내가 문제를 지적해도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정도를 보지 않고 이해하는가를 보지 않으며 참을성 있고 세심하지 못하다는 것이며, 자세히 반복적으로 가서 말하여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고 접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동수의 부족한 점을 볼 때 나는 자신이 아직 ‘대선(大善)’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아직도 자아를 실증하고 자신만 생각하고 타인을 생각하지 않는 상태에 처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실 이것은 근근이 개인이 ‘선하다’와 ‘선하지 않다’의 문제가 아니며 그것이 반영한 것은 우리 정법시기 대법제자들이 정체의식, 정체협조 방면에서 어떻게 하였는가 하는 것이며 우리 대법제자들이 꼭 ‘대선’을 수련해 내야 한다는 것을 나는 생각했다.

사악의 박해를 받은 동수에 대하여 역시 이런 하나의 문제가 존재한다. 이전에 동수가 박해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우선 긴장하고 세심하게 자신이 연루 되었는가 생각하고 그 다음에 원망하면서 동수가 무엇 무엇을 잘못했다고 여기며 자신에게 나중에 이런 잘못을 범하지 말라, 사악의 박해를 받지 않도록 하라고 속삭인다. 한 번 훌쩍거릴 뿐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츰 마비되고 차츰 잊어버린다. 지금 생각해 보면 밍후이왕에서 게재된 동수의 박해 받은 정황과 자신 신변의 동수가 박해 받을 때 표현 한 심태는 어떤 때 속인보다도 못하다.

베이위(飛宇, 가명) 와 우리 몇몇 동수는 서로 알게 된 지 몇 년이 되며 매우 견정한 대법제자들이었다. 1999년 ‘7.20’ 부터 그는 걸어 나와서 대법을 실증하여 수 차례 납치되고 불법 수감되고 불법 판결을 받았으며 대부분 시간을 감옥에서 지내어 몸과 정신은 모두 매우 엄중한 박해를 받았다. 작년 말 그는 감옥에서 만기가 되어 집에 돌아 온 후 얼마 되지 않아 또 진상을 알리다 사악에게 납치되어 구치소에 갇혔다. 금년 년 초 사부님의 점화와 동수들의 도움을 받아 우리는 베이위에 대한 구출을 진행했다. 이 구출 과정은 우리들이 이성이 승화하는 과정이고 정체협조의 과정이며 역시 사악을 해체하고 박해를 결속 짓고 중생을 구도하는 과정이다. 나와 몇몇 구출에 참가한 동수들은 모두 이 과정에서 체험이 매우 깊다.

베이위가 사악에게 납치 된 것을 우리는 함께 교류했는데 베이위의 자체 부족함을 본 외 그에 대한 도움이 부족했다는 것을 인식했으며 그러므로 마음속에 자책으로 가득 찼고 구출을 통해 보충하려고 생각했다. 처음에 우리는 알고 있는 다른 동수들에게 많이 알렸으며 매일 고밀도 발정념을 하고 구치소 가까이에 있는 동수들이 늘 구치소 부근에 가서 근거리 발정념을 하도록 했다.

그때 우리의 구출 방식은 매우 간단할 뿐만 아니라 심태도 매우 감성적이어서 많은 정(情)의 성분과 개인 요소를 지니고 거의 정체 인식 없이 우리 몇 사람의 작은 정체 중에서 우리는 어떻게 협조하고 분공하며 포용과 보충함을 몰랐고, 관용하고 알아주면서 상호 움직임이 부족했다. 전 세계 대법제자의 이 정체 속에서 우리는 밍후이왕에 사악을 폭로하고 사악을 노출시키며 전 세계 대법제자들에게 호소하여 함께 구출할 생각을 못했는데, 심지어 사악을 노출시키면 베이위에게 시끄러움을 가져다 준다고 여겼다……. 한 시기 지나서도 베이위에 대해 여전히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모두들 함께 교류했는데 우리들이 발정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사람 형식의 일면을 움직여야 한다고 여겼다. 우리는 베이위의 가족에게 진상을 알리러 가자고 결정했으며 그들이 나와서 사람을 요구하고 함께 베이위를 구출하자고 했다.

