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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고한 11년 옥살이 당한 여성 엔지니어 왕메이훙이 또 억울한 4년 형 선고받아

[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종합보도) 올해 63세인 고급 엔지니어 왕메이훙(王楣泓)은 ‘진선인(真·善·忍)’에 따라 마음을 닦고 선을 행해 11년의 억울한 징역형 박해를 당한 적이 있다. 2020년 11월 23일에 또 하얼빈(哈爾濱)시 난강(南崗)구 공안분국 하시(哈西)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 모함을 당했고, 2021년 3월 31일에 하얼빈시 다오리(道裏)구 법원에 의해 불법 재판을 받았다. 최근 입수한 소식에 따르면, 왕메이훙은 하얼빈시 다오리구 법원에 의해 억울한 4년 형을 선고받았다고 한다.

'王楣泓'
왕메이훙(王楣泓)

왕메이훙은 헤이룽장(黑龍江)성 무단장(牡丹江)시 지질탐사소의 고급 엔지니어이며, 남편 위쭝하이(于宗海)는 화가로 무단장 도서관에서 근무했다. 위쭝하이는 30여 세 때부터 몸이 망가져 류머티즘, 골수염, 말초신경염, 척추 인대염, 골질이 푸석푸석하게 되는 증상 등 난치병에 걸렸다. 허리를 삔 적이 있는데, 잘못 움직이면 쉽게 허리를 삐었다. 땅 위에 떨어진 종이도 먼저 쭈그려 앉았다가 다시 주어야 했으며, 관절이 경직돼 차츰 변형됐다. 여러 큰 병원으로 가서 검사와 치료를 받아도 효과가 없었다. 1994년, 위중하이는 운 좋게 파룬궁을 접촉했다. 1994년에 사부님께서 다롄(大連)에서 설법하신 학습반에 참가했는데 학습반에 참가했다가 돌아와서 스스로 100kg짜리 쌀가마를 단숨에 1층에서 5층까지 메어갔다. 이런 기적은 많은 사람을 깜짝 놀라게 했다. 위쭝하이의 가족은 파룬궁의 신기함을 목격하고 그도 연이어 대법 수련 중에 들어섰다.

1995년, 왕메이훙의 양측 유방에는 종기 증상이 나타났는데 결국 유방에 단단하고도 아픈 종기가 가득 생겨났다. 의사는 유방절제 수술을 받도록 건의했다. 왕메이훙은 남편에게서 일어난 기적을 직접 목격하고 그녀도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다. 매우 빨리 유방 종기가 사라져 수술도 받을 필요가 없었다.

두 부부가 10여 년 불법 징역형 선고받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중국공산당) 사당(邪黨)이 파룬궁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그날 이른 아침, 위쭝하이 및 각 시 파룬궁 보도소장이 납치됐다. 이후 위쭝하이는 베이징 톈안먼으로 걸어나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다가, 현지로 납치돼 돌아와 1년 불법 노동교양 처분을 받았다. 2001년 여름, 위쭝하이는 노동교양소에서 벗어난 후 또 민원사무실, 텔레비전방송국으로 가서 진상을 알렸는데 5만 위안의 현상금을 건 불법 수배령을 받았다. 경찰은 위쭝하이를 붙잡지 못하자 곧 왕메이훙, 그의 여동생 위전핑(于真屏)을 구치소로 납치해 가뒀다. 줄곧 위쭝하이가 납치당할 때 이르러서야 왕메이훙와 위전핑은 풀려나 돌아왔다.

2001년 11월 12일, 위쭝하이는 진상을 알려 무단장시 시안(西安)분국 궁허(共和) 파출소의 악독한 경찰에게 납치됐다. 악독한 경찰은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하며, 그의 입과 코안에 겨자기름을 주입해 학대를 진행했다.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적이 있는 졸개에게 연속 머리 부위를 맹렬한 공격을 당해 뺨의 살이 찢어졌고, 또 쇠 의자 위에 꼬박 8박 9일 채워졌다. 그 후 불법적으로 15년 중형을 선고받아 무단장 감옥에 불법 감금돼 박해를 당했다. 2006년에 노역을 당했을 때 부상을 입어 영구성 눈물샘 단절 증상이 나타났다. 2009년에 감옥에서 강제 ‘전향’을 당해, 겨울에 냉수 끼얹기 학대를 당했다. 그리고 늑골과 다리가 구타로 부러졌으며, 가슴 부위도 심각한 구타를 당해 호흡하기가 어려웠으며, 전기 충격을 당한 이유로 심장에도 심각한 문제가 나타났다.

