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둥성 산터우시 중급법원 서기 셰춘펑, 억울하게 사망

[명혜망](광둥성 통신원) 광둥성 산터우시 파룬궁수련자 셰춘펑(謝純鋒)은 1996년 중산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산터우시 중급법원 형사2정 서기로 근무했다. 그는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정신병원에 감금돼 독약 주사와 독극물 주입 박해를 당했다. 또한 여러 차례 구치소에 감금돼 구타와 동형(凍刑, 얼리는 고문) 박해를 당했다. 그는 두 차례 불법적인 강제노동(합계 3년)을 당해 전기충격 등 각종 혹형 박해를 받았다. 그는 8년간 어쩔 수 없이 타향을 떠돌아야 했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장기간 감시와 가택방문 협박 등 박해를 당하다가 2025년 9월 18일 향년 52세로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셰춘펑이 세상을 떠난 그날 밤, 산터우 지역에는 하루 밤낮으로 특대 폭우가 쏟아졌는데,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가 지극히 억울하게 죽어 하늘도 슬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셰춘펑은 산터우시 룽후구 와이싸진 펑중촌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배움을 좋아했으며 품행과 학업이 우수했다. 고등학교는 산터우 명문인 청하이 중고등학교에 다녔고 1992년도 우수 졸업생이었으며, 1996년 중산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학사 학위를 취득한 후 산터우시 중급법원 형사2정에 서기로 취직했다. 1997년 어느 날, 셰춘펑은 서점에서 책을 사다가 우연히 서가에 있는 ‘전법륜(轉法輪)’을 펼쳐보았다. 그는 책 속에서 말하는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더 좋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법리에 탄복했고, 마음속으로 이것이 보서(寶書)이며 책에서 말하는 법리가 천고에 만나기 어려운 고덕(高德) 대법이라고 인정해, 이때부터 파룬따파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짧은 기간 연공을 거쳐 그를 다년간 괴롭히던 비염 등 고질병도 씻은 듯이 사라졌는데, 이는 그가 수련하는 믿음을 더욱 굳게 했다.

1999년 7월 20일 중공 악당은 장쩌민의 조종 하에 전국적인 힘을 기울여 파룬따파에 대한 전면적인 박해를 뻔뻔스럽게 일으켰고, 전국의 모든 방송국, 라디오, 신문은 온갖 날조 수단으로 파룬궁과 파룬궁 창시자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을 먹칠하고 비방하고 모함했다. 파룬따파의 아름다움을 실증하고 대법 사부님의 결백함을 실증하기 위해, 셰춘펑은 여러 차례 베이징으로 가거나 현지 공개 장소에서 대법을 실증했고, 이로 인해 장기간 중공 악당의 비인간적인 박해를 당하다가 결국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다음은 셰춘펑이 박해당한 간략한 경과이며, 자세한 내용은 명혜망 2010년 5월 5일 ‘산터우시 법원 서기 셰춘펑이 받은 잔혹한 박해’라는 글에 있다.

1. 산터우 대학교 정신병원서 9개월간 비인간적 고문 당해

1999년 8월 1일, 셰춘펑은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가부좌하고 연공하다가 톈안먼 광장 경찰에게 톈안먼 공안분국 파출소로 납치됐다. 이후 소속 직장인 산터우시 중급법원에 의해 법원으로 끌려와 불법적으로 연금된 채 세뇌 박해를 당했는데, 거의 모든 법원 직원이 강제로 그 일에 참여하게 됐다. 9월, 당시 중공 산터우시 당위원회의 사주 하에 산터우시 중급법원 당시 원장 좡다쥔과 원장 보조 린쿤츠는 셰춘펑 가족의 강력한 항의를 무시하고 셰춘펑을 산터우 대학교 정신병원으로 납치해 감금하고 고문했다.

산터우 대학교 정신병원에 감금된 당일 밤, 셰춘펑은 손발이 침대에 묶여 꼬박 하룻밤 동안 고정됐고, 강제로 독약 주사를 맞고 독극물을 주입당했다. 이로 인해 신체에 심각한 이상 반응이 나타났는데 목을 스스로 제어할 수 없어 머리가 왼쪽으로 돌아가 비뚤어졌고, 다른 사람이 힘을 써서 머리를 바로 잡아주면 또다시 왼쪽으로 돌아가 비뚤어졌으며, 아울러 머리가 어지럽고 붓고 눈이 노랗게 되고 혼미해 잠만 자려는 등 증상이 동반됐다.

