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양시 수련자 왕진펑, 무고한 4년 수감 박해로 두 가족 슬픔 속 세상 떠나

[명혜망](랴오닝성 통신원) 2026년 2월 18일(음력 정월 초이틀)은 본래 선양(瀋陽)시 파룬궁수련자 왕진펑(王金鳳)이 4년간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가족과 재회하는 날이어야 했다. 그러나 이날이 다가왔을 때, 그가 마주하게 될 것은 남편과 어머니가 잇달아 세상을 떠난 참혹한 현실이다. 억울한 사건을 조작하고 박해에 참여한 중국공산당(중공) 인원들은 이에 대해 회피할 수 없는 책임이 있으며, 마땅히 져야 할 죄책을 피할 수 없다.

法轮功学员王金凤

파룬궁수련자 왕진펑

왕진펑은 현재 67세로, 오랫동안 질병의 고통에 시달렸다. 파룬궁을 수련한 뒤 그는 심신이 회복되고 정신이 즐거워졌으며 도덕이 향상됐다. 그러나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의 신앙을 견지했기 때문에 여러 차례 중공의 박해를 당했다. 장기간의 괴롭힘, 불법 구금, 세뇌반 박해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1999년에는 1년의 강제노동형을 불법적으로 선고받았고, 2010년 2월 10일에는 캉핑(康平)현 법원에 의해 7년형을 부당하게 선고받아 2016년 11월에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2022년 2월 19일 다시 경찰에 의해 납치돼 모함을 당했고, 이후 선양시 위훙(於洪)구 법원에 의해 불법적으로 4년형을 선고받았다. 2023년 3월 30일에는 랴오닝(遼寧)성 제2여자감옥으로 끌려가 계속 구금되고 박해를 받았다.

‘전향(수련 포기)’을 거부했기 때문에 왕진펑은 수감된 지 3년 가까이 줄곧 엄격한 관리 상태에 놓였고, 심신이 장기간 유린을 당했으며, 많은 합법적 권리를 부당하게 박탈당했다. 더욱 비통한 것은 남편 장유(張友)와 어머니 루수란(逯淑蘭)이 그가 억울한 옥살이를 하는 동안 큰 충격과 밤낮없는 그리움, 걱정, 두려움이 쌓이고 쌓여 병이 들어 잇달아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다. 그런데 옥중에 갇힌 왕진펑은 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1. 납치, 모함, 부당한 판결

2022년 2월 19일 오후 1시경, 왕진펑은 황구(皇姑)구 비탕(碧塘)공원을 지나던 중 신원미상의 여러 명에게 폭력적으로 납치됐다(이후 황허 파출소 소속 경찰로 확인됨). 이들은 왕진펑의 소지품을 강제로 빼앗았다. 심한 충격을 받은 왕진펑은 고혈압과 심장질환 증상을 보였으나, 경찰은 그를 황허 파출소로 강제 납치해 3일간 불법 구금했다. 구금 기간 왕진펑은 고문 심문과 변형된 육체 처벌을 당했다. 이후 왕진펑은 선양시 제1구치소로 이송됐다.

2022년 3월 24일, 황구 공안분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와 위훙구 검찰원은 왕진펑에 대해 누명을 씌워 체포 영장을 발부했으며, 6월 13일 불법 기소했다. 1심 재판에서 담당 판사는 법정 절차를 심각하게 위반했다. 친지가 선임한 변호인을 온갖 방법으로 방해하고 친지 변호 권리를 불법적으로 박탈했으며, 가족들의 무죄 변론 출석도 불허했다. 2022년 8월 12일, 위훙구 법원은 선양시 제1구치소 내에서 불법 화상 재판을 진행했으나, 재판은 형식적인 절차에 그쳤다.

2022년 9월 19일, 위훙구 법원은 왕진펑에게 불법적으로 징역 4년형을 선고하고 벌금 5000위안을 갈취했다. 왕진펑이 적법하게 항소한 뒤, 2022년 11월 24일 선양시 중급법원은 원심을 유지하는 불법 판결을 내렸다.

