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일가족이 중국공산당에 의해 잔인한 박해당한 다롄시 주번푸가 억울하게 사망

[밍후이왕](밍후이왕 통신원 랴오닝 보도) 다롄(大連)시 파룬궁 수련생 주번푸(朱本富) 일가족은 20년 이래 중국공산당에 의해 처참한 박해를 당했다. 주번푸와 아내 쑨징메이(孫敬美)는 동시에 7년의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아, 모두 비인간적인 고문 학대를 당했다. 주번푸는 감옥에서 박해당해 온 머리가 백발이 되고 전신에 검은 반점이 생겼다. 출소한 후, 앞가슴은 아프고 또 늘 기침 등 증상이 함께 나타났다. 게다가 끊임없이 교란 등 박해를 당했는데, 결국 2019년 10월 28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아내 쑨징메이는 감옥에서 집으로 돌아온 후 수시로 메스꺼워 구토해 음식을 먹기가 어려웠고, 이미 2017년 4월 16일에 억울하게 사망했다.

朱本富
주번푸
(朱本富)

행운스럽게 파룬따파 수련을 해서 7년간 ‘모범근무자’로 평가받다

주번푸는 부대에서 10여 년간 근무했는데, 긴장한 업무 중에 각종 질병, 십이지장궤양, 심장병, 위장병, 류머티즘성 통증을 앓았다. 부대와 지방 병원, 민간 처방으로 여러 번 치료받았으나 호전이 없어, 부대에서 근무할 수 없게 되어 전역해 지방 기관으로 돌아왔다. 마침 파룬궁이 널리 전해져 대법을 배웠다. 수련한 지 오래되지 않아 각종 질병이 전부 완쾌돼, 파룬궁이 질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신기한 효력이 있음을 증명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부터 주번푸는 평소에 각 방면에 ‘진선인(眞善忍)’의 표준으로 자신을 엄격하게 요구해 직장에서 근무에 열심히 책임졌고, 노고를 마다하지 않고 원망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점유하지 않고 탐오하지 않았다. 그리고 평소에 다른 사람을 잘 도와주었다. 부대에서 지방 기관으로 돌아와 근무한 9년 동안에 7년 동안 선진 모범근무자로 평가받았다. 부대에 있을 때는 두 차례 3등급 상을 받은 적이 있고, 10여 차례 포상을 받았다. 그는 집안에서 좋은 남편, 좋은 아버지다. 함께 일하는 사람, 친척과 친구, 이웃 사이가 좋았는데 모두가 공인하는 좋은 사람이다.

거듭된 박해로 딸은 경찰에 의해 충격을 당해 정신 이상이 되다

1999년 7월 20일, 장쩌민(江澤民)의 사악한 지령 하에 파룬궁 탄압을 끊임없이 심화했다. 주번푸는 7월 22일에 청원하러 베이징에 갔다가 돌아온 후, 본 직장에서 610의 핍박하에 2주간 세뇌 ‘전향’을 당했다. 이 과정에서 근무를 중지당하고 자유를 잃었다. 24시간 동안 감시를 당했고, 매일 대법을 비난하는 텔레비전, 신문 내용을 주입했다. 주번푸가 그들에게 “누구나 공인하는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 파룬궁 수련생에게 나쁜 사람으로 전향하라는 것입니까?”라고 말했을 때, 그들은 “이것은 장쩌민이 우리에게 시킨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2000년 새해, 주번푸의 아내 쑨징메이는 청원하러 베이징으로 가서 파룬궁을 위해 억울함을 호소했다가 26일 동안 불법으로 감금을 당했다. 당시 헤이스자오(黑石礁) 파출소의 두 명 경찰 위안바오린(袁寶林), 린하이(林海)가 주번푸의 집에 들이닥쳐, 6천 위안(한화 약 99만 원)을 내도록 강요했다. 그리고 각종 공갈 협박, 위협, 공직에서 해고하는 등 수단을 이용해 4천 8백 위안(한화 약 79만 원)을 갈취했다. 주번푸가 그들에게 영수증을 달라고 했으나 거절하고 메모 따위를 써주었다.

2000년 7월, 아내 쑨징메이는 직장에서 근무하다가 속아서 파출소로 갔는데, 어떠한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1개월 동안 불법 행정 구류 처분을 받았다. 게다가 1년 노동교화처분을 받아 마싼자(馬三家) 교화원에 감금됐다. 그녀가 이른바 ‘전향’을 거부한 이유로, ‘바오자(包夾: 수감자로 구성된 감시원)’에게 꼬집혀 온몸이 청자색을 띠고 참기 어려울 정도로 아팠다. 그리고 말을 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았다. 게다가 핍박에 못 이겨 장시간 초강도 노동을 해야 했다.

2002년 4월 17일, 다롄 공안국 헤이즈자오 파출소는 주번푸를 납치하려 했다. 그들은 그의 집 주변의 기관에서 2주가 넘게 잠복 감시를 진행했고 결국 주번푸는 핍박에 못 이겨 유랑생활을 했다.

