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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념으로 경찰서, 구치소, 그리고 강제노교소에서 법을 실증하다. (제 1 부)

글 / 지린省, 지린市 파룬궁 수련생

[명혜망] 2000년 10월 25일, 지린市 룽탄 지구에 있는 유수거우 경찰이 나를 체포했고 지린市에 있는 제3 구치소에 40일간 불법적으로 구류되었다. 그런 다음 노교소로 보내지는 2년형을 받았다. 우선, 그들은 지린市에 있는 노교소로 나를 보냈고, 나중에는 랴오위안市에 있는 강제노교소로, 그 다음에는 창춘市에 있는 펀진 노교소, 그리고 창춘市 차오양거우 노교소로 보냈다. 이날까지, 아직도 나는 경찰들과 감시원들이 어떻게 法輪大法(파룬따파) 수련생들을 잔인하게 박해하고 어떻게 수련생들이 평화적이면서도 확고하게 대법을 수호했는지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여기서 나는 몇 가지 전형적인 예를 들어 교류하고자 한다.

잔인한 “일-대-일” 고문

2000년 10월 24일 오후 3시경, 네다섯 명의 경찰이 나와 다른 여섯 명의 수련생들의 집을 쳐들어왔다. 아무런 이유도 대지 않으며, 그들은 우리를 지역 경찰서로 데리고 갔고 당장 심문을 하기 시작했다. 심문은 다음날까지 계속되었는데, 그들은 각종 고문을 가해가며 그들이 원하는 정보를 얻어내려고 했다.

리 수메이는 53세이며,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녀는 룽둥 지역의 파룬따파 연공장에서 보도원으로 일해왔었다. 경찰은 그녀에게 수갑을 채운 채로 지하실에 있는 호랑이 의자에 하루 낮과 밤 동안을 앉아있게 하면서 마실 물도 주지 않았고 화장실에도 가지 못하게 했다.

장서우성은 48세의 노동자였는데, 11월 26일 밤에 지역 경찰서장이 그를 심문했다. 경찰서장의 첫말은, “깡패들은 말하는데,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다룰 때 일-대-일로 상대하기 때문에 그들이 죽더라도 증인이 없게 된다.’ 오늘 밤, 나는 당신을 일-대-일로 상대할 것이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모두 우리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당신이 죽게 되더라도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장씨는 말했다. “나는 내가 아는 것을 이미 당신에게 전부 이야기했소. 당신은 강제로 내게 거짓말을 하라는 것이오 아니면 진실치 않은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오?” 서장은 그의 머리카락을 잡아 쥐고 벽에다 쳤다. 그가 기절을 하고 마루 바닥에 쓰러지자 사악한 서장은 그를 무거운 장화발로 찼다. 그는 장씨의 온몸을 발로 찼지만, 다른 사람에게 그가 맞은 것을 이야기하기 쉽지 않도록 하기 위해 얼굴만은 피했다. 서장은 때리는데 지쳐버리고 말았다. 잠시 후, 그는 장서우성에게 그가 모든 정보를 내놓을 것이냐고 물었다. 장씨는 완전히 정신이 돌아온 상태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고개를 흔들었다. 서장은 창문과 문을 모두 열어 찬바람이 들어오게 했다. 그런 다음 장서우성의 옷을 벗기고 그에게 물을 퍼부었다. 그는 옹크린 자세로 찬 콘크리트 바닥에 누워 있었다. 중국 북쪽에 위치해 있는 지린 시의 11월 말의 밤 온도는 영하 10도로 내려갔다. 서장은 장씨에게 물을 퍼부은 다음 잠을 자러갔다. 그는 장씨가 아직도 벌거벗은 채 다음 날 아침 5시까지 바닥에 누워 있다는 것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는 아침 6시에야 장서우성을 감방으로 보냈다. 우리는 그를 알아볼 수조차 없었다. 그는 입을 벌렸는데 말은 하지 못했다. 그의 얼굴은 푸른색이 되었고 로봇처럼 굳어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얼어죽지 않았고, 감기도 걸리지 않았으며 열도 없었다. 이것은 기적이었다.

