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랴오닝성 통신원) 랴오닝(遼寧)성 푸신(阜新)시 파룬궁수련자 가오위민(高雨民)은 시민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로 2014년 중국공산당(중공) 법원으로부터 부당하게 3년 6개월형을 선고받았다. 선양(瀋陽) 제1감옥에 있는 동안 그는 고문, 전기 충격, 강제 음식물 주입,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독주사 투여 등의 시달림을 겪었다. 감옥에 들어가기 전에는 신체가 건강했지만, 출옥할 때는 이미 식물인간이나 다름없었다.
선양 의과대학 제1병원에서 가오위민에 대해 독극물 검사를 한 결과 중독성 대사성 뇌병증으로 진단됐고, 바르비투르(巴比妥) 양성 반응이 나왔다. 이후 수년간 그는 유동식을 주입받아 연명할 수밖에 없었다. 2026년 7월 19일, 가오위민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고 향년 59세였다.
✦ 속아서 박해에 가담했다가 진상을 알고 대법을 수련하기까지
가오위민은 원래 푸신시 공안국 형사경찰대 경찰이었으며, 살인범을 체포해 2등 공을 세운 적이 있었다. 초기에 그는 파룬궁에 대한 중공의 비방 선전을 믿었기 때문에 박해에 가담하기도 했다. 그러나 파룬궁수련자를 접하는 과정에서 그는 파룬궁수련자의 선량하고 꿋꿋한 모습이 관영 선전과 완전히 상반됨을 보았고, 이로 인해 반성하기 시작했다.
한번은 그가 집 문 앞에서 파룬궁 진상 전단지를 주웠고,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진정한 불법(佛法)이며 박해는 장쩌민(江澤民)이 질투심에서 발동한 것임을 알게 됐다. 그는 이로부터 파룬궁수련자의 용기에 탄복했고 결국 자신도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수련 후 그는 ‘진선인(眞·善·忍)’을 기준으로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했고, 먹고 마시고 도박하고 성매매하는 등의 나쁜 습관을 끊었으며, 10여 년간 정신병을 앓고 있는 아내를 원망이나 후회 없이 돌보았고, 남을 돕기 좋아해 이웃들은 모두 그를 진짜 좋은 사람이라고 불렀다.
✦ 진상 자료 배포 중 납치돼 구치소에서 고문 당해
2013년 11월 6일, 가오위민은 장우(彰武)현 장구타이(彰古台)진에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장 추이하이펑(崔海峰) 등에게 납치돼 장우현 헤이퉈쯔(黑坨子) 구치소로 끌려갔다.
그는 하루 종일 수갑과 족쇄를 차고 매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으며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했다. 구치소 경찰은 그를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으며, 야만적으로 코를 통해 음식물을 강제 주입하고 소금물을 투여하는 등 그를 괴롭혔다. 그는 여전히 선을 권하는 편지를 써서 동료 경찰들에게 악인을 도와 나쁜 짓을 하지 말라고 일깨워주었다.
2개월 후, 그는 박해로 극도로 허약해져 가족 등에 업혀 구치소를 나와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집에 돌아온 후 꾸준히 법공부와 연공을 했고 1개월 만에 정상으로 회복됐다. 가족들은 감탄하면서도 걱정하며 그에게 박해를 피하라고 권했지만, 그는 80대 노모가 마음에 걸렸고 정신 이상인 아내를 돌봐야 했으며 그를 보증선 형에게 누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 매복에 또 납치돼 부당하게 3년 반 형을 선고받다
2014년 2월 21일, 장우현 법원 경찰이 그의 집 밑에서 매복하다가 그를 다시 납치했다. 3월 14일, 장우현 법원은 그에게 부당하게 5년형을 선고했다. 가오위민이 항소하자 푸신시 중급법원은 형기를 3년 반으로 변경했다.
같은 해 11월 7일, 그는 선양 제1감옥으로 보내졌다. 당시 그는 20여 일간 단식해 피를 토하고 혈변을 보았으며 신체가 극도로 허약했다. 감옥 병원 검사 보고서에 따르면 15개 항목 지표가 불합격이었고, 신부전증과 간, 신장 손상이 있었으며 심장까지 손상돼 시력이 흐려지고 의식이 불분명하며 자주 혼수상태에 빠져 이미 병위(病危, 위독) 통지를 받은 상태였다. 그러나 푸신시 정법위(政法委)의 지시에 따라 선양 제1감옥은 여전히 강제로 그를 수감했다.
