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쿤밍시 테니스 선수 한전쿤 일가, 중공의 박해로 풍비박산 나다

[명혜망](윈난성 통신원) 윈난성 쿤밍(昆明)시의 전 테니스 선수 한전쿤(韓震昆), 전처 궈쥐안(郭娟), 아버지 한궈룽(韓國龍), 어머니 주친화(朱琴華) 등 일가족 4명은 1996년 잇달아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수련 후 부모의 고질병이 사라지고 건강을 되찾았으며, 온 가족의 삶은 희망으로 가득 찼고 두 세대가 화목하게 어울리며 즐겁게 살았다.

1999년 7월 20일 중국공산당(중공) 장쩌민 불량배 집단이 파룬궁을 박해한 이래, 온 가족은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에 대한 신앙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중공의 잦은 박해를 받았다. 한전쿤은 여러 차례 직장을 잃고, 납치, 가택수색에 직면했으며, 4차례에 걸쳐 불법 판결을 받아 누적 형기가 20년에 달한다. 전처 궈쥐안 역시 3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한전쿤의 부모도 수시로 괴롭힘, 납치, 가택수색을 당했다. 아버지 한궈룽은 27일간 불법 감금됐다. 부모는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파출소 경찰, 주민센터 직원들의 끊임없는 괴롭힘 속에 2017년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 행복하고 단란했던 가정이 중공의 잔혹한 탄압 속에 이렇게 산산조각 났다.

대법 수련으로 부모의 고질병이 사라지다

아버지 한궈룽은 1935년생으로 쿤밍시 통신공사의 퇴직 직원이다. 1955년 군에 입대해 이른바 ‘시캉 반란 진압’에 참여한 적이 있으며, 설산과 초원이라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만 4년을 버텼다. 소속 대대에서 70여 명의 전우가 전사했는데, 한궈룽은 쿤밍 강철공사로 전역해 살아남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직장에 배치된 후 공장에서 다친 두 직원을 구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헌혈에 참여했다. 당시 굶주림이 심했던 어려운 시기라 만성 빈혈 증세가 남았고, 병을 안고 일하다가 1992년 건강이 악화돼 조기 퇴직했다.

다행히도 한궈룽은 1996년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진선인의 요구에 따라 자신을 단속하며 심신이 빠르게 승화됐다. 이후 다년간 앓던 질병이 약 없이 치유됐고, 건강을 되찾아 활력이 넘쳤으며 매년 직장의 막대한 의료비를 절감해 주었다. 직장 동료들은 그를 볼 때마다 “점점 젊어지시네요”라고 말했다. 그는 항상 그들에게 “내가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았다면 진작에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대법이 내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으니, 나는 파룬따파를 떠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이후 아내, 아들, 며느리도 잇달아 대법 수련의 길로 들어섰다.

어머니 주친화는 70대로 퇴직 직원이다. 과거 직장암 말기를 앓으며 위독한 상태에서 파룬따파를 만났고, 연공 후 직장암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몸이 빠르게 건강을 회복했다. 주친화는 사람들에게 자주 “나와 같은 병을 앓았던 지인 6~7명은 잇달아 세상을 떠났지만,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한 덕분에 그 후로 약 한 알 먹지 않고 병원 한 번 가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다.

한전쿤 부모의 몸에서는 파룬따파의 신기한 질병 치료 및 건강 증진 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중공의 박해하에 그의 아버지 한궈룽과 어머니 주친화는 610, 국보, 파출소 경찰, 주민센터 직원의 끊임없는 괴롭힘과 계속해서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아들에 대한 걱정 속에 2017년 잇달아 억울함을 품고 세상을 떠났다.

한전쿤 부부, 함께 불법 판결을 받다

당시 한전쿤과 아내 궈쥐안은 모두 30대였다. 윈난성 테니스 선수였던 한전쿤은 1991년 제대 후 쿤밍 진화(錦華) 호텔에서 서비스 직원으로 일하다가 2003년 파룬궁 수련을 이유로 강제 사직당했다.

