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공에 수차례 감금 및 고문 당한 다칭시 왕스린, 억울하게 세상 떠나

[명혜망](헤이룽장성 통신원 보도) 다칭(大慶)시 룽펑(龍鳳)구 파룬궁수련자 왕스린(王士林)은 신념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중공(중국공산당) 요원들에게 수차례 납치, 감금, 강제노동, 괴롭힘 등을 당했고, 심한 구타,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강제 음식물 주입), 바닥 고리에 묶이는 등 고문 학대를 당해 4년 넘게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게 됐으며, 2023년 1월 23일 향년 77세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왕스린은 1996년 여름부터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당시 그는 요통, 잦은 감기, 위통, 고지혈증 등을 앓고 있었으나 파룬궁 수련 후 치료하지 않고도 신기하게 나았다. 왕스린은 또 술, 담배 등 나쁜 습관을 잇달아 끊었고, ‘진선인(眞·善·忍-진실·선량·인내)’의 기준에 따라 자신에게 좋은 사람이 되도록 요구해 사상 경지가 승화됐으며, 관용하고 선량하며 남을 돕기를 즐거워하고 이익을 가볍게 보게 됐는데, 주운 금목걸이를 잃어버린 주인에게 돌려준 적도 있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장쩌민(江澤民) 깡패 집단이 광적으로 파룬궁을 박해한 후 왕스린은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그는 다섯 번 납치, 불법 감금됐고 심한 구타를 당했으며, 두 차례나 잔인하게 대(大)자로 바닥 고리에 묶여 고문을 당해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왕스린은 생전에 “그 고통은 지금도 감히 회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고통스러웠어요”라고 말했다.

다음은 왕스린이 중공에게 박해당한 사실에 대한 간략한 서술이다.

2000년 6월 20일, 왕스린은 룽펑구 창첸(廠前) 거리 공원에서 연공하다가 룽펑 공안국 경찰에게 납치돼 룽펑 창시(廠西)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그 기간 왕스린은 감방 우두머리에게 화장실 관련 학대와 주먹질을 당해 눈에서 별이 보일 정도로 맞았다. 정법위 서기 리쉐펑(李雪峰)은 왕스린 가족에게 보석금 5~6천 위안을 갈취하고 돌려주지 않았다.

2003년 4월 24일, 왕스린은 여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가 도청돼 사복 경찰의 미행을 당했다. 여동생이 다 본 진상 자료를 왕스린에게 돌려줄 때 사복 경찰에게 발각됐다. 오후에 담당 경찰 옌청펑(閆成峰) 등 경찰 4명이 왕스린 집에 들이닥쳐 불법 가택수색을 했고, 대법서적, 대법 사부님 설법 녹음테이프와 법상을 강탈했으며, 홑옷을 입은 왕스린을 납치해 15일간 불법 구류했다. 초봄의 동북 지역은 날씨가 풀렸다 추웠다 했는데 구치소 감방 안은 더욱 뼈저리게 추워서 왕스린은 얼어서 두통과 어지럼증을 겪었다.

2005년 12월 11일, 왕스린은 자무쓰(佳木斯)시에서 아이 뒷바라지를 하던 중 쑹장(松江)향 신민(新民)촌에 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쑹장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되고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다. 파출소에서 왕스린은 소장 옌훙빈(閆宏斌)에게 욕설과 심한 구타를 당했고, 2005년 12월 12일 자무쓰 구치소로 납치돼 불법 감금됐다. 왕스린은 단식으로 박해를 저지했는데 3일째 되던 날, 장(張)씨 성을 가진 감옥경찰이 죄수를 사주해 그를 대(大)자로 침상에 못 박듯 묶어놓아 몸이 당겨져 극도로 고통스러웠다. 왕스린은 감옥경찰에게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고문을 당했다. 한번은 감옥경찰이 그에게 소금물을 많이 주입해 목구멍이 불이 나는 것처럼 타들어가게 했다. 악인은 또 악취가 나는 음식물 주입 튜브를 식도와 위장에 반복적으로 넣었다 뺐다 하며 왕스린을 고문했다. 왕스린의 식도와 위장은 뒤집히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왕스린은 20여 일간 잔혹한 고문을 당해 혈압이 오르고 신체가 허약해졌다.

