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암 말기에 다행히 대법을 만나 새 생명을 얻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올해 45세로, 대법을 얻은 지 1년 된 신 수련생입니다. 지금 저의 경험과 이야기를 글로 써서 여러분과 공유하고,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 보고를 올리려 합니다.

저는 어려서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순박한 농민으로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셨고, 제게는 형이 한 명 있습니다. 우리 형제는 비교적 철이 든 편이어서,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도와 집안일을 하고, 가축에게 먹이를 주며, 힘닿는 데까지 일을 도왔습니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형이 사범학교에 합격했습니다.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저는 14세에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학업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집안의 두부 공장에서 부모님을 도와 물을 긷고, 두부를 갈며, 불을 지피고, 두부를 식히는 일을 했습니다. 아침이면 수레를 밀며 골목골목을 다니며 두부를 팔았습니다. 그때 또래 아이들이 즐겁게 학교 가는 모습을 보며 정말 부러웠고, 속으로 나중에 반드시 내 운명을 바꾸겠다고 결심했습니다.

16세 때 저는 집을 떠나 외지로 나가 기계 공장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며 6년 동안 근무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많은 기계 설비 조작을 배웠고, 많은 기계 원리와 수리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22세 되던 해에 우리 마을에 공업 단지가 조성돼 많은 공장이 들어섰고, 이웃 마을에는 기계 설비 거래 시장이 생겼습니다. 저는 외삼촌에게 2만 위안을 빌려 설비 장사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융통할 수 있는 자금이 제한적이어서 낡은 설비를 조금 사다가 직접 수리한 뒤 다시 팔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츰 취급하는 설비 종류가 늘어났고 장사는 해마다 번창했습니다. 이 시기에 저도 결혼해 아들과 딸을 두었습니다. 아내는 총명하고 현숙해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았고, 저는 오직 사업을 잘 꾸려나가는 데 전념해 전국 각지로 설비를 구매하러 다녔습니다. 20년의 노력과 분투 끝에 나중에는 땅을 사서 공장을 세우고, 차와 집을 샀으며, 아들도 소원대로 대학에 합격해 생활이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저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상이 됐습니다.

제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에 갑작스러운 변고가 제 생활을 어지럽혔습니다. 2023년 9월, 제게 기침 증상이 나타났고, 현지 진료소에서는 계절 변화로 인한 알레르기성 기침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당시 약을 먹고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매일 가끔씩 기침을 했고 한 달 넘게 지속됐습니다. 저도 크게 신경 쓰지 않고 평소처럼 일했습니다.

어느 날 출장을 다녀와 집에 오니, 아내가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라고 했습니다. 의사는 제 상황을 자세히 묻더니 CT 촬영을 해보자고 했습니다. 오후에 결과가 나왔는데, ‘왼쪽 폐 공간 차지 병변, 종양 의심’이라고 나왔습니다. 저는 순간 하늘이 빙빙 도는 것 같아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결과를 들고 의사를 찾아가니 의사는 한숨을 쉬며 내일 가족을 데려와 입원하고 추가 검사를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도 병세의 심각성을 느꼈습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눈을 감자 순식간에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저는 계속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나는 겨우 42세고 담배도 안 피우고 술도 안 마시며 가족 중에 이런 병력도 없는데, 하늘이 어떻게 내게 이런 장난을 칠 수 있단 말인가.’ 저는 마치 곧 사형장으로 끌려갈 죄수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암 투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떠올리자,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온갖 복잡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끊임없이 소용돌이쳤습니다.