2. 감옥서 엄격 관리 박해당해 심신 황폐

2023년 4월 28일, 가족이 감옥에 문의한 끝에 왕진펑이 이미 3월 30일 랴오닝성 제2여자감옥 10감구 4소대로 이송된 사실을 알게 됐다. 입감 한 달이 지났지만 감옥 측은 ‘감옥법’ 규정에 따라 가족에게 입감 통지서를 발송하지 않았다. 이후 가족들이 여러 차례 면회를 요청했으나 모두 거부당했으며, 감옥경찰들은 ‘엄격 관리 등급’, ‘전향 거부’를 이유로 면회권을 강제로 박탈했다.

왕진펑이 신앙을 굳건히 지키며 ‘죄 인정’과 ‘전향’을 거부하자, 지난 3년간 줄곧 엄격 관리 박해를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감옥과 감옥경찰들은 법을 알면서도 법을 어기며 면회, 전화 통화 등 기본권을 불법적으로 박탈했다(현재까지 단 한 차례도 면회나 통화를 허용하지 않음). 또한 육체적·정신적으로 장기간 비인간적 학대를 가했다. 감옥경찰들은 직접 구타할 뿐 아니라 바오자(包夾·감시 수감자), 작업반장 등 다른 수감자를 시켜 구타, 욕설, 체벌, 모욕 등의 폭력 행위를 자행하게 했으며, 이는 왕진펑의 심신 건강을 심각하게 침해했다.

내부 증언으로 드러난 학대 실태

2023년 4월

제2감구(입감대)에서 불법적 요구에 협조를 거부하자, 왕진펑은 꼬박 하루 밤낮 동안 화장실 사용을 금지당해 얼굴이 자색으로 변했다. 이후 10감구 4소대로 이송된 왕진펑에게 감옥경찰들은 ‘전향’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수감자들을 시켜 고문을 가했다. 바오자는 테이프로 그의 입을 막아 질식 직전까지 몰아갔다.

2023년 9월

작업장 퇴근 시간에 ‘안면 인식’을 거부하자, 두 명의 수감자가 왕진펑의 팔을 붙잡고 다른 한 명이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강제로 고개를 들게 했다. 이를 지켜본 이들이 “천벌 받을 짓”이라며 탄식했지만, 현장에 있던 감구장 루웨이(盧瑋)는 이를 묵인했을 뿐 아니라 악담을 내뱉으며 박해를 방조했다.

장기간 ‘기아 형벌’과 기본권 박탈

‘전향’을 강요하기 위해 감옥경찰과 수감자들은 다중적으로 압박을 가했다. 전화 통화, 면회, 구매권을 박탈하고 식사권마저 빼앗아 의도적으로 식사량을 줄이거나 아예 주지 않았으며, 이는 최소 3~4개월간 지속됐다. 이로 인해 왕진펑은 극도로 야위었고 정신 상태도 악화됐다.

명혜망은 2026년 1월 12일 보도에서 랴오닝성 제2여자감옥이 2019년 개소 이후 장기간 노예 노동, 폭력적 ‘전향’, 면회 거부 등의 방식으로 파룬궁수련자들을 박해해왔다고 지적했다. ‘전향’을 거부하는 수련자들은 언제든 구타, 체벌, 욕설, 수면과 음식 박탈을 당할 수 있으며, 심지어 집단 구타를 당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10감구 상황

왕진펑은 소대장에게 감시 카메라가 없는 화장실로 끌려가 구타당했으며, 팔에는 손톱 자국이 남고 얼굴이 붉게 부어올랐다. 2025년 7월에는 작업반장과 감시 수감자에게 구타당해 코와 입에서 피를 흘렸다. 왕진펑은 현장에서 순찰조에 이를 신고했고, 작업반장의 노란 조끼가 일시적으로 회수되긴 했지만, 순찰조가 떠난 뒤 해당 인물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고 계속 작업반장직을 유지했다.

