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네이멍구 파룬궁수련자
[명혜망] 네이멍구 츠펑시 훙산구의 63세 파룬궁수련자 왕쑤친(王素琴)은 진상 자료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2026년 새해 첫날 두 번째로 경찰에게 납치돼 감금됐다. 최근 알려진 바에 따르면, 왕쑤친은 이미 훙산구 법원에서 1년 6개월 형을 부당하게 선고받았다. 이는 그녀가 중국공산당(중공) 당국에 의해 세 번째로 감옥에 갇혀 박해받는 것이다.
과거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워
왕쑤친은 1964년에 태어나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에 문화대혁명을 겪으며 혼란스러운 시대에 학령기를 보냈다.
그녀는 결혼 후 남편을 잘못 만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편은 밖에서 먹고 마시고 방탕하게 지내며 가정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이른바 ‘개혁개방’ 이후, 왕쑤친은 또 실직의 파도를 맞았다. 그녀의 삶은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삶에 희망이 없었고, 점차 그녀는 병에 시달렸다.
대법 수련으로 심신에 혜택을 얻어, 삶이 아무리 고달파도 근심하지 않아
1999년, 왕쑤친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만났다. ‘진선인(眞·善·忍)’의 법리는 구름을 뚫고 나온 햇살 같았고, 그녀는 사람이 된 진정한 목적을 알게 됐다. 곧 온몸의 질병이 모두 사라졌고 예전의 근심은 말끔히 씻겨 나갔으며, 그녀는 삶의 목적과 자신감을 얻었다.
이후 왕쑤친의 남편이 중병에 걸렸으나, 왕쑤친은 이전의 원한을 따지지 않고 정성껏 돌보며 온갖 방법을 다해 남편의 병을 치료해 줬다. 결국 남편은 많은 빚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왕쑤친은 혼자 딸을 데리고 살면서 힘들지만 낙관적으로 가정을 꾸리며 빚을 갚았다.
중공의 박해가 시작되다
중공 장쩌민(江澤民) 범죄집단은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인원이 너무 많은 것을 질투해 1999년 7월 20일 파룬궁에 대한 전방위적이고 광적인 박해를 시작했다.
2000년 연말, 왕쑤친은 파룬궁을 위해 공정함을 되찾고자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 그녀는 경찰에게 납치돼 베이징의 한 구치소에 감금됐고, 이후 다른 파룬궁수련자들과 함께 허베이성 슝(雄)현 경제수사대대로 보내졌다. 다행히 양심 있는 한 관리자를 만나 그들을 톈진 기차역으로 데려다주었으며, 표를 사서 집에 돌아가라고 각자에게 20위안을 줬다.
부당한 강제노동 처분: 감옥경찰에게 옷이 모두 벗겨진 채 구타당하고, 유두와 음부에 전기 충격 당해
2001년, 츠펑시 훙산구 공안분국은 왕쑤친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던 사실을 알고 그녀를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대로 납치했다. ‘웃는 얼굴의 호랑이’라 불리는 국보 경찰 부런(布仁)과 장젠페이(張健飛)는 그녀를 미친 듯이 구타했다. 맞다 못해 버티기 힘들었던 왕쑤친이 머리를 라디에이터에 부딪치고 나서야 악질 경찰은 손을 멈췄다.
경찰은 왕쑤친을 훙산구 구치소에 부당하게 감금했다. 두 달여 뒤, 그녀는 2년 강제노동 처분을 부당하게 받고 네이멍구 투무지(圖牧吉) 노동수용소로 보내져 박해받았다.
투무지 노동수용소에서 감옥경찰은 고문으로 파룬궁수련자들에게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왕쑤친 등 파룬궁수련자들은 매일 죽는 것만 못한 나날을 보냈다. 한 번은 왕쑤친이 감옥경찰이 한 파룬궁수련자를 괴롭히는 것을 저지했다는 이유로 감옥경찰에게 구타와 전기 충격을 당했다.
겨울에 왕쑤친은 한때 검은 소굴에서 탈출했다. 다시 잡혀 온 이후, 그녀는 감옥경찰 인구이쥐안(尹桂娟), 황아이링(黃愛玲), 리웨화(李月樺), 저우궈링(周國玲) 등에게 잔혹하고 악독하게 학대를 당했다. 악당들은 왕쑤친의 옷을 모두 벗기고 그녀의 몸에 찬물을 끼얹었으며, 고의로 그녀의 하반신을 심하게 구타했고, 전기봉으로 그녀의 유두와 음부를 지졌다.
