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둥성 차오현의 80대 위즈량, 또다시 부당한 판결받고 부당한 옥살이

[명혜망](산둥성 통신원) 산둥성 허쩌(菏澤)시 차오(曹)현의 84세 파룬궁수련자 위즈량(余志亮)이 차오현 공검법(公檢法, 공안·검찰·법원)에 의해 불법적으로 모함받아 1년 2개월형을 선고받았고, 2026년 8월 지난(濟南) 감옥으로 이송돼 계속 불법 감금돼 박해받고 있다. 가족이 그를 면회하기 위해 지난까지 급히 달려갔으나 감옥 측은 면회를 금지했다.

위즈량은 1996년부터 파룬궁(法輪功) 수련을 시작했다. 그는 ‘진선인(眞·善·忍)’을 기준으로 마음을 닦고 덕을 중시했으며, 법과 규율을 준수하며, 남을 먼저 배려하고 자신은 나중에 생각하는 사심이 없고 이타적인 좋은 사람이 됐다. 자신의 도덕적 품행을 향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수련 속에서 몸의 모든 질병을 말끔히 씻어내어 심신이 건강해졌고, 남을 선하게 대했으며, 연공을 한 후에는 국가의 의료비를 단 1원도 쓴 적이 없었다.

2026년 2월 3일(음력 12월 16일) 아침 6시, 차오현 공안국은 니지(倪集)향 파출소 정·부소장 및 경찰들과 결탁해 여러 파룬궁수련자를 상대로 동시에 가택수색과 납치를 감행했다. 위즈량이 불법적인 가택수색을 당할 때, 자녀들이 그에게 준 세뱃돈 1만 6천 위안(진상 지폐 아님)을 차오현 공안국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대 경찰이 모두 털어갔다.

위즈량과 아내 위안페이링(袁培玲)은 납치됐고, 아내는 당일 풀려났지만 하루 종일 눈물로 지냈다. 위즈량은 차오현 구치소(푸롄지)에 불법 감금돼 모함받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차오현 공안국 국보가 파출소 출동을 지시해 위즈량의 자녀와 친척의 거처 몇 곳을 불법적으로 뒤졌다.

위즈량은 7개월 넘게 불법 감금돼 모함받으면서도 자신에게 씌워진 이른바 죄명을 단호히 인정하지 않았으나, 여전히 불법적으로 1년 2개월형을 선고받았고 대략 2027년 2월 무렵 부당한 옥살이를 마칠 예정이다.

노동수용소 3년, 억울한 징역 4년형 당하기도 해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을 광분해 박해한 이후, 위즈량은 여러 차례 불법 구금됐으며, 과거 강제노동 박해 3년과 억울하게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또한 여러 차례 불법 가택수색, 괴롭힘, 감시, 도청을 당했고 모든 퇴직금과 의료보험을 압류당했다.

2001년 6월, 위즈량은 허쩌시 공안처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에 납치돼 불법 심문과 몸수색을 당한 후, 차오현 공안국에 의해 차오현 구치소에 끌려가 또다시 강제노동 박해를 받았다. 2001년 7월 불법적인 3년 노동수용소 처분을 받고 악명 높은 산둥 왕춘(王村) 노동수용소로 보내져 박해받았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밤 12시에 잠을 자야 했고, 작고 좁은 나무 의자에 앉아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두 다리를 꽉 모은 채 양손을 다리 위에 올려놓고 두 무릎 사이에 종이 한 장을 끼워야 했다. 하루가 지나면 허리가 시큰거리고 다리가 아파 매를 맞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일주일이 지나자 엉덩이가 피투성이가 돼 바지와 살이 들러붙었고, 양발이 부어올라 슬리퍼조차 신을 수 없었으며, 통증을 참기 어려워 걸을 수 없어서 기어 다녀야만 했다. 매일 대법과 사부님을 비방하는 세뇌 영상을 억지로 봐야 했기에 심신이 극심하게 망가졌다. 노동수용소 경찰은 눈에 거슬리는 사람을 독방에 가두고 전기봉 충격, 매달기, 뒤로 수갑 채우기, 호랑이 의자(고문 도구) 형벌, 뺨 때리기, 아오잉(熬鷹, 며칠 밤낮을 강제로 재우지 않는 고문)을 가했으며, 게다가 강제노동 박해까지 해야 했다.

2010년 상반기, 차오현 공안국 610은 왕샤(王霞), 차오화이중(曹懷中) 등의 지휘 아래 아무런 이유 없이 파룬궁 인원들을 체포했다. 진상을 알리고 악행을 억제하기 위해 위즈량은 공안국 610에 선을 권하는 공개편지를 썼고, 나중에 한 수련자가 이를 진상 소책자에 엮어 넣었다. 2010년 7월 13일, 허쩌시 공안처 610과 차오현 공안국 610은 연합해 위즈량의 집을 불법으로 수색했으며, 위즈량 부부를 좡자이(莊寨) 파출소로 납치해 쇠의자에 수갑을 채우고 교대로 심문하며 자백을 강요했다. 파견된 인원들은 또 세 차례나 그의 집을 뒤지며 약탈했다.

위즈량은 차오현 구치소에 반년이나 감금돼 기한을 넘긴 구금을 당했고 강제노동 박해를 받았다. 법원, 검찰원은 수사, 기소, 재판 절차를 마친 후 실질적으로 판결을 내릴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려웠으나, 허쩌시와 현 양급 610이 검찰원과 법원을 강압해 억지로 중형을 선고하게 했다. 차오현 법원은 원래 집행유예를 선고하려 했으나 610이 압력을 가하자 억지로 덮어씌운 ‘법률 실시 파괴 죄’로 위즈량에게 부당하게 징역 4년형을 선고했다. 2011년 1월, 위즈량은 산둥성 타이안(泰安) 감옥 5감구로 이송됐고, 장기간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기, 밤새우기 등 박해를 강요당했다.

 

원문발표: 2026년 10월 14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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