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환경이 ‘좋아졌다’를 정념으로 보아야 한다

글/화중 대법제자

[명혜망 2005년 11월8일] 나는 집을 떠나 떠돌아 다니는 대법제자이다. 최근에 한 동수에게 들었는데, 고향의 환경이 좋아져서 법학습 소조를 건립하였고 소위 ‘민감일(敏感日)’에도 사악의 소란이 없으며 악경들도 우리가 <9평>과 <장쩌민 그사람>만 배포하지 않는다면 집에서 혼자 연공을 해도 간섭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러므로 두려운 마음에 걸어 나오지 못했던 동수들은 환경이 좋아진 것으로 여기고 자신에 대한 요구와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늦추고 있는데 이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렇다. 낡은 세력 그리고 흑수, 썩은 귀신들이 조종하는 인간 망나니들은 막을 수 없는 바른 믿음(正信)과 그들이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최후를 보아냈기에 비로소 이런 말을 한 것이다. 오늘의 환경은 확실히 많이 좋아졌다. 그것은 역시 전체 대법제자들이 모두 함께 댓가를 지불한 것으로서 집과 사업을 잃어가면서 심지어 사악의 시달림에 죽음까지 무릅쓰면서 비로소 오늘의 좋은 환경을 얻어온 것이다. 만일 모두가 집에 숨어서 법을 실증하러 나오지 않았다면 아마 개인 수련의 환경마저도 모두 더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낡은 세력의 목적이 중생을 훼멸시키려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사명은 곧 바로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여 사부님의 요구를 원용하며 우리의 사전 서약을 실현할 뿐만 아니라 ‘대법제자들이 법을 실증하는 중에서 걸은 길, 이런 자신을 수련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중생을 구도하며 또한 우주의 정법 요구에 배합하고 정법에 부면(負面)작용을 일으키고 대법제자들에게 악을 행하는 흑수와 썩어빠진 귀신들과 각종 낡은 세력이 배치한 교란과 박해의 요소를 해체시키고 깨끗이 제거하는 이것이 바로 대법제자[大法徒]가 걸은 완정(完整)한 수련, 원만, 위대한 신으로 성취하는 길이다.’(<역시 방할 하노라>) 이어야 한다.

우리가 현재 걷는 길이 이전의 개인수련과 다른 것은 우리는 우주의 정법, 대궁이 재조합되는 특수한 시기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사부는 일체 중생을 이끌어 구원하려고 하지만, 그러나 사악한 생명은 오히려 정말로 중생을 이용하여 대법에 대한 죄를 저지르고 있는데 근본적인 목적은 중생을 훼멸시키는 것이다.(<대법은 견고하여 파괴될 수 없다.>) 사부님은 무엇을 요구하는가? 대법제자는 어떠한 과위를 얻게 되는가? 낡은 세력과 공산사령이 이루려는 목적은 무엇인가? 만일 우리가 아직까지 자신이 무엇 때문에 왔고 자신의 책임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만고의 어려움이 한번을 위해서’라는 기회를 잃게 되고 말 것이다. 만일 우리가 정법의 기점에 서지 않고 정념으로 사악의 음모를 보아내지 못한다면 안일한 개인 수련의 작은 울타리에만 얽매인다면 그렇다면 그것은 ‘한 것은 모두 사악이 기뻐할 일로서 박해 중에서 사악을 돕고 있다.’ (<역시 방할 하노라>)일 것이다

여러분도 다 알다시피 <9평>은 ‘도(道)’로 공산당을 해부한 책으로서, 공산사령을 해체하는 법보이자 사악이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다. 공산사령이 대량으로 소훼되는 때, 사령 및 그 인간의 악행자 공산악당은 필연코 최후 발악을 할 것이다. 공산사당이 백여 년 동안 폭행을 부단히 실시한 중에서 쌓은 경험은 바로 이런 ‘좋은 환경’을 베풀어 그것들이 한 숨 돌릴 기회를 얻으려는 수작이며 또한 바로 대법제자의 의지와 정념을 마비시키고 소모하자는데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경이 아무리 느슨해진 듯 해도 법공부를 더욱 잘 하고 조사정법의 기점에 서서 진상 알리는 일을 잘하며 또한 목전의 9평을 널리 전파하여 정법노정을 바짝 따라야 할 것이다.

교훈은 우리를 더욱 성숙되게 하였다. 2003년에 내가 있던 곳에서도 악경들은 똑같은 수작을 썼는데 결국엔 여전히 붙잡고 집을 수색하였으며 그로 인해 일부 동수들이 걸어 나오지 못하고 개인수련의 상태를 고수하다가 경문 <역시 방할하노라>가 발표되어서야 깨어났는데 어쨌든 굽은 길을 걸었고 중생구도의 기회를 지체시켰으며 수련시간을 헛되이 낭비하였다. 특히 정법이 최후 단계에 진입한 이때, 지금의 매분 매초는 모두 우리가 중생을 구도하는데 쓰도록 남겨준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더욱 귀중히 여겨야 하며 법에서 법을 인식하고 진정으로 착실하게 수련에서 정진하며 세가지 일을 잘하여 사악에게 빈틈을 주지 말아야 한다. 최후가 다가 올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마지막에 사부님의 법으로 공동 격려하자. ‘하지만 당신들이 능히 가장 위대한 신의 길에서 굽은 길을 적게 걷고, 자신의 장래에 유감을 남기지 않으며, 층차의 거리를 벌어지게 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나와 당신들 내지 당신들을 기대하는 중생들의 바램이다.’ (<최후일수록 더욱 정진해야 한다.>)

‘대륙대법제자 서면심득교류 대회원고모집 게시’를 본지가 오래되었지만 나는 사람의 허다한 관념에 막혀서 참가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다만 동수들의 수련성과만 얻어보려고 하였다. 마치 문장을 쓰고 투고하는 것은 문화수준이 높은 동수들의 일이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사실 이것은 의지가 소침한 표현이며 나의 정체 협조 배합의식에 있어서의 부족한 표현이다. 기실 매 한차례의 대법의 활동은 다른 공간에서는 하나의 정사대전이다. 수련인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이 바로 사악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다. 대법수련 중에서 나는 또 한번 영(零)을 돌파하여 새로운 시작이 있게 되었다.

본인의 법공부가 깊지 못하여 부합되지 못한 곳이 있다면 자비로 바로 잡아주기 바란다.

문장완성 : 2005년 10월 28일
문장발표 : 2005년 11월 8일
문장갱신 : 2005년 11월 8일 01:46:48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11/8/113376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