랴오닝성 잉커우시 장쥐셴, 박해로 21년간 정신이상에 시달려

[명혜망](랴오닝성 통신원) 장쥐셴(張菊賢)은 현재 61세이며 랴오닝성 잉커우시(營口市) 다스차오시(大石橋市) 출신으로, 랴오닝성 잉커우 다스차오시 진차오 관리구(金橋管理區) 위린리(育林里)에 거주했었고 다스차오시의 ‘바싼 펌프장(八三泵站)’에서 근무했다. 당시 그녀의 직업은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했고 행복한 가정과 원만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파룬궁 수련

1992년 우주 대법이 중국 대지에 널리 전파됐을 때 사람들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면 좋은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파룬따파가 말하는 진선인(眞·善·忍)의 모든 글자에는 선이 담겨 있고 연공(煉功)은 질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했다. 중공의 역대 정치운동을 겪었던 사람들은 평화와 선량함, 건강을 갈망했다. 그리하여 중국 대륙에는 파룬궁 수련의 열풍이 불었고 불과 몇 년 만에 1억 명 이상이 수련하게 됐다.

수련의 문에 들어선 사람들은 파룬따파가 진정한 수련이며 인류 도덕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오늘날 대법은 사람을 구하고 있고 사람들이 세상에 온 것은 구원받기 위함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느꼈다. 무신론은 중공이 사람을 속이고 파멸시키며 신을 반대하기 위한 목적이며 사람은 신이 창조했기에 신을 믿지 않는 것은 스스로 파멸을 선택하는 것이다. 따라서 파룬따파는 세계 100여 개 국가와 지역에 널리 전파됐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는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파룬따파는 정법이다!

장쥐셴은 1997년에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다. 대법 수련은 그녀의 몸과 마음에 도움을 줬다. 그때 그녀는 30대 초반으로 한창 젊고 아름다웠는데 수련에 들어서자마자 파룬따파의 법리에 매료됐다. 파룬따파를 수련했기 때문에 그녀는 매일 즐겁게 일하고 생활했으며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느꼈다.

중공이 발동한 죄악

하지만 진선인의 이념과 수련자의 급증은 중공의 ‘거짓, 악, 투쟁(假·惡·鬪)’의 유전자를 건드렸다. 장쩌민과 중공은 서로 이용해 진선인을 수련하는 착한 사람들을 미친 듯이 박해하기 시작했고,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중공에 의해 납치, 구타, 구금, 판결, 살해됐다. 전 중공 우두머리 장쩌민은 3개월 안에 파룬궁을 소멸시키겠다고 공언함과 동시에 대법제자에게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를 파탄시키고, 육체를 소멸시킨다’는 집단 몰살의 죄악을 저질렀다. 거짓말에 중독돼 명예와 이익을 위해 박해에 참여한 일부 생명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진선인을 수련하는 착한 사람들을 미친 듯이 박해했고 수련하는 사람들과 그 가족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으며, 온 사회를 암울한 그림자로 뒤덮어 중국을 파멸의 변두리로 몰아넣었고, 심지어 해외로까지 확장돼 세계에 해를 끼쳤다. 더욱 용서할 수 없는 것은 파룬궁수련자의 장기를 산 채로 적출해 폭리를 취하는 이 지구상에 존재한 적 없는 마귀 행위를 벌였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다는 이유만으로 정신이상에 시달려

1999년 ‘7·20’ 중공의 파룬궁 박해 이래 26년 동안 장쥐셴은 단 하루도 평온한 날을 보내지 못했다. 그저 사람들에게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 중공이 선동하는 모든 것은 거짓이며 소중한 중국인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탄압의 거짓말을 들으면 사람의 생명이 소멸될 것이고 신을 반대하는 악의 결과는 갚을 수 없습니다. 파룬따파는 사람을 구하는 대법이며 금생의 사람들은 모두 법을 위해 왔고 대법은 창세주의 은혜이며 짧은 인생에서 하늘로 가는 길을 닦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라는 진상을 알려주려 했기 때문이다.

장쥐셴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이로 인해 중공 인원에게 여러 차례 불법 구금, 세뇌반 감금, 두 차례 노동수용소 강제노동, 강제적인 유랑 생활을 겪었고, 한 차례 불법 판결을 받았다. 다스차오 구류소에서 그녀는 대소변을 강제로 먹는 고문을 당했다. 잉커우 노동수용소에서는 강제 육체노동에 시달렸고 전기봉 고문을 받았다. 마싼자(馬三家) 노동수용소에서는 네 차례 ‘작은 감방’에 감금됐고 두 차례 정신병원으로 보내져 박해받았다. 랴오닝 여자감옥에서는 ‘사형수 침대’에 묶인 채 잔인한 강제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결국 그녀는 박해로 인해 죽기 직전의 상태가 됐다. 감옥경찰은 책임을 지는 것이 두려워 그녀를 가족에게 버리듯 넘겨줬다. 2004년 10월 랴오닝성 여자감옥은 그녀를 흰 침대 시트로 덮어 감옥 병원에서 들것에 실어냈는데 당시 목격자들은 그녀가 이미 죽은 줄 알았다.

