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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시 난강구 법원, 파룬궁수련자 47명에 최소 부당한 판결

[명혜망](종합보도) 명혜망 보도 통계에 따르면,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哈爾濱)시 난강(南崗)구 법원은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 악당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이후부터 2018년까지 파룬궁수련자 최소 47명에게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 2018년부터 파룬궁수련자 사건은 모두 중공 상급 법원 지정 관할로 이관됐으며, 난강구 사건은 다오리(道裏)구 법원에서 심리하고 있다.

난강구 법원의 부당한 판결 형기는 3년에서 15년까지 다양했으며, 이 중 3명은 불법 구금 중 박해로 사망했다. 1015년 형을 받은 수련자는 10명, 59년 형은 14명, 4~4년 6개월은 10명, 3년 형은 5명이며, 나머지 8명은 형기를 확인할 수 없었다.

1. 3명, 부당한 판결 후 감옥에서 박해로 사망

1) 하얼빈공업대 교사 왕다위안, 난강구 법원서 8년 형 받고 폭행으로 사망

왕다위안(王大源)은 남성으로 당시 36세, 하얼빈 출신으로 생전 하얼빈공업대학교 컴퓨터과학기술학원 교사였다. 2002년 11월 경찰에 납치돼 가택수색을 당한 뒤 몇 달간 구금됐고, 하얼빈 난강구 법원에서 8년 형의 부당한 판결을 받아 하얼빈 제1감옥에 수감됐다. 난강구 법원 형사재판정(전화: 451-82704734)은 기자에게 2003년 기록에서 왕다위안 사건을 확인했으며 담당자는 청서창(程壽昌)이라고 밝혔다.

2004년 4월 2일, 감옥경찰들은 왕다위안에게 파룬궁 비난문을 쓰게 하려고 교대로 구타하며 하루 종일 세워두고 점심도 주지 않았다. 끊임없는 폭행 속에 4월 3일 왕다위안은 어쩔 수 없이 양심에 반하는 이른바 ‘비난문’을 썼다. 그러나 곧 후회한 그는 4월 4일 강제로 썼던 비난문을 찢어버렸다. 감옥경찰들은 성과 보고와 포상을 기대했으나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가자 더욱 잔혹하게 폭행하고 고문했다. 결국 왕다위안은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게 됐고, 감옥경찰들은 그를 복도에서 기어다니게 한 뒤 창고에 던져버렸다. 4월 5일 왕다위안은 이미 거의 숨이 끊어질 지경이었는데도 감옥경찰들은 강제 노동을 시켰다. 점심 무렵 또 한 차례 폭행을 당한 뒤 왕다위안은 숨졌다. 법의학 감정 결과 두개골 골절과 두개강 내 대량 출혈, 손가락 골절, 두 다리 멍과 부종, 온몸 상처가 확인됐다.

2) 위전이, 난강구 법원서 4년 형 받고 박해로 사망

위전이(於振翼)는 남성으로 당시 28세 하얼빈시 파룬궁수련자였다. 1999년 8월 하얼빈시 난강 분국 경찰에 납치돼 현금 7천 위안과 휴대폰 한 대를 빼앗겼다. 같은 해 9월 19일 다시 납치돼 하얼빈시 공안국으로 넘겨져 한 호텔에 불법 구금됐다. 경찰은 압수한 현금 중 약 5천 위안을 떼어 난강 공안분국과 난강 검찰원, 난강구 법원에 넘겼다. 2001년 9월 위전이는 난강구 법원에서 4년의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

2002년 4월 초 위전이는 병세가 심각한 상태에서 하얼빈 제3감옥으로 이감돼 박해를 받았다. 4월 25일 낮 하얼빈 제3감옥에서 만자(萬家) 노동수용소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그전까지는 의식이 또렷했다. 그러나 같은 날 밤 만자병원에서 하얼빈의과대학 제2병원으로 옮겨졌을 때 위전이는 이미 극도로 위험한 상태였고 사지는 경련을 일으키며 의식도 혼미했다. 병원 검사 결과 대뇌가 심한 구타를 당한 흔적과 가슴 멍, 신체 대부분의 내부 손상, 앞니 한 대 파손이 확인됐다. 4월 29일 병원은 더 이상 치료를 거부했고, 위전이는 가족에게 돌아갔다가 5월 14일 억울하게 숨졌다.

의식을 회복했을 때 위전이 증언에 따르면 그는 만자병원 반나절 동안 네다섯 명에게 대뇌에 정체불명 액체를 주입당했다고 한다. 또한 4월 25일 이전 위전이 가족은 여러 차례 처분보류를 요청했으나 난강 공안분국이 모두 거부했는데, 4월 25일부터 29일 사이 갑자기 난강 공안분국이 처분보류를 허락해 그 의도가 의심스럽다.

