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베이징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외동딸로 어릴 때부터 자존심이 아주 강했습니다. 만약 다른 사람이 저에게 누명을 씌우면 정말 견디기 힘들었고 그 자리에서 명확하게 해명하지 못하면 머릿속에서 계속 되풀이하며 생각했습니다. ‘나는 그때 왜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왜 그렇게 설명하지 않았을까? 상대방은 왜 내 말을 믿지 않는 걸까?’ 결국에는 분하고 억울한 마음이 남아 저에게 누명을 씌운 사람을 원망하게 됐습니다.
대법을 수련한 이후 저는 정말 바뀌었고 어느새 누명을 썼을 때도 평온함을 유지할 수 있게 됐습니다. 아래에 저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그해 여름방학, 시어머니와 두 달 동안 서먹하게 지내다
임신했을 때 시어머니가 천 리 밖 고향에서 달려와 저를 돌봐주셨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때 저는 아직 수련하지 않았고 나이도 어렸으며 학업도 비교적 순조로웠기에 스스로 아주 우수하고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자부했습니다. 함께 지내는 과정에서 저는 시어머니와 관념상 많은 충돌이 생겼고 시어머니의 많은 부분이 못마땅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어머니가 수련생이셨고 어릴 적부터 받은 가정교육에서도 효도해야 한다고 배웠기에 저는 마음속으로 여전히 시어머니를 잘 보살펴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해 여름방학, 저는 마음속으로 시어머니가 저를 몇 달이나 돌보시느라 꽤 고생하셨으니 마침 여름방학이라 제가 친정에 갈 수 있고 시어머니도 고향에 돌아가 푹 쉬게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기쁘게 시어머니에게 제 생각을 말씀드렸습니다. 원래 시어머니가 아주 기뻐하시며 제 제안을 받아들이시고 제가 괜찮은 며느리이며 남을 배려할 줄 안다고 생각하실 줄 알았습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시어머니의 안색이 금세 변하더니 잠시 침묵하다가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뜻이냐? 나를 내쫓으려는 거냐?”
저는 그 순간 멍해졌습니다. 제 인생 사전에 어르신을 내쫓는다는 페이지는 없었고 저는 단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서둘러 제가 진심으로 시어머니가 푹 쉬셨으면 해서 그런 것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결국 시어머니는 제 말을 전혀 믿지 않으셨고 계속해서 이 일을 들먹이며 꾸짖기 시작하셨습니다.
밤에 남편이 집에 돌아오자 시어머니는 여전히 이 일을 되뇌고 계셨습니다. 저녁을 먹을 때 시어머니는 자신이 며느리였을 때 자신의 시어머니가 큰며느리 집에서 지냈는데 큰며느리가 낡은 이불을 덮게 하자 시어머니가 뒤돌아 가버리시고 그곳에 머물지 않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인즉슨 시어머니 자신이 지금 이런 굴욕을 당하고도 떠나지 않았으니 이미 아주 잘 참은 것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남편은 그때 불쾌해하며 말했습니다. “어머니 말씀은 저희도 그런 사람이라는 뜻인가요?” 시어머니는 아들이 불쾌해하는 것을 보시고는 더 이상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밤에 시어머니는 또 고향에 계신 시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호소하셨습니다. 이후 시아버지의 전화도 걸려 와서 제게 무슨 일인지 물으셨습니다. 저는 또 시아버지에게 해명했습니다.
이 기간에 저는 거듭 해명했지만 시어머니는 제 말을 전혀 믿지 않으셨습니다. 제 분노는 점점 커졌고 친정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분노하며 호소했습니다. 친정아버지는 말씀하셨습니다. “어르신이 집과 살림을 내버려 두고 멀리서 와서 너를 돌보시는 게 쉽지 않은 일이니 더 이상 따지지 말거라.” 이 말을 들은 이후 저는 비록 시어머니와 더 이상 다투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그 고비를 넘기지 못한 채 계속 답답했고 시어머니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결국 저와 시어머니는 여름방학 내내 아무도 고향에 가지 않았고 이렇게 서먹하게 두 달을 보냈습니다.