2004년 4월 23일, 한전쿤과 궈쥐안은 바이마(白馬) 아파트 자택에서 쿤밍시 우화(五華) 공안분국 경찰에게 납치됐다. 부부는 모두 우화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고, 감금 1개월 만에 불법 체포됐다. 한전쿤은 쿤밍시 중급법원에서 7년형을, 궈쥐안은 3년형을 불법적으로 선고받았다. 부부는 이에 불복해 윈난성 고급법원에 항소했다. 2004년 11월 15일, 윈난성 고급법원은 불법적으로 원심을 유지했다. 이후 한전쿤은 윈난성 제1감옥 제12감구 12팀 5조에 갇혔고, 궈쥐안은 윈난성 제2여자감옥에 불법 감금됐다. 궈쥐안은 나중에 중공이 강요하는 박해를 견디지 못하고 한전쿤과 이혼했다.

윈난성 제1감옥에서 한전쿤은 콩 고르기, 조립 라인에서 이어폰 전자 부품 조립, 의류팀에서 옷 다림질 등 다양한 강제노동을 강요받았는데, 이 옷들은 주로 학생들의 교복과 운동복이었다. 매일 아침 8시 반부터 밤 8시 반까지 일했다. 감옥에서 그는 ‘전향’을 거부하고 수련 포기 각서 작성을 거부했다. 감옥 식사가 너무 부실하고 가격이 비싸자 감옥장에게 항의하기도 했는데, 이후 식사가 다소 개선됐다. 그의 굳은 의지와 정직함은 주변 수감자들에게 널리 존경받았고, 정의감이 남아있는 일부 감옥경찰들의 존중도 받았다. 이를 위해 아버지 한궈룽은 윈난성 검찰원 및 판룽(盤龍)구 검찰원에 아들을 위한 호소문을 제출해 공검법(공안·검찰·법원)의 위법 범죄 행위를 지적하기도 했다.

집에서 ‘전법륜’을 읽다 두 번째로 4년형을 불법 선고받다

2013년 9월 16일 오후 1시 반경, 쿤밍시 관두(官渡)구 허핑(和平)촌에 사는 한전쿤의 집에 갑자기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시산(西山)구 국보 대장 추쉐옌(邱學彦), 경찰 왕중팡(王中芳), 원융샹(溫永祥), 그리고 자신들을 쿤밍시 공안국 사복경찰이라고 밝힌 두 명이었다. 이 5명은 한전쿤의 집을 찾아온 파룬궁수련자들의 뒤를 밟아 집 안으로 들어왔다. 한전쿤의 어머니가 무슨 일로 왔냐고 묻자, 추쉐옌은 “여기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여 있어서 우리가 꽤 오랫동안 감시했습니다!”라고 답했다. 아버지가 “우리는 그저 여기서 함께 법공부를 할 뿐입니다”라고 하자, 왕중팡은 카메라를 꺼내 집 안 곳곳을 촬영했다. 추쉐옌은 또 “협조하지 않으면 특경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내일부터 당신 집 문 앞에 경찰차를 세워두고 누구든 오면 다 잡아가겠습니다!”라고 협박했다.

당시 한전쿤과 가족, 그리고 방문한 파룬궁수련자들은 대법서적 ‘전법륜(轉法輪)’을 읽고 있었다. 추쉐옌은 모든 수련자의 이름과 주소를 적게 한 뒤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런 다음 탁자 위에 놓인 2013년 션윈 공연 DVD와 ‘9평 공산당’ DVD를 가리키며 누가 만든 거냐고 물었고, 한전쿤이 자신이 만들었다고 대답했다. 이 무리는 그 자리에서 수색 영장을 작성한 뒤 즉시 가택수색을 시작했다. 오후 4시 반, 추쉐옌이 전화를 걸자 잠시 후 경찰 5명이 추가로 올라왔다. 아버지가 신분을 묻자 이들은 류자잉(劉家營) 파출소 경찰이라고 밝혔다. 그들은 한전쿤을 집에서 끌고 갔고, 추쉐옌 일행도 뒤따라갔다.

