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장시성 통신원) 4년의 억울한 형을 선고받은 장시(江西)성 난창(南昌)시 파룬궁수련자 뤄원빈(羅文斌)이 현재 난창감옥 제8감구 제2경찰구역에 불법 구금돼 있다. 그는 진선인(眞·善·忍) 신앙을 굳건히 지키며 감옥 측의 사악한 안배에 협조하지 않고 노예노동을 거부해 극도로 잔혹한 박해를 받고 있다. 2025년 6월 현재 뤄원빈은 이미 5차례 독방에 감금돼 엄격단속 박해를 받았으며, 매번 수개월씩 갇혔다.

소식통에 따르면, 2024년 3월부터 4월 중순까지 감옥경찰이 죄수들을 시켜 뤄원빈을 호랑이 의자에 수갑으로 묶고 헤드폰을 씌운 뒤 테이프로 머리에 고정해 아침 7시부터 다음날 새벽 2시까지 대법을 비방하는 녹음을 강제로 장시간 듣게 했다. 이를 통해 강제 세뇌를 시키고 휴식을 주지 않았으며, 매일 이런 식으로 그를 정신적으로 무너뜨려 신앙을 포기하게 만들려 했다.

동시에 감옥 측은 그에게 배불리 먹을 것을 주지 않아 매 끼니마다 아주 작은 밥덩이 하나만 줬다. 뤄원빈은 굶주려 극도로 말랐고, 심각한 박해로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여름에도 두꺼운 외투를 입어야 했다. 엄격단속 기간에는 죄수들이 그로 하여금 쪼그려 앉는 변기에서 세수하게 하고 그 물을 마시게 하기도 했다.
한때 뤄원빈과 함께 지냈던 죄수는 우려하며 말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 고문하면 그는 죽을 것이다. 아마 그의 가족들은 전혀 모를 것이다. 감옥은 계속 (그를 박해하는 진상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은폐하고 있다. 만약 뤄원빈에게 불상사가 생긴다면, 그것은 분명히 박해로 인한 것이다.”
외계에서 뤄원빈의 상황에 관심을 갖고 난창감옥의 죄행을 폭로하고 책임을 추궁하기를 바란다.
뤄원빈은 1975년 7월생으로 올해 50세이며, 원래 장시성 난창시 칭산후(靑山湖)구 뤄자(羅家)진 제1중학교의 우수 교사였다. 그는 원래 위장병을 앓고 몸이 허약했지만, 1998년 말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하면서 신속히 건강한 몸을 회복했다. 그는 파룬궁의 진선인 표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했고, 타인에게 선하게 대하며 업무에 엄격하고 성실하며 근면했다. 학생들에게 더 많은 사랑과 책임감을 갖고 교육 수준을 높여 학교 교사와 학생들의 인정과 신뢰를 받았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에 대한 광적인 박해를 시작했다. 뤄원빈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신앙을 고수했다는 이유로 잔혹한 박해를 받았으며, 26세에 7년 불법 형을 선고받았다. 현재까지 그는 중공 법원에서 4차례 부당한 판결을 받아 누적 16년 6개월의 억울한 형을 선고받았고, 감옥에서 구사일생의 박해를 받으며 한때 정신이상까지 겪었다.
다음은 뤄원빈이 중공에 박해받은 사실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26세 때 부당하게 7년 형 선고받다
2000년 10월, 뤄원빈은 그가 가르치던 뤄자 제1중학교에서 파룬궁 진상 전단을 배포하다 학교 지도자 후무윈(胡木雲)의 악의적 고발로 뤄자 파출소에 구금돼 심문을 받았다. 그날 밤 뤄원빈은 파출소에서 탈출해 몇 달간 집을 떠나 유랑했다.
2001년 2월, 뤄원빈은 쓰촨(四川)성 잉산(營山)현에서 진상자료를 배포하다 현지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다. 일주일 후 난창시 칭산후 공안분국과 뤄자 파출소에 의해 난창으로 송환돼, 2001년 11월 5일 난창시 시후(西湖)구 법원에서 7년 불법 형을 선고받았다. 2001년 말, 그는 장시 위장(豫章) 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를 받았고, 파룬궁 신앙을 고수하고 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독방에 감금됐다. 독방 감금 기간에 그는 폭행, 공중에 매달린 채 등 뒤로 수갑 채우기, 장시간 벽을 향한 벌 서기, 감옥 규정 암기와 군사훈련 강요, 관을 삽입한 강제 급식, 허리 구부리기, 초강도 노예노동 등의 고문을 받았다.
