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차례의 분쇄골절이 완치돼 무한한 불법(佛法)을 증명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정리

[명혜망] 오늘 나는 그해 두 차례의 분쇄골절을 겪은 후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구해주셔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살아난 옛일을 회고하려 한다.

1. 고난 속에서 법을 얻고 수련 속에서 승화하다

나는 중국 북방의 농촌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중공 악당에게 우파로 몰린 후 노동수용소에 갇혀 강제노동을 당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우리 생활은 매우 어려워 1~2년에 한 번씩 아버지를 뵐 수 있었다. 한번은 어머니와 함께 증기기관차를 타고 노동수용소로 아버지를 뵈러 갔는데 어머니는 집에 얼마 남지 않은 식량으로 아버지께 드릴 길쭉하고 커다란 떡 3개를 만드셨다. 그런데 나중에 아버지 손에 전해졌을 때는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하늘의 보살핌 덕분인지 나와 가족들은 악당이 초래한 3년 대기근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중화민국 베이핑(北平, 현 베이징)에서 유학하셨고 중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선생님이 되셨다. 나도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전통문화를 아주 좋아했다. 중년 무렵 나는 대도시에 가서 기술을 배웠고 훗날 고향으로 돌아와 현 소재지에 회사를 차렸다. 부지런히 일한 덕분에 수입이 쏠쏠해 현지 사람들도 나를 괄목상대했다. 하지만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아내와 나는 과로로 병을 얻어 온몸에 병이 가득했고 딸도 허약해 잔병치레가 잦았다. 나는 류머티즘을 앓아 여름에도 솜 배가리개를 차야 했으며 심장병과 간염 신장병 등도 있어서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었고 베이징의 큰 병원에 가도 고치지 못했다. 사업을 위해 나는 매일 무겁고 지친 몸을 이끌고 일했다. 우리는 늘 재산이 아무리 많아도 병고는 해결할 수 없다며 탄식했다.

1998년 이웃이 내게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알렸지만 나는 사업이 바빠 아내에게 먼저 배우라고 했다. 법을 얻은 후 아내의 온갖 질병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아내는 우리도 법을 얻기를 바랐고 매일 우리집에서 사부님의 설법 녹음테이프를 틀어놓았으며 나도 퇴근 후 무심결에 듣곤 했다. 나는 담배 중독이 아주 심해서 매일 적어도 3갑은 피워야 했다. 그런데 그날 마침 사부님께서 흡연 문제에 관해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을 때 입에 문 담배가 유난히 피우기 힘들었고 정말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아내가 기뻐하며 “사부님께서 당신을 관리하시는 거네요! 당신도 배워요!”라고 말했다. 나는 처음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나중에 또 사부님께서 흡연 문제를 말씀하시는 것을 듣게 되자 입에 문 담배가 그야말로 너무 피우기 힘들고 냄새도 역겹다고 느꼈다. 나는 순간 이 대법이 정말 평범하지 않고 너무나 신기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제야 대법을 배우고 연공하기 시작했다.

나는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전법륜(轉法輪)’을 통독한 후 사부님의 법리가 한 구절 한 구절 내 마음에 와닿아 진작 만나지 못한 것이 한스러울 정도였다! 파룬따파를 수련하면서 내 심신은 거대한 승화를 얻었고 병도 다 나았다! 몸은 건강을 회복했고 걸음걸이가 아주 가벼워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를 깨달았다는 점이다. ‘사람이 반본귀진하려는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된 진정한 목적이다.’(전법륜) 우리 부부는 질병이 싹 사라졌고 매일 다 쓰지 못할 정도로 기운이 넘쳤다. 딸도 ‘전법륜’을 통독한 후 몸이 건강해지고 더욱 선량하고 총명해져 아주 훌륭한 학생이 됐다. 우리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무한히 감사했고 온 가족이 행복과 기쁨 속에 푹 빠져 지냈다.

2. 박해를 피하려다 뜻밖에 분쇄골절을 당하다

중공이 박해를 시작한 후 아내와 나는 여러 번 납치돼 구치소에 갇혔지만 우리는 매번 세뇌와 전향을 단호히 배격했고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보호 속에서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한번은 악당 610 직원이 먼저 외출한 아내를 납치하더니 다시 우리집으로 와 문을 부수며 나를 납치하려 했다. 나는 고밀도로 발정념을 한 뒤 창밖으로 기어 나가 피했다. 나는 악당에게 불법 지명수배를 당해 어쩔 수 없이 여러 친척 집을 전전하며 임시로 머물렀다.

