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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자기 수련을 잘 해야만 비로소 정법수련의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다

글/ 쓰촨[四川]대법 제자

[명혜망 2005년 11월 6일]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세요!
동수들 안녕하세요.

제가 교류할 제목은 ‘항상 자기 수련을 잘해야만 비로소 정법 수련의 도로를 잘 걸을 수 있다 ‘ 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 1강에서 우리에게 ” 당신에게 하나의 진리를 알려주겠다 ―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 라는 진리를 알려 주셨다. 여러 해의 수련 과정을 거치면서 이 진리를 나는 깊게 이해하게 되었다. 개인 수련 단계 때나 정법 수련의 이 몇 년동안 모두 끊임없이 자신을 수련하고, 각종 고난 중에서 자신이 인식하지 못한 집착심과 깊숙하게 숨어있는 사람의 마음을 각종 환경에서 모두 드러나게 한 다음 그것을 없애 버린다. 그럼 어떻게 해야 비로소 자신의 부족한 점, 각종 집착과 관념을 볼 수 있을까?. 나는 몇 점의 체득이 있다.

1.마음을 가라앉혀 법공부하고 무조건 안을 향하여 찾는다

사부님께서는 거듭 우리에게 법공부를 잘 해야 하고, 법을 잘 배워야한다고 알려 주셨다. “법은 일체 집착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일체 사악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모든 거짓말을 타파할 수 있고, 법은 정념을 확고하게 할 수 있다” 《 교란을 제거하여 》만약 우리가 진정으로 법을 잘 배우고, 모두 법의 요구에 따라하면 무슨 난관을 만나든지, 어떤한 일도 자연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 왜냐하면 무변[无边] 대법의 위력은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순리적으로 해결하기 때문이다.

내가 법을 얻은 초기에는 연공은 생각도 못했고, 다만 대법이 너무 좋다고 느껴져 매일 보고 싶어서 매일 읽었다. 일개월 후 나는 온 몸이 무병이고 가벼운 상태에 도달했다. 대법의 위대함과 신기함을 강력히 알았을 때 나는 확고하게 법륜대법의 수련의 길에 올랐다. 사악이 대법에 대해 6년동안 피비린내 나는 박해를 하는 중에 내가 몸소 체득한 것은 역시 이렇다. 내가 마음을 가라앉혀 법을 공부할 수 있을 때에, 상태는 좋고 정념도 강하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두 매우 순조로웠다. 일단 마음이 법을 떠나면 법 공부는 형식적이 되고 일을 하면 어려움은 많고, 고난도 크다. 진수제자들마다 가능하게 현실 중에서 모두 내 말에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무조건적으로 안를 향해 집착을 찾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느꼈다. 나는 일찍이 몇 년전 꿈에서 안를 향해 찾아 일으킨 거대한 변화를 똑똑히 감수한 적이 있다. 꿈에서 나와 하나의 검은색 악마가 싸우는데 격렬한 대치끝에 점점 나는 체력이 지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 나는 사부님이 우리에게 일에 부닥치면 안를 향해 찾아야 한다고 하셨던 말씀을 갑자기 생각해 내고, 즉시 나는 마음을 가다듬어 왜 내가 그 악마를 이겨내지 못한 것일까를 조용히 생각했다. 원래 나의 속 마음에 그것을 두려워하고, 감히 사악과 싸우는 것은 한때의 용기였을 뿐 확고한 마음은 없었던 것이었다.

바로 그 두려워한 마음 때문이었음을 바르게 생각하자 그것이 두렵지 않았다. 아마도 집착을 제대로 찾게 되었음인지 나는 별안간 비할바 없이 크게 변하였고, 그 악마는 단번에 나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 그 악마은 내 발 아래서 사방으로 찾았지만 나를 볼 수 없었다. 나는 아주 쉽게 바로 그것을 소멸할 수 있었다. 그 꿈에서 나는 깨달았다. 진짜로 즉시 자신의 집착심믈 찾아낼 수 있을 때, 우리는 이미 사악보다 크게 높으므로 기실 그 사악은 아무것도 아니다.

