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억울한 옥살이 겪은 쓰촨성 쑤이닝시 정더량, 부당하게 형사구금돼

[명혜망](쓰촨성 통신원) 2026년 1월 6일, 쓰촨성 쑤이닝(遂寧)시 파룬궁수련자 정더량(鄭德亮)이 촨산(船山)구 제푸차오(介福橋) 파출소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에게 납치돼 불법 형사구금됐다. 현재 정더량은 쑤이닝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돼 있다.

정더량은 쓰촨성 쑤이닝시 융싱(永興)진 고차오(苟橋)촌에 거주한다. 2026년 1월 6일 오전 10시, 정더량이 다른 사람에게 채소를 가져다주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사복 차림의 6~7명이 집 마당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정더량에게 집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으나 그는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자 이들 6~7명은 무단으로 집 안에 들어가 온 집안을 뒤지며 수색했고, 대법자료와 재생기를 찾아냈다. 이후 경찰은 정더량에게 수갑을 채워 납치해 갔다. 당시 집에는 정더량 혼자 있었고, 그의 아내는 외지에서 손자를 돌보고 있었다.

2026년 1월 9일, 정더량의 아내는 한 통의 전화(번호 19183050068)를 받았다. 전화를 건 사람은 자신들이 촨산구 제푸차오 파출소 경찰이라며 정더량이 (불법) 구류됐다고 통보했다. 아내가 “국보대대입니까?”라고 묻자, 상대는 “맞다, 국보대대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정더량을 데려갔으니 가족에게 통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정더량의 가족은 ‘쑤이닝시 공안국 촨산구 분국 구류통지서’를 받았으나, 문서의 날짜는 1월 6일로 돼 있었다.

현재 정더량은 쑤이닝시 구치소(속칭 융싱 구치소, 쓰촨성 쑤이닝시 촨산구 융싱진 우자완 소재)에 불법 감금돼 있다.

부친과 함께 투옥돼 고문당해

1. 부자(父子) 납치

2015년 2월 3일 정오, 정더량의 부친 정스이(鄭世義, 2025년 2월 22일 억울하게 사망, 향년 87세)는 다른 파룬궁수련자와 함께 고차오촌 4조 도로변 전신주에 진상 스티커를 붙이다가 마을 사람의 악의적인 신고를 당했다. 허둥(河東) 신구 공안분국 소속 국보 경찰 10여 명이 차량을 몰고 아들 정더량의 집으로 들이닥쳤다.

당시 정더량은 공사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낯선 전화가 걸려와 부친에게 일이 생겼으니 즉시 집으로 돌아오라는 말을 들었다. 그는 급히 하던 일을 멈추고 집으로 향했다. 마을 어귀에서 주민들이 “절대 집에 들어가지 마라”라고 말렸지만, 당시 77세인 노부(老父)가 혼자 많은 사람을 상대하고 있다는 생각에 부친이 변을 당할까 우려해 그대로 집으로 들어갔다. 집 안에서는 10여 명의 국보 경찰이 온통 뒤지며 수색하고 있었다. 경찰은 정더량이 들어오자 즉시 그를 통제해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게 했고, 그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이후 정더량과 부친은 허둥 신구 공안분국으로 납치됐다. 몇 시간에 걸친 불법 심문 후 아무런 소득이 없자, 오후에는 구시가지의 한 병원으로 끌고 가 강제 채혈과 신체검사를 시도했으나 정더량이 거부했다. 이후 두 사람은 융싱 구치소에 수감됐다.

2015년 2월 4일, 정더량과 부친은 허둥 분국에 의해 불법 형사구금됐고, 구치소의 유동 감방에 7~8일 수감된 뒤 정더량은 11호 감방, 부친 정스이는 10호 감방으로 옮겨졌다. 3월 11일 두 사람은 허둥 분국에 의해 불법 체포(구속)됐다. 담당 경찰은 정더량의 일터까지 찾아가 불법 조사를 하고, 허위 자료를 조작해 죄명을 날조했으며, 그가 공사 현장에서 동료들에게 파룬궁을 홍보했다고 했다.

2. 부자가 억울한 판결 받고 상소했으나 기각돼

2015년 9월 18일, 정더량과 부친, 그리고 또 다른 파룬궁수련자(이미 억울하게 사망) 한 명은 촨산구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다. 촨산구 검찰원과 법원은 결탁해 3인이 ‘형법’ 제300조, 제25조 규정을 위반했다고 날조했다. 두 달 후인 2015년 11월, 이 사건에 대해 불법 판결을 내렸다. 당시 78세인 정스이는 징역 3년 6개월, 정더량은 징역 3년을 억울하게 선고받았다.