집에 돌아와 아내와 부둥켜안고 울었으며, 우리 부부는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아내는 오진일 수도 있다며 끊임없이 저를 위로했습니다. 다음 날 우리는 성도(省城)의 병원에 갔고, 입원 후 정밀 검사를 받은 결과 최종적으로 폐암 말기에 림프절 전이로 확진돼 수술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이 냉혹한 결과를 마주하고 저는 모든 희망을 잃어, 심지어 병원 건물 위에서 몸을 던지고 싶었습니다. 연로하신 부모님과 아직 가정을 꾸리지 않은 두 아이를 생각하니 제게는 아직 다하지 못한 책임이 있었습니다. 저는 포기할 수 없었고, 병원에서 제시한 표적 치료 방안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퇴원 후 저는 하루 종일 인터넷에서 관련 지식을 검색했고,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등지로 명의를 찾아다녔지만, 얻은 답과 치료 방안은 기본적으로 같았습니다. 그동안 한약도 먹어보고 침도 맞고 부항도 떴지만 효과는 미미했습니다. 표적 치료제를 7개월간 복용하자 재검사에서 내성이 생겼다고 해, 치료 방안을 바꿔 항암 화학 요법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학 요법 후 구토, 식욕 부진, 불면증, 피부 흑변 등 많은 부작용이 나타났고, 전체적인 몸 상태가 바닥으로 떨어졌습니다. 저는 이 병에 걸린 결과를 마음속으로 너무나 잘 알았기에, 고통을 끝내고자 몇 번이나 자살을 생각했습니다.

2025년 3월 어느 날, 아내의 사촌 여동생과 70대가 넘은 한 아주머니가 우리집에 왔습니다. 이 아주머니는 몹시 젊어 보였고 얼굴에 혈색이 돌았으며 아주 자애로운 느낌을 주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며 아주머니와 사촌 여동생이 모두 대법을 수련하는 수련생이라는 것과 아주머니가 대법을 수련한 지 이미 20년이 넘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아주머니는 제게 진상을 알려주며 대법 수련이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점과 자신이 수련 전후에 겪은 변화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동시에 사촌 여동생 역시 불치병에 걸려 대법 수련의 길로 들어섰다는 사실도 알게 됐습니다. 사촌 여동생이 대법을 수련한 지 1년이 채 안 됐지만 완전히 활발하고 밝은 건강한 사람처럼 보였는데, 뜻밖에도 사촌 여동생이 겪은 과정은 저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아주머니는 손가방에서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꺼내 제게 건네며 “잘 읽어보세요. 오직 대법만이 당신을 구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매일 두세 시간씩 책을 읽었습니다. 처음 ‘전법륜’을 한 번 다 읽고 나서는 책 안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그저 대법이 우리에게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는지 가르쳐 준다는 것만 알았습니다. 반복해서 읽으면서 저는 병이 업력으로 인해 생긴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고, 사람이 세상에 온 목적과 오늘날 인류가 명예, 이익, 정에 집착하며 도덕이 타락한 무서운 정도를 알게 됐습니다. 사촌 여동생은 제게 다섯 가지 공법 동작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제 몸에도 뚜렷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피부가 붉고 윤기가 돌며 수면의 질도 좋아졌습니다. 법공부를 한 지 두 달, 다섯 번째 화학 요법이 끝난 후 저는 이후의 치료를 포기하고 법공부와 연공에 온 마음을 쏟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제 집착심이 너무 무거워 마음속으로 끝내 자신의 병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고, 사부님과 대법을 100% 믿지 못했기에 3개월 후 다시 기침과 가래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처음에는 업을 없애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갈수록 더 심해졌고, 결국 가족들의 성화에 다시 병원에 갔습니다. 병원 검사 결과 양쪽 폐 전이, 흉막 전이가 발견됐고, 양쪽 폐의 감염이 매우 심각했습니다. 입원 후 의사들은 각종 항생제를 썼지만, 병세는 호전되기는커녕 갈수록 악화돼 호흡 곤란이 왔습니다. 끝내 중환자실에 입원해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생명을 유지했으며 생명이 조석에 달렸습니다.