어느덧 겨울이 됐다. 눈이 내리던 날 아직 떠돌이 생활을 하던 나는 악당에게 납치됐다가 막 돌아온 수련생을 만나러 갔는데 610 직원이 갑자기 들이닥쳐 나를 파출소로 납치했다. 경찰은 강제로 형구를 사용해 내 오른쪽 다리를 채웠다. 그들은 쇠고리를 내 오른쪽 무릎 앞으로 씌웠는데 쇠고리에는 좌우로 구멍이 2개 있었다. 그 구멍에 쇠막대를 꽂아 무릎 뒤로 통과시켰다. 쇠막대 한쪽 끝은 자물쇠를 채우고 다른 쪽 끝은 사슬이 있었는데 그 사슬을 난방 파이프에 채웠다. 그들은 이튿날 나를 구치소로 납치해 박해할 작정이었다.

밤이 되자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사부님 저는 베이징에 가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이 다리를 가부좌하듯 틀어 쇠고리를 허벅지 뿌리 쪽으로 당겼는데 그때 다리가 유난히 부드럽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를 지키는 두 경찰이 잠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자 그들은 뜻밖에도 하나둘 잠들기 시작했다. 사부님의 도움 속에서 다리를 빼내자 다리가 마치 축골법(縮骨法)을 쓴 것처럼 형구에서 쑥 빠져나왔다.

나는 잽싸게 문을 열고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1층 입구에서 유리를 통해 파출소 경비원이 책상에 엎드려 자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마당에는 큰 개 한 마리가 날뛰고 있었다. 그래서 2층으로 올라가 뒷창문에서 파출소 마당 밖으로 뛰어내리려 했다. 그곳은 층고가 높았고 1층 지대도 매우 높았다. 나는 젊었을 때 수 미터 높이의 수문에서 자주 뛰어내렸기에 문제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창밖으로 기어 나갈 때 부실 공사와 마주쳤다. 내가 붙잡은 알루미늄 창틀이 통째로 벽에서 뜯겨나간 것이다. 나는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으며 시멘트 바닥에 곤두박질쳤고 그대로 누운 채 움직일 수 없었다. 눈밭에서 발버둥 치며 일어나려 했지만 오랫동안 애써도 일어설 수가 없었다. 이때 나를 지키던 경찰이 깨어났고 그들이 나와서 나를 발견했다.

현 병원으로 실려 갔을 때 이미 전혀 움직일 수 없고 몸이 극도로 허약해졌음에도 악당 610 직원은 내 손발에 수갑을 채워 대(大)자로 병상에 단단히 묶어두었다. 610 직원은 나를 감시하면서 잡담하다가 그날 밤 파출소 경비원이 잠들었고 큰 철문도 잠그는 것을 깜빡했다는 말을 꺼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무척 후회했다. 사부님께서 이미 내게 다 안배해 주셔서 완전히 파출소 정문으로 당당하게 걸어 나갈 수 있었는데 두려운 마음이 생겨 이런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병원에서 나는 각종 검사를 받았고 정면과 측면으로 여러 번 엑스레이를 찍었지만 악당 직원들은 검사 결과를 알려주지 않았다. 나중에 친척이 방해를 뚫고 엑스레이 사진을 가져왔다. 의사가 엑스레이를 찍고 나서 내 갈비뼈와 오른쪽 다리가 골절됐고 골반이 분쇄골절됐으며, 특히 요추 하부 몇 마디와 골반의 관골구도 부서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보통 내 상태라면 생명이 위험하고 가장 나아도 평생 마비가 될 상황이었다. 악당 610 직원은 사고 책임자로서 마땅히 내 향후 입원비와 간병비 및 생활비를 전부 부담하고 합당한 배상을 하며 법적 책임을 져야 했다. 하지만 610 악당 관리들은 뻔뻔하게 굴며 내 입원 치료비를 부담하지 않으려 했고 생명이 다해가는 나라는 ‘폐인’을 떼어내 죄책을 회피하려 했다. 이때 나는 단호하게 퇴원해 집으로 가겠다고 요구했고 악당 직원은 마치 내가 말을 바꿀까 봐 두려운 듯 나를 집으로 옮겼다.