한전쿤은 시산구 구치소에 갇혀 모함을 당했다. 가족이 모르는 사이에 쿤밍시 중급법원에서 비밀리에 재판이 열렸고, 2014년 11월 7일에야 아버지는 한전쿤이 이미 비밀리에 4년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타지 출장 중 납치돼 세 번째로 4년형을 불법 선고받다

2019년 9월, 한전쿤은 인테리어 작업자 3명을 시솽반나(西雙版納)주 징훙(景洪)시로 데려다주었다. 공사를 마치고 쿤밍으로 돌아오려 할 때 멍라(勐臘)현 멍룽(勐龍)진 징룽(景龍)촌 중공 당지부 서기 옌원(岩溫)의 악의적인 신고로, 징훙시 국보 경찰은 CCTV를 통해 한전쿤이 대법 진상 자료를 배포했다고 의심하며 징훙 둥펑(東風) 농장 융안(永安) 여관에서 그를 납치했다.

2020년 7월 31일, 멍라현 법원은 사실을 무시한 채 그가 파룬궁을 수련한 점, 이동 중 작업자 3명에게 파룬궁 음악을 들려준 점, 공안 국보 경찰이 빼앗은 개인 물품을 ‘범죄 증거’로 삼고 과거 파룬궁 수련으로 징역을 살았던 전력을 구실로 그를 기소했다. 한전쿤은 또다시 4년형을 불법 선고받고 벌금 4만 위안을 갈취당했다.

확인되지 않은 USB 하나로 다시 5년형을 불법 선고받다

2025년 1월 13일, 한 운전기사가 차 안에서 파룬궁 내용이 담긴 USB 하나를 발견했다며 악의적으로 신고했다. 경찰은 영상을 통해 한전쿤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했다. 4개월여가 지난 2025년 5월 20일, 경찰의 전화를 받고 자발적으로 파출소를 찾았던 그는 몸에 파룬궁 자료를 지니고 있었다는 이유로 납치됐고 가택수색까지 당했다. 이후 우화구 검찰원에 의해 우화구 법원에 기소됐다.

2025년 12월 1일, 우화구 법원은 한전쿤에 대해 불법 재판을 열었다. 재판은 오후 2시 30분에 시작됐으며 방청석에는 친척 단 한 명만 입장이 허용됐다. 한전쿤은 7~8명의 법원 경찰에 이끌려 옆문으로 들어왔고, 두 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친척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넸으나 제지당했다. 법원은 공개 심리 원칙을 지키지 않은 심각한 위법 행위를 저질렀다. 변호사가 왜 수련을 고집하느냐고 묻자 한전쿤은 “1999년 이전에는 저희 부모님을 포함해 곳곳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건강이 좋아지시는 것을 보고 저도 수련을 시작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판사는 즉각 말을 끊으며 “예” 혹은 “아니요”로만 대답하라고 강요했다. “USB를 둔 적이 있나”라는 질문에 그는 “파룬궁은 사회에 아무런 해가 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으나 판사는 다시 거칠게 말을 끊으며 “뒀는지 안 뒀는지만 대답해”라고 요구했다. 한전쿤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증인의 출석을 요구하자, 판사는 짜증스럽게 “변호사보고 말하라고 해”라고 했다.

변호사는 지적했다. 해당 USB는 이미 사건 현장을 벗어나 이른바 증인이 집으로 가져가 컴퓨터로 열람한 상태였다. 증인이 법정에 출석하지 않아 질의응답을 할 수 없었으며, 증인이 USB 내용을 추가, 삭제, 수정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검사가 지적한 파일이 사회적 위해성을 띠는지 여부는 반드시 증인이 설명해야만 했다. 핵심 증인이 출석하지 않은 것은 절차적 위법이며 사건의 사실관계도 불분명했다. 변호사는 나아가 객관적 행위나 주관적 목적을 막론하고 한전쿤의 행위는 어떠한 위해성도 없으므로 형사 처벌을 받아서는 안 된다며 무죄를 선고할 것을 요구했다.

최후 진술에서 한전쿤은 “제가 세 번이나 감옥에 다녀오고도 수련을 고집하는 이유는, 파룬궁 수련이 국가, 사회, 개인에게 어떠한 위해도 가하지 않으며 어떠한 구체적인 상해 행위도 없기에 범죄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오로지 ‘USB를 두었다’는 확정할 수 없는 행위 하나만 연루돼 있었고 증인도 출석하지 않아, 법정에서 아무도 이 USB가 누구의 이익을 침해했는지, 어떤 법률을 위반했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헌법은 공민의 신앙의 자유를 명백히 보장하고 있으며, 신앙을 알리는 것 역시 합법이다. 법정이 어떠한 구체적 범죄 행위도 제시하지 못한 채, 마침내 판사는 법봉을 두드리며 휴정을 선언하고 “선고 기일은 추후 정하겠다”고 말했다.