저는 그때 대법을 완전히 잊어버렸고, 심지어 대법에 대해 아주 무거운 원망심까지 생겼습니다. 중환자실에 있던 그 시기에 사촌 여동생은 병원으로 몇 번 저를 찾아와 정념을 가져야 한다며 병원의 검사 결과는 모두 가상이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녀는 제게 마음속으로 늘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라고 했고, 사부님과 대법을 믿고 굳건한 정념을 가져야만 생사의 고비를 넘을 수 있다며 사부님 설법 녹음과 ‘홍음(洪吟)’을 가져다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완전히 속인의 상태로 떨어져 있었기에, 병상에서 그저 가끔 사부님의 설법을 들을 뿐 마음에 와닿지 않았고 하루 종일 몽롱하게 보냈습니다.

어느 날 아침, 병실 청소부 한 분이 제 병상 앞으로 다가와 물었습니다. “젊은이, 나이가 몇이야?” 제가 “45세입니다”라고 대답하자 그는 말했습니다. “아직 완수하지 못한 임무가 많잖아. 괜찮을 거야, 버들이 우거지고 꽃이 만발한 또 다른 마을이 나타날 거야(柳暗花明又一村: 막다른 길에서 새 길이 열린다는 의미).” 저는 당시 머릿속에 즉시 떠올랐습니다. ‘이건 사부님께서 설법하신 법 중의 한 구절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나를 일깨워 주시는구나!’ 그 순간 저는 갑자기 몸속에 한 줄기 에너지가 있는 것을 느꼈고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습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저 같은 못난 제자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묵묵히 말했습니다. “사부님의 일깨움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로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사부님께 부끄럽고 대법에 부끄럽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이어폰을 끼고 마음을 다해 사부님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며칠 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병세가 호전돼 기본적으로 산소 흡입이 필요 없게 되자 회진을 돌던 의사도 불가사의하게 여겼습니다. 저는 순조롭게 일반 병실로 옮겨져 경과를 지켜보게 됐습니다. 머지않아 저는 퇴원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제 몸은 여전히 매우 허약했습니다. 저는 계속해서 설법을 들으며 천천히 연공을 시도했습니다. 처음에는 제1장 공법만 할 수 있었는데 매번 연공을 마칠 때마다 온통 땀투성이가 됐지만 저는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보름 정도 지나자 세 가지 공법 동작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 기간에 수련생인 아주머니와 사촌 여동생이 자주 찾아와 저를 격려해 주고 자신들의 심득 체득을 교류해 주어 저는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번 생사의 고비 시험을 거치면서 저는 마음속으로부터 병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았고 추구하는 마음을 내려놓았으며 수련의 엄숙성을 인식했습니다. 제 몸은 매우 빨리 회복돼 한 달 후 체중이 10kg 늘었습니다.

한번은 사촌 여동생과 발정념 체험을 교류하다가 저는 자신이 발정념을 할 때 가끔 딴생각을 하고 정공(靜功)을 연공할 때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이유가 아직 버려야 할 속인의 마음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매일 단독으로 15분씩 발정념을 하며 저의 사람 마음, 사람 생각, 사람의 정을 제거했습니다. 며칠 뒤 어느 날 아침, 발정념을 하는데 갑자기 단번에 완전히 마음이 고요해지며 그 상태로 진입했습니다. 제 공간장의 모든 사악한 요소가 순식간에 해체되는 것을 느꼈고 몸에서 열이 나며 점점 더 뜨거워졌는데, 그 오묘한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가부좌에서 깬 후 제 가슴과 등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법 암기를 시작했고 매일 꾸준히 한두 단락씩 외웁니다. 법을 외우는 것을 통해 사부님의 법리가 한 층 한 층 제게 펼쳐져, 법리에 대한 제 인식이 감성에서 이성적인 인식으로 승화되게 했고 심성도 모르는 사이에 높아졌습니다. 제가 대법을 얻은 시간은 비록 길지 않지만 대법이 제게 주신 것은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제게 두 번째 생명을 주신 분은 바로 사부님이시며, 제 몸이 매일 활력으로 넘쳐 병 없이 온몸이 가벼운 상태를 느끼게 해준 것은 대법입니다. 위대하신 사부님의 자비로운 고도(苦度)에 감사드립니다! 제자를 위해 거대하게 감당해 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후 연장된 시간 속에서 제자는 오직 정진하고 또 정진하여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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