베이위의 부모는 이미 연세가 많고 사당의 체제에서 이익을 얻은 자로서 중독이 심했으며 대법에 대해 이해가 없고 베이위가 박해 받는데 대해서도 차츰 마비되어 나중에는 아예 듣지도 않고 문의도 없었으며 옷과 생활비마저도 가져가지 않았다. 그의 부모를 만나기 매우 힘들어 우리는 베이위의 큰형을 찾아서 그가 나서서 구치소에 가서 사람을 요구하기를 희망했다. 베이위의 신체상황이 매우 엉망이어서 우리들이 이때 보석하기 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베이위의 큰형의 냉담한 태도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했으며 그는 이 일에 대하여 흥미가 없었는데 한편으로는 그가 경찰국과 구치소에 가서 사람을 요구하는데 대하여 공포심리가 있어 근본적으로 그렇게 나올 수 없다고 말하면서 미루어 버렸고 다른 한편은 그들 가족이 베이위가 돌아오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며 그들은 베이위가 신체상황이 특별히 좋지 않아 집에 온다 해도 치료할 수 없고 가족은 그에게 의료비만 부담할 뿐이며 또한 많은 부문에서 찾아와 뒤엉키고 소란하여 끝없는 시끄러움을 야기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때 우리는 베이위의 큰형 태도에 대하여 안으로 찾지 않았으며 자신에게 두려워하는 마음이 엄중하고 동수가족에 대하여 냉담했다는 것을 찾지 않았다. 가족에게 진상을 알리는데 대해 낙심했으며 베이위가 가정 환경을 원용하지 않았다고 원망했었다.

이때 한 동수가 우리 자신이 친구와 동수의 신분으로 직접 구치소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요구하자고 제의 했는데 즉시 부정하면서 어떤 사람은 자신의 심성이 아직 감당하기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했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하는 것이 이성적이 아니라고 여겼다.

따라서 베이위를 구출하는 일에 방법이 없어 한 시기 내버려두었으며 분망함과 마비로 어떤 동수는 베이위에게 발정념하는 것마저 거의 잊었다. 베이위는 구치소로부터 우리에게 편지를 전해 왔는데 한 줄의 긴 삼퇴 명단 밖에 없었다. 우리는 베이위가 소굴에서 뛰쳐나오는데 대하여 매우 소침하고 이미 사악이 불법 심판했다고 여겼다. 우리는 잘하지 못함을 알았으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때 외지의 동수가 우리 지역으로 와서 그들이 그들 지역에서 어떻게 속인의 법률형식을 이용해 동수를 구출한 실례를 이야기 하고 우리들도 이런 방식으로 구출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법률의 방식으로 법을 실증하는 것은 우리들로 말하면 아직 생소한 영역이었으며 또 나는 변호사를 선임하는데 대하여 줄곧 편견이 있었다. 수년 전 내가 박해를 받을 때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걸어 본적 있었다. 그때 나와 가족은(수련하지 않음) 많은 변호사 사무소로 뛰어 다녔는데 내가 아는 변호사 친구를 포함해서 당시 사악의 통제가 너무 심하고 변호사들이 진상을 모르므로 사법 기관에서 내놓고 대담하게 변호사들이 파룬궁 안건을 접촉하지 말 것을 요구했으며 그리고 그때 나는 매우 강한 사람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가서 순순히 속인의 법률 지원을 구했으므로 소위 변호사들은 감히 접수 못하여 나도 그때부터 낙심하고 이 길은 통하지 않는다고 여겼다. 이 몇 년 간 법에서 제고하고 정념도 많이 족하다고 느끼고 또 극단적으로 우리대법제자들은 변호사를 선임하여 우리를 위해 변호할 필요 없이 우리 스스로 정념에 의해 뛰쳐나올 수 있다고 여겼다. 이용할 수 있는 속인의 일체 형식을 이용하여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것을 제1위에 놓지 않고 개인 수련에 국한 되었다. 그러므로 당시 변호사를 선임하여 소송을 거는데 대하여 배척 심리를 품었다.

외지 동수 한메이(寒梅, 가명)는 그들의 방법과 생각을 우리들에게 비교하면서 깊이 파고 들며 교류했다. 우리는 속인의 법률 형식으로 법을 실증하고 사당이 현재 실행하는 법의 각도로부터 파룬궁 수련은 무죄이며 법률과 인건을 짓밟고 미친 듯이 파룬궁 수련생을 박해하는 사당이야말로 비로소 진정하게 죄를 범했다는 것을 실증할 수 있다고 인식했다. 동시에 변호사는 공개할 수 있고 전업적으로 인간의 법률적인 면에서 박해하는 것은 법을 위반한다는 것을 이야기 할 수 있어 비교적 유리한 위치와 각도에서 그들의 말은 사법권위가 있고 사람의 마음을 진감할 수 있으며 속인들로 하여금 더욱 쉽게 이해하고 접수할 수 있고 심지어 이 체계에서 맹목적으로 상급의 명령에 복종하는 세인을 각성하게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의의 변호사의 개입은 사악을 놀라게 하는 힘을 증가하고 우리들이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도하는 범위를 넓힐 수 있어 이것은 우리들이 가서 할 만 한 하나의 좋은 일이다.