2003년 10월 22일, 왕메이훙은 무단장시 신화(新華) 파출소에 납치됐다. 납치 과정 중에서 악독한 경찰 쑤레이(蘇雷)는 총으로 왕메이훙을 핍박해 불법적으로 몸수색을 진행했다. 6~7명의 악독한 경찰이 그녀를 포위하고 구타를 진행했다. 악독한 경찰은 왕메이훙을 7층에서 1층으로 끌어가 억지로 왕훙메이를 차에 태웠다. 차에서 내릴 때도 또 왕메이훙의 머리칼을 잡아당겨 차 안에서부터 2층까지 끌어갔다. 왕메이훙의 머리칼은 잡아당겨져 한 줌이나 뽑혔고, 신발 등마저 닳아서 떨어졌으며 옷은 잡아당겨져 찢어졌다. 한 악독한 경찰은 책 한 권을 들고 끊임없이 왕메이훙의 얼굴을 후려쳤다.

무단장시 둥안(東安)구 국가보안대대에서 악독한 경찰 대장 장푸(張富)를 우두머리로 한 20여 명의 악독한 경찰은 돌아가며 고문으로 자백을 강요했다. 왕메이훙은 쇠 의자 위에 꼬박 3일간 채워져 수면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두 발이 부어올랐다. 악독한 경찰들은 결과가 없자 곧 왕메이훙을 구치소로 납치했다. 의사는 신체검사를 진행할 때 전신과 등마저 부상을 입었다고 말했다.

고문 재연: 쇠 의자 고문

2004년 3월, 왕메이훙은 무단장시 아이민(愛民)구 중급인민법원에 의해 불법적으로 11년 형을 선고받았고, 2004년 3월 24일에 헤이룽장(黑龍江)성 여자 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7감구[공고(鞏固)대대]의 악독한 경찰 대대장 양화(楊華)는 왕메이훙에게 온종일 서 있는 체벌을 주었다. 그리고 또 강제로 그녀를 작업실로 끌고 가 가장 힘든 곳에서 일을 시켰다. 작업실 안에는 두 대의 기계가 동시에 돌아갔는데, 기계마다 가장 높은 온도가 180도에 달했다. 더군다나 7~8월의 기온마저 약 30도에 달했는데,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노역을 시켰다.

설명도: 중공 감옥 중의 노역 박해

2006년 11월, 왕메이훙은 ‘전향’을 거부해 제4감구로 납치돼 가지런히 앉히기 학대를 심각하게 당했는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작은 의자에 앉아야 했다. 화장실에 가고, 설거지를 하든지 막론하고 한 걸음도 떨어지지 않고 따라다녔으며, 밤중에 화장실에 가려 해도 ‘바오자(包夾, 수감자로 이뤄진 밀착 감시원)’가 뒤따랐다. 그리고 복도 안에서 파룬궁수련생 사이에 만나고 말을 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만약 파룬궁수련생이 마주쳐 말을 하면 곧 훈계, 능욕을 당했다.

중공 체벌 설명도: 장시간 동안 앉히기 고문

2008년 2월, 왕메이훙은 또 6감구로 납치됐다. 하루는 일이 일찍 끝나 왕메이훙은 침대 위에서 가부좌하고 연공했는데 그녀들에게 발견됐다. 악독한 경찰 장샤오쥐안(張曉娟)은 쉬전(徐臻) 등 몇 명의 죄수를 거느리고 감방에 들이닥쳐 왕메이훙을 침대 위에서 끌어내렸는데, 오른쪽 무릎이 먼저 땅에 박혀 며칠 동안 절뚝거렸다. 이로부터 오른쪽 무릎 윗부분은 장기간 아팠다.

