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전란의 이면: 신앙의 빛 (하)

글/ 소가(蕭歌)

[명혜망]

(이전 글에서 이어짐)

지주 세가(世家)는 토지를 독점한 것 외에 또 무엇을 담당했는가?

중국공산당(중공)의 역사 교과서에서는 흔히 태고 시대 원시인을 기원으로 삼는다. 진화론이 중공 이데올로기의 표준 서사이기 때문이다. ‘정글의 법칙’, ‘약육강식’, ‘밑바닥 계급이 부패한 지주 계급에 맞서 항쟁하다’,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다’, ‘역사의 전진은 계급투쟁에 의해 추동된다’. 이러한 논리와 틀로 모든 왕조의 교체를 설명하기 때문에, 중공의 역사 교과서는 언뜻 보면 매우 그럴듯하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실제로는 군사, 이익, 궁중 암투 등 ‘물질적 차원’의 것들뿐이고, 정신적 차원은 대충 넘어가거나 아예 회피한다.

남조(南朝)를 말할 때 중공 역사 교과서의 논조는 이렇다. 사회 풍습이 퇴폐적이고 부패했으며, 제왕과 귀족은 사치와 음탕함에 빠져 오로지 쾌락에 탐닉하고 주색에 젖어 있었다. 세족 자제들은 “피부가 연약하고 뼈가 부드러워 걷기도 힘들어하고, 몸이 파리하고 기운이 약했다”고 하며, 얼굴에 기름을 바르고 분칠을 한 채 학문에 힘쓰지 않아 뱃속에 든 것이 없었다. 한문(寒門, 미천한 가문) 출신인 유유(劉裕)는 글자도 몇 자 알지 못했지만 무력에 기대어 부패한 동진(東晉)을 뒤엎고 한문 인재를 등용해 서민이 조정에 들어가는 선례를 열었다. 중공 교과서를 읽어 보면 중국 역사의 모든 왕조가 대동소이하며 논리도 똑같다. 지주 계급이 자원을 독점하고 백성을 노예처럼 부리며 썩어 문드러지다가, 결국 백성의 힘에 의해 전복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주목했는가? 중공의 교과서는 유유가 동진을 대체한 뒤 받들고 행했던 “예악을 근본으로 삼고, 하늘을 공경하며 신을 믿는다(以禮樂爲本, 敬天信神)”는 점을 절대 쓰지 않는다.

유유가 진(晉)나라를 대신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진나라의 천지 제사, 종묘, 사직, 조회 의식, 교화 등의 의제를 계승하고, 예법을 제정하고 음악을 만들며 국학(國學)을 세우는 것이었다. “송(宋)나라는 옛것을 그대로 따르고, 고치거나 새로 만든 것이 없다”고 한 것은, 진나라가 이미 국면을 유지할 힘이 없어 새로운 천자가 그를 대신한 것이며 수행하는 직책은 모두 같았기 때문이다. 바로 예악을 근본으로 삼고 하늘을 공경하며 신을 믿는 것이었다. 이러한 내용은 중공이 심사·승인한 베스트셀러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눈에 띄는 것은 온통 사람의 욕망을 자극하고 자본의 흥행 수익을 채워 주는 ‘궁중 암투+이익+사랑’뿐이다.

세가대족(世家大族)은 과거제 이전에 예법을 전승하고 도덕을 선양하는 주체였다. 사진은 청대 궁정 화원 회화 ‘십이월령도·유월’ 부분. 타이베이 국립고궁박물원 소장. (퍼블릭 도메인)

중국 문화에서 ‘세가(世家)’는 대개 지주나 귀족을 가리키며 비하하는 뜻이 없었다. 그러나 중공 교과서에 이르러 이 단어들은 부정하고 타도하며 심지어 소멸시켜야 할 비하어가 됐다.

고대 사회에서 ‘세가’는 전통의 계승과 도덕의 고수를 대표했고, 단지 토지를 차지하고 부를 소유한 존재가 아니었다. 서로 다른 ‘전문 분야’의 세가들은 서로 다른 지식 체계를 장악했고, 구전심수(口傳心授)와 몸소 보여주는 가르침으로 유구한 전승의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상고 시대에 요(堯)임금은 희화(羲和)를 천문 역법을 관장하는 관리로 삼았다. ‘희화’라고 하면 사람들은 곧 천문 역법을 관리하는 세가임을 알았다. 희화씨는 신성(神性)을 지닌 씨족으로, ‘산해경·대황남경(山海經·大荒南經)’에서 희화는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을 관장했다. 그러므로 중국의 ‘천인합일(天人合一)’은 허공에서 상상해 낸 허구가 아니라 고찰하고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이 있는 것이다.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는 전란과 분쟁으로 정세가 불안정했기에, 이전 왕조들과 비교해 예악에 대한 연구와 불교·도교에 대한 공경이 오히려 상승세를 보였다. 모든 군왕은 ‘천명이 돌아가는 곳(天命所歸)’을 찾고 나라를 안정시킬 방도를 찾고자 했다. 세가는 바로 예악 전통의 대표이자 하늘의 뜻을 읽고 천도를 깨달은 사람들이었기에, 세가가 받는 존경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동진 재상 사안(謝安)의 손자 사혼(謝混)은 유유에게 저항하다 살해됐지만, 그의 광대한 장원은 유유가 전쟁을 벌일 때부터 마침내 황제를 칭할 때까지 전혀 손대지 않았다.