3. 연공 이틀 후 “아! 내가 일어섰다!”

돌아온 후 여러 번 가택수색을 당한 우리집은 이미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이때 아내는 악당에게 무고하게 판결받아 노동수용소에 갇혀 혹형을 당하고 일반인이 견딜 수 없는 강제노동 박해를 받고 있었다. 딸도 우리가 여러 번 납치되고 가택수색을 당한 탓에 엄청난 충격을 받아 문 두드리는 소리만 들어도 자기도 모르게 온몸을 떨었다. 딸은 학교에서 숱한 괴롭힘을 당해 우울증에 걸렸다.

내 가슴은 매일 아팠고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아팠으며 아주 조금만 숨을 내쉬어도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팠다. 나는 매일 법을 외우며 사부님의 법에 따라 내 집착심을 안으로 찾았다. 나는 침대에 누워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평탄치 않았던 일생을 돌아보았고 다행히 사부님의 널리 제도하심을 만났음을 떠올렸다. 그저 대법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한마디 하고 싶었고 정부가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이런 큰 고난을 겪고 보니 중공이 원래 악마였고 중공 통치하 헌법의 신앙 자유는 한낱 빈 종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 집에 온 며칠 동안 파출소와 주민센터 사람들이 매일 찾아와 나를 괴롭혔다. 대략 4일째 되던 날 찾아온 사람 중 악당 관리 한 명이 있었는데 백발이 성성한 소위 ‘지도원’이었다. 내가 이미 목숨이 위태롭고 숨이 끊어질 듯한 상태였음에도 그는 대법을 반드시 포기해야 한다고 위협했고 다음 단계로 계속 ‘전향’시키러 오겠다고 했다. 가기 전 그는 위선적으로 말했다. “몸조리 잘하고 있어 또 ‘보러’ 올 테니까.” 나는 극도의 고통 속에서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의 소위 ‘봄바람에 비 내리듯’ 부드러운 척하는 위협을 듣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고통이 가슴속에서 솟구쳤다.

그가 떠난 후 나는 극심한 고통과 절망 속에서 나를 자비롭게 제도해 주신 사부님이 더없이 그리웠다. 나는 결연한 마음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는 절대 전향하지 않겠습니다! 절대 전향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사부님을 따라 끝까지 수련하겠습니다!’ 생각이 이에 미치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베갯잇을 적셨다. 이 4일 동안 극심한 가슴 통증 때문에 나는 이미 제대로 숨을 쉴 수도 잠을 잘 수도 없어 생명의 끝자락에 다다라 있었다. 이때 내 마음에 강렬한 일념이 생겼다. ‘날 죽이려고? 난 사부님을 따르기로 했어! 이 대법을 기필코 배우겠어!’ 나는 숨을 참으며 이 사악한 구세력과 30분을 맞서 버텼는데 그러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이튿날 내 가슴이 더는 아프지 않았다! 내가 나은 것이다! 사부님을 향한 감사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정말 사부님의 보호 속에서 생사의 큰 고비를 넘긴 것이다! 이날 나는 몸의 살이 뜯겨나가는 것을 또렷하게 느꼈다. 한 가닥 한 가닥 뜯겨나갔지만 아프지는 않았다. 발밑에서 시작해 계속 위로 다리까지 뜯겨나갔고 나중에는 계속 위로 올라가며 그렇게 하루 종일 뜯겼다. 아침에 잠에서 깬 후에도 계속 뜯겨서 머리까지 뜯겼다. 나는 이불을 걷어보고 깜짝 놀랐다. 통통했던 두 다리가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얼굴을 만져보니 원래 뚱뚱했던 얼굴이 거의 껍질만 남은 것 같았다. 나는 100여 kg이 나가는 고도 비만이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뼈만 앙상하게 말라 마치 해골 같은 모습이 됐다. 나는 사부님께서 내 생생세세 산더미 같은 죄업을 청리(淸理)해 주시는 것임을 깨달았다. 이어지는 며칠 동안 내 몸에는 매일 살이 올랐다. 나는 사부님께서 내게 새살로 바꿔주시는 것임을 알았고 그렇게 나는 서서히 기운을 차렸다.