3) 하얼빈 파룬궁수련자 멍훙, 박해로 사망

멍훙(孟紅)은 1941년 4월 22일 출생했다. 2012년 5월 22일 오전 11시, 멍훙은 하얼빈시에서 파룬궁 박해 진상 자료를 배포하던 중 납치돼 불법 가택수색을 당했다. 이후 난강구 법원에서 7년의 부당한 판결을 받았지만 신체검사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아 처분보류로 집에 있었다.

2013년 3월 27일, 멍훙은 하얼빈시 난강구 법원 재판장 원리룽(文莉榮)과 하얼빈시 난강구 공안분국에 의해 자택에서 연행돼 헤이룽장 여자감옥으로 끌려갔다. 2019년 7월 26일, 멍훙은 헤이룽장 여자감옥 수감 중 박해로 사망했다.

2. 난강구 법원서 10~15년 부당한 판결 받은 10명

1) 하얼빈사범대 교사 류샤오룽, 2001년 10월 25일 난강구 법원서 부당한 15년형 판결받아

류샤오룽(劉小龍)은 남성이며 박사 학위를 가진 하얼빈사범대학교 생물학과 교사였다. 진상 자료를 인쇄하고 베이징으로 청원을 갔다가 2000년 11월 23일 베이징시 공안국 펑타이(豐臺) 분국에 불법 체포돼 펑타이 구치소에 16일간 불법 구금됐다. 2000년 12월 9일 하얼빈시 공안국[추정으로는 난강 국보(國保, 국내안전보위국)]이 그를 하얼빈으로 압송했고, 2001년 4월 10일 난강구 구치소로 이감됐다. 2001년 10월 25일 난강구 법원에서 징역 15년의 부당한 판결을 받았고 항소는 부당하게 기각됐다. 2002년 2월 27일 하얼빈감옥으로 불법 이감돼 구금됐으며, 이후 무단장(牡丹江) 감옥으로 옮겨져 계속 박해를 받았다.

2) 하얼빈공업대 항공우주학원 광전자 기술 전공 박사 한리, 난강구 법원서 부당한 15년형 판결받아

한리(韓利)는 남성으로 당시 34세, 박사 학위를 가진 하얼빈공업대학교 항공우주학원 광전자 기술 전공 박사였다. 한리는 진상 자료를 인쇄하고 베이징으로 가서 대법이 좋다는 것을 증명했다는 이유로 2000년 11월 23일 베이징시 공안국 펑타이 분국에 불법 체포돼 펑타이 구치소에 구금됐다. 이후 하얼빈으로 압송됐고, 2001년 10월 25일 난강구 법원에서 징역 15년의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 2002년 2월 27일 하얼빈감옥으로 이감돼 구금됐다.

3) 하얼빈사범대 예술학원 학부생 장쯔둥, 난강구 법원서 부당한 12년형 판결받아

장쯔둥(張子棟)은 남성으로 원래 하얼빈사범대학교 예술학원 학부 재학생이었다. 베이징에 가서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좋다는 것을 알렸다는 이유로 1999년 11월 1일 난강 공안국에 불법 구금돼 15일간 억류됐다. 2000년에는 하얼빈사범대에서 불법으로 학적이 박탈됐다. 같은 해 11월 10일 하얼빈 다오와이(道外)구 공안분국에 불법 체포돼 다오와이 구치소에 구금됐다. 2001년 10월 25일 난강구 법원에서 징역 12년의 부당한 판결을 받았고, 2002년 2월 27일 하얼빈감옥으로 불법 이감돼 수감됐다.

4) 하얼빈사범대 음악학원 학생 류칭웨이, 부당한 징역 12년 판결받아

류칭웨이(劉慶威)는 하얼빈사범대학교 음악학원 98학번 음악학부 학생으로 파룬궁 수련을 꾸준히 이어갔다. 2001년 7월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난강구 법원은 공판을 열어 류칭웨이에게 12년의 억울한 중형을 선고했다. 당시 나이 22세였던 류칭웨이는 중국의 수많은 파룬궁수련자와 마찬가지로 1999년 7월 20일 대법이 박해받기 시작한 이후 장쩌민 일당에게 여러 차례 불법 체포와 잔혹한 박해를 받았다. 그날 난강구 법원 법정에서 류칭웨이는 “저는 대학생입니다. 나쁜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연공 덕분에 몸이 건강해졌고,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했습니다. 저는 잘못한 것이 없고 죄도 없습니다”라고 진술했다. 그러자 법정 부정장 위안취안성(原全生)이 그 자리에서 재판을 휴정한다고 선언했다.

5) 하얼빈공업대 여성 석사 저우차오항, 부당한 10년형 판결받아

저우차오항(周巧航)은 여성으로 하얼빈공업대학교 대학원생이었으며 2001년 졸업해 하얼빈시 신이팡(新一方) 과기 유한회사 기술 책임자로 일했다. 2002년 16차 당대회 기간에 미행을 당해 납치됐고 난강구 법원에서 징역 10년의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 두 차례 항소했지만 모두 기각됐다. 2002년 11월 저우차오항은 비밀리에 관리되던 민가에서 경찰에게 전기 고문, 호랑이 의자, 수면 박탈 등 잔혹한 방법으로 강압 심문을 당했다.