왕진펑이 랴오닝성 제2여자감옥에서 보낸 지난 3년간의 구체적 경험은 아직 많은 부분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현재까지 공개된 정황만 봐도 감옥 측의 ‘전향’ 박해는 결코 멈추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왕진펑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랴오닝성 여자감옥에 수감됐을 당시에도 수면 박탈, 기아, 냉동형, 찬물 끼얹기, 욕설, 구타, 머리를 잡고 벽에 부딪히기, 철제 의자에 결박, ‘독방’ 감금 등 다양한 고문을 당했다. 이로 인해 뇌진탕, 심근 허혈, 심각한 요통 등의 상해를 입었으며, 출소 후에도 장기간 회복하지 못했다.

3. 억울한 누명으로 인한 상처 속에 두 친인척 잇달아 비통하게 세상 떠나

왕진펑이 억울하게 4년형을 선고받으면서 가정은 산산조각 났다. 그러나 더욱 무거운 비극이 잇따랐다. 왕진펑의 남편 장유와 어머니 루수란이 억울한 사건으로 인한 엄청난 정신적 충격과 왕진펑에 대한 밤낮없는 걱정과 우려를 견디지 못해 병을 얻었고, 각각 2024년 10월 28일과 2025년 3월 14일 잇달아 세상을 떠났다.

불과 5개월 사이에 두 명의 가까운 가족을 잃은 친지들의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 없으며, 한은 깊기만 하다. 그런데 옥중에 갇힌 왕진펑은 이 모든 사실을 아직도 전혀 모르고 있다.

왕진펑의 남편 장유는 내성적이고 말이 적었지만, 선량하고 본분을 지키며 인의(仁義)가 있고 무던했으며 정의감이 매우 강했다. 그는 아내 왕진펑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뒤 원래 병이 많던 몸이 병 없이 가벼워지고 정신이 유쾌해지며 도덕성이 향상되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에 진심으로 아내의 수련을 지지했다. 그는 아내의 심신을 크게 변화시키고 가정에 무한한 혜택을 준 수련법이 중공의 잔혹한 탄압을 받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1999년 ‘7·20’ 박해가 시작된 뒤, 원래 평온했던 이 가정은 다시는 평온을 찾지 못했다.

왕진펑이 ‘진선인’의 신앙을 견지하고 좋은 사람이 되기를 고집했기 때문에, 그는 중공의 박해를 거듭 당했다. 장기간의 괴롭힘, 불법 구금, 불법 강제노동, 세뇌반 박해, 불법 형 선고…. 매번의 박해는 마치 무거운 망치처럼 장유의 가슴을 내리쳤고, 그의 심신은 엄청난 고통을 견뎌야 했다.

2009년 11월, 왕진펑은 다시 납치돼 누명을 썼다. 2010년 2월 10일 캉핑현 법원에서 억울하게 7년형을 선고받고 랴오닝성 여자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7년의 억울한 형을 마주한 장유는 심한 타격을 받았다. 그는 하루 종일 술로 시름을 달래고 찬 방바닥에 누워 스스로 마비시키며 정신이 거의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 이를 본 친척들은 그가 이대로 인생을 망칠까 걱정해 그를 집으로 데려가 돌봐주며 밥을 해주고 빨래를 해주고 일자리를 소개해줬다. 가족의 관심 속에서 그는 조금씩 우울과 절망에서 벗어나 매달 가족과 함께 감옥에 가서 왕진펑을 면회했고, 마침내 2016년 11월 왕진펑이 7년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날을 맞이해 온 가족이 잠시 재회의 기쁨을 맞이했다.

