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어느 날 밤, 남편과 포륜(抱輪) 연공을 하던 중 발밑의 스펀지 매트가 약간 꺼진 것 같아 발을 움직여 좀 더 편안한 자리를 찾아 서려 했습니다. 순간 머릿속에 ‘안일한 마음’이라는 한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안일한 마음? 왜 이런 생각이 들었을까?’ 문득, 발 딛기가 불편해서 움직였고 편안해지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편안해지려는 것이 바로 안일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까? 수련인으로서 무슨 안일함을 추구한단 말입니까?
연공이 끝난 후 안으로 찾기 시작했습니다. 찾기 전에는 몰랐는데, 찾고 나서야 제게 이렇게나 많은 안일한 마음의 표현이 있었고, 그것이 오랜 시간 지속돼 왔음을 알게 됐습니다.
우선, 법공부와 연공에서 나타났습니다.
남편과 법을 읽을 때 처음에는 가부좌를 하고 허리를 곧게 펴고 바르게 앉아 두 손으로 책을 받쳐 들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늘 끝까지 견디지 못하고 몇 페이지 읽지도 않아 다리를 풀었고, 허리가 구부정한 채 팔꿈치를 무릎에 기대고 한 손으로 책을 들었습니다.
포륜을 하는 과정에서 서 있다가 발밑의 스펀지 매트가 약간 꺼진 느낌이 들면 다른 곳으로 옮겨 서며 좀 더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또 어깨가 시큰거리거나 등이 뻐근하고 발목이 시큰거리면 어깨를 비틀고 발목을 움직이며 긴장을 풀었습니다. 포륜을 마친 후에는 남편과 늘 잠시 쉬었다가 계속해야 했고, 불편함을 참고 이어서 연공하지 못하고 항상 쉬려 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문득 속인들의 화제로 수다를 떨기도 했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제5장 공법을 연마할 때는 늘 처음 세 가지 동작을 생략하고 곧바로 마지막 결인 동작으로 넘어갔습니다. 또한 사부님께서 연공 녹음에서 ‘앉을 수 있는 만큼 오래 앉으라’라고 하셨다는 이유로 당연하다는 듯 30분만 앉아 있었고, 발이 뻐근하고 저리면 바로 다리를 풀어 버리며 고생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법공부와 연공이 끝난 이후에는 단번에 침대에 털썩 누워 즉시 휴대폰을 집어 들고 연예 뉴스를 조금 보며 긴장을 풀려 했습니다. 늘 ‘조금만 보고 10시가 되면 법을 외우자’라고 생각했습니다. 10시가 되면 또 ‘10시 30분까지만 보자’라고 생각했고, 10시 30분이 되면 또 ‘11시까지만 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12시 발정념 시간까지 계속 보게 됐는데, 이때 발정념을 하면 대부분 집중하지 못했고 머릿속은 온통 속인의 생각으로 가득 찼습니다.
다음으로, 발정념에서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어 눈을 뜨고 일어나는 것은 단 한 동작뿐인데도 알람을 여러 개 설정해 두었습니다. 알람 소리에 일찍 깨어 시간을 확인하면 ‘아, 조금 더 잘 수 있겠구나’ 하는 만족감과 안일함을 느꼈습니다. 그러고는 알람을 끄고 다시 누워 잠을 자서 발정념 시간을 놓치기 일쑤였습니다. 아침 발정념은 5시 55분에 시작해야 합니다. 알람을 50분에 맞춰 두고 5분 동안 잠을 깰 시간을 가진 뒤 55분에 시작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안일한 마음의 통제하에 종종 6시까지 누워 있다가 일어났습니다. 설령 일어나서 발정념 자세를 취했더라도 머리는 여전히 매우 멍한 상태였고, 졸거나 다른 엉뚱한 것을 생각하느라 주의력을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아침 발정념이 끝난 이후 또 계속 좀 더 자고 싶어 30분에 알람을 맞춰 두고 일어나 동공(動功)을 연마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30분에 알람이 울리면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이 ‘아이고, 5분만 더 자자’였습니다. 35분에 알람이 다시 울린 후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알람을 껐고, 결국 출근할 시간까지 계속 잤습니다. 깨어난 이후에는 늘 발정념 시간을 놓친 것을 후회하면서도, 자신의 안일한 마음이 교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안일함은 집에 대한 관념에서 나타났습니다.
친정과 시댁 모두 저를 매우 잘 대해주어 저는 집에 대한 의존심이 몹시 컸습니다. 매일 우리집에 발을 들이자마자 드는 첫 번째 생각은 빨리 정리를 마치고 시간을 다그쳐 법공부와 연공을 해야겠다는 것이 아니라, 한숨 돌리며 드디어 쉴 수 있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현관을 들어서는 그 순간 생기는 여유로움과 편안함, 의존심이 마음 깊은 곳에 깊이 뿌리내렸고, 방에 들어가 침대를 보면 눕고 싶었습니다. 누워서 휴대폰을 보지 않으면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어 또 흥미진진하게 휴대폰을 보게 됐습니다. 특히 틱톡에 있는 AI가 생성한 아늑한 오두막 사진을 보면 아주 좋아했습니다. 2~3시간이 마치 한순간처럼 휴대폰 마귀에게 한입에 삼켜졌고, 소중한 시간은 그렇게 낭비됐습니다. 평소 회사 기숙사에서 점심시간에 쉴 때는 mp4로 법공부를 매우 적극적으로 했는데, 집에 돌아와서는 그렇게 좋은 수련 환경에서 오히려 나태해졌습니다. 이제야 ‘집’에 대한 사람의 관념을 아직 철저히 버리지 못했고, 사상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속인의 집을 진정한 집으로 여기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일부 사람은 바로 이곳에 미련을 두고 자신의 집을 잊어버렸다”(전법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간 세상의 집은 우리 수련인의 진정한 집이 아니라, 사부님께서 우리가 인간 세상에서 수련하며 사람을 구하도록 만들어 주신 임시 거처이자 여관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평소 여관에 머물 때 그런 소속감이 있습니까? 그곳이 집처럼 느껴집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평소 법공부를 하면서 이 법 구절을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사부님의 이 법에 대해 단지 ‘표면적으로 아는 것’에 국한됐을 뿐, 행동으로 법에 부합하지 못했습니다. 일단 대법서적을 내려놓으면 불법(佛法)과 생활이 동떨어진 것처럼 여전히 제 방식대로 행동했습니다.
