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본인 구술, 수련생 정리)
[명혜망] 저는 1998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고 올해 80세입니다. 법을 얻은 그날부터 저는 생명의 서광을 보았으며 1년 후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따파를 잔혹하게 박해하기 시작했지만 제 마음속에는 언제나 대법이 중생에게 부여한 자비로운 불빛이 반짝였습니다. 박해 속에서 사악한 물결이 하늘을 뒤덮고 저 역시 중공의 박해를 몇 차례 겪었지만 저는 시종일관 방향을 잃지 않았습니다.
수련 전: 내가 하루 종일 남편을 지휘하다
수련을 갓 시작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고 신체 변화가 아주 컸습니다. 당시 남편은 저를 무척 지지했습니다. 가끔 아침에 일어나기 싫을 때면 ‘연공하러 가지 말고 아침 내내 푹 잘까’라고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자마자 남편은 제게 “아직 안 가고 뭐 해. 알람 울렸잖아!”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는 제 수련의 감독관이 되어 제가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우려 하면 허락하지 않았고 무척 엄격했습니다.
수련 전 남편은 자주 저를 도와주었고 저도 늘 다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그를 부려 먹었습니다. 예를 들어 침대에 앉아 있다가 사과가 먹고 싶어지면 명령조로 남편을 불렀습니다. “사과 하나 씻어 와.” 그러면 남편은 사과를 씻어 주었습니다. 제가 “물 한 잔 따라 줘”라고 말하면 그는 저에게 물 한 잔을 따라 주었습니다. 제가 이것을 하라 저것을 하라 시키면 그는 모두 순순히 했고 저는 하루 종일 그를 지휘했습니다.
수련 후: 남편이 품질검사관처럼 내 단점을 들춰내다
대법을 수련한 뒤 상황이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제가 남편을 부려 먹으려 하면 그는 눈을 부릅떴는데 저보다 훨씬 무서웠습니다.
수련을 시작한 이후로 남편은 제가 듣기 좋아하는 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입만 열면 단점을 들춰내며 이렇게 하면 안 된다 저렇게 하면 안 된다고 늘 품질검사관처럼 제 흠을 잡았습니다. 처음에 저는 무척 짜증이 났습니다. 그가 제게 이것이 틀렸네 저것이 틀렸네 지적하면 저는 곧장 해명했습니다. 제가 해명하면 그는 저를 욕하며 난리를 피웠고 저는 더욱 화가 났습니다. 참다못해 저는 그와 다투었습니다.
이후 저는 남편이 제 심성 제고를 도우며 사다리를 놓아주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습니다. 이는 저를 수련시키는 과정이었고 사람의 마음을 내리누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정말 없애기 어려웠고 천천히 닦아내야 했습니다.
남편이 나를 위해 비바람을 막아주다
1999년 중공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했을 때 남편과 아이들은 제게 연공을 그만두라고 말한 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친정어머니도 일부러 우리집에 와서 “너는 몰래라도 연공해야 한다. 절대 그만두면 안 돼. 네 몸이 얼마나 많이 좋아졌는지 보렴”이라고 당부하셨습니다.
2001년 수련생들이 진상 자료를 대량으로 인쇄하기 시작하면서 우리집 아래층으로 가져다주었습니다. 당시 제 다리는 더 이상 아프지 않았지만 왼쪽 다리가 무척 가늘고 힘이 없어서 걸을 때면 여전히 절뚝거렸습니다. 남편은 제 걸음걸이가 불편한 것을 보고 대신 가서 진상 자료를 받아 주었습니다. 자료를 집에 들여온 뒤 제가 수련생들에게 전화를 걸면(그때는 전화를 감청당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와서 나누어 가졌고 밤에 각자 나가서 배포했습니다. 며칠에 한 번씩 남편은 진상 자료가 가득 든 커다란 가방을 가져왔는데 어떨 때는 하루에 한 가방씩 가져올 만큼 배포할 자료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제가 박해를 피해 타지를 떠돌 때 남편은 집에서 홀로 숱한 고생을 겪으며 하루 종일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제가 밖에서 돈이 떨어지면 수련생을 통해 남편에게 돈을 부탁했습니다. 당시 타지를 떠돌던 많은 수련생은 가족에게 돈을 받기 무척 어려웠습니다. 가족들은 한결같이 “네가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돈을 주지 않겠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제 남편은 그렇지 않았고 계속 돈을 보내주었는데 3개월마다 5백 위안씩 챙겨주었습니다.