그러나 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박해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평온한 날들이 몇 년 지나지 않아 공안·검찰·법원이 만든 또 다른 억울한 사건이 다시 왕진펑을 옥중으로 밀어 넣었다. 장유는 비통함과 분노가 교차하며 고통스러웠지만, 여전히 슬픔을 억누르고 아내를 위해 권리 보호에 나섰다. 변호사를 선임하고, 파출소에 가서 담당자를 찾고, 감옥에 가서 면회를 요구했지만, 불법 인원들은 법을 집행하면서 법을 어기고 회피하며 속이면서 가족의 합법적 권리를 불법적으로 박탈해 그는 번번이 벽에 부딪혔다. 끊임없는 박해로 그는 희망을 볼 수 없었고 심신이 한계에 내몰렸다. 장기간의 조급함, 화, 걱정과 우울로 인해 그의 혈압은 계속 높아지고 뇌혈관이 막혀 약물로 버틸 수밖에 없었으며, 여러 차례 넘어질 뻔했다.

2024년 9월 어느 날, 장유는 갑자기 쓰러졌고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는 중환자실(ICU)로 옮겨져 두 달 가까이 치료를 받았지만, 몸의 반쪽이 감각을 잃었고 온몸에 관이 꽂혔다. 육체적 고통과 내면의 고뇌가 뒤섞인 가운데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이번 박해로 인해 부부는 2년 8개월간 강제로 헤어져 지냈고, 죽을 때까지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2024년 10월 28일, 장유는 끝없는 슬픔과 아쉬움, 한을 품은 채 영원히 눈을 감았다. 향년 62세였다. 친지들은 모두 안타까워하며 비통해했다.

장유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지 채 5개월도 되지 않아, 왕진펑의 노모마저 세상을 떠났다. 어르신은 떠나는 순간까지 슬픔과 아쉬움으로 가득했다.

왕진펑의 어머니 루수란은 만년에 캉핑에 사는 막내아들 집에서 살았으며, 자녀들은 모두 매우 효성스러웠다. 왕진펑은 명절마다 돌아가 어머니를 찾아뵙고 돌봤다. 어르신은 ‘파룬따파하오’를 믿었고 항상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워 심신이 혜택을 받았으며, 사고가 명료하고 선악을 분명히 했고, 딸의 수련을 지지했다.

왕진펑이 다시 납치돼 박해받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르신은 마음 아파하며 말했다. “왜 조심하지 못했니? 얼마나 큰 고생을 해야 하나?” 그는 밤낮으로 딸을 그리워하며 자주 중얼거렸다. “언제 돌아올 수 있을까?”

2022년 말부터 2023년 설 기간, 어르신이 갑자기 위독해져 7일간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고, 가족들은 심지어 장례 준비까지 했다. 당시 왕진펑은 선양시 제1구치소에 불법 구금돼 있었는데, 어머니의 위독 소식을 듣고 전언을 보냈다. “우리 엄마가 저를 기다리게 해주세요!” 어르신은 딸의 소식을 듣고 기적처럼 회복해 2년을 더 살았다.

그러나 기다림은 결국 너무 길었다. 2025년 3월 14일, 어르신은 과도한 그리움과 걱정으로 결국 둘째 딸이 집에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유감과 아쉬움을 품은 채 세상을 떠났다. 향년 93세였다.

2026년 2월 18일(음력 1월 2일)은 본래 왕진펑이 4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가족과 재회하는 날이어야 했다. 그러나 이날이 마침내 도래했을 때, 그를 맞이할 것은 남편과 어머니가 잇따라 세상을 떠난 잔혹한 현실이다. 이것이 얼마나 참혹한 타격이 될지 짐작할 수 있다.

4. 억울한 사건 만든 자들, 책임 피할 수 없어

억울하고 잘못된 사건은 결코 한 사람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정, 나아가 한 가문 전체를 파괴한다. 26년간 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박해는 셀 수 없이 많은 억울한 사건과 가정 파탄의 비극을 만들어냈다.