안일한 마음은 수련의 일에서만 저를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속인 생활환경 속에도 그 그림자가 가득하며, 동시에 게으름, 의존심, 미루는 습관, 질투, 원망심 등등의 사람 마음을 강화시킵니다. 예를 들어 직장에서 보고서를 제출할 때, 마감 기한이 될 때까지 차일피일 미루기를 좋아했습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에 책임을 지지 않았고, 새로운 규정과 제도를 배우기 귀찮아했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상사에게 의지해 해결하려 했고, 일을 망치면 상사가 능력이 없다고 원망했습니다. 명절이나 공휴일이 다가오면 휴가 공지에 큰 관심을 보였고, 휴가가 많으면 기뻐하고 적으면 불평했습니다. 일이 조금만 뜻대로 되지 않으면 새로운 일자리로 바꾸려 했고, 업계의 요구가 갈수록 많아진다고 원망했으며, 일이 어렵고 고객의 요구가 많다고 불평했습니다. 동료들이 일을 떠넘기는 것을 싫어하고 중공 악당을 몹시 싫어하고 원망하며 그것이 사회를 어지럽혀 연달아 제 직장 생활을 힘들게 한다고 여겼습니다. 근무 환경을 바꾸면 이런 문제가 없을 거라 여기며 구업(口業)까지 지었습니다. 소셜 미디어에서 남들의 안일하고 편안한 생활을 보면 또 ‘이렇게 편안한 생활이 왜 내 것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수련자니까, 내가 가진 것이 당신들이 가진 것보다 훨씬 낫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수련이라는 이렇게 신성한 일을 안일함과 질투심을 덮는 데 이용했습니다. 주말 아침 눈을 뜨자마자 편안한 자세로 휴대폰을 보았고, 해야 할 일들은 모두 미뤄졌으며, 심지어 이틀간 수련을 멈추고 쉬고 싶어 하기도 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정말 부끄러웠습니다. 안일한 마음은 제 수련 길에서 정말 오랫동안 저를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안으로 찾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문제가 드러났는데, 그것은 바로 타인과 갈등이 발생하거나 자신에게 감정적인 동요가 나타날 때만 자신이 수련인임을 떠올리고 안으로 찾을 생각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질투심, 이익심, 두려움 등 이러한 사람 마음이 가져오는 감정 동요는 비교적 뚜렷하여 보통은 비교적 빨리 의식하고 그것들을 해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안일한 마음은 저에게 있어 따뜻한 물에 개구리를 삶듯 서서히 잠식해 들어왔고, 게다가 법공부와 법 암기가 충분하지 않았으며 시시각각 ‘일마다 대조하여’[홍음-착실한 수련(實修)]를 중시하지 않았기에 이 마음을 소홀히 했습니다.
이 일을 통해 깨달은 것은, 어떤 집착심은 잠시 동안 속인 생활에서 큰 문제를 가져오지 않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 마음 뒤에 숨어 은폐된 채 우리의 수련을 교란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수련인으로서 늘 문제가 발생했는지의 여부에 따라 안으로 찾아선 안 됩니다. 우리는 시시각각의 행동과 사상을, 남 앞이든 뒤든 상관없이 모두 법리의 단속을 받아야 합니다. 때로는 집착심이 반복해서 나타나는 것 때문에 원망하며 ‘이 고비를 지난번에 넘었는데 이번에 왜 또 나타날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제야 알게 됐습니다. 고생하고 힘든 것을 두려워하며 단번에 영원한 편안함을 누리려는 망상을 품었고, 단 한 번 수련 고비를 넘기고 영원히 집착심의 교란에서 벗어나려 했던 것입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일깨움이 아니었다면 어느 세월에야 깨달았을지 모릅니다.
이번 글은 비교적 오래 쓰게 돼 2~3개월간 지속됐습니다. 자신이 잘하지 못했고 미루는 마음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정법(正法)의 것이든 자신의 것이든 수련의 진행 과정은 멈춰서 기다려 줄 수 없습니다.
아울러 많은 수련생이 손에 펜을 들고 자신의 수련 심득을 써 내려가기를 바랍니다. 이는 확실히 안으로 찾고 심성을 제고하는 데 특히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매일 남편 수련생과 계속 법공부와 연공을 하면서, 갑자기 자신이 가부좌를 조금 더 오래 할 수 있게 됐음을 발견했습니다. 발정념도 예전보다 더 마음을 쓰게 됐고, 연공 과정에서도 덜 움직였으며 가부좌도 조금 더 오래 할 수 있었습니다. 사전에 찾아내지 못했던, 법리에 부합하지 않는 사상과 행동의 세세한 부분들도 원고를 쓰는 과정에서 서서히 떠올랐습니다. 안으로 찾자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그 나쁜 물질들을 제거해 주셨음을 알게 됐습니다.
이상은 현 단계 개인의 약간의 견해입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20/51520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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