정더량은 법원의 선고에 불복해 사람을 찾아 사실을 밝히는 자료를 작성했고, 이를 시 중급법원에 상소했다.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중급법원 관계자들이 사실을 존중해 재조사 및 증거 수집을 한 뒤 날짜를 정해 재판을 열어 대법과 자신의 결백을 돌려주기를 요구했다. 그러나 시 중급법원은 상소장을 접수한 뒤에도 법관으로서의 책임을 이행하지 않았고, 재조사를 하지 않았으며, 모든 절차는 형식적으로 흘러갔을 뿐이었다.

2016년 1월, 중급법원은 형식적인 재판을 열어 원심을 그대로 유지했다.

3. 자저우 감옥에서 ‘전향’과 노역 박해당해

2016년 5월, 정더량과 부친은 쓰촨성 자저우(嘉州) 감옥으로 납치돼 계속 감금 박해를 당했다. 막 들어온 수형자들은 모두 제9감구에서 이른바 입감 교육(규범 훈련)을 받아야 했는데,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파룬궁수련자들은 이곳에서 첫 번째 ‘전향’ 박해를 당해야 했다. 정더량이 들어가자마자 감구에서는 두 명의 죄수를 붙여 그를 감시하게 하여 행동을 제한하고, 사상의 자유를 없앴으며, 감옥 규정을 강제로 외우게 하고 정신적 세뇌를 가했다.

이후 정더량은 제5감구로 이감돼 노역을 하며 충전기 배선을 하는 일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분을 알고 있었기에 죄수 명찰 착용에 협조하지 않았고, 서명을 요구받으면 “정더량은 좋은 사람이다”라고 적었다.

자저우 감옥에서 다른 파룬궁수련자들이 감옥경찰과 죄수들에게 이유 없이 박해당하는 것을 보면 정더량은 앞장서거나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자료를 작성하여 감옥 기율검사 우편함에 고발장을 넣었다. 한 번은 한 경찰이 격분한 나머지 무전기로 파룬궁수련자 치타이취안(漆太全, 음역)의 머리를 내려쳐 혹을 만들었다. 정더량과 수련자들이 감옥 기율검사위원회에 고발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감구장 장젠(張建, 음역)은 파룬궁수련자 천밍(陳明)에게 두 차례 말을 전해 정더량을 보복해 ‘말을 잘 듣게 하겠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더량은 다른 감방으로 옮겨졌고, 경찰은 죄수들을 부추겨 그를 감시하게 하며 법공부를 하지 못하게 했다. 그 감방에는 왕둥(王東)이라는 중범죄자가 있었는데 키가 크고 체격이 컸으며(약 180cm), 정더량에게 자주 험한 말을 했다. 정더량이 ‘파룬궁’이라는 세 글자만 꺼내면 그는 마성을 부리며 정더량을 끌어 밖으로 끌고 나가려 했다. 또 한번은 정더량이 작은 쪽지에 적힌 대법 경문을 보고 있는데 왕둥이 보고 달려와 빼앗으려 했다. 정더량이 주지 않자 왕둥은 그의 등과 팔을 주먹으로 세차게 때렸다.

정더량은 링수이(陵水)현 파룬궁수련자 뤄쉐팡(羅學放, 이미 박해로 사망)이 늘 맨발로 다니는 것을 보고 양말 한 켤레를 주었다. 그러나 이 일이 발각돼 감옥경찰 왕화이쥔(王懷軍, 음역)에게 악의적으로 고발당했고, 왕화이쥔은 상스러운 말로 그를 모욕했다. 다음 날 밤 정더량이 다시 법공부를 하고 있는데 죄수 왕둥이 보고 즉시 달려와 쪽지를 미친 듯이 빼앗는 동시에 주먹으로 때렸다. 정더량은 그가 거리낌이 없는 것을 보고 급히 벽의 경보기를 눌렀다. 왕둥은 이에 격분해 정더량의 귀 뒤를 주먹으로 세차게 때려 극심한 통증을 안겼다. 정더량은 왕둥의 폭행 전말을 고발문으로 작성해 다음 날 신고함에 넣었다. 감구에서는 이를 알고 정더량과 아직 전향되지 않은 파룬궁수련자 뤄쉐팡을 서로 다른 감방으로 맞바꾸었다. 한 죄수 우두머리는 “내 감방에 있으면 말을 잘 들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더량은 담담히 “나는 나갈 생각이 없다”라고 답했다. 생사를 내려놓은 이 한마디 말로 오히려 그의 감방 환경은 한결 느슨해졌다.