왕쑤친의 얼굴과 목에는 전기 충격으로 많은 큰 물집이 생겼고, 얼굴은 맞아서 붉게 부어올랐으며, 몸은 시퍼렇게 멍들었다. 몸을 가누지 못해 걷기가 힘들었고 심장에 큰 자극을 받았다. 그녀의 80kg이 넘던 몸무게는 50kg 정도로 줄었다.
왕쑤친이 2년의 부당한 강제노동을 마쳤을 때, 츠펑시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직원들은 또 그녀를 세뇌반으로 보내 한동안 박해했다.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목숨을 지키는 묘방을 알려주다
검은 소굴에서 집에 돌아온 이후, 왕쑤친은 계속해서 빚을 갚아야 했고 딸을 학교에 보내야 했다.
10여 년 전 츠펑시에서는 거리 곳곳에서 인력 삼륜차, 이른바 ‘샹쯔(祥子)차’를 볼 수 있었다. 페달을 밟는 사람들은 모두 힘이 센 남자들이었고, 여자가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당시 츠펑시 훙산구의 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자주 한 중년 여성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한겨울이나 한여름을 가리지 않고 인력거를 밟으며 곳곳에서 손님을 태웠다. 그녀에게는 가족을 부양할 수입이 너무나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녀는 파룬따파를 수련해 건강한 신체를 가지게 됐다.
왕쑤친에게는 다른 사람과 다른 한 가지 특징이 더 있었다. 그녀는 항상 차에 탄 사람들에게 천재지변이 갈수록 많아지는 원인을 말해주고, 어떻게 해야 무사히 이런 재난을 피할 수 있는지 말해줬다. 그녀는 승객에게 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고 중공의 당·단·대 조직에서 탈퇴하는 것이 목숨을 지키는 묘방이라고 알려줬다.
3년의 부당한 징역, 2년 넘게 구타와 욕설, 전기 충격 당해
2012년 7월 31일 정오, 왕쑤친은 훙산구 공안단지에서 파룬따파 진상 자료를 배포하던 중, 한 경찰 가족의 악의적인 신고로 납치된 후 훙산구 구치소에 부당하게 감금돼 박해받았다. 경찰 장궈(張果), 부런은 이른바 ‘진술서’를 조작해 그녀를 모함했다. 2013년 1월, 훙산구 법원은 왕쑤친에게 3년형을 부당하게 선고했고, 3월 10일 그녀를 네이멍구 여자감옥으로 보내 계속해서 부당하게 감금하고 박해했다.
네이멍구 여자감옥에서 왕쑤친은 ‘공견(攻堅)조’에 갇혀 2년 2개월 동안 박해받았고, 매일 남자 감옥경찰 캉젠웨이(康健偉)에게 폭언을 들었다. 캉젠웨이는 그녀에게 4서(四書, 네 가지 수련 포기 각서)에 서명하라고 강요했으며, 쓰지 않으면 밤낮으로 벌을 세우고 사무실로 데려가 전기봉으로 지졌다. 2년 2개월 동안 그녀는 심한 구타와 악랄한 욕설 속에서 시달렸다. 하지만 감옥은 대외적으로 파룬궁수련자들에게 ‘봄바람과 단비’처럼 대한다고 말했으니, 중공 악당은 그야말로 흑백을 뒤바꾸어 세상 사람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2015년 7월 31일, 왕쑤친은 만기 석방됐다. 츠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밤 9시가 넘었는데, 또 츠펑 610 직원들에게 신청(新城)구 세뇌반으로 끌려가 감금돼 박해받았다.
사람을 구하려는 초심 변치 않아, 또 1년 6개월 부당한 형 선고받아
이후 왕쑤친은 또 연금을 부당하게 중단당했다.
중공의 육체적, 경제적 박해를 겪은 왕쑤친은 천재지변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며 많은 사람이 위험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여전히 선한 마음을 지니고 서둘러 사람들을 구했다.
2025년 11월 13일, 왕쑤친은 사람을 구하는 진상 달력을 배포하러 외출했다. 훙산구의 한 식당에서 그녀는 중공에 속은 한 젊은이의 악의적인 신고로 난신(南新)가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경찰은 당일 왕쑤친을 집으로 돌려보냈지만, 뒤에서는 그녀에 대한 사법적 박해를 밀모하고 있었다.
2026년 1월 1일, 새해 첫날 당일, 훙산구 국보 대대 경찰은 다시 왕쑤친을 납치했는데, 당시 그녀는 병상에 마비돼 누워 있는 팔순 노모를 돌보고 있었다.
왕쑤친은 구치소에 부당하게 감금됐다. 최근 알려진 바에 따르면, 왕쑤친은 훙산구 법원에서 1년 6개월 형을 부당하게 선고받았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1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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