2003년 6월 22일 저우차오항은 하얼빈시 난강구 법원에서 비밀리에 재판을 받았다. 법정에서 저우차오항은 “저는 무죄입니다. 유죄인 것은 법을 집행하며 법을 어기는 당신들입니다. 저는 온몸에 상처가 났는데 왜 진단을 허락하지 않습니까? 왜 그들을 처벌하지 않습니까?”라고 단호히 따졌다. 결국 판사는 스스로 판결문을 읽고 저우차오항에게 10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저우차오항은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에 수감됐다. 저우차오항은 파룬궁 신앙을 포기하지 않아 감옥경찰 둥리화(董立華)가 죄수를 사주해 그녀를 폭행하게 했다. 폭행 후에도 이들은 시인하지 않고 오히려 갖은 핑계로 가족의 면회를 막았다.

6) 관싱타오, 2002년 하얼빈시 난강구 법원서 부당한 10년형 판결받고 2012년 11월 10일 억울한 옥살이 마쳐

관싱타오(關興濤)는 2002년 하얼빈시 난강구 법원에서 징역 10년의 부당한 판결을 받았고 이후 헤이룽장 타이라이(泰來)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2012년 11월 10일에야 억울한 옥살이를 끝냈다. 2002년 관싱타오는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납치됐으며 가족과 닝안(寧安)시 공안에 의해 잡혀 돌아와 하이린(海林)시 차이허(柴河) 파출소에 구금됐다. 관싱타오는 1999년에도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헤이룽장성 하이린시 차이허진 파출소에서 체포돼 파출소에서 체벌과 구타를 당한 뒤 구치소에 불법 구금돼 15일간 억류됐고 4천 위안이 넘는 벌금을 강탈당했다. 이후 2년 동안 하이린시 차이허 파출소는 관싱타오를 여러 차례 괴롭히고 협박했다.

7) 파룬궁수련자 장치, 하얼빈시 시멘트공장 노동자, 부당한 10년형 판결받아

파룬궁수련자 장치(張奇, 慎)는 남성으로 하얼빈시 시멘트공장 노동자였다. 2003년 9월 26일 오전 난강구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고 징역 10년의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 장치는 법정에서 경찰에게 구타당하고 각종 고문을 받아 두 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게 됐음을 폭로했다.

이미 2000년 2월 장치는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시멘트공장 파출소에 불법 구금돼 15일간 억류됐다. 같은 해 11월 다시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시멘트공장 파출소 경찰 장진성(張金生)에게 체포돼 하얼빈으로 끌려와 불법으로 1년간 강제노동형을 선고받아 창린쯔(長林子) 노동수용소에 수감됐다. 강제노동기간이 끝나 집에 돌아온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하얼빈시 타이핑 공안분국과 시멘트공장 파출소 경찰 정옌빈(鄭雁濱), 그리고 거주지 주민위원회 담당자 등이 장치의 집을 불법 수색했다.

장치는 결국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2003년 2월 진상을 알지 못하는 사람의 밀고로 다시 하얼빈시 공안국에 불법 체포됐다.

같은 시기 하얼빈시 룽장(龍江) 전기공장에 거주하던 류리쥐안(劉麗娟)과 정춘메이(鄭春梅)도 함께 납치됐다. 이들은 2003년 9월 26일 오전 난강구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으며 류리쥐안은 징역 4년, 정춘메이는 징역 3년의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

8) 파룬궁수련자 마슈화·류춘샤·자오훙우·추칭펀·정원셩·쉬멍란, 장쩌민 일당 거짓말 폭로하고 파룬궁 박해 진상 알려

파룬궁수련자 마슈화(馬淑華), 류춘샤(劉春霞), 자오훙우(趙紅武), 추칭펀(初慶芬), 정원셩(鄭文生), 쉬멍란(徐夢蘭)은 장쩌민 일당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파룬궁이 박해받는 진상을 알린 이유로 2002년 10월 9일 하얼빈시 난강구 법원에서 비밀리에 불법 재판을 받아 억울한 중형을 선고받았다. 형기는 각각 10년, 8년, 7년, 7년, 4년이며, 쉬멍란은 고문으로 몇 차례 기절했고 부당한 판결의 형기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담당 재판장은 위청허(於成河), 배석 판사는 리겅디(李耿狄)와 청서창(程壽昌)이었다.

자오훙우, 마슈화, 쉬멍란, 류춘샤, 추칭펀, 정원셩은 다칭(大慶)시로 가는 길에 납치됐다.

9) 파룬궁수련자 쑨즈펀, 당시 37세 여성, 징역 11년 억울한 중형

파룬궁수련자 쑨즈펀(孫志芬)은 여성으로 당시 37세 정도였다. 2002년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가 경찰에 의해 만자 노동수용소로 보내져 2년간 박해를 받았다. 만기 2개월을 남겨두고 다른 자료 배포처가 발각되면서 일반인에게 밀고돼 다시 하얼빈시 난강구 법원에서 징역 11년의 억울한 중형을 선고받았다. 2004년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에 수감돼 체벌을 당했다. 쑨즈펀에게는 어린 아이가 있었고, 노부친이 손자를 돌보며 생계를 꾸려야 했지만 두 사람 모두 생계 수단이 전혀 없었다.

