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헤이룽장성 통신원) 헤이룽장성 무단장시 무링시의 64세 파룬궁수련자 저우슈전(周秀珍)이 10월 13일 경찰에게 집에서 납치돼, 무단장시 화린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는데, 법원의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2026년 6월 29일, 저우슈전은 바이허 아파트 단지에서 경찰에게 납치됐고, 이어서 불법 가택수색을 당해 컴퓨터, 프린터, 대법서적 등 개인 재산을 강탈당했다. 경찰은 현장에서 그들이 이미 저우슈전을 “얼마간 미행했다”라고 주장했다. 저우슈전은 가족에 의해 보석으로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으나 줄곧 감시를 받았다.
저우슈전은 1962년 7월에 태어났다. 그녀는 이전에 경추병, 두통, 심한 빈혈, 저혈압을 앓았고, 두통이 심할 때는 머리를 벽에 들이받기도 했다. 1997년 5월 파룬궁을 수련한 후, 그녀는 ‘진선인(眞·善·忍)’ 기준에 따라 행하려 노력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병들이 다 나았으며, 모두 신기하게 사라졌다. 정말이지 병 없이 몸이 가벼워졌고 온몸에 다 쓸 수 없을 만큼 힘이 넘쳤다. 그녀는 직장에서 불평 없이 열심히 일해 상사와 동료들의 찬사를 받았다. 파룬궁을 수련하면 병을 없애고 몸을 튼튼히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진실하고 선량하며 너그럽게 변하게 하고, 사상 경지가 높아지게 할 수 있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광분해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발동했고, 저우슈전과 모든 파룬궁수련자는 박해를 받았다. 2001년 1월 18일 저녁, 무링시 제2 파출소 소장 장성리(張勝利), 경찰 쑨더룽(孫德龍), 중리강(仲力剛) 등 4~5명이 저우슈전의 집에 와서 그녀를 파출소로 데려갔고, 다음 날 구치소로 보냈는데, 당시 감금된 파룬궁수련자는 40여 명이었다. 2001년 5월, 저우슈전과 다른 4명의 파룬궁수련자는 불법적으로 1년 강제노동 처분을 받고 하얼빈 여자 마약단속소에 보내졌다.
2002년 5월, 저우슈전은 출근할 때 제2 파출소 경찰 중리강 등 두 명의 경찰에게 다시 납치돼 구치소로 보내져 박해를 받았다. 같은 해 8월 무링시 공안국의 왕젠궈(王建國), 왕융안(王永安)에 의해 다시 하얼빈 여자 마약단속소로 보내져 불법적으로 2년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그녀가 노동수용소에 막 도착했을 때 매일 작은 의자에 십여 시간씩 앉아있도록 강요당했고 밤에는 잠을 자지 못하게 했다. 경찰에게 인사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밤 12시까지 벌을 섰다. 노동수용소는 두 명의 형사범을 ‘바오자(包夾, 밀착 감시하는 수감자)’로 삼아 파룬궁수련자를 감시하게 했고, 법공부와 연공을 금지했으며, 파룬궁수련자와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편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걸지 못하게 했고, 가족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으며, 대법을 비방하는 영상을 보도록 강요했다. 저우슈전은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며 수용소 규칙을 외우지 않아 난방 파이프에 3일 동안 수갑이 채워졌고, 쇠의자에 7일 동안 앉아 있었는데, 이때 그녀는 치아 두 개가 부러졌다.
2002년 11월 16일, 노동수용소는 파룬궁수련자를 100% 전향시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참혹하고 비인간적인 이른바 ‘공견전(攻堅戰, 집중 공략)’을 일으켰다. 2층과 4층의 수백 명의 파룬궁수련자를 지하실로 끌고 가 바닥 고리에 수갑을 채웠다. 매일 저녁 밥 한 끼를 주었고, 투명 테이프로 입을 막았으며, 천으로 싼 정체불명의 물건을 입에 쑤셔 넣었다. 밥을 먹을 때는 형사범이 밥을 몇 입 먹여주었고, 이틀 동안 물을 주지 않다가 3일째 되는 날 소금을 두껍게 깐 물을 주었는데, 마시지 않으면 강제로 입에 들이부었다. 뱃속으로 들어가면 그야말로 오장육부가 다 튀어나올 것 같았다. 그동안 화장실에도 가지 못하게 했다.