몇 번의 풍파 속에서 대법 안에서 승화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저는 산후우울증에 걸렸습니다. 마음속에 울화가 맺혀있을 때 저는 대법 수련에 들어섰습니다. 막 수련을 시작했을 때 저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 관계를 알게 됐지만 그럼에도 저는 여전히 이 억울했던 경험을 내려놓을 수 없었고 시어머니가 어떻게 이렇게 좋지 않은 마음으로 저를 생각하셨을까 싶었습니다.
끊임없이 수련하면서 제가 대법에 대해 점점 더 깊이 이해하게 됐을 때, 저는 갑자기 시어머니에 대한 연민이 생겼습니다. 시어머니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셨고 어릴 때부터 남의 집에 얹혀살아 성격이 예민하셨습니다. 제가 그때 그 말을 한 것은 시어머니를 내쫓으려는 뜻이 아니었고 상황이 시어머니가 생각하신 것과 달랐으며 사실이 아니었지만 시어머니의 슬픔은 진실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시어머니에 대한 죄책감과 안쓰러움이 생겼습니다. 저는 정말 이 일을 내려놓게 됐고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아이는 이미 10살이 다 되어 가고 저도 시어머니와 7~8년 동안 함께 지냈습니다. 제가 수련했기에 시어머니에 대한 관념이 바뀌었고 시어머니를 아주 세심하게 보살폈습니다. 시어머니도 저를 아주 잘 대해 주셨고 저를 친딸처럼 여기시며 많은 이야기를 제게 해주셨습니다. 시어머니는 예전에 고향에 계실 때 약간의 우울한 감정이 있었고 일이나 생활 속에서 늘 조심스러워하셨으며 항상 상사가 자신을 해고하려 한다고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모두가 자신에게 불만이 있으며 시아버지도 자신에게 불친절하다고 생각하셨습니다. 시어머니 마음속에 맺힌 응어리가 있었지만 누구에게 털어놓을지 몰라 때로는 행인에게 말하기도 하셨습니다. 지금 시어머니는 저희 집에 계시고 저는 시어머니와 이야기 동무가 되어 드렸으며 시어머니에게 즐겁지 않은 일이 생기면 저는 대법의 법리로 일깨워 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서서히 그 당시의 맺힌 감정을 내려놓으셨습니다. 시어머니는 매일 저희를 도와 밥을 하시고 집안일을 정리하셔서 꽤 고생하시지만 늘 즐거워하시고 용모도 줄곧 아주 젊으십니다. 예전 동료들이 시어머니를 보면 모두 감탄하며 말했습니다. “어떻게 아직도 이렇게 젊어요? 아들 집에 가서 일 안 했죠?” 저도 우리 사이에 더 이상 무슨 오해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중 며칠 전 또 한 가지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날 제가 아이를 학원에 데려다주고 돌아와서 바쁘게 움직이다가 저녁이 되어 지갑이 필요했는데 갑자기 지갑이 보이지 않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여기저기 뒤져보고 찾아봐도 모두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서서히 마음이 조급해졌습니다. 지갑 안에 많은 중요한 신분증과 열쇠가 들어 있어서 잃어버리면 아주 곤란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남편에게 혹시 본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남편은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몰라!”
저는 천천히 회상해 보았지만 밖에서 잃어버린 것인지 아니면 집으로 가져온 것인지, 아니면 아예 지갑을 가지고 나가지 않은 것인지조차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딸을 불러 물었습니다. “엄마가 오늘 학원에 데려다줄 때 지갑 가지고 나갔어?” 딸은 제 기억을 도우며 말했습니다. “가져갔어요, 장도 봤잖아요.” 저는 순간 조금 조급해졌습니다. ‘밖에서 잃어버렸으면 안 되는데.’ 딸은 제가 이렇게 조급해하는 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할머니한테 물어볼게요.” 평소에 딸이 무언가를 찾지 못할 때면 모두 할머니에게 가서 물어보았고 보통 할머니가 찾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서둘러 말했습니다. “할머니한테 가서 묻지 마, 할머니가 어떻게 아시겠어.”