10) 하얼빈 파룬궁수련자 왕쥔펑, 징역 11년 부당한 판결, 가족도 수만 위안 갈취당해

왕쥔펑(王俊峰)은 1966년 6월생으로 원래 하얼빈시 전력국 송전·공급 전기구역 탐선원으로 근무했다. 2003년 4월 25일 왕쥔펑은 택시를 운전하던 중 하얼빈시 다오리구 공안분국 국보대대에 납치됐다. 이후 그는 머리에 검은 두건이 씌워진 채 비밀리에 강제로 이송돼 강북 지역의 작은 암실로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그는 그날 밤 단 한숨도 자지 못했으며 경찰은 그의 발가락을 전선으로 묶어 전류를 흘려보내는 등 온몸에 전기 고문을 가했다. 이로 인해 왕쥔펑의 등에는 지금도 큰 흉터가 남아 있다.

3. 난강구 법원서 징역 5~9년 부당한 판결 받은 14명

1) 하얼빈 파룬궁수련자 리펑, 부당한 9년형 받아

하얼빈 파룬궁수련자 리펑(李鳳)은 2008년 12월 30일 하얼빈시 난강구 법원에서 징역 9년의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 박해에 가담한 인물로는 재판장 옌샤오솽(閆曉霜), 재판원 청서창(程壽昌), 배심원 쉬자오(徐釗), 난강 검찰원 검사 왕바오룽(王寶龍)이 있었다.

리펑은 여성으로 당시 47세였으며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전에는 심각한 요추 디스크로 거동이 불편해 다른 사람의 돌봄이 필요했다. 연공을 시작한 뒤 건강을 되찾았다. 2000년 12월에도 리펑은 대법을 위해 바른말을 하겠다는 뜻으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2000년 12월 5일 하얼빈시 난강분국에 의해 불법 형사 구금됐다가 3개월 뒤 석방됐다.

2008년 8월 21일 리펑은 자택에서 운영하던 식료품점에서 납치돼 모함을 당했다. 난강구 법원은 같은 해 11월 26일 리펑에 대한 불법 재판을 진행했다. 리펑의 가족은 헤이룽장 자오뎬(焦點) 변호사사무소 전임 대표 변호사 웨이량위에(韋良月)를 선임해 리펑을 변호하도록 했다.

리펑 가족은 하얼빈시 중급법원에 항소했고, 웨이량위에 변호사는 항소심에서도 계속 변호를 맡았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장 장광란(張廣蘭)은 리펑을 상징적으로 한 차례 면담한 뒤 1심 판결을 그대로 유지하며 징역 9년의 부당한 판결을 내려버렸다. 2009년 4월 1일 파룬궁수련자 리펑은 헤이룽장 여자감옥으로 이송됐다.

한편 웨이량위에 변호사는 파룬궁수련자에게 무죄 변호를 했다가 2009년 변호사 연례 심사에서 헤이룽장성 사법청이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지시를 따르라는 압박을 받아 대표직을 사임하지 않으면 변호사 사무소 전체의 등록을 취소하겠다는 협박을 받고 결국 대표직을 사임해야 했다.

2) 난강구 법원, 자리칭에 8년·위화즈에 4년 부당한 판결

2012년 8월 3일 금요일 오전 7시 50분, 원래 하얼빈시 난강구 법원에서 자리칭(賈立清)과 위화즈(於華芝)에 대한 불법 재판이 열릴 예정이었다. 그러나 재판은 비밀리에 하얼빈 교외 왕강(王崗)진 법정으로 옮겨져 진행됐고 가족의 방청도 허락되지 않았다. 자리칭은 박해로 뼈만 남아 몸무게가 약 35kg에 불과했다. 위화즈는 박해로 두 눈이 실명됐고, 혈압은 200 이상으로 치솟았으며 심장병 등으로 일상생활조차 스스로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법정에 끌려 나왔다.