2、대법에 동화하고 근본적 집착을 제거해야만 정법수련의 길을 바르게 갈수 있다

사부님께서는 <<2003년 애틀란타법회에서의 설법 >>에서

문: 이렇게 오래 수련해서야 무엇이 자신의 근본적인 집착인지 인식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에게 집착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부: 맞다, 명백하게 말하면 바로 과거 생명의 기본 요소이다. 과거에 이 방면이 여러분에게 모두 있었는데 매우 많은 사람들은 그래도 정말 의식하지 못했다. 여러분이 정체적으로 제고 됨에 따라 이 방면은 이미 그렇게 두드러지지 않게 되었다.

1년 시간을 통해, 나 자신은 수련 과정 중에서 자신의 근본 집착심을 찾아낸 동시에 여러 동수에게 나타난 근본적인 집착심을 보았는데 자아에 집착하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 매 수련생 모두가 알고 있지만 그러나 생각이 미치지 못한 한 개의 집착이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인식한 것인가를 말하려고 한다.

이 일년이 넘는 동안에 나는 정체가 향상되고, 공동으로 정진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늘 동수들과 교류하고 토론하고 있다. 접촉한 동수가 많아짐에 따라 여러 방면의 듣기 좋지 않은 말과 여러 찬양하는 말을 듣는 것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수련자로서 속인 중에서 봉착하게 되는 일체 고뇌는 다 고비를 넘기는 것이고, 만나게 되는 일체 표창(表彰)은 다 고험이다. ” “수련자는 스스로 그 중에 있다”(修者自在其中)
법리는 비록 명백한 것일지라도, 나는 항상 찬양 앞에 자만하는 마음이 있으면 안 된다고 자신을 각성시키고, 듣기 좋지 않은 소리속에서 원망의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반드시 잘 장악하려고 했다. 그러나, 매우 긴 일정기간에 나 자신은 수련의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을 의식했고, 각종 모순 속에 감돌고 있었다. 때로는 나의 가족과 함께 살 수 없다고 느꼈고, 자신의 속마음은 초조와 고통으로 꽉 감돌았다. 나는 이런 좋지 않은 상태는 사악이 쉽게 빈틈을 탈 수 있다고 느겼기에, 또한 이런 좋지 않은 상태를 타파하고 싶었다. 나는 법공부하여 안를 향해 찾았지만 표면에서의 집착만 찾아 낼 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집착심은 찾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나의 상태는 때로는 좋고 때로는 나쁘고, 표현되는 것은 기분이 때로는 초조하고, 귀찮고 누구나 눈에 거슬리게 보였다.

그러나 한 관을 지나지 못하니 다른 관이 또 들이 닥쳤다. 그 난은 더욱 크졌다. 나는 때로는 자신이 방법이 없다고 느끼고는 도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명백한 일면은 진정으로 제고되어 이 난을 돌파해야한다는 것을 알았다.《전법륜》 중에서 심성제고 부분에서 사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 그는 그의 이 공이 괜찮게 자랐으며 연마 또한 아주 잘 되었다고 느끼는데, 돌연간 어찌하여 이처럼 많은 번거로운 일이 생겼는가? 어찌하여 무엇이나 다 좋지 않게 되었는가. 다른 사람들도 그를 잘 대해주지 않으며, 상사도 그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가 하면, 가정내 환경도 매우 긴장되었다. 왜 갑자기 이처럼 많은 모순이 나타날 수 있는가? 그 자신은 아직 깨닫지 못한다. 그는 근기가 좋기 때문에 일정한 층차에 도달했고, 이러한 하나의 상태가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수련인의 최후 원만(圓滿)의 표준이겠는가? 위로 수련하자면 아직 멀고도 멀다! 당신은 계속 자신을 제고해야 한다.”