당시 주번푸의 딸은 겨우 13세였다. 주번푸와 아내는 모두 핍박으로 외지에서 유랑생활을 하며 집이 있어도 돌아올 수 없어 전혀 아이를 돌보지 못했다. 마음씨 좋은 리위화(李玉華) 누님이 아이를 그녀 집으로 데려가 보살펴 주었는데, 경찰에게 미행당했다. 어느 하루 아침, 딸이 공부하러 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한 무리 경찰이 벌떼처럼 밀려들었다. 딸은 갑자기 들이닥친 경찰에 의해 충격을 받아 정신 이상이 됐다. 그녀는 경찰을 보기만 하면 무서워했다. 아이를 보살펴 주는 마음씨 좋은 리위화도 1개월 동안 불법으로 감금당한 후, 1년 불법 노동교화처분을 받았다. 이후부터 주번푸의 딸은 더는 학교에 다닐 엄두를 내지 못했다.

13세인 아이는 원래 학교에서 학습 성적이 언제나 상위였지만 핍박에 못 이겨 학교를 떠났다. 이렇게 공부하는 권리를 박탈당했고, 마음에 매우 큰 상처를 입었다.

두 부부가 납치돼 7년 불법 징역형을 선고받다

주번푸는 핍박에 못 이겨 외지에서 3년간 유랑생활을 하며 공포 생활을 보냈다. 여덟 차례나 거처를 바꿔 경제적으로 극심한 손실을 보았다. 어느 한 번은 막 1분기 셋집 비용을 냈는데, 가도 파출소에 들켜 즉시 다른 셋방으로 바꿨다. 그러한 괴롭고 무서운 생활은 일반인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005년 9월 5일, 다롄 파룬궁 수련생 뤼카이리(呂開利) 등은 랴오닝성 랴오양(遼陽)현 유선텔레비전에서 성공적으로 ‘9평 공산당’을 1시간 반 동안 삽입 방송했다. 중국공산당 전 정법위(정치법률위원회) 두목 뤄간(羅幹)이 직접 지시해 광적인 박해를 시작했다. 다롄 파룬궁 수련생 장웨이(張偉), 양번량(楊本亮), 뤼카이리, 양춘링(楊春玲), 자오쉐(趙雪), 차오위전(曹玉珍, 혹은 曹玉枝), 주번푸, 쑨징메이 등은 차례로 납치됐다.

2006년 1월 19일, 주번푸는 세인에게 진상을 알린 이유로 파오야(泡崖)의 셋집 건물 아래에서 다롄 국가보안대대의 한 무리 경찰에게 납치됐다. 몸에 지닌 가죽 가방 한 개, MP3 한 개, 현금 1만7천 위안을 강탈당했는데 여태껏 돌려주지 않았다. 그날 야오자(姚家) 구치소로 보내 불법으로 감금했고, 1월 23일에 랴오양 구치소로 보내 박해를 진행했다.

구치소에서 주번푸는 협력하지 않고 감옥 규정을 읽지 않은 이유로 구타를 당해 전신에 상처를 입고 기절했다. 깨어나서 구타로 위출혈이 발생했음을 발견했다. 피가 위에서 장으로 너무 많이 흘러 들어가 온종일 기절해 깨어나지 못했다. 감옥 의사가 검사를 진행했는데, 동공이 확대돼 위중했다. 구치소에서는 책임이 두려워 랴오양 201군 병원으로 보내 응급처치를 진행했다. 목숨이 위태로워도 그들은 여전히 석방하지 않았다.

뒤이어 주번푸, 쑨징메이, 양춘링은 무고한 7년 징역형을 선고받았고 차오위전은 9년 형을 선고받았으며, 뤼카이리, 장웨이는 10년 형을 선고받았고, 양번량은 11년 형을 선고받았다.

잉커우 감옥에서 당한 잔인한 박해

주번푸는 2006년 5월 12일에 잉커우(營口) 감옥 입감대로 납치됐는데, 아침 5시부터 강제노동을 시작하면 밤 10시에 일을 끝냈다. 보름 동안 손, 얼굴, 발을 씻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며, 매일 단지 광천수 병 3분의 1 정도의 물을 마시는 것만 가능할 뿐이다. 아침에 화장실로 가는 시간은 3분인데, 초과하면 구타를 당했다. 매일 단지 두 차례 화장실 가는 것을 허락했을 뿐이다.

1개월 후, 주번푸는 잉커우 감옥 6대대에 분배받았다. 주번푸는 협력하지 않고 전향하지 않은 이유로 가장 잔인한 집중훈련대대로 보내졌다. 집중훈련대에 들어가자 교육과장 저우량(周亮)은 그에게 아직도 연마하는지 물었다. 주번푸가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 진선인은 좋습니다). 연마합니다!”라고 말하자, 저우량은 욕설을 퍼붓고 즉시 죄수 네 명을 불러서 주번푸를 사무실에서 끌어냈다. 그리고 고문실로 끌고 가 쇠의자 위에 꼬박 3일 동안 묶어 놓고, 여러 가지 학대를 동시에 가했으며 혹독하게 구타했다. 12월 날씨에 창문을 열고 주번푸의 옷을 전부 벗겨 추위에 떨게 했으며, 주먹으로 가슴을 구타했고 발로 두 아래 다리를 걷어찼다.