유유는 분명 한문 출신의 무관을 일부 등용했지만, 전통 세가의 인재를 더욱 중시했다. 조정 정무 체계 전체는 매우 전문적인 시스템으로, 분야를 나누어 각자 직무를 맡았다.

군벌 혼전 속에서도 질서는 있었다

남조와 북조는 회수(淮水)를 경계로 남북을 나누어 통치했다. 북조는 십육국(十六國), 북위(北魏), 북제(北齊)를 거쳤고, 남조는 동진, 송, 제(齊), 양(梁), 진(陳)을 거쳤다. 정권이 빈번히 교체되는 것을 중공 이데올로기 영역에서는 군벌 혼전으로 민생이 도탄에 빠진 고도의 ‘불안정’으로 간주하며, 이 때문에 중공은 “안정이 모든 것을 압도한다”고 주장한다.

북조는 중원을 차지했기에 스스로 화하(華夏) 정통 왕조라 칭했고, 남조는 중원에서 이주해 갔으므로 자신들이야말로 진정한 화하라고 칭했다. 그러므로 정권이 어떻게 교체되든 남조와 북조의 목적은 같았다. 크고 넓은 중화를 회복하고 예악을 다시 일으켜 ‘천명’이 돌아갈 곳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일본 학자 나카무라 게이지(中村圭爾)가 보기에, 동진 이후 북방 인구의 유입으로 “강남의 개발도 비약적으로 전개돼, 10세기 이후 강남이 전국 경제 중심지로 발전하는 기초를 다졌다.” 한국 학자 박한제(朴漢濟)는 북방 인구의 남하가 이주민 문화의 새로운 탄생을 가져왔다고 보았다. “마치 메이플라워(Mayflower)호를 탄 이주민(교민)들이 새로운 아메리카를 세운 것처럼, 동진·남조 시대 남방의 북래(北來) 교민들은 역사를 주도하는 세력이 됐다.”

양진(兩晉)과 남북조는 정변이 빈번하고 간간이 전란이 있었지만 예의 교화는 변하지 않았다. “도덕의 궤도를 표명하고, 충효의 의례를 밝히며, 인의의 계통을 분명히 하고, 예악의 근본을 넓힌다.”[‘진서·웅원전(晉書·熊遠傳)’] 남북조 후기에는 양측 사절의 왕래가 날로 빈번해졌는데, 사절을 맡은 사람들은 흔히 남북방을 대표하는 덕 높은 선비들이었다. 남북방의 경계도 갈수록 개방돼 회수와 한수(漢水) 변경에는 ‘대시(大市)’, ‘소시(小市)’가 열렸고, 남북방 민중은 자유롭게 무역할 수 있었다. 비록 분쟁은 있었지만 문화적 정체성이 같고, 다투어 봤자 사실상 본질이 같다는 것을 양측 모두 발견했기 때문이다.

원대 4대가 왕몽(王蒙)의 명작 ‘갈치천이거도(葛稚川移居圖)’(부분). 동진의 명사 갈홍(葛洪)이 처자와 외조카를 데리고 나부산(羅浮山)으로 이주해 도를 닦으러 가는 길의 정경. (퍼블릭 도메인)