3가지 일을 나는 평범하게 하고 있었는데 모순이 왔을 때, 확실히 풀지 못하면, 나는 도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도 방법이 아니다. 이것은 수련이기 때문에 이 관은 넘지 않으려고 해도 결국은 지나야 한다. 집착의 마음을 즉시 찾아낼 수 없으면 난이 크지고 사악은 빈틈을 타고 박해의 이유를 찾는다. 나의 신체는 심각한 병업 상태가 나타나고 격렬한 두통을 나타냈다. 그리고 매일 정오에는 열이 오르면서 매 시간마다 모두 고통에서 시달렸다. 나는 비록 집착한 마음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사부님을 확고하게 믿고 대법을 확고하게 믿었다. 나는 한편으로 사부님께 도와 달라고 부탁하고, 한편으로 낡은 세력의 박해를 부정하고,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거대한 고통을 참으면서 동수들과 교류하며 진상을 했다. 1개월 후 마침내 정상을 회복했다. 사악의 이런 신체상 박해는 엄숙한 고험이다. 장시간의 고통중 당신이 사부님과 대법을 굳게 믿는가? 박해 또는 병업을 분명히 할 수 있는가? 소극적으로 감당하는가? 아니면 철저히 부정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관을 넘긴 후 나는 여전히 자신의 근본집착을 깨닫지 못했지만 그러나 고통스러운 병업관을 넘긴 후 나는 진짜로 타인을 위해 고려하고, 상대방의 각도에서 상대방을 위해서 고려했다. 모든 대법 제자는 모두 관을 지나야 할 것이 있고, 어느 관이든 모두 줄곧 마음을 가리킨 것이므로 모두 쉽게 지나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 고비를 넘겼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단지 법리에서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야만 동수에게 진정한 도움을 줄 수 있고 특히 주의할 것은 다른 사람의 과실을 질책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다른 사람을 보고 자기를 생각하고 동수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를 보고 나에게도 이러한 문제가 있는지를 찾는다. <<전법륜>>중에서 “기가 정수리에 올라가서 내려오지 못하는 그것은 다만 한 시기의 상태로서, 어떤 사람은 오랜 시간, 반년이 되어도 내려오지 못한다. 내려오지 못하면 진정한 기공사를 찾아 좀 인도(引導)만 하여도 내려오게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무릇 연공(煉功)할 때에 관을 돌파하지 못하거나 기가 내려오지 못할 때, 우리들은 씬씽(心性)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그 층차에서 지체한 시간이 너무 오래되지 않았는지? 마땅히 씬씽(心性)을 제고해야 한다! 당신이 진정하게 씬씽(心性)을 제고했을 때에 당신은 그것이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다. ”

아마 점차적으로 해 낼수 있고, 자신의 심성을 제고했으므로 , 사부님은 내가 시골에 내려가 교류하도록 안배해 주셨다. 동수가 나타난 문제에서, 나는 진실하게 자신이 오랫동안 지속하여 존재한 자신에 의해 덮어 감추어진 지금까지 인식못한 하나의 가장 기본적인 집착심, 그것은 자아를 집착한 것임을 보아 냈다. 근본적인 사심이다. 우리는 법리에서 사심은 모든 낡은 우주 생명의 최대 장애이므로 수련생들은 반드시 그것을 내려 놓아야 한다. 그러나 이 사심은 우리 수련 중에 각종 표현이 있고, 나 자신의 이런 표현은 자기 관념을 집착하는 것이다.

첫째, 이 관념은 오랫동안 인간 세상에서 형성한 사람의 각종 관념이다. 또한 수련 과정에서 끝이 없는 무변 대법 중 깨달은 한층의 이치에 집착한다. 예를 들자면, 동수가 자신은 일대일로 진상을 말하기 때문에 효과가 매우 좋다고, 주위의 동수들이 찬양도 있으니, 자신이 깨달은 이치를 내려놓지 못하고 동시에 주위 동수들에게 모두 직접 상대해서 사람들에게 진상을 말할 것을 요구하고, 심지어 나중에는 진상자료를 발행하는 것과 진상표어를 써서 붙이는 것도 모두 안 된다고 여기며, 마음에 두려운 것이 중하다는 것이었다. 결국은 자아를 집착하는 마음이 일어나자 곧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자신의 수련 환경을 엉망으로 뒤얽히게 하고 수련하는 가족과도 모두 함께 살 수 없는 정도에 달했다.