자리칭은 여성으로 당시 55세였으며 하얼빈시 의과대학 부속 제2병원에서 거의 40년간 근무했다. 2011년 12월 9일 하얼빈 공안국은 자리칭 가족에게 ‘체포통지서’를 발부했고, 2012년 2월 3일 하얼빈 난강 공안분국은 검찰원에게 불법 기소를 청구했으며, 2월 14일 난강구 법원에 사건을 이첩했다. 주심 판사는 페이궈후이(裴國輝)였다. 자리칭은 징역 8년의 부당한 판결을, 위화즈는 징역 4년의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

2011년 11월 5일 오후 2시경 하얼빈시 쑹베이(松北) 공안분국 경찰은 하얼빈 의과대학 제2병원에서 근무 중이던 자리칭과 병원에서 일하던 파룬궁수련자 위화즈를 또다시 납치했다. 경찰은 두 사람의 집 열쇠를 강제로 빼앗아 병원 보위과 직원과 함께 각각의 집으로 가 불법 가택수색을 벌였다. 경찰은 자리칭을 하얼빈 제2구치소(일명 야쯔취엔)에 불법 구금했다. 다음 날인 11월 6일 아침 가족이 쑹베이 공안분국을 찾아가 확인한 결과, 이번 사건의 책임자는 당시 하얼빈시 공안국 국장이었던 런루이천(任銳忱), 쑹베이 공안분국 국장 웨이번루(魏本祿), 쑹베이 공안분국 치안대대장 왕리(王利), 경찰 왕진룽(王金龍) 등이었다. 웨이번루는 이 사건은 주로 왕리가 담당했다고 밝혔고, 그날 하얼빈시 공안국 국장 런루이천 본인도 쑹베이 공안분국에 직접 와서 이 사건을 챙겼다고 왕리가 전했다.

3) 2010년 8월 3일 관위친 8년·장슈리 7년 부당한 판결

2010년 8월 3일 관위친(關玉琴)과 장슈리(張秀麗)는 하얼빈시 난강구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다. 관위친은 징역 8년, 장슈리는 징역 7년의 부당한 판결을 선고받았다. 박해에 가담한 자로는 난강구 법원 주심 판사 류셴쥔(劉顯軍)이 있었고, 이번 사건은 하얼빈시 난강구 ‘610’ 책임자 쑹리즈우(宋立洲)가 배후에서 조종했으며, 난강분국 국보대 왕리고(王立國), 황야오빈(黃耀斌), 장쉬민(張緒民)이 수사를 맡았다. 공소는 난강구 검찰원 검사 왕바오룽이 담당했다.

2010년 4월 23일 관위친과 장슈리는 하얼빈시 난강분국에 의해 납치돼 가택수색과 구금까지 당했다. 2010년 9월 15일 관위친은 난강구 법원 판사 류셴쥔에게 징역 8년의 부당한 판결을 받고 하얼빈시 중급법원에 항소했다. 항소심 주심 판사 장싱화(張興華)는 2010년 10월 13일 사건 기록이 중급법원에 도착한 이후에도 가족과 변호인을 계속 피하며 만남을 거부했고 야오톄빙(姚鐵兵) 판사와 공모해 가족과 변호인을 기만·회피하며 기록 열람과 접견을 방해했다.

불법 1심 판결은 9월 15일에 내려졌지만, 가족은 9월 29일 전화로 문의한 뒤에야 알게 됐다. 1심 판결 직후 난강구 ‘610’은 난강구 재정국을 압박해 관위친의 급여를 10월부터 정지시켰다. 2010년 12월 1일 관위친은 야쯔취엔 구치소에서 헤이룽장성 여자감옥으로 이송돼 박해를 받았다.

4) 2012년 9월 하얼빈시 난강구 법원 비밀 재판으로 쑹잉제 8년 부당한 판결

2012년 9월 하얼빈시 난강구 법원은 비밀리에 재판을 열어 쑹잉제(宋英傑)에게 징역 8년의 부당한 판결을 선고했다. 파룬궁수련자 쑹잉제는 당시 43세로 하얼빈 의과대학 부속 제3병원(종양병원) 중환자실 간호사였다. 2012년 4월 28일 하얼빈 의과대학 제3병원 측은 ‘노동절 대체휴일 근무 조정’을 빌미로 쑹잉제를 병원으로 불러낸 뒤 난강구 랴오양(遼陽) 파출소 경찰 류웨이(劉威) 등과 공모해 쑹잉제를 납치했다.

5) 위위메이, 하얼빈시 난강구 파룬궁수련자, 난강구 법원서 징역 5년 부당한 판결

위위메이(於玉梅)는 하얼빈시 난강구 파룬궁수련자로, 난강구 법원에서 징역 5년의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 2002년 12월 위위메이는 헤이룽장성 여자감옥 9지대에 끌려가 비인간적인 고문을 당했다.

2002년 4월 22일 위위메이는 화산(華山) 단지 시장에서 장을 보던 중 경찰에게 납치됐다. 당시 경찰은 시민들이 항의할까 두려워 “인신매매범을 잡았다!”라고 소리치며 납치했다. 그날 밤 경찰은 위위메이의 집을 수색해 통장, 현금, 가전제품, 집문서, 금은 장신구 등 귀중품을 강제로 빼앗았다.

6) 2008년 5월 초 난강구 법원 판사 류옌화, 치펑밍에 징역 5년 부당한 판결

2008년 5월 초 하얼빈시 난강구 법원 판사 류옌화(劉豔華)는 형식적인 ‘공개 재판’을 열고 치펑밍(齊鳳鳴)에게 징역 5년의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 2008년 11월 5일 치펑밍은 후란(呼蘭) 감옥 집결대에 끌려갔고, 경찰은 그를 ‘전향’시키겠다며 3일 밤낮으로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고 물도 못 마시게 했다. 2009년 1월 치펑밍은 다시 다칭 감옥으로 이송돼 박해가 이어졌다.