2025년 12월 26일, 우화구 법원 판사 리중위안(李中原)은 한전쿤에게 5년형을 불법 선고하고 벌금 5만 위안을 갈취했다. 가담자는 재판장 리중위안, 심판원 장징펑(姜靖峰), 배심원 룽유이(龍佑義), 법관 조수 천하오(陳昊), 서기원 양하이옌(楊海燕)이다.

온 가족이 동시에 괴롭힘, 가택수색을 당하다

2012년 5월 29일 오전 9시경, 쿤밍시 관두 공안분국 타이허(太和) 파출소 경찰 셰페이제(謝培傑)는 사복 차림의 6명을 이끌고 쿤밍시 허핑촌에 사는 아버지 한궈룽의 집에 들이닥쳤다. 당시 아내 주친화, 아들 한전쿤도 모두 집에 있었다. 찾아온 사람은 여성 2명, 남성 5명 등 총 7명이었는데, 그중 한 명이 문을 들어서자마자 “한전쿤, 당신 더 이상 파룬궁 물건을 만들면 안 돼. 지금 당장 집 안에 있는 모든 파룬궁 물건을 압수하겠어!”라고 소리쳤다. 한전쿤이 “당신들 무슨 근거로 이러는 겁니까, 증거가 있습니까?”라고 묻자 악질 경찰은 형법 300조를 근거로 든다며 고함을 쳤다. 그러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다른 한 명은 캐비닛과 서랍을 뒤졌으며 나머지 5명은 옆에서 도왔다. 이들은 집 안의 모든 캐비닛, 서랍, 가방, 종이상자를 모조리 뒤졌고, 잠겨 있는 서랍은 집 안의 가위로 뜯어냈으며, 뒤지면서 동시에 사진을 찍었다. 한궈룽의 거듭된 요구에 찾아온 7명 중 단 한 명만이 신분증을 제시했는데, 이름은 장레이(張磊)였고 어느 공안국 소속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이름과 신분을 전혀 밝히지 않았다. 한궈룽이 수색 영장을 요구하자 그중 한 명이 빈 수색 영장 묶음을 꺼내 그 자리에서 작성한 뒤 한궈룽에게 서명을 강요했다. 한궈룽이 서명하지 않자 수색 영장을 주지 않았다.

그들이 거실 벽에 높이 걸려 있던 ‘진선인’ 액자를 빼앗으려 하자, 한궈룽은 “이건 우리 생명과도 같으니 절대 건드리지 마시오!”라고 맞섰다. 하지만 여성 사복경찰 2명이 뒤에서 나타나 거실 탁자에 모셔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법상 두 장을 빼앗았고, 수십 권의 대법서적, 현금 1만 5천여 위안, 컴퓨터 본체 1대, MP3 3개도 강탈했다. 이 무리는 떠날 때 한전쿤에게 함께 타이허 파출소로 가서 압수한 현금 명세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하며, 다음 날 압수품 명세서를 찾으러 오라고 전화로 통보하겠다고 했다. 이들이 떠난 후 한궈룽 부부는 집에 있던 4만 위안짜리 반년 만기 정기예금 증서도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한전쿤 가족은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삶이 희망으로 가득 찼고, 가족이 화목하게 어울리며 즐겁게 살았다. 하지만 단지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만으로 온 가족이 무고하게 박해를 당했다. 한전쿤은 4번이나 불법 판결을 받았고, 그의 아버지 한궈룽과 어머니 주친화는 610, 국보, 파출소 경찰, 주민센터 직원들의 끊임없는 괴롭힘 속에 2017년 연이어 세상을 떠났다. 진선인 신앙을 지킨다는 이유로 단란했던 가정이 이처럼 중공의 탄압으로 풍비박산 나고 말았다.

한전쿤 가족의 참혹한 사연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중공이 역대 정치 운동에서 저지른 수많은 박해를 뛰어넘는 파룬궁 박해의 잔혹성과 불법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원문발표: 2026년 3월 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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