이후 가족의 항의와 사회 양심 인사들의 압력으로 병원 의료진은 책임질 것이 두려워 약물 투여를 중단했다. 셰춘펑이 정신병원에서 꼬박 9개월간 고문을 당한 후, 사회 양심 인사들의 질의에 산터우시 중급법원 박해 집행자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꼈고, 셰춘펑은 법원 사람들에 의해 정신병원에서 법원으로 돌아왔다. 법원이 중공 악당의 박해 정책을 집행한 것을 은폐하기 위해 산터우 중급법원은 셰춘펑에게 사직을 강요했다.

2. 첫 번째 불법 강제노동 1년

2000년 10월 어느 날 아침 6시, 날이 아직 밝지 않았을 때 셰춘펑은 홀로 산터우 청하이 와이싸 잉빈로 입구의 한 버려진 폐시장 안에서 가부좌하고 연공했다. 와이싸 파출소 당시 지도원 린광취가 직접 현장에 와서 사진을 찍고 셰춘펑을 와이싸 파출소로 납치했다. 산터우와 청하이의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은 셰춘펑에게 ‘사회 질서 교란’이라는 날조된 죄명을 뒤집어씌워 그에게 불법 강제노동 1년(광둥 싼수이 노동수용소)을 처분하고 고압적인 세뇌를 가해 신앙과 양심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3. 베이징 다싱구 구치소에서 1년에 걸친 비인간적 고문 당해

2001년 9월 말, 셰춘펑은 다시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가서 홀로 구호를 외치며 대법을 실증했다. 베이징시 톈안먼 공안분국에 불법 납치된 후 베이징시 다싱구 모 파출소로 이송됐다. 진짜 이름을 대라고 강요하기 위해 파출소는 강한 전압의 전기봉으로 그를 감전시켰다. 3일 후 베이징 다싱구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는데 꼬박 1년 동안 감금됐다.

酷刑演示:

전기봉 충격 고문 시연

베이징시 다싱구 구치소 기간에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경찰은 그의 진짜 이름을 알아내기 위해 늘 그에게 주먹질하고 발길질했다. 2001년 음력 12월, 베이징시 다싱구 국보 저우(周) 주임과 런(任) 탐장은 그를 다싱구 교외 모 농장 내 세뇌반으로 납치해 고문하며 진짜 이름을 캐물었다. 겨울철 가장 추운 칠흑 같은 밤 12시에 베이징 국보 경찰은 셰춘펑의 옷을 다 벗기고 팬티만 남긴 채 맨발로 눈밭 위로 강제로 끌고 가서 수차례 눈밭에 넘어뜨리며 이름을 대라고 강요했고, 꽁꽁 언 연못의 얼음 위로 끌고 가서 30분 넘게 얼렸다. 또한 만약 얼어 죽으면 신문에 그가 주화입마돼 자살했다고 보도하면 그만이라고 위협하고 비웃었다. 다싱구 구치소 기간에 대법을 실증했다는 이유로 그는 또 구치소 경찰에 의해 무거운 족쇄가 꼬박 6개월간 채워졌다.

4. 두 번째 불법 강제노동

2002년 10월, 셰춘펑은 베이징에서 산터우 ‘610’과 산터우시 중급법원에 의해 현지로 송환돼 청하이 구치소에 거의 5개월간 불법 감금됐다. 구치소의 무리한 요구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소장 진잉에게 테이프로 입이 봉해진 뒤 일체형 수갑과 족쇄로 ‘쭝쯔(粽子, 찹쌀떡)’ 모양처럼 묶여 꼬박 일주일간 채워졌다. 감금 기간 산터우와 청하이 ‘610’은 모두 그에게 자백을 강요했다.

청하이 구치소에서 5개월간 박해당한 후 셰춘펑은 다시 광둥 싼수이 노동수용소 악의 소굴로 불법 이송됐다. 그곳에서 셰춘펑은 신앙을 견지하고 대법을 실증해 경찰에 의해 10일간 독방에 갇혔고 독방 감금 기간 다음과 같은 잔혹한 박해를 당했다. 첫 번째 전기충격 고문: 약 10명의 경찰에게 폭력과 모욕을 당했고 경찰이 초강력 전기봉 2개로 5분 넘게 연속 충격을 가했으며 동시에 사타구니, 허리 뒷부분을 전기 충격했다. 두 번째 전기충격 고문: 경찰 5명이 고압 전기봉 3개로 충격을 가했는데 연속 1시간 넘게 전기가 나갈 때까지 지속했다. 생식기를 제외하고 전신 부위를 전부 지졌고 전기충격 과정 중에 물을 끼얹었다. 세 번째와 네 번째도 계속해서 전기봉 3개로 전기충격 고문을 했는데 매번 30분 넘게 했다.