결국 제가 아이를 따라잡지 못했고 아이는 이미 할머니 방으로 달려가서 물어보았습니다. 저도 얼른 가서 상황을 수습하며 해명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약간 냉담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지갑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알겠니?” 잠시 후 시어머니가 또 말씀하셨습니다. “가서 침대 위를 한번 봐라.” 저는 서둘러 달려가 침대 위를 뒤적여 보았는데 알고 보니 지갑이 개어 놓은 옷에 깔려 있었습니다. 저는 지갑을 찾은 후 아주 기뻐하며 시어머니에게 감사하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잠시 후 시어머니가 씩씩거리며 방에서 나오시더니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아이를 시켜 나에게 물어보게 한 것은 내가 네 지갑을 가져갔다는 뜻이냐?” 저는 멈칫하며 서둘러 해명했습니다. 시어머니는 이어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직장에서 이렇게 행동하면 다들 너에게 불만을 품게 될 거다.” 저는 서둘러 맞장구를 치며 말했습니다. “네, 네, 직장에서는 이렇게 하면 안 되죠. 우리는 가족이잖아요? 게다가 이건 제가 아이를 시킨 것도 아니고 아이가 스스로 달려가 물어본 거예요.” 시어머니는 이 말을 듣고 더욱 화를 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아이를 부른 게 아니면 아이가 알아서 물어보러 왔겠느냐?” 남편이 이때 일어나 앉으며 시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왜 그렇게 잔소리가 많으세요, 그냥 지갑이 어디 있는지 물어본 거잖아요!” 시어머니는 일순간 화가 더 커져서 아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얘는 왜 너한테는 묻지 않았지?” 남편이 말했습니다. “물어봤죠, 제가 대꾸하기 귀찮아서 그랬죠.” 저는 옆에서 계속 사과했습니다. 결국 시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저는 깊은숨을 내쉬며 드디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생각지도 못하게 다음 날 아침, 우리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려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가 먼저 어젯밤 일을 다시 한번 말씀하신 후 예전에 자신의 시어머니가 작은며느리 집에서 지내실 때 돈을 잃어버렸는데 작은며느리가 가져갔다고 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작은며느리는 자신이 누명을 썼다고 느껴 아주 화를 내며 한밤중에 온 집안의 큰아주버니, 둘째 아주버니, 고모 등등을 모두 불러 모았고 온 가족이 돕게 하여 결국 시어머니 자신의 침대 틈에서 찾았다고 하셨습니다. 작은며느리는 이 일로 시어머니와 사이가 틀어졌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한 번도 시어머니와 얼굴을 붉힌 적이 없고 줄곧 잘 지냈다고 하셨습니다. 말인즉슨 이 일이 아주 심각하고 제가 잘하지 못했다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서둘러 말했습니다. “어머님,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이건 정말 오해예요.”
남편은 듣고 나서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시어머니를 꾸짖었습니다. 남편은 저를 위해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시어머니가 거듭해서 말씀하시니 짜증이 난 것이었습니다. 저는 서둘러 남편에게 더 이상 시어머니에게 화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어머님 말씀이 틀린 것도 아니에요, 확실히 제가 일 처리를 잘 못했어요.” 저는 또 시어머니를 위로하며 아주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어머님, 이 일은 제 잘못이에요. 첫째는 저 스스로 물건을 잘 잃어버려서 지갑을 잃어버린 거예요. 제가 예전에 친정에 있을 때도 지갑을 찾지 못하면 부모님께 여쭤보았고 엄마는 저를 도와 찾아주셨어요. 아빠는 찾지 않으시고 제게 몇 마디 꾸짖으시며 저처럼 계획이 없으면 인생의 3분의 1을 물건 찾는 데 낭비한다고 하셨어요. 제가 나중에 지갑과 휴대폰을 따로 놓는 곳을 정하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예요. 둘째, 제가 아이가 어머님을 찾을 때 막지 못한 것은 잘못이었고 어머니의 기분을 고려했어야 했어요. 셋째, 사실 이 지갑에는 지금 돈도 별로 없고 주로 카드와 열쇠를 잃어버릴까 걱정한 거예요.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마세요.” 이 말을 들은 시어머니는 화가 조금 풀리셔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확실히 기억력이 별로 좋지 않아서 늘 물건을 잃어버리는구나.” 저는 말했습니다. “네, 제가 주의할게요.” 이때 아이도 이미 옆에서 저를 한참 동안 불렀고 이렇게 지체하는 바람에 아이가 학교에 지각할 뻔했습니다. 이때 시어머니도 훨씬 좋아지셨고 저는 얼른 아이를 데리고 학교에 갔습니다.