이 겨울밤 나는 텅 빈 방에 뻣뻣하게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며 마음속으로 강렬하게 생각했다. ‘나는 연공을 하고 싶다! 나는 대법제자이니 마땅히 연공해야 한다! 죽기 살기로 해보자 연공하자!’ 그래서 나는 곁에 있던 천 끈(간병을 편하게 하려고 친척이 천 끈 한쪽 끝을 난방 파이프에 묶어두었다)을 꽉 쥐고 허리와 골반의 극심한 통증을 참으며 힘겹게 일어앉았다. 막 다리를 올리려는데 두려운 마음과 염려하는 마음이 튀어나와 내 머릿속을 때렸다. ‘다리가 부러졌는데 가능할까? 더 심해지지 않을까?’ 등등. 나는 즉시 이 좋지 않은 생각을 없애버리고 이를 악물고 다리를 올렸는데 온몸의 뼛조각이 다 아픈 것 같았다. 독하게 마음먹고 결가부좌를 튼 다음 그 기세를 몰아 서둘러 공법 구결을 외우고 수인을 맺었다. 두 손을 펼치며 신통을 가지(加持)하는 동작을 하는 순간 찰나에 나는 어떤 고통도 사라졌고 사부님께서 무한한 자비로 내 심신을 감싸주시는 것을 느꼈다. 점차 나는 온 생명이 사부님의 대법 에너지 속에 녹아드는 것을 느꼈고 그 오묘함은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40여 분 후 입정에서 나온 뒤 내 마음은 더없이 상쾌했고 날이 밝을 때까지 달콤하게 잤다.

이튿날 나는 다리와 허리 골반이 훨씬 좋아진 것을 느꼈다. 하지만 여전히 움직이기만 하면 극심한 통증이 왔다. 나는 생각했다. ‘정공을 마쳤으니 동공을 연공해야지.’ 그래서 극심한 통증을 참으며 사부님을 향한 굳은 믿음을 품고 일어앉아 침대 가장자리로 몸을 옮긴 뒤 일어섰다. 아! 내가 일어선 것이다! 나는 아파서 끊임없이 떨면서도 다리를 침대 모서리에 기댄 채(당시에는 아직 허리를 굽힐 수 없었다) 동공을 연공했다. 3일째 되는 날 나는 계속 극심한 통증을 참고 연공했고 이번에는 파룬좡파(法輪樁法)를 연공했다. 4일째도 이어서 연공했다. 5일째 되는 날 기적이 일어났다! 내가 천천히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후 나는 하루가 다르게 좋아졌고 그사이 친척이 가져다준 목발도 거절했다. 한 달 남짓 지난 후 나는 쉴 새 없이 밖으로 나가 대법 진상을 알리고 박해를 저지하며 사부님을 도와 중생을 구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동생은 당시 진상을 몰라 나를 탓한 적이 있다. “형은 왜 파출소까지 가서 뛰어내렸어?” 내가 말했다. “아우야, 내가 왜 집 놔두고 왜 거기서 뛰어내렸겠니? 그들에게 박해를 당해서 그렇게 된 거란다!”

나중에 한 정형외과 병원 원장은 내가 골반 분쇄골절을 겪은 후 파룬궁을 연공하고 이틀째 되는 날 일어섰으며 4일 후에 걸을 수 있었고 지금은 어디든 뛰어다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깜짝 놀라며 외쳤다. “이건 불가능합니다! 이건 의학 상식에 부합하지 않아요. 국제적으로도 전례가 없습니다!”

4. 다시 분쇄골절을 당했으나 한 달 만에 완치되다

2001년 1월 23일 장(江) 마귀 우두머리는 중공 악당이 조작한 ‘천안문 분신’ 위조 사건을 이용해 전 중국 나아가 전 세계 사람들을 속이고 해쳤다. 당시 세상 사람들은 물론 일가친척과 친구들조차 대법제자를 향해 두려움에서 증오로 돌변했고 우리는 매일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다. 그래서 나는 수련생들과 함께 전력을 다해 세상 사람들에게 ‘천안문 분신’ 위조 사건 등 대법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나중에 악당의 박해 탓에 나는 다시 떠돌이 신세가 됐다.