제가 3년 넘게 밖을 떠도는 동안 남편도 무척 힘들었습니다. 큰아들이 교제하던 상대는 제가 파룬궁 수련을 고수한다는 이유로 이별을 고했습니다. 둘째 아들도 이 시기에 교제를 시작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집에 없으니 남편은 결혼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집안일도 챙길 줄 몰라 울며 시름에 잠겼습니다. 다행히 제가 집에 있을 때 친정어머니가 아들들 결혼에 쓸 이불을 미리 만들어 주셨고 집안 형제들도 나서서 거들어준 덕분에 둘째 아들은 무사히 결혼식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아들 결혼식 전에 우리 부부는 아들과 사돈에게 연락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했고 저는 그들에게 진상을 좀 알려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남편이 받은 스트레스는 무척 컸습니다. 아들이 결혼하던 날 밤 경찰차가 우리집 문 앞에 멈춰 섰고 경찰은 저를 잡으려고 그곳에 잠복하며 기다렸습니다. 제 남편 심정이 어떠했을지 생각해보십시오. 결국 아들 결혼식 날 저는 집에 가지 못했습니다.
제가 타지를 떠돌다 집으로 돌아온 후 어떤 사람이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몇 년씩이나 집에 안 붙어 있는데 그냥 내버려.” 이는 저와 이혼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제 남편은 그 말을 무시했습니다. 한번은 고향 사람이 남편을 찾아와 말했습니다. “아주머니한테 그만하라고 하시죠. 집안 꼴이 이게 뭡니까.”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안 하면 안 돼. 사실 파룬궁은 무척 좋아. 아내 몸도 연공해서 좋아진 거라 안 하면 안 돼.”
제가 밖으로 나가 진상을 알릴 때 남편은 한번도 저를 가로막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가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늘 노심초사했고 그래서 그 후로는 밥을 한 끼도 차리지 않은 채 제가 집에 돌아와 밥을 해주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사실 저는 남편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매번 사건이 터지니 염려스러웠고 제가 무사히 귀가해야만 마음을 놓았던 것입니다. 그는 밥을 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속에 집으로 무사히 돌아와야 한다는 다짐을 심어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경찰이 저를 찾으러 우리집에 오자 남편은 경찰에게 쏘아붙였습니다. “당신들 제대로 된 일 좀 하면 안 됩니까? 나쁜 놈들은 내버려 두고 왜 이런 좋은 사람들만 괴롭히는 거요. 이렇게 사람을 피곤하게 구는 이유가 대체 뭡니까? 좋은 일 좀 하며 살면 안 됩니까?”
남편은 내 수련의 감독관
집에 돌아와 진상 자료를 만들면서 저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지금 자료를 이렇게 많이 만드는데 이 자료비를 우리도 좀 부담해야죠.” 남편은 흔쾌히 “내야지 내야지”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언제나 저를 적극적으로 지지했습니다. 이후 우리집에도 ‘작은 꽃’(가정 자료점)이 피어났습니다. 무거운 종이를 들고 위층으로 올라가는 일을 제가 버거워하자 남편이 대신 들어 주었습니다. 제가 자료를 다 만들면 그는 스테이플러 찍는 것을 도왔고 반듯하게 누른 뒤 다시 아래로 들고 내려가 주었습니다.
우리가 만든 명혜 정기간행물, 진상 소책자, ‘명혜주간(明慧周刊)’ 등을 그는 매 호마다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읽었습니다. 다 읽고 나면 그는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지 명확히 알았습니다. 제가 잘하지 못할 때면 그는 제게 소리쳤습니다. “당신 꼴을 좀 봐. 사부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어? 당신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지 좀 보라고.” 저는 비록 처음에는 그 말을 듣기 싫어했지만 남편이 바로 사부님께서 저를 감독하고 지켜보라고 보내신 사람임을 알았습니다.
장쩌민(江澤民)을 고소할 때 남편에게 제 생각을 털어놓자 그는 겁을 먹고 말했습니다. “장쩌민을 고소한다고? 그게 되겠어? 서민이 관리를 고소해서 이길 수 있겠느냐고. 그러다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래?” 저는 그의 만류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소장을 작성해 부친 뒤에야 남겨둔 사본 하나를 그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제가 “이것 좀 봐요. 이게 내가 장쩌민을 고소한 서류예요”라고 말하자 그는 꼼꼼히 읽어보더니 용기를 냈습니다. 사실 그 역시 이치를 잘 알고 있었지만 그저 겁이 많았고 제가 다시 박해를 받을까 봐 두려웠던 것입니다.
장쩌민 고소장을 부치고 며칠 지나지 않아 경찰이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하루는 경찰이 남편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물었습니다. “당신 아내가 장쩌민을 고소한 거 알고 있소?” 남편은 대답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장쩌민은 마땅히 고소당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가 좋은 사람들을 박해했으니 진작 고소했어야죠.” 그 말을 듣고 경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경찰이 저를 찾아왔을 때 제가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자 다시는 저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제 수련에 대해 남편은 기본적으로 늘 정념으로 대했고 아무리 큰 위험에 부닥쳐도 “수련 그만해.”, “연공하지 마”라는 말을 꺼낸 적이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러한 정의로운 지지는 제가 끊임없이 정진하도록 무척 큰 격려가 되었습니다.