한 차례 그는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당시 제5감구 감구장 장젠을 찾아 상황을 반영했다. 장젠은 정더량과 수련자들의 진술을 듣고도 부하들의 불법 관리에 대해 조사·확인하도록 사람을 보내기는커녕, 파룬궁수련자들이 겪은 박해를 외면하고 오히려 경찰과 죄수들의 기세를 부추기며 그들의 ‘검은 보호막’이 됐다. 그는 뻔뻔하게도 “내가 바로 법이다. 내가 희다 하면 희고, 내가 검다 하면 검다”라고 말했다.

2017년 상반기, 파룬궁수련자 천밍이 감방에서 연공했다는 이유로 죄수들에게 밧줄로 묶이는 일을 당했다. 정더량은 저우궈핑(周國平), 위(於)씨 성의 수련자와 함께 사실대로 경찰에게 반영하러 갔다. 그런데 감구장은 둥근 딱딱한 물건을 저우궈핑의 입에 쑤셔 넣고, 다시 그의 입을 향해 주먹을 세차게 휘둘러 저우궈핑의 치아 두 개가 부러졌다.

2017년 5월 25일 오전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정더량은 저우궈핑이 또다시 천밍과 마찬가지로 혹독한 고문을 당하는 것을 보고 감옥경찰을 찾아가 파룬궁은 잘못이 없다고 말했다. 감옥경찰 슝(熊) 모 씨는 정더량의 오른쪽 등 뒤를 주먹으로 때리며 “내가 때리는 건 사상범이다”라고 말했다. 정더량은 감옥경찰의 불법 행위에 항의하기 위해 이틀간 단식했다.

쓰촨성 자저우 감옥은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는 흑소굴로, 감옥경찰들은 벌서기, 전기봉 충격, 야만적인 구타, ‘초반(秒飯, 식사 시간 제한) 먹이기’, ‘오토바이 타기(자세 고문)’ 등 각종 고문을 사용했으며, 수형자들에게 장시간 강제노동을 시켜 이익을 취했다.

2018년 2월 3일, 정더량은 3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4. 부친, 약물 박해 당한 의혹 속 억울하게 사망

정더량의 부친 정스이는 1938년에 태어났으며, 77세의 고령에 중공 법원으로부터 불법적으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2016년 5월, 그는 쓰촨성 자저우 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를 당했다.

정스이 노인은 자저우 감옥에 불법 수감돼 있는 동안, 감옥 측이 그에게 고혈압이 있다고 주장하며 매일 강제로 약을 복용하게 했다. 2018년 3월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몸이 앞으로 굽어 허리를 펼 수 없었고, 고개도 들지 못했으며, 일상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실제로 고혈압 증상이 없었으나 기억력이 크게 감퇴했고, 지능이 2~3세 아이 수준으로 떨어져 결국 완전히 자립하지 못하게 됐다.

정스이는 경찰에 납치되기 전까지 심신이 건강했고 몸도 곧았으며, 약을 한 알도 먹은 적이 없었다. 그는 수십 리 떨어진 산촌을 오가며 마을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리곤 했다. 가족들은 그가 수감 중 약물 박해를 당했을 가능성을 의심하고 있다.

정스이는 출옥 후에도 중공 인원들의 괴롭힘을 계속 받았으며, 강제로 혈액을 채취당하고 여러 차례 강제 촬영을 당했다. 2025년 2월 22일, 향년 87세의 나이로 억울함 속에 세상을 떠났다.

현재 정더량은 신앙을 지킨다는 이유로 다시 쑤이닝시 촨산구 제푸차오 파출소 국보대대 경찰에게 납치돼, 쑤이닝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돼 있다.

관련 정보:
쓰촨성 쑤이닝시 촨산구 제푸차오 파출소 국보대대
정더량을 불법 납치한 경찰 전화: 191-8305-0068
제푸차오 파출소 전화: 0825-239-1069
제푸차오 파출소 주소: 쓰촨성 쑤이닝시 촨산구 시산베이로 597호
쑤이닝시 공안국 촨산구 분국 전화: 0825-222-5555
주소: 쑤이닝시 촨산구 샤오베이제 18호
국장: 류마오썬(劉茂森), 당위원회 부서기: 리줘린(李卓霖), 정치처 주임: 장핑타오(蔣平濤), 상무 부국장: 장빙(張兵), 기관 당위원회 서기: 옌쑹린(閆松林), 부국장: 양밍밍(楊鳴明)
기율검사위원회 서기: 두야오밍(杜堯明)
제푸차오 파출소 소장: 쉬제(許傑)
사회지역 경찰: 쩡나(曾娜)

 

원문발표: 2026년 1월 2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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