외지 동수들은 2003년부터 시작하여 줄곧 이 방면의 항목을 협조하고 많은 심혈을 기울여 스스로 법을 실증하는 길을 개척했으며 너무 위대했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매우 많은 좋은 건의들을 해주었으며 또 우리들에게 대법을 위하여 감히 무죄 변호하는 권익을 유지하는 한 정의의 변호사를 소개했다. 우리들은 다시 신심과 열정이 있게 되었고 모두 이 일에 노력하여 잘하자고 생각했으며 되도록 빨리 베이위를 소굴에서 구출하자고 했다.

우리는 또 베이위의 큰형을 찾아가서 그가 가족의 신분으로 나서서 변호사를 선임하여 베이위의 소송을 걸어 무죄 변호를 할 수 있도록 하기를 희망했다. 큰형은 처음에 그리 원하지 않았다. 그는 소용없다고 여겼으며 또 변호사 비용이 너무 많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들의 수 차례 권고에 의하여 큰형은 나서서 돈을 내고 변호사를 선임하겠다고 했다. 큰형은 상인이어서 경제 상황이 괜찮았으며 동시에 그도 상인의 총명함으로 득과 실을 가늠했고 당시 그는 “어쨌든 내가 돈을 냈으니 나중에 너를 구하지 않았다고 원망하지 말라, 그리고 돈을 냈으며 모든 일은 변호사가 나설 것이니 위험이 작을 것이다”는 심태로 변호사와 위탁계약을 체결했다.

이어서 구출하는 일이 점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처음에 우리는 두서를 잡지 못했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 몰라 외지 동수가 그간 우리를 많이 도왔다. 우리는 몇 개 항목의 팀으로 나누어 분공하고 협조를 하면서 구출을 진행했다. 우리가 베이위의 박해 받은 경력을 밍후이왕에 올리는 동시에 악인의 이름, 전화도 사이트에 올려 폭로했으며 베이위의 부모, 경찰서, 경찰국, 610, 검찰, 법원에 선을 권하는 편지를 나누어 보냈고 대대적으로 베이위가 박해를 받은 사실과 대법 진상자료를 돌렸으며 변호사에게 협조하고 몇몇 사람은 매일 분주히 보냈다. 이 과정에서 이 일에 참가한 몇몇 동수의 심성은 비약으로 승화하여 눈만 있으면 다 볼 수 있었고 박해를 제지하고 법을 실증하며 중생을 구도하는 앞에서 모두 다 자아를 놓고 정체에 원용하고 일에 봉착하면 안으로 찾고 한 마음 한 뜻으로 협력하여 이 일을 잘할 수 있었으며 짧은 시간 안에 매개인의 변화는 매우 컸고 더욱 성숙하게 이성적이고 정념이 더욱 족하여 정체도 더 협조가 잘 되었다. 마음은 많이 활달해 졌다.

베이위 큰형의 변화도 매우 뚜렷했다. 우리가 하는 말에 어떤 때 저촉을 받았는데 우리와 베이위는 마찬가지로 사람으로 하여금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변호사가 이야기 한 말은 그를 신복하게 했다. 그는 많은 법률 조례를 알게 되었으며 자기의 동생은 무고하게 박해를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더욱 많은 진상도 알게 되어 심리상 갈수록 우리에게 근접했으며 베이위도 그리 미워하지 않았다. 그는 매일 안건의 진전을 부모에게 알리어 베이위의 부모 태도도 많이 전변되었다. 이 일에 전혀 관심이 없던 큰형수도 베이위의 안건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뻔뻔한 사당의 건달행위에 대하여 몹시 미워했다.

구출하는 일은 잘 되어 나갔고 확실히 매우 만족스러운 효과를 거두었다. 변호사는 매우 많은 일을 했고 베이위에게 매우 유리한 증거를 찾았으며 모두 다 베이위를 귀환시키는데 대하여 신심이 충만 되었다. 변호사가 구치소에서 베이위를 보았을 때 상태가 매우 괜찮았다. 우리는 매일 어떻게 진상을 더욱 잘하겠는가 생각했으며 우리가 기대하는 결과가 아주 빨리 올 것이라 느꼈다.

그러나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본래 진작 끝냈어야 할 안건이 규정된 기한이 넘었지만 꾸물거리면서 결과가 없었다. 이 기다리는 시간은 길고도 길어 보였으며 우리의 심태와 상태도 서서히 변화가 발생하고 있었고 모두 낙관적인 결과를 품지 않았으며 경험이 없고 일손이 달리고 자아를 실증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여 후기 정체 협조가 잘 되지 않아 문제가 나타났는데 제때에 의사소통하여 해결 할 수 없었다. 질책과 원망의 성분이 갈수록 많고 간격은 갈수록 커지고 교란도 갈수록 많았다.