두 번째는 자신이 수련한 가운데의 성과에 집착한다. 한 동수는 박해가 시작할 때에 상경[進京]하여 호법하고, 군중에게 진상을 말하고, 자신의 개인 수련도 따라 갈 수 있었다. 매일 법을 외우고 가부좌하여 2 시간을 앉을 수 있고, 2장공법도 45분간 하여 동수들은 모두 그녀를 찬양하였다. 원래 이 동수는 개성이 강하고, 만사를 모두 그녀 마음대로 결정했다. 자기를 현시하는 집착이 강하고, 게다가 동수의 찬양까지 보태니 자만하는 마음이 생겼다. 누구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고, 또한 나와서 법을 실증하지 않았으며 그녀는 진상을 말하는 것은 정부와 대항한다고 여겼다. 명혜망 문장도 보지 않고 사부님의 새 경문도 배우지 않고, 한번 보고 다른 동수에게 넘겼다. 심지어 동수에게 알린다. 내가 집에서 수련해도 공은 올라갈 수 있는지? 아니면 밖에서 “뛰는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가를? 어디 두고 보자? 사부님의 <<방할하노라>>는 문장이 나와서야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러나 줄곧 정념정행하는 대법 제자와는 분명히 너무 많은 격차가 생겼다.

세 번째는 자신의 많은 공헌을 집착하여 불공평하다고 여긴다. 이런 동수들은 일반적으로 대법 자료를 책임졌거나 협조 작업을 책임진 동수들인데 장시간 작업 뒤에, 만약 진정으로 중생 구도를 자신의 책임으로 생각하지 못하고 대법 일도 역시 자신의 사전염원이고 자신이 이런 일을 한다는 소원을 하여 사부님께서 비로소 이렇게 배치한 것이다. 이 이치를 이해하고 자신의 심태를 잘 정리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장시간의 과부하 작업 중에, 법 공부와 연공을 잘하지 못하여 매우 쉽게 불균형한 심리가 생기고, 자신이 지불하는 것은 너무 많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이 모두 대법 작업을 하지 않고 자신 한 명이 중임을 하고 있어 억울하고 원망하는 집착이 생긴다.

모든 이런 사심의 표현은, 우리 매 수련생마다 모두 있고, 당신이 즉시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가를 본다. 사부님께서는 《2004년 뉴욕 국제 법회》에서 “모순이 있고 긴 시간의 일부 표현이다. 그러나 그들은 일찍 혹은 늦게 자기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 것을 본다. 빨리 없애는 것은 늦게 제거하는 것보다 좋다. 누구도 모순과 집착을 가지고 원만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한다.” (“是有矛盾时间长一些的表现,但是他们早晚得看到自己的问题在哪里。早去掉比晚去掉好,谁也别想带着矛盾与执著圆满。”)

왜냐하면 우리의 이런 낡은 우주 생명의 근본 속성에는 사를 위하고 자아를 위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우주에 동화하는 무사무아하는 생명의 과정 중에서 각종 층차에서 이 사심을 바로 나타내 또 각양각색의 집착심을 생기게 할수 있다. 이런 집착심은 결코 두렵지 않다. 왜냐하면 수련은 모든 집착을 없애는 것이다. 우리가 수련하는 파룬대법은 줄곧 심성을 가리켜 이렇게 빠르게 수련한다. 그러나 관건은 우리가 수련 중에 시기 적절하게 자신의 마음을 보아야 한다. 근본의 집착을 찾아내고 이렇게 해야만 수련의 길을 갈수록 더욱 잘 갈수 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준 조용한 마음으로 법공부를하고 무조건 안을 향하여 찾고 진상을 똑똑히 말하고 발정념을 하고 중생구도하는 세 가지 일을 잘하는것이다.
그러나, 정법수련 이 시기에 우리 개인의 수련 제고는바로 사부님이 우리에게 요구한 법 공부, 진상을 말하고 발정념하는 이 세 가지 일속에 포함된 것이다. 오직 우리는 착실하게 이 세 가지 일을 잘해야만 우리는 최후까지 갈 수 있다. 지금 매시간을 응당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것은 우리가 천만년을 기다린 것이다. 사부님께서 말한 “이 한 순간은 천금도 되고 만금도 된다.”《시카고시에서의 설법》

자신의 표달 능력이 유한하여 할말은 매우 많은데 많은 인식은, 오히려 법리를 뚜렷하게 표달할 방법이 없다. 동수들이 본 후 부족한 점을 지적하여 수정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제2기 대륙 대법 제자 수련심득 서면 교류 대회원고)

문장완성:2005년 10월 23일
문장발표:2005년 11월 06일
문장갱신:2005년 11월 08일
문장분류:[수련마당]
문장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5/11/6/113024p.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