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밍후이왕] (밍후이왕통신원 후난 보도) 후난(湖南) 샹탄(湘潭)의 64세 파룬궁수련생 류춘취안(劉春泉)은 10년의 억울한 옥살이 박해를 당한 적이 있는데, 2016년 8월 또 3년 3개월의 불법적인 형을 선고당했다. 유현(攸縣) 왕링(網嶺)감옥 6감구역으로 납치됐고 현재까지 감금상태에 있다.
불법적인 법정 심리에서 류춘취안은 판사, 검찰, 가족들 앞에서 단호하게 말하기를 “파룬궁을 수련한 것은 잘못이 아니며,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수련함은 잘못이 없습니다! 파룬궁수련은 내 일생의 선택입니다! 나의 사부님이 비난받고, 파룬궁과 파룬궁수련생이 박해당하고 모함당하고 있습니다. 사부님의 결백과 대법의 결백함 또 대법제자의 결백함을 되돌리기 위해,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을 명백히 알리는 것은 나의 유일한 선택이며 방식입니다. 지금 즉시 나를 석방하시오. 나는 계속하여 세상 사람에게 진상을 알릴 것입니다. 대법의 결백함을 되돌릴 때까지, 나의 사부님의 결백하심을 되돌릴 때까지 알릴 것입니다!”라고 했다.
류춘취안은 온수난방 설비재료 가게의주인이다. 장기간 차를 몰고 재료를 운반했기 때문에 피로로 인한 여러 가지 질병을 앓았다. 1998년부터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는데, 진선인을 신앙(信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질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가게의 장사도 점점 좋아졌다. 그러나 그는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오히려 중공(중국공산당)으로부터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2002년 불법적인 10년형을 선고 당했고 2012년 2월 9일에야 억울한 감옥살이에서 나올 수 있었다.
2016년 2월 25일 설 기간, 류춘취안은 샹탄현 스탄진(石潭鎮)에서 사람들에게 진상 자료를 배포하며 진상을 알리다가 샹탄현 스탄 파출소 경찰과 현(縣) 국가보안대대 우원이(武文義) 등에게 납치됐다. 샹탄현 유치장에 불법적으로 감금됐고 이후 현 구치소로 옮겨졌다. 2월 29일, 현 국가보안대대와 현 ‘610’ 사무실에서 그의 집에 들이닥쳐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했다. 그들은 대법서적과 진상 자료를 강탈하며 가족들에게 큰 사건이라고 공갈 협박했다.
류춘취안의 가족이 그를 면회하러 갔으나 현 구치소는 면회를 거부했다. 2016년 8월 그에게 3년 3개월의 불법적인 형이 선고됐다. 이후 유현(攸縣) 왕링감옥 6감구역으로 납치돼 지금까지 감금당해 있다.
10년의 억울한 옥살이 박해
2000년 2월, 류춘취안은 베이징에 가서 청원했다가, 베이징 주재 샹탄사무실로 납치됐고 악독한 경찰은 그를 혹독하게 고문했다. 수갑을 채워 베이징에서 샹탄까지 압송하여 샹탄시 진탕완(金塘灣) 유치장에 30일 동안 감금했다.
같은 해 6월 말, 류춘취안은 거듭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고 또 납치돼 베이징 주재 샹탄사무실에 감금됐다. 그와 30여 명의 파룬궁수련생들이 함께 파룬궁 박해에 반대했다. 사무실 사람과 웨탕구(岳塘區) 반탕향(板塘鄉) 파출소의 양(楊) 모가 베이징 ‘610’, 후난성 ‘610’과 샹탄시 ‘610’을 불러다가 파룬궁수련생들을 한 사람씩 혹독하게 구타하고는 밧줄로 묶고 수갑을 채워 샹탄으로 압송했다.
2002년 2월, 류춘취안은 진상 자료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경찰에게 납치됐고, 가택 수색을 당했다. 대법서적 전부와 또 많은 진상 자료, 자료데이터, 컴퓨터, 프린터, 복사기 등 개인 물품을 강탈당했으며, 10년의 불법적인 형을 선고 당했다. 류춘취안과 다른 한 수련생은 법정에서도 떳떳하게 자신이 무죄라고 주장했다. 법원장 등은 감히 대법제자를 정시하지 못했고 판결을 내리지도 못했다. 이후 시 ‘610’에서 공검법(공안, 검찰, 법원) 및 국가보안 등을 규합하여 류춘취안에게 10년의 억울한 형을 선고하게 했다.
류춘취안은 10년 동안 여러 감옥을 전전하며 감금됐다. 2003년 1월에는 창사(長沙) 감옥에 있었고, 2004년 9월에는 이양(益陽) 츠산(赤山) 감옥에 있었다. 2005년 3월에는 창더(常德) 우링(武陵)감옥 2감구역으로 옮겨져 2012년 2월 9일, 옥살이가 만기될 때까지 10년 동안 박해를 당했다.
2004년 말, 창사에서 츠산 감옥 3감대(三監隊) 1중대로 옮겨져 박해를 당했다. 그는 박해를 반대하며 노역 등을 거부했다. 이튿날, 악독한 경찰 저우즈(周志) 등이 그를 끈으로 묶은 후 전기고문을 가했고 그 이후 수갑을 채워 또 매달았다(아주 잔인한 고문임). 또 류춘취안은 보름 동안 단식했는데, 매일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밤에는 두 손에 수갑을 찬 채 자야 했는데 대(大)자형으로 묶어 보름 동안 괴롭혔다. 밥을 먹기 시작한 후에도 밤이면 여전히 수갑을 채웠는데 몇 달 동안이나 그러했다. 2005년 3월 창더 우링 감옥 2감구역으로 옮겨질 때까지 그랬다.
2003년에 창사감옥 4감구역에 감금당한 기간, 류춘취안이 유죄를 자백하지 않고, 경찰의 요구에 협력하지 않으며, 죄수복을 입지 않고, 명찰을 달지 않고, 인원 보고를 하지 않고, 쭈그려 앉는 체벌을 거부하자 경찰은 혹독하게 구타했고 이후 특별히 엄격한 관리대에 수감했다. 또 큰 철문의 허공에 발끝이 땅에 닿지 않도록 매달았는데 아픔으로 그는 혼절했다. 이후에도 악독한 경찰은 각종의 체벌, 혹독한 구타, 모욕 등을 가하며 학대했다. 매일 강제로 노역을 시켰으며 아침 6시에 일하러 나가서 저녁 10시 반에야 일이 끝났다. 어떤 때는 강제로 날이 밝을 때까지 일해야 했다.
2004년 9월, 그는 창사 감옥에서 이양 츠산 감옥 3감구역 1중대로 옮겨졌다. 여기서도 그는 전기고문, 매달기, 음식물주입, 수갑 차고 잠자기 등 각종 고문을 당했다. 2005년 3월, 류춘취안은 창더 우링 감옥 2감구역으로 옮겨졌으며 이곳에서7년의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대법수련을 포기하라고 세뇌하며 심각한 박해를 가했다. 가족을 통한 회유도 그가 거부하자 수갑을 채워 벽에 대자형으로 매달아 발끝이 겨우 땅에 닿게 하고는 한번 매달면 45일을 매달았다. 혹독한 구타와 능욕을 가하며 계속 학대했다. 이로 인해 류춘취안은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고 신체는 심각한 질병을 앓게 됐다.
류춘취안은 2012년 2월 9일, 10년의 억울한 옥살이가 만기 돼 온몸이 질병인 채로 집에 돌아왔다.
원문발표: 2016년 11월 1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더욱 많은 박해사례
원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16/11/19/33788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