변호사는 사당의 법원 법관으로부터 아직 실증되지 않은, 법관이 말하는 모든 두근거리는 소식, 그것은 안건을 개정하지 않고 원 판결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소식을 듣고 우리의 몇몇 사람은 소극적이고 어쩔 수 없다는 심태가 주도적이었으며 모두 또 무엇을 할지 몰랐고 이따금 “처음에 어떻게 어떻게 했더라면 좋았다.”고 하면서 불평을 부렸다. 차츰 이 일에 더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베이위도 변호사에게 만약 원 판결을 유지하면 그는 감옥에 가지 않고 구치소에 있기로 생각했다. 여기는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환경이 이미 아주 좋기 때문이다. 약 열흘이 지나 변호사는 우리에게 원 판결을 유지한다는 정식 결과를 알려 주었다.

우리의 심정은 괴롭고 무거웠다. 이번 구출에 대하여 나는 오래 생각했는데 성공하지 못한 데는 다양한 요소가 있었다. 첫째 동수를 구출하는 기점 문제. 동수를 구출함에 소굴에서 이탈시키는 주요 라인을 소홀히 하고 소송하기 위하여 소송하는 것으로 변하고 특정된 군체에 진상을 알리기 위하여 소송을 하여 법률의 순서를 거쳤고 진상을 알리는 효과에 만족하는데 국한되었다. ‘구세력의 안배를 전반 부정하고 무조건 동수를 석방하라’하는데 염두를 정하지 않았으며 중요한 부분을 버리고 사소한 부분을 쫓아 얻은 것 보다 잃은 것이 더 많았다. 둘째 당문화 사유가 좀 중하여 구세력이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악당 법률을 철저히 부정할 수 없었으며 악당의 법률에 환상을 품었다. 셋째 속인의 법률 형식, 나아가서 변호사에 대한 기대심이었다.

나는 전반 구출하는 일 중에서 협조를 했다. 그러나 내가 자아를 실증하는 것은 정체에 간격과 손실을 조성했다. 그때 나는 여러 가지 항목을 감당하여 일손이 달린다고 말하기보다 늘 다른 사람이 잘하지 못할까 봐 일마다 직접 겪고 직접 위하여 했다고 말하는 것이 낫다. 그 결과 모두 내가 모든 일을 잘한다고 여기고 크고 작은 일이 모두 나의 몸에 떨어 졌고 나는 바빠서 다 해낼 수 없어 또 동수들이 하려 하지 않는다고 원망했다. 동수들이 내가 구출하는 기점이 빗나갔다고 원망할 때 나는 안으로 찾는 것이 부족했으며 도리어 소침해 졌고 점차적으로 참여하기 싫어했다.

이번 성공하지 못한 구출은 박해를 제지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가운데서 과소평가할 수 없는 작용을 했다. 그것의 위대한 의의는 혹시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이 볼 수 없지만 구출에 참가한 사람은 중생을 구도하고 대법을 실증하는 노정에서 제일 잊지 못할 한 페이지이며 우리는 실패를 경험했고 이 과정 중 경험을 쌓았으며 성숙하고 이성적으로 변했다.

신경문 『밍후이왕(明慧網) 10주년법회에서의설법』에서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의 문답에 회답할 때 “국내 수련생이 돈을 들여 정의로운 변호사를 청해 소송하는 문제를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라고 문제를 제기할 때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렇게 본다. 능력이 있거나 혹은 조건이 구비되면, 변호사를 내 생각에 여전히 마땅히 청해야 한다. 무엇 때문인가? 수련생은 최대한도로 속인에 부합해 수련해야하지 않는가? 너 중공사당은 너의 위대하고, 영광스럽고, 정확함을 표방하고 전 세계를 향해 네가 법률을 중시한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좋다, 그럼 나는 변호사를 청하겠다. 파룬궁을 위하고 대법제자를 위해 변호하는 일부 변호사들은, 변호 중에 한말이 구구절절 이치에 맞아, 아주 좋은 효과를 일으켰다. 비록 그들의 변호가 일으킨 작용의 크기는 다르지만, 사악의 박해에 대한 폭로는 곧바로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것이다. 밍후이왕과 기타 인터넷매체가 보도한 이런 변호사들에 대한 박해는, 사당의 법률이 가짜라는 것을 더욱 설명하며, 이 한차례 박해 중에서 중공사당의 진면목을 더욱 드러나게 했다. 때문에 이 일은 여전히 마땅히 해야 한다.”