2022년 사부님의 ‘홍음(洪吟) 6’이 출판된 후 저는 매일 아침 일어나 한동안 법을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제가 법을 외우는 모습을 보고 스스로 밥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무척 보기 좋았고 남편이 참으로 다정하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가 솔선해서 하지 않았다면 감히 시키지도 못했을 거야. 밥하는 건 본래 내 일인데 내가 왜 남에게 의지하겠어.’ 뜻밖에도 그가 먼저 나서서 일을 거들었고 아침 식사가 소박해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해도 그가 밥을 챙겨주니 제게는 법을 외울 시간이 더 늘어났습니다.
제가 법 암기를 한층 깊이 해나가자 남편은 점심이나 저녁 식사 재료까지 미리 준비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나가기 전 그와 먼저 어떤 밥을 해 먹을지 의논했습니다. 집에 돌아와 보면 그는 이미 채소를 다 씻고 썰어놓았으며 밥도 지어놓았습니다. 그가 이렇게 도와주니 제 일도 한결 수월해졌고 저 역시 덜 조급해졌습니다.
저는 이 사소한 일에서 남편의 선량한 마음을 엿보았습니다. 제가 수련을 잘해내기를 바라는 그의 진심과 저에 대한 묵묵한 지지는 그 자신에게도 무척 훌륭한 위치를 마련해주었습니다. 대법제자가 정진하고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기만 하면 가족들도 덩달아 좋은 방향으로 변하며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정진할 수 있는 환경을 창조해 주십니다.
원래 남편은 억지 부리기를 무척 좋아해서 제가 무슨 말을 하든 늘 트집을 잡으며 다투려 들었습니다. 저는 수련생들 사이에서는 원망심을 거의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남편 앞에만 서면 본색이 고스란히 드러나며 사람의 마음이 솟구쳐 올랐습니다. 제가 안으로 찾지 않았을 때는 자주 그와 언쟁을 벌였고 사흘이 멀다 하고 다투었습니다. 이후 안으로 찾을 줄 알게 되면서는 아마 한 달에 한 번꼴로 다투었을 것입니다. 저는 굳게 다짐한 적이 있습니다. ‘앞으로 영원히 남편과 다투지 말자. 그가 내게 무슨 말을 하든 그냥 웃어넘기자. 그는 분명 내 심성 제고를 돕고 있는데 나는 어찌 이리도 못났을까. 정말 내 뺨이라도 때리고 싶다.’ 때로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 제 뺨을 때리며 “사부님, 제가 또 잘못했습니다”라고 뉘우쳤습니다.
어떨 때 남편은 제 마음을 참으로 심하게 건드렸고 그럴 때면 무척 괴로웠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제 마음을 건드리지 않고서 제가 허물을 고칠 수 있었겠습니까? 이치를 뻔히 알면서도 막상 부딪치면 여전히 넘기지 못했고 사람의 마음을 말끔히 닦아내지 못했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습니다. 그가 제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꺼낼 때 바로 제 마음이 동요하는 것이고 그 마음을 다 닦아내지 못한 것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든 안 한 것과 다름없이 여겨 제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화가 나지 않아야 비로소 수련을 잘해낸 것입니다.
지금 저는 남편이 훌륭한 사람이라 여기며 그에게 특별히 감사함을 느낍니다. 그는 제게 너무나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아침 식사 후 식탁을 치우려 할 때면 가끔 그가 말합니다. “아직도 안 가? 다른 사람들이 당신을 기다리잖아.” 어떨 때는 그가 제게 “발정념할 시간이잖아”라고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제 수련 과정에서 그는 단 한번도 방해한 적이 없습니다.
이후 진상 자료를 더 많이 만들게 되어 한 번 외출할 때 60권씩 가져가면 일주일 만에 2백여 권을 인쇄해야 했습니다. 인쇄를 다 마치지 못해 초조해진 제가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여보, 밥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인쇄를 다 못 하겠어요. 일주일 치 분량이 모자라요.” 그러자 남편은 “당신은 가서 자료나 만들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굳건한 지지는 제게 크나큰 자신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비록 그의 말이 때로는 거슬리게 들릴지 몰라도 일 처리만큼은 무척 잘해냈습니다.
한번은 제가 병업 고비를 겪었는데 상태가 몹시 위중해 보여 남편이 잔뜩 겁을 먹었습니다. 남편은 제 머리맡에 엎드려 조심스레 물었습니다. “애들한테 전화할까? 전화해서 당장 돌아오라고 할까?” 제가 대답했습니다. “바보같이 굴지 마요. 왜 또 정신을 못 차려요. 지금 뭘 해야 할지 몰라요? 얼른 외우기나 해요.” 남편은 즉시 큰 소리로 외웠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사부님 제 아내를 구해주십시오!” 그가 한참 동안 외우자 저의 병업 고비는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습니다.
남편은 매 호 ‘명혜주보(明慧周報)’와 ‘명혜주간’을 빠짐없이 읽었기에 수련에 얽힌 숱한 이치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후 영화 ‘우리는 원래 신이었다’를 관람한 뒤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 역시 하늘에서 함께 내려왔구나. 그는 나를 지켜보고 나와 함께 수련하러 온 것이니 나는 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이구나.’
원문발표: 2026년 8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8/25/51305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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