치펑밍은 남성으로 1941년 10월생이며 하얼빈시 산소제조기 총공장에서 근무하던 퇴직 엔지니어였다. 2008년 2월 4일 치펑밍은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 진상을 알지 못하는 이웃 장중유(姜忠有)에게 밀고돼 하시(哈西) 파출소 경찰 류카이(劉凱) 일당에게 아들과 함께 납치됐다. 2008년 4월 1일 하얼빈시 난강구 검찰원 검사 왕바오룽은 ‘610’의 지시에 따라 난강구 법원에 기소장을 제출했다. 하얼빈시 ‘610’은 공안·검찰·법원을 조종해 치펑밍에게 징역 5년의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

7) 하얼빈시 난강구 법원은 ‘610’의 조종 아래 사익을 위해 불법으로 리즈강에게 징역 5년의 부당한 판결 내려

리즈강(栗志剛)은 남성으로 1971년 3월생이다. 2009년 2월 28일 리즈강은 자택에서 문을 부수고 들이닥친 하얼빈시 ‘610’ 소속 경찰 리수신(李樹新)과 난강구 국보대 경찰 왕리고, 허시동(郝希東), 허싱루(和興路) 파출소 경찰 마량(馬良), 리즈제(李志傑) 등에게 납치됐다. 2009년 10월 30일 오전 하얼빈시 난강구 법원은 난강구 법원에서 재판을 연다고 거짓 공지했으나, 리즈강의 부모 등이 제시간에 도착했을 때 이미 재판은 교외 왕강진 법정으로 비밀리에 옮겨져 불법 진행됐다. 박해에 가담한 자들은 재판장 옌샤오솽, 쑹청장(宋成章), 법정장 둥싱둥(董興東), 부정장 위청허, 난강구 검찰원 검사 왕바오룽 등이었다.

8) 쑨슈민, 하얼빈철도국 공정총회사 공정부 소속 엔지니어, 징역 5년 부당한 판결

쑨슈민(孫秀敏)은 하얼빈철도국 공정총회사 공정부 소속으로 공사 검수를 총괄하던 엔지니어였다. 2005년 5월 12일 쑨슈민은 파룬궁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하다가 하얼빈시 화위안(花園) 파출소에 납치됐다. 이후 난강구 법원에서 비공개로 재판이 진행돼 징역 5년의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 재판은 공개되지 않았고 가족에게도 통지되지 않았으며 방청도 허용되지 않았다. 2005년 8월 31일 쑨슈민은 헤이룽장 여자감옥으로 이송돼 박해를 받았다.

4. 난강구 법원서 징역 4년 6개월~3년 부당한 판결 받은 28명

1) 파룬궁수련자 류훙타오, 하얼빈시 시멘트공장 소성 2차 전기공, 징역 3년 부당한 판결

류훙타오(劉洪濤)는 남성으로 하얼빈시 시멘트공장 소속 소성 2차 전기공이었다. 2003년 9월 26일 난강구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아 징역 3년의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 류훙타오는 이미 2000년 2월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시멘트공장 파출소에 의해 불법 구금돼 15일간 억류됐고, 같은 해 12월에도 다시 청원하러 갔다가 시멘트공장 파출소 경찰 장진성에게 체포돼 하얼빈으로 압송된 뒤 1년간 강제노동형을 받아 창린쯔 노동수용소에 수감됐다. 2003년 2월 류훙타오는 밀고로 다시 불법 체포돼 하얼빈 제2구치소(공안국 제7처)에 갇혀 극심한 고문을 당했고 두 차례나 생명이 위독한 상황에 처했다.

2) 하얼빈 대법수련자 왕서우쥔, 난강구 법원서 징역 4년 부당한 판결

왕서우쥔(王守俊)은 하얼빈 대법수련자로 2007년 3월 23일 금요일 오전 갑자기 경찰에 의해 납치됐다. 경찰은 왕서우쥔의 집에서 대량의 대법 자료와 컴퓨터, 프린터 등 물품을 빼앗았고 현금 1만 위안도 강탈했다. 2007년 8월 난강구 법원은 비밀리에 재판을 열어 왕서우쥔에게 징역 4년의 부당한 판결을 선고했다. 왕서우쥔은 처음에는 후란 감옥에 수감됐다가 다시 다칭 감옥으로 이감돼 구금됐다.

3) 자오시둥, 원 헤이룽장TV 러시아어 프로그램 진행자이자 기자, 징역 4년 부당한 판결

자오시둥(趙喜東)은 원래 헤이룽장TV 러시아어 프로그램 진행자이자 기자였으며 파룬궁수련자였다. 2011년 12월 31일 자오시둥은 또다시 중공에 의해 납치됐다. 2012년 11월 8일 자오시둥의 아내는 변호사로부터 전화를 받고 남편이 하얼빈시 난강구 법원에서 징역 4년의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항소했지만 원심이 유지됐다. 2013년 2월 27일 자오시둥은 후란 감옥으로 이송돼 박해를 받았다. 이미 2006년 10월 27일에도 자오시둥은 불법 재판으로 징역 4년 형을 받고 다칭 감옥에 수감된 바 있다.