✦ 전기 충격, 독주사, 독방 감금: 박해를 받아 식물인간이 되다
선양 제1감옥 엄관대(嚴管隊)는 그에게 ‘전향(수련 포기)’을 강요하며 야만적으로 심하게 구타했다. 뺨을 때리며 재소자에게 숫자를 세게 해 32까지 세었고, 다시 신발 밑창으로 쳐서 그의 얼굴이 변형될 때까지 때렸다. 가오위민은 이에 흔들리지 않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꾸준히 연공을 했고, 경찰은 그가 몸을 지탱할 수 없을 때까지 전기봉으로 하반신을 가격했다.
그는 박해를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학대받는 다른 수련자들을 위해 목소리를 냈으며, 여러 차례 단식으로 성원하다 강제로 호스가 꽂혀 위출혈이 발생했다. 한번은 제9감구(監區)에서 누군가 그가 일어설 수 없어 두 손으로 몸을 지탱하며 바닥에서 이동하는 것을 보았다. 재소자들은 감옥 측이 그를 선양 739병원으로 보냈으며 검사 결과 위장이 심각하게 유착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가장 기이한 것은 그의 형기 만료 두 달 전, 푸신시 공검법(公檢法) 계통 내부에 그가 이미 사망했다는 소문이 퍼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감옥은 그에게 마수를 뻗치고 있었다. 중추신경을 파괴하는 바르비투르를 다량 주사한 뒤 독방에 가두고 폭행해 독성이 발작하게 했다.
7일째 되는 날, 그가 숨이 넘어갈 듯한 상태가 되자 감옥 측은 비로소 가족에게 통지했다. 가족들이 도착했을 때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의 눈빛이 멍하고 몸이 뻣뻣하게 굳어 이미 식물인간이 돼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감옥 측은 단식으로 인한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가족이 소변을 검사 의뢰한 결과, 랴오닝성 약물감독검측센터는 약물 주사 후 9일이 지났음에도 가오위민의 체내에서 강한 양성 반응이 나타났으며 심각한 중독에 속한다고 감정했다.
감옥 측은 당황해 몰래 무마하려 하며 가족에게 그를 데려가라고 했다. 가족은 “그는 두 발로 걸어 들어왔습니다. 오늘은 데려가지 않겠습니다”라고 거절했다. 당시 가오위민은 여러 혈관에서 피가 스며 나오고 대변이 검붉었으며 음식을 먹을 수 없었고 정신이 혼미하며 사지가 구부러져 있었다. 감옥 측은 어쩔 수 없이 입원해 수혈 치료를 받는 것에 동의했고, 가족은 한 발짝도 떠나지 못했다.
가족이 확실한 약물 박해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에 감옥 측은 배상에 동의한 적이 있었으나, 랴오닝성 정법위와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은 승인을 거부했고, 푸신시 정법위 책임자 위양(于洋)과 왕추보(王秋博)는 “배상할 수 없다. 배상한다고 하면 잘못된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감옥과 푸신시 정법위는 6대의 차량을 파견해 가오위민을 푸신시 중심병원으로 실어 갔고, 세 걸음마다 경찰 한 명씩 배치해 엄격히 통제하며 다른 사람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보름 뒤에야 가오위민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 장기간 유동식에 의존해 연명하면서도 철저한 감시를 받아
가오위민은 감옥 병원에서 1년 넘게 응급 치료 상태에 있었고 생명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집에 돌아온 후 그는 자신의 생활을 전혀 돌볼 수 없었고, 가족은 그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병원 근처에 방을 빌려 교대로 돌보았다.
가오위민은 집에 돌아온 지 반년이 넘도록 여전히 스스로 생활할 수 없었고, 때때로 경련을 일으키고 의식이 불분명했으며 지능은 3~4세 아이와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푸신시 정법위와 610은 여전히 그와 가족을 철저히 감시하고 회유와 협박을 일삼으며 소식이 밖으로 새어 나가는 것을 엄격히 막았다.
다년간의 치료 중 그는 매일 유동식을 주입받으며 생명을 유지했다. 부당하게 공직에서 해고된 후 아무런 생계 수단이 없었고, 가족은 또 돈을 들여 사람을 고용해 24시간 간병하게 했으며, 그간 생활비, 의료비, 간병비로 얼마나 들었는지 모를 정도였다.
✦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
2026년 7월 19일, 가오위민은 장기간의 고문과 중독 끝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고 향년 59세였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3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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