2011년 12월, 감옥에서는 또 한 차례 파룬궁수련생을 박해했는데, 왕메이훙과 다른 파룬궁수련생을 격리시켰다. 그리고 특별히 작업실에서 형기가 긴 살인범을 파견해 ‘바오자’로 삼았는데 2명의 ‘바오자’를 파견해 감시했다.

2014년 10월 25일, 왕메이훙은 11년의 억울한 옥살이가 만기 돼 헤이룽장성 여자 감옥에서 벗어났다.

다시 납치돼 무고한 4년 형을 선고받다

2020년 11월 23일, 왕메이훙은 하얼빈시 학부 서점 안에서 하얼빈시 난강구 공안분국 하시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먼저 보름 동안 불법 행정구류 처분을 받았고, 만기 후에도 하시 파출소에서 석방을 거부해 가족에게 어떠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은 상황에서 강제로 왕메이훙을 형사구류 처분으로 옮겼다. 그 후 하얼빈시 난강구 공안분국 국가보안 경찰은 가족에게 왕메이훙에게 믿음을 포기하도록 권고하라고 통지했다. 게다가 서명해 보증한다면 사람을 석방할 수 있다고 승낙하면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징역형을 선고한다고 했다.

2021년 2월 2일, 왕메이훙은 하얼빈시 다오리구 법원에 모함당했다. 다오리구 검찰원의 검사는 자오야자오(趙亞姣, 핸드폰 번호: 13936512715, 사무실 번호: 0451-84353057)였다. 업무 담당 판사는 젠청(簡成)이며, 핸드폰 번호는 18503601108이고, 사무실 번호는 0451-84869225이다.

2021년 3월 31일 오전 10시, 하얼빈시 와이다오구 법원에서는 불법적으로 원격 영상 재판을 진행했다. 셰옌이(謝燕益) 변호사가 변호사 펑펑(彭鵬)과 함께 왕메이훙과 가족에게 정식으로 의뢰를 받고 왕메이훙을 위해 법정 변호를 진행했다.

3월 30일, 31일, 셰옌이 변호사는 의뢰인 및 본인 신분 증명, 위임장 등 법정 변호수속 서류를 갖고 다오리구 법원으로 가서 담당 젠청(簡成) 판사에게 제출했으며, 그에게 법에 의거해 확인하고 또 변호인 신분으로 소송에 참가시켜 달라고 요구했다. 젠청 및 서기원은 이 사건은 이미 변호사가 있는데, 이것으로 변호 권리를 보장한다며 상술한 수속을 거부했다.

셰옌이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변호 수속 거부는 위법이다. 형사소송법에서는 피고인에게는 두 명의 변호인을 선임할 권리가 있고, 피고인이 한 명의 변호인, 또한 두 명의 변호인에게 의뢰하든지, 피고인이 변호사에게 의뢰하거나 친구에게 위탁해 변호하든지는 피고인의 권리다. 변호권을 충분히 보장할지는 마땅히 피고인의 의지를 기준으로 해야지 판사의 의지를 기준으로 해서는 안 된다. 관련 법률 규정에 따르면, 피고인이 변호인에게 의뢰함이 법률 규정을 위반하지 않기만 하면, 마땅히 피고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

어떻게 교섭하든지를 막론하고 판사 젠청 및 법원에서는 직권을 남용해 법을 어기는 입장이 변하지 않았다. 게다가 재판 당일 셰옌이가 법정에 들어섬을 제지했다. 법정에서 왕메이훙은 적어도 한 명의 변호인이 법정에 도착했다고 제기하며, 변호인 셰옌이가 법정에 도착해 변호를 하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하얼빈시 다오리구 법원에서는 단호히 거부하며 재판을 강행했다.

최근 입수한 소식에 따르면, 왕메이훙은 하얼빈시 다오리구 법원에 의해 무고한 4년 형을 선고받았다.

왕메이훙 일가가 박해당한 더욱 많은 경험은 밍후이왕 보도 ‘22년 동안 그려지지 않는 집’, ‘무단장 위쭝하이 일가가 잔혹한 박해를 당해, 육친이 해외에서 관심을 갖도록 호소’를 참조하시기 바란다.

(역주: 관련 박해 기관과 박해자의 정보는 원문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5월 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박해 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21/5/9/4244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