자오시둥을 박해한 주요 책임자는 하얼빈 샹팡(香坊)구 국보대대 왕뎬빈(王殿斌), 리윈민(李運民) 등이었고, 난강구 법원에서는 재판장 자오신(趙鑫), 재판원 위리(余莉)·페이궈후이, 서기 인옌링(殷豔玲)이 참여했다. 하얼빈시 중급법원에서는 재판장 둥스제(董世傑), 재판원 장광란, 대리 재판원 펑장(馮江), 서기 리신동(李新東)이 가담했다.

4) 2012년 8월 22일 샹샤오옌, 난강구 법원서 징역 3년 부당한 판결

2012년 8월 22일 하얼빈시 난강구 법원은 샹샤오옌(向曉燕)에 대한 불법 재판을 열고 징역 3년의 부당한 판결을 선고했다. 이후 샹샤오옌은 헤이룽장 여자감옥 9지대에 수감돼 박해를 받았다. 담당 판사는 자오신이었다.

샹샤오옌은 헤이룽장성 컴퓨터센터 엔지니어였다. 2011년 12월 21일 퇴근해 막 집에 들어서려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사복 경찰 여러 명이 그녀를 납치하고 불법 가택수색을 했다. 남편이 귀가하고 나서야 이들은 자신들이 난강구 전철역 치안대 소속 장쉬민, 류시웨이(劉希威) 등이었음을 밝혔다.

5) 2009년 8월 23일 장슈전, 난강구 법원서 징역 4년 부당한 판결

2009년 8월 23일 장슈전(張淑珍)은 하얼빈시 난강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하다 납치된 뒤 난강구 법원에서 징역 4년의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

장슈전은 1950년생으로 아청(阿城)구 계전기공장 퇴직 직원이었다. 2012년 11월 22일 헤이룽장 여자감옥에서 풀려나 집에 돌아올 당시 허리가 거의 45도 굽고 뼈만 앙상해 마치 70~80세 노인처럼 보였다. 그러나 파룬따파 덕분에 다시 건강을 되찾았다.

6) 장쥐룽, 하얼빈시 둥리구 싱광공장 노동자, 난강구 법원서 징역 3년 부당한 판결

장쥐룽(張巨龍)은 당시 43세로 하얼빈시 둥리(動力)구 싱광(星光)공장 노동자였으며 파룬궁수련자였다. 장쥐룽은 난강구 법원에서 징역 3년의 부당한 판결을 받고 2005년 3월 7일 하얼빈 신젠(新建) 감옥 집결대로 이송됐다.

2004년 10월 14일 장쥐룽은 난강구 칭빈(清濱) 단지에서 진상 자료를 붙이다 밀고돼 난강분국 경찰에 불법 체포됐다. 경찰은 장쥐룽을 심하게 구타해 중상을 입혔고, 싱광공장 책임자에게서 치료비 명목으로 3천 위안을 뜯어갔다. 감옥으로 압송되기 전 장쥐룽은 가까스로 70대 부모와 마지막으로 만났고 부모에게 “저는 남에게 피해를 준 적 없습니다. 제가 한 일은 사람을 구한 일입니다. 저는 죄가 없습니다. 죄가 있는 것은 그들입니다. 저 때문에 걱정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했다.

7) 류원루, 난강구 법원서 징역 4년 부당한 판결, 재판장 바오훙이 가족에게 수만 위안 뇌물 받고도 형량 그대로 유지

류원루(劉文茹)는 파룬궁 진상 DVD를 배포하다 밀고돼 2003년 12월 18일 난강분국 경찰 쑨젠민(孫建民, 또는 ‘寧’)에게 납치됐다. 쑨젠민은 류원루를 위협·협박하며 자백을 강요했고, 경찰 두 명이 함께 고문에 가담했다. 류원루는 쑨젠민에게 맞아 입가에서 피가 나고 흉부 통증으로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다. 2004년 4월 30일 난강구 법원은 류원루에게 징역 4년의 부당한 판결을 내렸고, 재판장 바오훙(鮑紅)은 류원루 가족에게 수만 위안의 뇌물을 받고도 형량을 그대로 유지했다. 2004년 6월 류원루는 헤이룽장 여자감옥으로 이송돼 계속 박해를 받았다.

8. 톈진신, 하얼빈 파룬궁수련자, 난강구 법원서 징역 4년 부당한 판결

톈진신(田金鑫)은 하얼빈 파룬궁수련자로 2000년 8월 난강구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아 징역 4년의 부당한 판결을 받았다. 이후 우다롄츠(五大連池) 융펑(永豐) 감옥에 수감돼 전신에 종기와 옴이 나며 박해를 받았다. 담당 판사는 리겅디, 서기는 ‘바이(白)’ 성을 가진 여성으로 알려졌다. 톈진신[별명 진룽(金龍)]은 2000년부터 2002년 사이에도 여러 차례 납치와 박해를 당했다.