강제 ‘전향’ 기간에 교도관은 7~8명의 형사범을 시켜 뤄원빈을 감시하여 잠들지 못하게 하고, 강제로 파룬궁을 비방하는 사악한 영상을 시청하게 하며, 벽을 보고 서 있기, 양심에 반하는 전향문 작성 등을 강요했다. 불복종 시에는 폭행을 당했고, 심지어 바닥에 억지로 눕혀 옷걸이를 꼬아 만든 다중 철사로 머리를 세게 때렸다. 며칠 밤낮 끊임없이 고문을 받아 뤄원빈은 의식이 흐려지고 정신이 혼미해졌다.
뤄원빈은 6차례 독방에 감금되고 5차례 감옥 강제 세뇌반에 끌려가 심신에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체중이 100근(60kg) 남짓에서 90근(54kg) 남짓으로 줄었다. 2008년 2월 26일, 그는 정확히 7년 만에 위장 감옥에서 석방돼 집으로 돌아왔다.
35세 때 부당하게 4년 반 형 선고받다
2009년 9월 17일, 뤄원빈이 칭윈푸구 쉬자팡 전봇대에 분필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썼을 때, 쉬자팡(徐家坊)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난창시 제2구치소에 불법 구금됐고, 후에 4년 6개월 형을 불법 선고받아 난창감옥으로 끌려갔다. 난창감옥 엄관대는 매우 사악한 곳으로, 교도관이 죄수들을 지시해 파룬궁수련자를 무자비하게 고문했다. 뤄원빈은 한때 제5수감구 대대장 뤄둥핑(羅東平)에 의해 엄관대에 감금돼 낮에는 벽을 보며 감옥 규칙을 외웠고, 밤 11시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30분마다 점호를 해 밤새 잠을 잘 수 없었다. 또한 그는 24시간 ‘매달아 수갑 채우기’ 고문을 당해 잠을 잘 수 없었고, 대변을 볼 때를 제외하고는 물 마시기, 식사, 소변도 누군가 ‘도와주었다’. 이렇게 그는 사흘 밤낮을 매달려 수족이 마비됐다.
2009년 9월 17일 새벽, 뤄원빈은 난창시 칭윈푸구에 파룬궁 진상자료를 붙이다 순찰경찰에게 납치돼 타쯔차오(塔子橋) 파출소로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두 발이 공중에 매달리고 두 손이 철창에 수갑 채워진 채 묶여 온몸이 창백하고 거의 탈진상태가 됐다. 후에 난창시 제2구치소에 감금됐고, 그가 죄수복 입기를 거부하자 교도관 쩌우런신(鄒任新)은 그에게 형구를 채우는 벌을 내렸고, 죄수들을 시켜 고의적으로 괴롭히고 모욕하며 팔꿈치로 그의 등을 세게 가격하라고 지시했다.
몇 달간 구금 후, 뤄원빈은 시후구 법원에서 4년 반의 불법 형을 선고받았다. 2010년 5월, 그는 난창감옥으로 끌려갔다. 처음에는 초강도 노예노동을 강요받았고, 감시 바오자의 학대와 단속, 벽을 향해 벌 서기를 당했다. 밤에 잠을 자도 전담 감시자가 있었고 심지어 뒤척이기만 해도 심하게 발로 차 깨웠다. 인신안전이 전혀 보장받지 못했고 정상적인 휴식도 취할 수 없었다.
뤄원빈이 자신의 신앙을 굳게 지키며 타협하지 않자 감옥 측의 박해 수단은 더욱 잔혹하고 악랄해졌다. 밤에 단 15분만 자도 감시하는 죄수들이 쇠파이프로 때려 깨웠고, 이러한 행위가 일주일간 지속돼 거의 잠을 자지 못해 심신이 지쳤다. 감옥에서 규정한 고액의 노예 생산과제를 완수하지 못하고 교도관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하자, 그는 사람들 앞에서 구타를 당해 허리가 아파 똑바로 서지도 못했다. 이어 양손이 철문에 묶인 채 몸을 늘리는 시간이 길어지자 수갑이 살을 파고들어 팔이 저리고 아팠다. 이렇게 연속 3~4일간 매달리는 수갑 고문을 당했으며, 참기 어려운 고통과 괴로움에 시달렸다.