'图:被迫害致精神失常的张菊贤'

박해로 정신이상이 된 장쥐셴

그러나 그녀는 기적적으로 살아났지만 그 후로 정신이상이 됐다. 그녀는 길거리를 떠돌며 쓰레기통의 음식으로 허기를 채웠고 사람들이 버린 곰팡이 핀 만두나 빵 등 그녀가 먹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모두 그녀의 식량이 됐다. 일부 수련자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 일부러 좋은 음식을 쓰레기통 옆에 버리기도 했지만, 이것도 그녀의 생활의 질을 바꿀 수 없었다. 그녀는 길에서 노숙하며 손에는 자주 빗자루를 들고 쓰레기통 주변을 매우 깨끗하게 청소하곤 했다. 춘하추동, 혹한과 혹서를 겪으며 그녀는 낡은 슬리퍼와 해진 옷을 자주 입고 다녔다. 어떤 사람이 그녀가 겨울에 얇게 입은 것을 보고 보스덩(波司登) 오리털 패딩을 건네줬는데 그녀는 입어보고 좋다고 말했지만 받기를 거절하며 “이 옷은 내 것이 아니에요. 필요 없어요”라고 했다.

'图:精神失常的张菊贤在街上打扫卫生'

정신이상이 된 장쥐셴이 길거리에서 청소하는 모습

그녀는 사람을 때리거나 욕하지 않고 남에게 폐를 끼치지도 않았다. 그녀의 미친 행동은 매우 기이했지만 뼛속까지 선량함이 배어 있었고 이렇게 미친 상태에서도 좋은 사람이 되려고 했다. 이 모습을 보면 정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파룬따파는 사람의 영혼을 빚어냈고 심법의 구속력은 법률의 시행을 능가한다. 사람들이 대법제자가 물건을 살 때의 경지가 비범하고 싸움, 욕설, 저속한 말을 하는 사람은 대법제자가 아니라고 한다. 파룬따파는 인류 도덕을 회복시킨다!

두 차례 베이징 청원, 두 차례 구금

1999년 7월 22일, 장쥐셴은 뉴스에서 파룬따파를 조작하고 공격하는 내용을 보고 파룬궁을 위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 그녀는 정부에 진상을 명확히 밝히고 대법의 결백과 사부님의 결백을 회복시키려 했다. 베이징에서 그녀는 보름 동안 노숙하며 지내다가 베이징 사복 경찰에게 납치됐고, 현지 파출소 경찰에 의해 끌려가 불법 구금 15일을 당했다.

1999년 9월, 장쥐셴은 다시 파룬궁을 위해 베이징에 청원하러 가서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또다시 진차오 분국 경찰에게 끌려가 불법 구금 15일을 당했다.

세뇌반 납치, 불법 노동수용소 강제노동 2년

1999년 10월, 다스차오 진차오 분국 경찰이 장쥐셴의 집으로 들이닥쳐 수련을 계속할 것인지 물었고 그녀가 “네”라고 답하자 마약재활원에 설치된 세뇌반으로 끌려갔다. 경찰은 그녀의 가족에게 매달 500위안을 내도록 강요했고 한 달이 지나도 풀어주지 않았다. 파룬궁수련자들이 집단으로 단식을 벌인 후에 그녀는 풀려났지만, 풀려난 후에도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밤낮으로 감시당했다.

집에 돌아온 지 8일째 되는 날, 진차오 분국은 지도자와 면담을 한다는 핑계로 그녀를 직접 잉커우 노동수용소로 납치해 불법 강제노동 2년을 시켰다. 그곳에서 그녀는 강제 육체노동에 시달렸고 전기봉 고문을 받았다.

中共酷刑示意图:

중공 고문 재연: 등 뒤 수갑, 전기 충격, 몽둥이 구타, 밟고 차기

2000년 3월, 장쥐셴은 마싼자 노동수용소로 옮겨져 박해받았다. 2001년 1월에 집으로 풀려났다(소외집행).

다시 불법 구금, 강제 이혼 당해

2001년 6월(소외집행 기간), 장쥐셴은 잉커우 노동수용소로 가서 정념을 발하다가 다스차오 구류소에 납치돼 불법 구금 15일을 당한 후에도 석방되지 않았다. 그녀는 단식으로 항의한 후에 풀려났고, 이 기간에 한 차례 병원으로 끌려가 강제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장쥐셴이 집에 돌아온 후 남편은 압력하에 이혼을 요구했다. 이혼한 다음 날, 장쥐셴은 속아서 구류소에 감금됐다. 그녀는 단식으로 항의했다.