저는 이 일로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틀이 지나 제가 밥을 하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갑자기 오셔서 제게 치과에 다녀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다녀오세요, 제가 밥을 해서 좀 남겨둘게요.” 치과 진료를 받고 오신 시어머니는 아주 조급해하시며 이 틀니는 두 달을 더 기다려야 끼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럼 천천히 기다리세요, 조급해하지 마시고 잇몸이 다 아물면 맞추세요.” 시어머니가 갑자기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이 답답하구나, 어쩌면 며칠 뒤에 내가 돌아갈지도 모른다(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뜻).” 저는 그때 조금 멈칫했습니다. 어째서 갑자기 고향에 돌아가신다는 걸까? 저는 그제야 지갑의 풍파가 아직 지나지 않았고 시어머니 마음속에서 아직 내려놓지 못하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저는 이미 아이가 둘이고 남편과 저 모두 일하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갑자기 가버리시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답답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저는 비록 마음속으로 아주 편안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줄곧 비교적 평온했고 내면에 큰 기복이 없었으며, 그저 시어머니가 진실한 상황을 이해하시면 화내지 않으시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시어머니는 줄곧 제가 시어머니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하셨지만 사실은 시어머니가 줄곧 제게 누명을 씌우신 것이었습니다. 제 마음이 요동치기 시작했고 사람과 사람의 어울림이 어찌 이리 어려울까 싶었습니다. 저는 밥을 하면서 마음속으로 무겁게 생각했습니다.
저는 자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이런 지경까지 왔을까? 내가 어디를 잘하지 못한 걸까? 나는 시어머니에게 아직 원망이 있는가? 내가 논쟁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것이고 평온한 것인가, 아니면 체면이나 과시심이 있는 것인가?’ 저는 여전히 100% 원망이 없고 증오가 없으며 완전히 남을 위하는 것을 해내지 못했음을 발견했습니다. 이때 저는 제 체면을 무릅쓰고 고개를 숙여 시어머니에게 다시 사과하며 더 진심으로 대하고 시어머니를 더 배려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주방을 나와 말했습니다. “어머님, 제가 잘못했어요, 저는 믿음직스럽지 못하고 일 처리가 서툴러서 물건을 자주 잃어버려요. 하지만 저는 정말 나쁜 마음이 없었고 어머님을 가족으로 여겼기에 지갑을 물어본 것도 어머님을 남으로 생각하지 않아서 그랬던 거예요. 저를 용서해 주세요.” 시어머니는 별다른 말씀 없이 웃으시며 방으로 돌아가셨습니다.
밥을 먹을 때 시어머니는 웃으며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라는 사람이 성격이 곧고 말도 곧아서 그러니 너는 마음에 담아두지 마라.” 저는 이 말씀을 듣고 시어머니가 저를 용서하시기 시작했음을 알았습니다. 저도 이어서 대답했습니다. “어머님, 성격이 곧은 건 좋은 일이에요. 불쾌한 일은 털어놓고 해결되면 좋은 거죠. 저는 괜찮아요. 사실 이번에 아이가 어머님께 가서 여쭤본 것도 아이 탓만 할 수 없고 아이도 좋은 마음에서 그런 거예요. 그렇죠?” 시어머니는 이때 정말 깨달으셨고 환하게 웃으셨으며 그날 이후로 다시는 고향에 돌아간다는 말을 꺼내지 않으셨습니다.
며칠간의 파란을 겪은 후 이 일은 지나갔습니다. 이후에 저는 지갑을 두는 바구니를 특별히 준비했고 다시는 지갑을 잃어버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저도 이번에 누명을 썼을 때 심성을 이렇게 잘 지킬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제가 대법 안에서 정말 어느새 승화한 것입니다.