법에 따르면, 경찰서에서는 사람들을 48시간까지만 구류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삼일 밤과 두 낮 동안 심문하고 고문을 했으며, 그런 다음 아무렇게나 무슨 서류를 만들어 우리를 다른 구류소로 보냈다

왕리신의 죽음

지린市에 있는 제 3 구치소는 교외 언덕 밑에 위치하고 있었다. 내가 그곳에 있은 지 한 열흘째 되는 날, 감시원은 수갑이 채워진 한 사람을 우리 감방에 밀어 넣었는데, 그 역시 파룬궁 수련생이었다. 그는 큰 눈을 가졌고 얼굴은 사각형이었다. 그의 키는 175cm 정도였으며 힘이 있어 보였다. 구치된 이후로 그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고, 심문하는 동안, 그는 모든 질문에 연속, “모릅니다.”로 일관했다. 감방장은 말했다. “당신이 먹지 않으면 나와 협조하고 있지 않다는 것 아니요? 왕리신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파룬궁을 배우고 있소. 어찌되었든 나는 체포되었는데, 왜 좋은 사람들을 체포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소. 나는 아주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입맛이 없을 뿐이지, 당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소.” 우리 모두는 그의 친절한 표정과 말에 존경심을 보냈다. 그에게 얼굴 씻는 것을 도와주라고 지명받은 한 수련생이, 뭐 도울 것이 없는가 라고 왕에게 물었다. 왕은 말했다, “사부님께서 나와 함께 계시고, 법이 나와 함께 있는데 필요한 것이 무엇이 있겠소.”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시킨 지 사흘째 되는 날, 왕리신은 6반으로 옮겨졌다. 감시원이 6 반장에게 말하는 것을 누군가가 들었다, “5 반장처럼 그렇게 무능하지 마시오. 여전히 먹지 않거든 간단히 두들겨 패시오. 당신이 그를 죽이고자 할 때처럼 그렇게 심하게 때려요. 걱정하지 말아요. 뭐가 잘못되면 내가 책임을 질 테니까.” 그날, 리신은 단식항의를 계속했고, 6 반장과 다른 두 명의 범죄자가 그를 때리기 시작했다. 리신이 바닥에 쓰러지면서 머리를 잡고 굴렀다. 닷새째 되는 날 아침, 그는 다시 강제로 음식물을 주입 당하기 위해 밖으로 끌려나왔는데, 두 범죄자가 그를 부축해야했다. 그들이 5반을 지나갈 때, 우리는 그의 눈이 너무 부어 있어 눈동자를 볼 수가 없었다. 한쪽 다리는 전혀 움직일 수가 없어서, 도움이 없이는 걷지를 못했다. 그는 신음소리를 냈다. 그의 목소리는 쉰 목소리였고 분명하게 이야기하지 못했다. 그 날 온밤 동안, 우리는 왕리신의 기침 소리를 들었고 기침을 하지 않을 때는 약한 신음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점점 약해져 갔고, 새벽이 되자, 그의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대신에, 우리는 복도로 사람들이 뛰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젊은 파룬따파 수련생이 그처럼 고문을 받고 죽었다.

나중에 우리는 왕리신이 32세였으며 아직 독신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일하던 공장의 경제상태가 나빠져서 감원을 시키는 바람에 직장을 잃었다. 공장은 그에게 36,000元(유안)의 배상금을 주었다. 왕리신은 사부님 경문과 동수들의 기사를 다운로드 받기 위해 컴퓨터 한 대를 샀으며, 길에서 진상자료를 배부하고 있을 때 경찰에 의해 납치되었다. 리신이 죽은 후, 지린市 입법국에서는 구치소장과 감시원들을 다른 곳으로 전근시킴으로써 사실을 감추려고 노력했다. 그들은 또한 왕리신을 죽인 6 반장과 범죄자 두 명에게도 어떤 배치를 했다.

(다음으로 이어집니다)

문장발표: 2004년 2월 17일

문장완성: 2004년 2월 16일

문장분류: [진상알림]

중문위치: http://www.minghui.org/mh/articles/2004/1/8/64330.html
영문위치: http://www.clearwisdom.net/emh/articles/2004/2/17/4517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