나는 우리들이 나중에 사부님의 요구에 따라 정념정행하고 이 일을 잘하고 이 길을 바르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4. 당문화를 타파하고 펜을 들어 문장을 써 법을 실증하다

나는 학교 다닐 때 문필이 아주 좋아 늘 문장을 썼으며 ‘재주꾼’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줄곧 밍후이왕에 투고를 하지 않았고 한두 번 썼는데 중도에서 그만 두었다.

나는 우선 나의 정체의식이 강하지 못하여 밍후이왕의 이 전 세계대법제자들이 교류하는 이 장을 그렇게 중하게 보지 않았으며 체면을 구하는 심리와 자아를 실증하는 심태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클 때까지 나는 자신이 문장을 잘 쓴다고 여겼으며 다른 사람도 이렇게 나를 칭찬했다. 투고하려고 하다가 또 발표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웃을 것 같고 체면이 없으며 자신의 심리상 접수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다른 하나의 원인은 내가 나중에 밍후이왕에 투고하는 과정 중에서 발견한 것인데 그것은 바로 나의 사유, 어조와 문자 중에 너무나 많은 당문화가 있으며 그것들이 내가 대법을 실증하는 문장을 쓰는 것을 교란한다.

베이위를 구출하기 시작해서부터 나는 선을 권하는 편지와 각종 소식보도를 쓰는 것을 감당했다. 처음에 나는 자진하여 나서서 이 일을 감당했는데 내보기에는 다른 사람이 쓴 것은 근본적으로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밤을 새우면서 써낸 보도자료는 바다에 가라앉은 돌처럼 밍후이왕에는 발표하지 않았다. 나와 몇몇 동수들은 모두 매우 조급했다. 우리의 구출작업이 기사보도 방면에서 협조가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나의 마음은 편안하지 않았다. 스스로 괜찮게 썼다고 여긴 문장이 밍후이왕에서 어찌하여 채용되지 않는가? 나는 즉시 이 ‘편안하지 않다’에 대하여 안으로 찾았는데 자신이 자아를 실증하고 자아에 집착하는 마음이 너무 강렬하다는 것을 발견했으며 밍후이왕은 사부님이 인정하는 대법의 사이트이고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 그러면 바로 나 자신의 문제이다. 마침 이때 밍후이왕에 글을 쓰는 것에 대한 교류 문장이 게재되어 다시 자신이 쓴 문장과 대조했는데 자신은 이 방면에 매우 큰 누락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의 문장에는 당문화 색채가 아주 짙었으며 너무 많은 장식, 너무 강렬한 감정, 문자가 깨끗하지 않고 어조가 상화하지 않았으며 강렬한 쟁투와 나쁜 것을 지녔다. 옛 사람들은 ‘말은 마음의 소리다’라고 이야기 했다. 그러나 자신은 이미 할 말이 있어도 잘할 수 없었으며 문장 색채, 문자 형식, 문장 속에서 사람들이 싫증 내는 당팔고(역주: 중국 공산당의 형식적이고 교조적인 지시문이나 문장)의 부패한 입김이 발산 되었다.

나는 이 문제에 겨냥하여 발정념을 했으며 부단히 머릿속의 당문화를 제거 했고 집에 남은 사당 물품을 청리하는데에도 주의 했으며 동시에 사부님께 가지해 달라고 구했으며 동수들이 박해 받은 소식, 사당의 악행을 폭로하고 자신이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체험을 ‘실질적이고 정확하게, 깨끗하게 사람의 정을 지니지 않은 문장’을 써냈다. 내가 쓴 문장의 속도는 원래보다 빨랐고 사로는 더욱 거침이 없으며 동시에 작문 과정에 나는 많은 문제에 대하여 더욱 깊은 체험이 있게 되었고 밍후이왕에서 갈수록 많이 채용했다.

14년의 수련 노정 그 속에서의 더욱 많은 감오를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 위대한 사부님께서 제자의 매 일사 일념을 알고 계신다. 여기에서 나는 사부님 마음 놓으시게 하고, 제자는 꼭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수련의 길에서 걸어가고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사명을 완성하며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칭호에 어긋나지 않겠다!

부적절한 점은 번거롭지만 자비롭게 시정해주기 바란다.

(밍후이왕 제 6기 중국대륙대법제자 수련심득 교류회)

문장발표: 2009년 11월 14일

문장분류: 정법수련 >대륙인터넷법회글 >6회

원문위치: http://minghui.org/mh/articles/2009/11/14/21187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