불법 노동수용소 강제노동 3년, 다시 마싼자 노동수용소로 이송

2001년 8월 22일, 장쥐셴은 첫 번째 불법 노동수용소 강제노동 기간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도 또다시 불법 노동수용소 강제노동 3년을 선고받고 두 번째로 마싼자 노동수용소로 보내져 낮이고 밤이고 세뇌 교육을 받으러 끌려 나갔다. 노동수용소에서 그녀는 여러 차례 무조건적인 석방을 요구했다. 외부에 지도자가 시찰 오면 그녀는 상황을 알리러 나갔다. 그래서 후기에 누가 검사하러 오면 감옥경찰은 그녀를 ‘작은 감방’에 가뒀다.

2002년 1월부터 8월까지 장쥐셴은 여러 차례 단식으로 항의했고 3개월 반 동안 단식을 계속해 생명이 위태로웠다. 이 기간에 여러 차례 강제 급식 박해를 받았다. 그녀가 협조하지 않자 초기에는 10여 명의 악인들이 그녀를 누르고 있었고, 후기에는 감옥경찰이 수갑으로 손발을 침대에 고정시키고 가슴을 밧줄로 묶은 후에 강제 음식물 주입을 했다. 이 기간에 그녀의 주입 비용은 (수공료 20위안+관 비용 10위안+옥수수죽 비용 1.5위안)/회로 총 31.5위안/회였다. 병보석이 됐을 때 감옥경찰이 그녀의 어머니에게 강제로 1,400위안을 요구했다. 이 기간에 그녀는 강제 수액 주사도 맞았다. 강제 주입 시 그녀는 여러 차례 그 악인들과 감옥경찰 대장의 모욕을 받았다.

'酷刑示意图:野蛮灌食'

고문 재연: 야만적인 강제 음식 주입

불법 노동수용소 강제노동 기간에 장쥐셴은 네 차례 ‘작은 감방’에 갇혔고 24시간 내내 수갑으로 손발을 침대에 고정당하고 가슴을 밧줄로 묶인 채 앉아 있어야 했으며, 아침저녁으로 한 번씩만 화장실에 갈 수 있었다. 이런 식으로 가장 길게는 보름 동안 수갑에 묶여 있었고, 후기에는 손발이 고정된 철제 의자에 갇혀 하루 24시간 갇혀 지냈다. 한번은 그녀가 인권이 없다고 크게 외치자 두 명의 악독한 감옥경찰 대장이 몰래 작은 감방으로 끌고 가 두 개의 전기봉으로 그녀를 지지며 “이것이 바로 인권이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두 차례 정신병원으로 보내져 박해받았다. 2002년 8월에 ‘병원 외 보증’을 받았지만, 한 달간 휴가를 준다고 통지받았다.

구류소에서 대소변 강제 주입, 불법 판결 3년

2002년 8월 병원 외 치료 후에도 장쥐셴은 끈질기게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렸다. 2002년 9월 말, 장쥐셴은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칭화(靑花) 분국 경찰에게 납치돼 다스차오시 구류소에 감금됐는데 그녀가 박해에 저항하며 단식하는 동안 감옥경찰 왕다산(王大山)은 죄수들에게 그녀에게 대소변을 강제로 먹이도록 명령했다. 같은 해 10월, 장쥐셴은 다스차오시 구치소로 옮겨졌다.

불법 판결 3년, 감옥에서 잔혹한 고문당해

2002년 12월 27일, 현지 법원(다스차오시 법원일 것으로 추정)은 경찰이 장쥐셴의 몸에서 진상 소책자 24권을 찾아냈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불법 징역 3년을 선고했다.

2004년 6월 중순, 장쥐셴은 랴오닝성 여자감옥 제3대대에서 감옥경찰 궈하이옌(郭海燕), 자오슈메이(趙秀梅)에게 잔혹한 고문을 당한 후 병원으로 옮겨졌다. 감옥 위생 병원의 왕니나(王妮娜)는 감옥 의사와 죄수들에게 장쥐셴을 ‘C형 간염’을 앓는 형사범과 단독으로 작은 방에 가두고 그녀의 사지를 특수 제작된 강철 침대(‘사형수 침대’)에 묶도록 명령했는데, 사지는 네 개의 나무 막대기처럼 굳어졌다. 장쥐셴은 박해에 저항하며 단식했고 감옥 병원으로 보내져 박해를 받았다. 감시하는 바오자(包夾, 2인 1조 감시) 죄수 주치룽(朱啟榮)과 리지룽(李繼榮, 잉커우 사람)은 사형수 침대에 고정된 장쥐셴에게 강제로 음식을 주입했다. 장쥐셴은 시종일관 사악한 무리에게 굴복하지 않고 자주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죄수 주치룽은 종이 부채 자루의 철사 끝(두꺼운 철사에 나무판이 꽂힌 부분)으로 장쥐셴의 입을 힘껏 내리쳤다.