9) 2014년 9월 쑨카이칭·장릴리, 하얼빈사범대 퇴직 직원, 난강구 법원서 각각 징역 4년 6개월·3년 부당한 판결

2014년 9월 하얼빈사범대학교 퇴직 직원 쑨카이칭(孫開清)과 파룬궁수련자 장릴리(張麗麗)는 시민들에게 파룬따파 진상을 알리다 납치됐다. 쑨카이칭은 같은 해 11월 ‘처분보류’로 귀가했으나 2015년 12월 다시 불법 구금됐다. 2015년 12월 16일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난강구 법원은 쑨카이칭과 장릴리를 불법 재판해 쑨카이칭에게 징역 4년 6개월, 장릴리에게 징역 3년의 부당한 판결을 선고했다. 담당 판사는 왕웨이(王煒)였다. 쑨카이칭은 2016년 3월 후란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다.

5. 난강구 법원서 부당한 판결을 받고 형기가 알려지지 않은 8명

1) 2002년 3월 하얼빈시 난강구 법원, 대법수련자 6명에 비밀 불법 재판

2002년 3월 하얼빈시 난강구 법원은 대법수련자 왕위광(王玉光), 리신(李歆), 장중(張忠), 리하이(李海), 황민(黃敏), 쑹타오(宋濤)에 대해 비밀리에 불법 재판을 진행했다. 이들에 대한 형기는 확인되지 않았다.

2) 마전중, 당시 71세 하얼빈시 난강구 파룬궁수련자, 2016년 12월 7일 밤 자택서 납치

마전중(馬振仲)은 당시 71세로 하얼빈시 난강구 파룬궁수련자였다. 2016년 12월 7일 밤 자택에서 난강구 국보대대 경찰에 납치돼 집에 있던 대법 서적과 리훙쯔 사부님 법상까지 전부 빼앗겼다. 가족이 난강 국보대대를 찾아갔을 때는 경찰 채(蔡) 씨가 “당신 아버지는 8일 뒤에 체포 승인 보고를 올릴 예정이고, 일 있으면 연락하겠다”라는 말만 남겼다. 이후 마전중의 사건은 난강구 법원으로 넘어갔다.

난강구 법원 담당 판사: 왕웨이 ☎ 0451-82721842
난강 공안분국 담당 경찰: 채 모씨 ☎ 156368386313

결론

1999년 7월부터 중공 장쩌민 집단이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시작한 이후, 일부 법원 관계자들은 양심을 저버리고 법의 이름을 도용해 선량한 파룬궁수련자들을 모함하며 장쩌민 집단이 중국 법을 짓밟는 도구가 됐고, 장쩌민 피의 빚을 진 집단의 박해를 뒷받침하는 공범이 됐다. 바로 이들 판사의 불법적이고 부당한 판결이 수많은 파룬궁수련자가 중공의 감옥에서 고문으로 불구가 되고 목숨을 잃거나 심지어는 강제 장기적출까지 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특히 불법적인 노동교양 제도가 폐지된 이후, 이러한 불법 판결은 파룬궁수련자들을 박해하는 주요한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으며, 심지어 80세, 90세가 넘는 고령자들조차 중형을 선고받아 감옥에 수감되고 있다. 이렇게 법을 짓밟으며 자행된, 이른바 ‘공소’, ‘재판’, ‘판결’은 사람들의 마음과 도덕, 사회 정의를 심각하게 무너뜨려 오늘날 사회 곳곳에 온갖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사람이 짓는 죄는 하늘이 보고 있다!’ 이러한, 이른바 판사들이 불법(佛法)을 수련하는 사람들에게 저지른 죄악과 선량한 민중에게 저지른 죄악은 모두 하늘에 기록돼 있으며 반드시 하나하나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하얼빈시 난강구 법원 법정장이었던 위안취안성(原全生)은 줄곧 파룬궁 사건을 담당해 최장 형기로 15년, 12년 등 중형을 선고해 왔다. 그러나 위안취안성은 2002년 6월 낮 휴식 시간에 카드놀이를 하던 중 갑자기 복통을 호소했고, 병원 검사에서 간암 판정을 받은 뒤 곧 뼈암으로 번져 40대 젊은 나이에 3개월간 고통 속에 시달리다 숨졌으며, 결국 장쩌민 악당 집단의 박해를 따라간 비참한 사례가 됐다. 또한 하얼빈시 사법국 중공 당조 서기 겸 국장이었던 딩루이(丁銳)는 원 하얼빈시 솽청(雙城)구 법원 원장이었으나 2025년 4월 1일 밤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돌연 사망했고 향년 41세였다.

 

원문발표: 2025년 6월 3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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