감옥경찰은 형사범에게 가위를 가져와 파룬궁수련자에게 머리를 반쪽만 깎거나 들쭉날쭉 엉망으로 잘라 모욕을 주었으며, 경찰이 한마디 욕을 하면 형사범도 한마디 욕을 하게 했다.
경찰은 솜코트를 입고 파룬궁수련자들의 옷을 벗겨 홑옷과 홑바지 한 벌만 남겨둔 채 지하실의 모든 창문을 열고 파룬궁수련자들의 몸에 찬물을 끼얹었다. 곳곳에서 파룬궁수련자를 전기로 지지는 ‘파박’하는 소리가 났다.
악질 경찰은 전기봉으로 저우슈전의 목과 손등을 지지고 종이와 펜을 가져와 그녀에게 결렬서를 쓰게 했으나, 거부당하자 그들은 저우슈전을 다른 작은 방으로 끌고 가 물동이를 가져와 그녀를 물동이에 처박았다. 두 명의 경찰이 각각 전기봉 한 개씩을 들고 동시에 전기로 지지고 채찍질을 하며 결렬서를 쓸 건지 안 쓸 건지 다그쳐 물었다. 당시 저우슈전의 입은 막혀있어 말을 할 수 없었고 고개만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악질 경찰들은 때리다 지치면 다른 경찰과 번갈아 가며 때렸고, 다시 때리다 지치면 두 명의 형사범에게 계속 때리게 했다. 대야를 저우슈전의 머리에 엎어놓고 몽둥이로 두드리고, 손으로 꼬집고 발로 차며, 뺨을 때리고 발과 신체 각 부위를 전기로 지졌다.
당시 경찰 왕단(王丹)이 저우슈전에게 “전기봉을 몇 개 썼는지 아느냐?”라고 물었다. 이때 입에 붙어있던 테이프가 뜯겨 나갔다. 저우슈전이 “안다, 5개다”라고 대답했다. 저우슈전의 몸은 맞아 물집 위에 물집이 겹쳤고 성한 곳이 없었다. 5개의 전기봉이 모두 전기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맞았고, 전기로 지진 시간은 8시간에 달했다. 그들은 또 절인 채소를 담는 큰 항아리를 옮겨와 물을 채우고 그녀를 그 안에 넣으려 했다. 바로 그날 저녁, 파룬궁수련자 장룽전(姜榮珍, 지시시 거주)이 구타로 사망했고, 비로소 노동수용소는 폭행을 멈췄다. 저우슈전은 3개월을 누워있은 후에야 몸이 회복됐다.
이번에 저우슈전 박해에 가담한 사람은 전 소장 천구이칭(陳桂淸), 부대장 자오웨이(趙衛), 경찰인 다왕단(大王丹, 여), 위쿤(于琨, 여), 스옌장(史延江, 남), 웨이창(魏强, 남), 장하이펑(張海鵬, 남) 등이다.
이 3년의 강제노동 박해 기간 동안, 저우슈전의 육체와 정신은 잔혹한 박해를 겪었고, 경제적으로도 1만여 위안을 갈취당했다. 집안의 가족들에게 경제적, 정신적으로 심각한 고통과 공포를 안겨주었다. 당시 그녀의 아들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린 마음이 심각한 상처를 입어 밤에 무서워서 잠을 자지 못했고, 지금까지도 공포증이 남아 있다.
무링시는 헤이룽장성 동남부에 위치하며 무단장시가 대리 관할하는 시다. 1999년 7월 중공이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발동한 이래 2023년까지 이 24년 동안, 명혜망 통계에 따르면 무링시에서 최소 4명의 파룬궁수련자가 박해 속에 세상을 떠났고, 연인원 27명이 불법적인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연인원 35명이 불법적인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연인원 112명이 납치 및 괴롭힘을 당했고, 파룬궁수련자는 20만 1190위안을 강도질 및 갈취당했으며, 파룬궁 박해에 가담한 4명이 응보를 받았다.
현재 무단장시 파룬궁수련자가 중공의 박해를 받는 상황은 여전히 심각하다. 2025년에 또 파룬궁수련자 한 명이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고, 13명이 불법적인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4명이 불법 재판을 받았고, 2명이 불법 구류됐으며, 최소 20명이 납치되고, 최소 5명이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1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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