酷刑演示:铁椅子
고문 재연
: 쇠의자 고문

주번푸는 학대를 당해 죽다가 살아났다. 9일 후, 감구로 풀려나 돌아왔는데, 감구의 죄수는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그래도 살아서 돌아왔네요. 그곳은 파쇼 수용소로, 사망 정원이 있습니다.”

번시 감옥에서 당한 잔인한 박해

2007년 12월 19일, 주번푸 등 12명 파룬궁 수련생은 잉커우 감옥에서 번시감옥으로 납치돼 계속 박해를 당했다. 주번푸는 3분대로 보내졌는데, 감옥경찰 자오예밍(趙冶明)은 그를 찾아 면담했다. 주번푸가 협력하지 않고 감옥 규정을 외우지 않으며 전향하지 않자, 그는 7~8명의 죄수를 지시해 주번푸에 대해 무차별 폭력을 가했다. 10분 후, 주번푸의 전신은 온통 상처였다.

또 일주일이 지나 부대대장 자오예밍(趙冶明)은 또 한 무리의 중범죄자 수감자와 합해서 12명을 조직해 주번푸를 1층 도서관 안으로 끌고 가 겉옷을 벗기고 시멘트 위에 앉혔다. 12명이 세 팀을 나뉘어 한 팀에 4명이 24시간 동안 번갈아 가며 잠자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는데, 매일 이른 아침 12시부터 2시까지 3명의 전문적인 졸개 왕줘(王卓), 두신(杜新), 푸차이(付才)가 번갈아가며 주번푸를 구타했다. 한 사람이 구타하다 지치면 다른 사람이 계속했다. 처음에는 물을 가득 채운 음료수병으로 머리를 구타했는데, 연속 몇십 번을 쳐도 내상은 있어도 외상은 없었다. 그리고 손가락 3개로 두 눈동자를 후볐고, 간편한 여행용 신발을 신은 채 힘주어 가슴을 밟았으며, 여행용 신의 뒤축으로 두 다리를 밟았다. 그리고 또 바늘을 젓가락에 끼워 약 1㎝ 정도 드러나게 해 정수리, 손등, 손가락 끝을 찔렀고, 라이터로 주번푸의 목과 앞가슴을 태웠다.

연속 꼬박 3일 동안 학대로 주번푸의 두 다리는 열흘이 넘게 걷지를 못하고 쭈그려 앉을 수 없게 되어 대소변을 전부 모두 서서 치렀다.

번시 감옥에서는 몇 해 동안 끊임없이 대법을 모독한 녹화 영상을 방송해 파룬궁 수련생에 대해 강제 세뇌전향을 진행했다.

주번푸는 박해로 온 머리카락이 희어지고 몸에는 검은 반점이 생겨났다. 2013년에 출소한 후 가슴이 늘 괴로웠다고 한다.

지속적인 박해로 두 부부가 억울하게 사망

2015년 5월, 최고인민검찰원에서 ‘사건이 있으면 반드시 입건하고, 소송이 있으면 반드시 수리한다’라는 제도를 발표한 후, 같은 해 6월 15일에 주번푸와 아내 쑨징메이는 동시에 양고 (최고법원과 최고검찰원)에 우편으로 ‘형사고소장’을 부쳐, 박해 원흉 장쩌민을 고소했다. 이후 끊임없이 현지 링수이(凌水)파출소에 의해 소란, 공갈 협박을 당했다.

2017년 4월 16일, 아내 쑨징메이는 2년 노동교화처분, 7년의 억울한 중형 박해를 당한 후 억울하게 사망했는데, 향년 61세였다. 쑨징메이가 박해를 당한 사실은 ‘9년의 억울한 옥살이 당한, 다롄 쑨징메이 억울하게 사망’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2019년에 만 60세가 된 주번푸는 퇴직 절차를 밟으러 갔다가 징역 판결을 당해 파일이 정리된 이유로 17년 군대 복무와 14년 근무가 전부 무효로 되어 퇴직금을 지급해 주지 않는다는 통지를 받았다. 동시에 2019년 8월, 현지 링수이 파출소와 주민센터에서는 거듭 집으로 찾아와 주번푸에게 소란을 피웠다.

여러 가지 충격에다 또 감옥에서 혹독한 구타를 당해 조성된 내상, 그리고 주입 당한 독극물로 주번푸는 쓰러졌다. 2개월 사이에 건강 상태는 날로 악화하여, 병원으로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여러 장기가 쇠약해진 상태가 나타나 간, 담, 비장, 위장이 전부 정상적인 기능을 하지 않는다는 진단이 내려졌다(감옥 안에서 독극물을 주입 당해 조성한 것으로 추정). 그래서 2019년 10월 28일 정오에 다롄 철도병원에서 결국 억울하게 사망했는데, 연로하신 부모님과 가련한 두 딸을 남겼다.

원문발표: 2019년 11월 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 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9/11/9/39561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