중국 역사에서 300여 년은 흔한 왕조 존속 기간이지만, 위진남북조처럼 낡은 것을 타파하고 새로운 것을 세우며 서로 융합한 시대는 흔치 않다. 생각해 보라. 정말로 암흑천지 같은 장기적인 동란과 전란뿐이었다면, 어떻게 이토록 많고 중요하며 찬란한 문화적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었겠는가? 동진의 고승 법현(法顯)은 65세의 고령에 장안(長安)에서 출발해 도보로 파미르고원을 넘어 인도에 도착해 법을 구했고, 동진의 갈홍이 저술한 ‘포박자(抱朴子)’와 ‘신선전(神仙傳)’이 세상에 나왔다. 불교와 도교가 서로 빛을 발하며, 평범한 사람도 수련을 통해 최종적으로 반본귀진(返本歸眞, 본래의 참된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해 천국으로 돌아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이 모두 신을 믿고 공경한다면, 화하 예악 문명이 말하는 ‘천인합일’은 더 이상 구호에 그치지 않는다. 하늘이란 무엇인가? 하늘은 곧 신이며, 사람이 수련을 통해 신의 경지에 이르면 ‘천인합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위진남북조는 혼란 속에서도 질서가 있고, 혼란 속에서도 중심축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문명사적 관점에서, 중국 문명이 보기 드문 연속성과 정복자를 흡수하는 능력을 지녔다고 지적했다. 그 내적 원인을 논하며, 서양의 진한(秦漢) ‘대일통(大一統)’ 전문 연구가인 유리 파인스(Yuri Pines,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중국학 교수)는 ‘맹자·만장상(孟子·萬章上)’의 한 구절, “하늘에는 두 해가 없고 백성에게는 두 왕이 없다(天無二日, 民無二王)”를 인용했다. 파인스는 ‘천명(Mandate of Heaven)’이 중화 문명의 보편적 가치가 깃든 곳이며, 천명은 통치자의 ‘덕(Virtue)’에 따라 옮겨간다고 보았다. 중국이 혼란에서 다스림으로, 혼란 속에서도 질서가 있는 상태로 순환하는 것은, 어떤 할거 정권이나 외래 민족이든 모두 다시 천하를 통일하고 중화 정통을 계승하는 것을 유일한 목적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서양은 이미 중화 문명의 본질을 점차 밝혀내고 있다.

토인비는 만년에 유명한 예언을 남겼다. 인류가 21세기에 접어든 뒤 전 지구적 위기에 직면하면, 중국 문명이 미래 세계의 전환과 21세기 인류 사회를 위해 무궁무진한 문화적 보고와 사상적 자원을 제공할 것이라는 예언이다. 오늘날 세계가 더욱 불안정하고, 전쟁이 일어나고 경제가 하락하며 강대국 간의 갈등도 심화하고 있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중화문화에는 신비로운 매력이 있어, 국경과 인종을 넘어 다양한 인종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중화문화는 어떻게 이토록 큰 매력을 지닐 수 있는가? 중화문화가 신전문화(神傳文化, 신이 전해 준 문화)이자 우리 모든 지구인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오직 정통 중화문화로 돌아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을 중시하고 도덕 수준을 높여야만 희망이 있다.

중화 전통문화는 이미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다. 뉴욕 션윈(神韻) 예술단은 매년 전 세계 5대주 약 200개 도시에서 순회공연을 펼치며, 20년 동안 이어 오면서 여러 민족의 환영을 받고 있다. 관객들은 중국어를 모르고 공연 속 중국 역사 인물과 이야기도 알지 못하지만, 아름다운 무용과 선경 같은 무대, 자비로운 에너지장 속에서 중화 전통문화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5천 년 문명에 담긴 ‘진선인(眞·善·忍)’ 가치관은 사람들 내면에 있던 반본귀진에 대한 갈망과 아득히 먼 옛날의 기억을 일깨우고 있다. 션윈 공연은 국경을 넘고 언어를 넘고 역사를 넘어 곧장 사람의 마음에 닿는다.

다시 말해, 중국 역대의 어느 민족이든 외국의 어느 나라든 모두 중화 신전문화를 존중하는데, 중공은 무신론을 선전하고 문화대혁명의 대재앙으로 유·불·도 3교를 전멸시켰으며, 1999년부터는 ‘진선인’을 선양하는 파룬궁수련자들을 전면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했다. 중공은 고의로 역사를 왜곡하고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역사를 분석해, 사람들로 하여금 역사와 전통에 등을 돌리게 했다. 이것이 사회 도덕이 추락하고 쇠퇴로 향하는 근본 원인이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다른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부록

위진남북조 연표:

시기
왕조
연대
도읍
삼국
위(魏)
220~265
낙양(洛陽)
삼국
촉한(蜀漢)
221~263
성도(成都)
삼국
오(吳)
229~280
건업(建業)
서진(西晉)
서진
265~316
낙양
동진(東晉)
동진
317~420
건강(建康)
십육국(十六國)
–
304~439
북방 지역
남조(南朝)
유송(劉宋)
420~479
건강
남조
남제(南齊)
479~502
건강
남조
양(梁)
502~557
건강
남조
진(陳)
557~589
건강
북조(北朝)
북위(北魏)
386~534
평성(平城), 낙양
북조
동위(東魏)
534~550
업성(鄴城)
북조
서위(西魏)
535~557
장안
북조
북제(北齊)
550~577
업성
북조
북주(北周)
557~581
장안

 

원문발표: 2026년 10월 14일
문장분류: 천인사이(天人之間)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0/14/5152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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