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원고를 쓰는 과정 역시 관념을 내려 놓는 과정이다

글/대륙 대법제자

【명혜망 2008년 9월 30일】 명혜망에서 대륙 동수들에게 원고 모집을 한지 이미 5회가 되었지만 나는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나와 우리 지역 대다수 동수들은 이 일에 대해 똑 같은 생각이 있었는데 바로 글을 쓸 줄 모르고 잘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만약 교류회나 토의 같은 것이면 그래도 괜찮다. 원고를 쓸 필요가 없고 방언으로 말해도 좀 자유롭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 보니 이것은 관념이 아닌가? 바로 한 수련생이 말한 것처럼 “우리 매 대법제자마다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하는 과정이 바로 수련과정이며, 모두 한 부의 역사인데 어찌 쓰지 않을 수 있는가?” 수련생이 한 말은 참으로 훌륭하다. 나도 이 방면에 체험이 좀 있어 이를 써내어 원고 쓰기를 어려워하는 동수들과 교류하고자 한다.

몇 년 전 우리 지역에서 정체적으로 노교소에 불법 수감된 동수들을 구출한 적이 있는데 나도 참여했었다. 그때는 정체적으로 바르게 걸었기 때문에 협력이 잘 되었고 결과도 아주 좋았다. 시내에 있던 동수들이 이 일을 듣고 세 번이나 우리 지역에 와서 그 중 몇 명의 참여한 수련생을 찾아 동수들이 어떻게 정체적으로 두려운 마음을 돌파해 정체적으로 협력했는가 하는 과정 그리고 사람마음을 내려놓은 과정을 원고로 써내어 사악을 진섭하고 중생을 구도하는데 대해 정체적인 촉진 작용을 일으키고자 했다.

그 때는 원고 쓰는 일만 제기하면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렵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해서 시내 수련생이 첫 번째로 우리 이곳에 왔을 때 나는 그저 웃어 버렸을 뿐 마음을 움직이지도 않았다. 두 번째 왔을 때는 마음속으로 그런 걸 가지고 시간 낭비할 거면 차라리 가서 진상이나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그 수련생을 만났을 때는 마음속으로 이따위 쓸데없는 말만 하다니 시끄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련생은 이렇게 하는 목적이 자신을 선양하고 자신을 실증하는 것이 아니라 큰 정체가 모두 사부님의 정법노정을 따라가게 하기 위함이라며 끈질기게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생각해 보세요, 사부님께서 한 지역만 잘하는 것을 바라시겠어요 아니면 전반 큰 지역이 모두 잘할 것을 바라시겠어요?” 그의 이 말은 정말로 내 마음속으로 쏙 파고들어왔다. ‘내 생각이 너무 옹졸했구나, 나는 우리 지역밖에 생각하지 못했구나!’ “좋습니다! 그럼 한번 해보지요.”

다른 몇몇 동수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 문장을 써서 저녁 식사 후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나는 사부님 법상 앞에 와서 허스하면서 말씀드렸다. “사부님! 제자는 종래 이 방면에 대한 원고를 써 본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수련생이 이렇게 견지하고 있으니 저는 자신의 관념을 내려놓고 협력하고자 합니다. 만약 제가 하는 것이 옳다면 사부님께서 가지해 주십시오!”

이렇게 하여 붓을 들긴 했지만 반시간이 넘도록 한 글자도 쓰지 못했고 사유도 분명하지 않았다. 생각하고 생각해보니 한 가지 염두가 떠올랐다. ‘우선 한 가지씩 쓰고 나서 다음에 다시 묶어 보자. 아하! 그렇지! 바로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단숨에 한 시간 반의 노력을 거쳐 원고쓰기를 마쳤다. 그런 다음 시내 동수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자 수련생이 말했다. “정말 잘 쓰셨네! 우리 수련인은 원고를 쓸 때 화려한 어휘로 치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대로 쓰면 되니까요.” 저녁 식사 후 여러 동수들이 모두 왔고 모두 원고를 내 놓았다. 글자를 얼마 모르는 한 수련생이 쓴 원고가 놀랍게도 나를 감동시켜 내 얼굴은 온통 눈물 투성이로 되었다. 지금까지도 그 존경스런 수련생이 쓴 문장의 나에 대한 촉동이 여전히 아주 깊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나는 몇몇 동수들에게 어떻게 썼는지 물었다. 나처럼 하지 않았는가고 물었더니 과연 그 중 어떤 동수도 먼저 사부님께 가지를 청하고 아울러 쓸 줄 모르고 잘 쓰지 못한다는 관념을 내려놓았다고 했다.

동수들이여, 나 역시 ‘쓸 줄 모르고 잘 쓰지 못한다’는 것이 관념임을 금방 인식했다! 정신과 물질은 일성(一性)이다. 잘 쓰지 못하고 쓸 줄 모른다는 일념의 결과는 생각만 해도 뻔한 일이다. 잘 쓰지 못하고 쓸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내가 아니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나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이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이끌고 오늘까지 오셨는데 조그마한 감수도 없을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 우리를 아이에 비유한다면 당신을 키워준 어머니에 대해 작은 감수조차 없을 수 있겠는가? 당신에게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도리를 알려준 어머니에 대해 조그마한 이성적인 인식도 없단 말인가?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수련하여 개변되는 이 과정은 바로 우리가 사람으로부터 신으로 걸어가는 과정이다. 또한 관념이 전변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 전변 과정이 바로 대법의 위력이고 사부님의 위덕이다. 그렇다면 이 전변 과정을 써 내는 것은 바로 법을 실증하는 것이며, 사부님을 찬송하는 것이다. ‘쓸 줄 모르고, 잘 쓰지 못한다는 관념을 개변하자! 그것은 우리가 아님을 분명히 가리자. 동수들이여, 지금 당장 붓을 들고 시험 삼아 해보자. 반드시 할 수 있을 것이다!

문장발표 : 2008년 9월 30일
문장분류 : 수련마당
문장위치 : http://minghui.org/mh/articles/2008/9/30/1868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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