酷刑演示:野蛮灌食

고문 재연: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2005년 12월 31일, 왕스린은 자무쓰 노동수용소로 납치됐다. 그는 몸이 좋지 않아 노동수용소에서 수용을 거부했다. 경찰은 불법적으로 뒷배를 이용해 강제로 노동수용소에 왕스린을 남겼다. 왕스린은 노동수용소에서 60여 일간 박해당하다가 생명이 위독해지자 노동수용소 측은 그제야 그를 석방했다.

2006년 6월 3일 저녁, 왕스린은 자무쓰 바오웨이(保衛) 파출소 담당 경찰 웨야원(岳亞文)에게 다시 자무쓰 구치소로 납치됐다. 그는 단식으로 항의하다가 다시 대(大)자로 바닥 고리에 묶여 15일간 잔인하게 고문을 당했다. 왕스린은 매일 조금도 움직일 수 없어 고통 속에서 시달렸다. 이 기간 장씨 성의 소장은 극악무도하게 모든 창문을 열어 온종일 비가 오고 축축한 찬 바람이 홑옷만 입은 왕스린의 몸에 불어 닥치게 해서 그를 덜덜 떨게 했다. 왕스린은 웨야원에게 불법 강제노동 1년을 처분받았고, ‘610 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천완유(陳萬友)는 왕스린에게 불법 강제노동 3년을 처분했다. 왕스린은 다시 자무쓰 노동수용소로 납치됐다. 그가 계속 단식하며 박해를 반대하자 지도원 궈강(郭鋼)은 그에게 식사를 강요했으나, 그는 확고하게 타협하지 않았고 다시 박해를 당해 생명이 위험해졌다. 5일 후 자무쓰 노동수용소는 그를 석방했다.

中共酷刑示意图:毒打

중공 고문 예시도: 심한 구타

2007년 1월 16일, 60대인 왕스린은 미산(密山)시 솽성(雙勝)향에 가서 진상을 알리다가 악인의 무고를 당해 현지 파출소 리창룽(李長龍)이 인솔한 4~5명의 국경수비대 초병에게 폭력적으로 납치됐다. 그들은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찼는데 왕스린의 이빨이 모두 흔들렸고, 며칠 안 되어 윗니는 5개, 아랫니는 1개만 남고 다 빠졌으며, 온몸은 맞아 멍이 들고 상처투성이였다. 미산시 공안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중대장 리강(李鋼)은 왕스린의 MP3, 전자책, 호신부(護身符), 진상 자료 몇 부, ‘9평 공산당(九評共産黨)’ 한 권과 CD 한 세트를 강탈한 후 왕스린을 구치소로 보내 2개월간 불법 감금했다.

왕스린은 구치소에 감금된 기간 단식으로 박해를 반대하다가 야만적인 음식물 주입 고문을 당했고, 감방 우두머리에게 학대당했으며 일용품과 새 이불을 강제로 빼앗겼다. 엄동설한에 왕스린은 매일 밤 얇아서 훤히 비치는 찢어진 이불만 덮어 얼어서 잠을 잘 수 없었고 매일 추위에 떨었다. 왕스린은 박해당해 온몸에 힘이 없고 매우 허약해져 생명이 위험해질 때가 되어서야 석방됐다.

2017년 9월, 왕스린은 악의 우두머리 장쩌민을 고소했다는 이유로 룽펑구 둥광(東光) 분국 경찰에게 여러 차례 각종 핑계로 괴롭힘을 당했다.

2018년 11월 1일, 중공에게 수차례 박해당한 독거노인 왕스린은 대소변 실금, 언어 장애,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가족에 의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2018년 11월 9일, 룽펑구 둥광 분국 경찰이 왕스린의 집에 들이닥쳐 납치를 시도했다가 그가 입원한 사실을 알게 되자, 경찰은 또 인성이라곤 없이 병원까지 가서 괴롭히며 확인했고, 왕스린의 집 열쇠를 빼앗아 불법 가택수색을 하여 그의 모든 대법서적과 물품을 남김없이 강탈했다. 그 후 왕스린의 신체 증상은 더욱 심각해져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

4년여 후인 2023년 1월 23일(설 다음 날), 장기간 중공에게 심신을 고문과 유린당한 왕스린은 향년 77세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원문발표: 2025년 11월 28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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