박해가 발생한 초기부터 왕진펑의 가족들은 줄곧 합법적으로 권리를 보호하며 이 억울한 사건을 막기 위해 노력해왔다. 특히 항소 단계에서 왕진펑의 직계 가족 10여 명이 연명으로 2심 법원에 ‘공개 개정 신청서’와 ‘강제 조치 변경 신청서’ 두 가지 중요한 법률 문서를 제출했다.

‘공개 개정 신청서’에서 그들은 엄숙히 강조했다. “사건 처리 책임은 종신 책임제이니, 관련 인원들이 법에 따라 사건을 처리하기를 바라며, 이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책임이다.”

‘강제 조치 변경 신청서’에서도 명확히 지적했다. “귀 법원이 1심 사건 자료 분석을 통해 왕진펑이 기소된 죄명과 전혀 관계가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법률의 존엄을 수호하고, 더 큰 피해를 피하며, 미래에 있을 수 있는 사법 배상 및 관련 인원의 책임 추궁을 피하기 위해, 현재 ‘형사소송법’ 제97조에 따라 강제 조치 변경을 신청하며 구금 해제를 요청한다.”

그러나 이 억울한 사건을 만든 공안·검찰·법원 인원과 관련 책임자들은 가족들의 합리적이고 합법적인 요구와 선의의 경고를 묵살했다. 이제 이미 초래된 엄청난 피해와 회복할 수 없는 손실 앞에서, 당신들 중 누가 책임을 회피할 수 있겠는가? 누가 책임 추궁을 피할 수 있겠는가?

박해 관련 책임자:
악의적 고발자(증인): 리칭화(李淸華), 판전바오(樊振標)
선양시 공안국 황구분국 황허 파출소
사건 담당 경찰: 부소장 푸취안(傅全) 경찰번호 116397
자오쓰보(趙思博), 루줘쥔(蘆卓君) 경찰번호 111421
선양시 공안국 황구분국
국보대대장: 류먀오(劉淼) 경찰번호 111999
사건 담당 경찰: 주황딩(朱荒丁) 경찰번호 111660
사건 담당 경찰: 리춘청(李春騁) 경찰번호 111496
선양시 위훙구 검찰원
검찰장: 류웨이(劉巍)
공소인: 퍄오윈징(樸雲晶)
선양시 위훙구 법원
원장: 쑨하오(孫浩) 024-85839996
형사재판정 정장: 거리단(葛莉丹) 024-85839959
주심 판사: 장나이(姜鼐) 휴대전화 17740060115
배심원: 자오제(趙傑), 리잉(李穎)
서기: 샤오팅(肖婷)
위훙구 법률구조센터: 024-85810148
지정 구조 변호사 위자오(於姣): 13898132001
선양시 중급법원
형사3정:
재판장: 바훙옌(巴紅岩) 사무실 전화 024-22763159, 휴대전화 13840046641
재판원: 쿵샹라이(孔祥來) 사무실 전화 024-22763149, 휴대전화 13898883860
재판원: 쑹융정(宋永政) 사무실 전화 024-22763754
법관 조수: 쑨샤오캉(孫曉康) 사무실 전화 024-22763648, 휴대전화 15640566919
재판원: 쑨쓰위(孫思宇)
랴오닝성 제2여자감옥 관련 정보
주소: 랴오닝성 선양시 위훙구 위신로 8호, 우편번호 110145
옥무 공개 전화: 024-31629651, 024-31629306
지휘센터(신고 전화): 024-31629710
접견실: 024-31629308
옥정과: 024-31629646
10감구: 024-31629747, 024-31629746
감옥장: 마샤오(馬驍)
부감옥장: 우치린(吳啟林)
정치위원: 위이(於怡), 왕웨이(王蔚)
감옥 지도부: 위안잉후이(袁英慧)
10감구 감구장: 멍샹위(孟祥玉), 루웨이(盧瑋)
간사: 지쉐치(吉雪琦)
10감구 4소대 소대장: 청시(程熙, 음역)

 

​원문발표: 2026년 1월 15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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