시아버지에게 누명을 쓴 후 나는 웃었다
또 한번은 시아버지에게 누명을 쓴 일입니다. 시아버지는 기가 아주 세고 자기중심적인 분이십니다. 당신이 인정하는 일은 반드시 옳고 사실이라고 여기시며 남의 해명도 듣지 않으십니다. 한번은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저와 시아버지가 함께 아이를 데리고 갔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보통 외출하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진상을 알립니다. 그날 번호표를 기다릴 때 시아버지와 아이가 함께 앉아 있었고 저는 따로 자리를 찾았는데 마침 옆에 한 남성이 앉아 있었습니다. 저는 기회를 이용해 그에게 진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말을 걸며 줄을 선 지 얼마나 됐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오래됐다고 하면서 자신의 아내가 이 병원 의사지만 그래도 새치기를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 아픈 아이가 너무 많고 할머니와 함께 아이를 데리고 왔는데 바로 자신의 뒤에 앉아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염병 화제에 이어서 계속 말했고 나중에 그의 고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창춘(長春)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파룬궁이 바로 창춘에서 전해진 것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듣고 나서 그렇다며 그의 집과 리훙쯔 선생님 댁이 아주 가깝게 살았고 고등학교 동창 중 많은 사람이 수련했지만 자신은 수련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들어보니 역시 인연 있는 사람이라 그에게 좀 더 많이 알려주었고 삼퇴를 해주었습니다. 이때 그가 고개를 돌려 어머니와 아이와 말을 나누었기에 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어느 날 시아버지가 갑자기 아주 화를 내며 말씀하셨습니다. “지난번에 병원에 갔을 때 네가 한 남자와 그렇게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더니 마지막에 보니 그 남자가 널 안기까지 하더구나, 어찌나 화가 나던지!” 시아버지는 말씀하시면서 화가 나서 눈꼬리까지 치켜 올라가셨습니다. 저는 순간 아연실색했습니다. ‘어떻게 나를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을까?’ 만약 제 예전 성격 같았으면 당장 상을 엎고 시아버지와 한바탕 따졌을 것이고 이 일을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절대 넘어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저는 평온하게 시아버지에게 해명했습니다. 저는 당시 대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물어본 것이고 남성이 저를 안은 것이 아니라 몸을 돌려 그의 아이와 아이 할머니에게 말을 건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시아버지는 믿지 않으시고 또 다른 듣기 거북한 말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상을 알리는 일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시아버지는 보통 사람이고 중공 악당의 선전에 너무 깊이 중독돼 대법제자가 진상을 알리는 일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도 제가 줄곧 진상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시아버지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억울함을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고 여전히 시아버지에게 평온하게 해명했습니다.
저는 마지막에 웃고 말았습니다. 너무 우스웠기 때문입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설법하신 한 단락의 법이 생각났습니다. “어떤 사람이, 당신이 살인방화를 하려 한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듣고 아주 재미있다고 할 것인데(사부님 웃으심), 이 말이 가당키나 한가? 웃고 지나가 버린다. 전혀 그것을 개의치 않는다. 왜냐하면, 당신에게 그 마음이 없으므로 이 말이 당신을 움직일 수 없다.”(2014년 샌프란시스코 법회 설법)
저는 시아버지의 성격을 알기에 더 이상 해명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마음속에 아직 불만이 남아 있었지만 이번에는 표면적인 참음을 해냈습니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저도 스스로를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색욕심이 제거되지 않은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았다면 시아버지가 나에게 이렇게 누명을 씌우시지 않았을지도 몰라.’
지난 몇 년간 시부모님, 남편, 직장 상사에게 누명을 쓴 일이 아직 많이 있습니다. 때로는 억울하기도 했지만 더 많은 것은 제가 대법 법리의 지도하에 원망심을 내려놓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대법에 들어선 시기가 비교적 늦고 또 홀로 수련하다 보니 때로는 자신이 잘하지 못하고 심지어 아주 형편없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세월 법회 교류에 참가하고 매번 지난 일을 정리하면서 대법이 여전히 소리 없이 저를 변화시키고 저를 정화해주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2026년 명혜망 중국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10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20/515659.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0/20/515659.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