2003년 5월 어느 날 아침 7시 점호 시간에 공개적으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쳤다는 이유로 독방에 보내져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했는데, 경찰 추(邱) 씨, 궈(郭) 씨, 허(何) 씨 등 3명에게 띠로 손발이 묶인 채 고압 전기봉 3개로 전기충격 고문을 당했고 연속 30분 넘게 전기충격을 당했다.

5. 8년간 타향 유랑, 온 가족 잇따른 박해로 가정 파탄

2003년 9월 말, 산터우시 중급법원 법원 경찰이 셰춘펑을 광둥 싼수이 노동수용소에서 현지로 데려온 후, 또 산터우 ‘610’에 의해 직접 세뇌반으로 보내져 정신적 고문을 당했는데 기간은 3개월에 달했다.

2004년 설 며칠 전, 각종 괴롭힘과 박해를 견딜 수 없어 셰춘펑은 어쩔 수 없이 타향을 떠돌았고, 2012년까지 꼬박 8년 동안 집이 있어도 돌아가지 못했는데, 그 기간 겪은 각종 고난과 괴로움은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다.

셰춘펑은 원래 행복하고 따뜻한 가정이 있었다. 어머니와 형은 의류점을 경영했고, 자신은 산터우 중급법원에 재직했으며, 여동생은 광저우에서 번역 업무에 종사했다. 아버지 외에 나머지 4명은 모두 파룬따파를 수련해 심신이 모두 혜택을 입었고 온 가족이 화기애애했다.

그러나 1999년 7월 중공이 파룬궁에 대해 광적인 박해를 시작한 이후, 셰춘펑 일가는 이때부터 집안이 편안한 날이 없었고 결국 박해로 가정이 파괴되고 사람이 사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안국, ‘610’ 및 촌위원회의 끊임없는 괴롭힘과 협박을 받았다. 어머니 차이위창은 여러 차례 납치, 감금됐고 여러 차례 세뇌반에 갇혀 박해당했으며, 2011년 불법적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고, 2020년 12월부터 2024년 6월까지 불법적으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형 셰춘저는 불법 강제노동 2년을 당했고 싼수이 노동수용소에서 구사일생으로 박해당했다. 여동생은 광저우 차터우(여성) 노동수용소에 불법 감금돼 심신에 고문을 당했는데, 중공의 양심과 신앙에 대한 광적인 박해와 일가족에 대한 멸절적인 유린은 그녀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 그녀가 다년간 이 풍비박산 난 집으로 감히 돌아오지 못하게 했다.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는 아버지는 끝없는 위협과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2003년 1월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자세한 내용은 명혜망 2020년 12월 26일 보도 ‘일가족 잇따라 박해, 산터우시 차이위창 다시 납치돼’ 참조)

셰춘펑이 귀가한 후 장기간 감시, 미행, 가택방문 협박 등 박해를 당했다. 신체와 정신에 심각한 상처를 입어 2015년부터 10년간 반복적으로 구토하고 음식을 먹지 못하는 등 이상 증상이 나타났고(중공 악당이 국민을 박해하는 사악한 수단에는 최저선이 없기에, 그가 박해당하는 과정 중에 약물 중독을 당해 독성이 장기간 만성적으로 발작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음), 불행히도 2025년 9월 18일 억울하게 세상을 떠났다.

셰춘펑은 파룬따파에 대한 신앙을 견지하고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중공 악당에게 무도한 혹형 박해를 당해 결국 가정이 파괴되고 본인은 사망했다! 그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것은 중공 악당이 국민을 박해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신앙에 대한 중공 악당의 공격, 좋은 사람에 대한 박해, 도덕에 대한 파괴, 법률에 대한 유린은 중공 악당의 반(反)인류, 반신불(反神佛), 반천반지(反天反地)의 사교(邪敎) 깡패 본질을 더욱 폭로했다.

 

​원문발표: 2025년 11월 1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1/19/502696.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1/19/5026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