감옥경찰 궈하이옌, 자오슈메이의 지시하에 죄수 주치룽, 리지룽은 장쥐셴을 극도로 잔혹하게 고문했다. 그녀의 입은 접착테이프로 봉해졌고, 머리는 솜 천으로 단단히 감겨 묶여서 두꺼웠으며 눈 두 개와 코 하나만 노출됐다. 그곳은 뜨거운 여름이었는데 장쥐셴의 노출된 신체 부위는 온통 퍼렇고 보랏빛 멍이 들었다.

장쥐셴에게 ‘음식 주입’ 튜브를 삽입한 사람은 전문 교육을 받지 않은 죄수였고, 죄수는 감으로 아무렇게나 꽂았으며 하루에 여러 번 꽂았다. 장쥐셴의 콧구멍은 헐었고, 다음에는 입으로 꽂았는데 결국 목구멍도 헐어 튜브를 빼면 피가 묻어 나왔다. 감옥 의사는 혼잣말로 “그녀는 며칠 못 살 것 같다”고 말했다.

강요받은 한 죄수는 “장쥐셴의 콧구멍이 헐었고, 목구멍이 헐었고, 위장도 헐었습니다”라고 말했다. 다른 강요받은 죄수는 장쥐셴의 머리카락이 모두 뽑혔고, 입술도 주치룽이 접이식 부채로 때려 심하게 부어 입을 벌릴 수조차 없게 된 것을 봤다.

‘파룬따파하오’의 외침

2004년 8월 중순, 장쥐셴은 고문에 시달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병원은 제3대대에 장쥐셴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알렸다. 자오슈메이가 와서 복도 의자에 앉아(방 안의 냄새가 역해서) 그녀를 향해 큰 소리로 “언제 죽을 거냐? 죽을 옷은 이미 싸놨으니 바로 너를 서천(西天)으로 보낼 수 있다! 할 말이 있으면 어서 말해라!”라고 소리쳤다. 주치룽이 장쥐셴의 입에 붙은 테이프를 찢어냈고, 그녀는 온 힘을 다해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정법입니다!”, “파룬궁수련자는 좋은 사람입니다!”, “파룬궁수련자를 박해하지 마세요!”라고 외쳤다. 이것은 5년 동안, 1999년 ‘7·20’부터 2004년까지 그녀가 구류소에서 세뇌반, 노동수용소를 거쳐 판결을 받으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주고자 했던 진심 어린 외침이었다. 천지를 놀라게 하고 귀신을 울리는 소리였다! 자오슈메이는 격노하여 “너 빨리 죽어버려!”라고 크게 소리치며 자리를 떴다. 주치룽은 장쥐셴을 또 한 번 잔혹하게 고문했다.

2004년 10월 어느 날 밤, 장쥐셴은 흰 침대 시트에 덮여 병원에서 들것에 실려 나갔고, 이 때문에 장쥐셴이 감옥에서 이송 중 사망했다는 소문이 퍼지게 됐다.

장쥐셴은 가족에게 인계된 후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하지만 그녀는 박해로 인해 정신이상이 됐고 정상인의 정신을 잃었으며 행복했던 가정과 사람들이 부러워하던 직장을 잃었다(공직에서 해고). 중공의 무한한 박해는 그녀의 생존권을 박탈했다. 집에 돌아온 후 어머니와 함께 살았지만, 정신이상으로 인해 친척의 충고를 전혀 듣지 못했기에 길거리에서 노숙하고 잔반을 주워 먹는 일이 발생했다. 어머니와 수년 동안 함께 살았지만 어머니 집이 철거된 후로 최근 몇 년간 어머니의 행방은 알 수 없고(상황 불명) 현재는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

염원과 마음의 소리

장쥐셴은 1999년 ‘7·20’ 이후 지금까지 단 하루도 평온한 날을 보내지 못했고 26년이 지났다. 그녀의 인생은 사람들에게 중공이 미친 듯이 저지른 하늘을 찌르는 죄악을 증언하고 있다. 우리는 60대 초반인 그녀가 매일 건강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그녀가 지나온 모습을 보면 한때 사람들 중의 엘리트였고 한때 행복한 가정도 있었지만, 거짓을 폭로하고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위해 구금되고 박해받아 정상적인 정신을 잃었다. 우리 모두 선량함을 보살피고, 목소리를 높여 선량한 사람들이 반드시 정(正)과 사(邪)를 분별하고 진상을 이해하며 사악한 당, 단, 대 조직에서 탈퇴해 악한 무리와 어울리지 않고 광명으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원문발표: 2025년 11월 3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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