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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성 지난 대법제자 하오광란, 2001년 말에 박해로 사망

【명혜망 2004년 12월 9일】 산둥(山東)성 지난(濟南)시 대법제자 하오광란(郝廣蘭)은 2000년 11월 5일에 왕춘(王村) 강제 노동수용소로 납치당해 심한 박해를 받아 정신이 이상해졌다. 그래서 여러 병원에 가서 치료했으나 호전되지 않아 2001년 12월 5일에 아파트에서 떨어져 사망하였다.

하오광란, 여, 산둥성 지난시 싼우얼링(三五二零) 공장 검사과내 퇴직원이다. 수련 후에 몸과 마음이 이득을 많이 얻었다. 파룬궁이 탄압받기 시작한 후에 수많은 파룬궁 수련생들은 자신이 이득을 얻은 체험을 말하려고 하였다. 하오광란도 2000년 10월 언니 하오광쥐(郝廣菊)와 청원하러 베이징에 갔고 정부가 합법적인 수련환경을 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답변을 얻기는커녕 오히려 둘 다 지난으로 잡혀와 불법으로 3년 노동교양을 판결 받았다.

2000년 11월 5일 하오광란은 왕춘 강제 노동수용소 4분소(현 산둥 제2강제 노동수용소로 변경) 1대대로 보내졌고, 하오광쥐는 2000년 11월 7일 왕춘 4분소 4대대로 보내졌다. 납치당한 후에 악경은 연공을 하지 못하게 하고 경문도 외우지 못하게 하였으며 아침 5시부터 앉아 있게 하고 밤 11시에 잠을 자게 하였다. 화장실도 시간을 정해놓았는데 시간이 안 되면 화장실도 가지 못하게 하였고 화장실에 가서도 시간 규정을 어기면 안 되었다. 시간은 아주 짧은데, 사람이 많으면 시간이 모자랐다. 많은 사람들은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엄관실로 보내 전기 충격기로 상처를 입어 화장실에 갔을 때 손으로 허리띠로 메지 못했다. 발은 부어서 빵과 같았는데, 아주 추운 날에도 양말을 신지 못하게 하고 맨발로 슬리퍼만 신게 하였다. 상처에서 두 달간이나 물이 흘렀고 상처가 잘 아물지 않았으며 아물었어도 피부는 굳어서 갈라졌다. 3서(회개서, 결렬서, 적발서)를 쓰지 않으며 잠을 자지 못하게 하였다. 어떤 사람을 철창문에 수갑이 채워져 있었는데 며칠동안 그랬다. 마지막에는 두 다리가 부어서 걷기도 힘들었다.

하오광란이 박해로 정신이 이상해지자 2001년 3월 16일에 강제 노동수용소는 데리고 가서 치료하라고 가족에게 전화를 하여 하였다. 남편과 여동생이 그녀를 보았을 때, 그녀의 두 눈이 초점을 잃고 온 몸은 부어있었으며 두 손목은 수갑이 살을 파고들어 두 줄의 깊은 검은 자주색 자국이 있었다. 집에 돌아온 후에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 바로 병원으로 옮겼다. 병원은 가족에게 “반시간만 늦게 왔으면 사망입니다.”라고 질책하였다. 의사는 진단서에 장기간 화장실에 가지 못한 탓에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고 하였다. 소변 배출을 유도하였는데 7봉지 반이나 배출하여 비로소 생명을 지킬 수 있었다. 여동생이 목욕을 시켜줄 때 온 몸이 시퍼렇고 자줏빛 나는 것을 발견하였다. 앞니도 검은 자줏빛으로 변해 있었고 말라서 장작과 같아 이전의 원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었으며 정신이 이상하였다. 여러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호전되지 않아 2001년 12월 5일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사망하였다. 한 건강한 사람이 이렇게 박해로 사망하였다.

하오광란은 생전에 사람이 매우 좋았기에 많은 마을 사람과 이웃들이 모두 그녀의 장례를 치러주었다. 그러나 현지 공안은 하오광란의 집에 쳐들어와 사망한 사람에게 죄를 묻겠다고 하면서 파룬궁은 반혁명이라고 했다. 회사의 차도 못나가게 하고 친구들에게 장례식도 가지 못하게 하였다. 가련한 하오광란의 시신은 이렇게 세간의 마지막 길을 가야 했다.

문장완성 : 2004년 12월 08일

문장발표 : 2004년 12월 09일
문장갱신 : 2004년 12월 09일 02:35:02

문장분류: 중국소식

영문위치 :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4/12/14/55579.html
원문위치 : http://www.minghui.ca/mh/articles/2004/12/9/9103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