난창감옥의 독방은 사람을 고문하는 것을 즐기는 곳으로, 죄수들을 거리낌 없이 박해해 불구자, 정신이상자, 사망자를 만들어냈다. 평소에는 죄수들에게 벽 보고 서 있기, 감옥 규칙 외우기, 대열 걷기를 강요했고, 밤에는 13차례나 침대에서 일으켜 세워 몸을 꼿꼿이 세우고 우렁찬 목소리로 ‘점호’를 시켰다. 거의 밤새 제대로 잠을 잘 수 없었고, 시간이 길어지면 정신이 혼미해진다. 뤄원빈이 이러한 비인간적인 고문에 협조하지 않자 10여 차례 밤낮으로 철문에 수갑 채워지고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 그는 배설을 줄이기 위해 음식 섭취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매번 수갑 채우기는 2~3일 지속됐고, 몇 번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얼굴이 창백해져 거의 혼절했으며, 몇 번은 전신 고열로 39℃ 이상이 돼 의료실로 보내져 치료받기도 했다.
나중에 뤄원빈은 ‘전향반’으로 보내져 10개월간 강제 세뇌를 당했고, 본심에 어긋나는 ‘사상인식’을 쓰도록 강요받았다. 노무대대로 옮겨간 후 다시 독방에 7~8차례 감금돼 총 14개월을 지냈다. 밤낮으로 철문에 매달려 수갑 채워지는 일이 잦았기에 그의 육체와 정신은 극도로 황폐해졌고, 비인간적인 고문은 인간이 견딜 한계를 훨씬 초월했다.
2014년 3월, 뤄원빈은 온갖 고난 끝에 구사일생으로 4년 반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온 그는 감옥에서 정체불명의 약물 독해를 받았다고 의심했다. 자주 의식이 흐려지고 정신이 혼미했으며, 두통, 눈 뒤집기, 멍한 상태, 떨림, 경련, 제어할 수 없는 손발 움직임, 이상한 괴성 지르기, 전신 무력감, 극도의 쇠약 등 증세를 보였다.
위장 감옥과 난창감옥에서 총 11년 6개월의 비인간적 감금과 고문을 겪은 이 한창나이의 청년은 노동능력을 상실해 부모에게 의지해 살아야 했다.
45세에 부당한 1년 형 선고받다
2020년 9월 1일경, 뤄원빈은 난창현 롄탕(蓮塘)진 타청에서 파룬궁 진상자료를 배포하다 난창현 유란향(幽蘭鄉)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돼 난창현 구치소에 구금됐다. 이후 외부와 연락이 두절됐고, 1년 후에야 그가 계속 난창현 구치소에 구금되어 있었으며 재판 없이 비밀리에 현지 법원에서 1년형을 선고받았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2021년 설날, 뤄원빈의 노모가 사고로 넘어져 사망했다. 뤄원빈의 노부는 난창현 구치소에 아들이 노모의 유체에 마지막 작별인사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냉정하게 거절당했다.
뤄원빈이 정신이상과 노동능력을 상실한 상황에서 노부모가 곁을 지키며 그의 삶과 생활을 돌봐주었다. 그러나 노모는 넘어져 돌아가실 때까지 걱정하던 아들을 보지 못해 영원한 한을 남기고 떠났다. 중공의 사악함은 세상에 드물다.
2021년 9월, 뤄원빈은 1년의 불법 형을 마치고 난창현 구치소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반년 후, 그는 다시 납치됐다.
47세에 다시 부당한 4년 형 선고받다
2022년 3월, 뤄원빈은 진상자료를 배포하다 경찰에 납치돼 또다시 소식이 끊어졌다. 2023년 8월이 되어서야 그가 현지 법원에서 4년의 불법 형을 선고받아 장시성 난창감옥으로 끌려가 박해받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뤄원빈은 2026년 3월에 불법 형이 끝날 예정이다. 현재 그는 난창감옥에서 심각한 박해를 받고 있어 생명이 또다시 위태로운 상황이다.
외부에서 뤄원빈의 박해 상황에 관심을 갖고, 정황을 아는 사람들이 난창감옥의 범죄를 더욱 폭로해주기를 바란다.
장시성 난창감옥 주소: 장시성 난창시 경제기술개발구 강구대도 877호, 우편번호 330013 전화: 0791-85269110, 0791-85269093, 0791-85269153 팩스: 0791-85269053 감옥장: 류쥔핑(劉君平, 2025년 검색)
장시성 감옥관리국 주소: 장시성 난창시 고신구 후오쥐대로 188호, 우편번호 330029 전화: 0791-88697324, 0791-88697000, 0791-88697319 국장: 슝성(熊勝, 2024년 5월 29일 임명)
원문발표: 2025년 6월 27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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