2004년 겨울, 나는 여전히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당시 나와 수련생들은 곳곳에서 진상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날 나는 사부님께서 새로 발표하신 경문 원본을 챙겨 모 지역으로 가서 수련생을 찾으려 했는데 그들이 복사한 뒤 현지 수련생들에게 전해주기로 했다. 나는 스쿠터를 타고 둑방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이날 북풍이 거세게 몰아쳤고 왼쪽에서 부는 바람이 매우 강해 나는 안간힘을 써서 왼쪽으로 기울여야만 겨우 균형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때 널빤지를 가득 실은 트럭 한 대가 마주 오고 있었고 엇갈릴 때 풍압이 갑자기 변했다. 내가 여전히 왼쪽으로 기울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통제력을 잃고 휙 왼쪽으로 꺾이면서 트럭을 향해 돌진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트럭 측면에 부딪혔다. 나와 스쿠터는 모두 부딪혀 뒤로 벌러덩 넘어졌고 길가 멀리까지 나뒹굴었다. 트럭이 멀리 멈춰 선 것이 어렴풋이 기억나고 나는 서서히 의식을 잃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나는 깨어났다. 둑방 길가에 누워 있는 나를 발견했고 트럭은 이미 온데간데없었으며 스쿠터 앞유리는 부서져 있었다. 도로에는 차들이 오가고 행인과 낮에 하교하는 중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인심이 매정해 나를 도와주러 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도 못 본 척하며 모두 빙 둘러서 가버렸다. 이때 내 왼쪽 갈비뼈와 왼쪽 다리는 이미 부러져 있었다. 나는 아픔을 참고 한쪽 다리로 버티며 애써 스쿠터를 일으켜 세웠다. 핸들에 엎드려 낮 12시 발정념을 하기 시작했다. 발정념을 마친 후 시동 레버를 밟아 시동이 걸리는지 확인하려 했다. 힘껏 밟자 스쿠터는 놀랍게도 단번에 시동이 부드럽게 걸렸다. 사부님께 정말 너무 감사했다! 나는 충돌로 변형된 왼쪽 다리를 힘겹게 들어 스쿠터를 넘어가 안장에 앉았다. 스쿠터는 가까스로 달릴 수 있었고 그렇게 수련생 집에 도착했다.

도착한 후 나는 내리려 안간힘을 썼지만 도저히 내릴 수 없었다. 수련생 4명이 나를 방으로 들고 가 침대에 눕혔다. 그들은 먼저 쉬라고 했지만 나는 수련생들에게 말했다. “이건 교란입니다 인정하지 않아요!” 수련생들이 사부님의 새 경문을 복사할 때 나는 나도 모르게 아파서 기절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수련생들이 이미 나를 다른 수련생 집으로 옮겨놓은 뒤였다.

이번 다리 골절과 갈비뼈 골절은 지난번보다 훨씬 심각했다. 그래서 더욱 고통스러웠고 아파서 죽을 지경이었다. 다리 모양으로 보아 틀림없는 분쇄골절이었다. 지난번 경험이 있었기에 내 마음은 무척 든든했고 끝까지 사부님을 굳게 믿으며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했다. 매일 법공부하고 발정념하며 안으로 내 집착심을 찾았다. 처음에는 제5장 공법 신통가지법을 연공했다. 그 후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지 아래 나는 일어섰다! 그렇게 한 번 한 번 돌파해 5가지 공법을 모두 연공할 수 있게 됐다.

한 달 남짓 지나자 나는 또 밖으로 나가 백 배나 맑은 정신으로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했다.

나중에 한 수련생이 내게 말했다. “다들 당신이 트럭에 치였다는 소식을 듣고 매일 당신을 위해 발정념을 했어요. 하지만 사악한 구세력은 가만있지 않았고 눈이 뒤집혀 우리를 강제로 막았죠. 구세력은 펄펄 뛰며 말했어요. ‘너희 모두 그를 위해 발정념하지 마! 그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알아? 그는 전생에 전쟁터에서 30여 명이나 총으로 쏴 죽였어! 이런 사람인데 너희가 왜 신경 써?’ 그래서 전 구세력에게 말했어요. ‘우리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어. ‘그의 일이 바로 당신의 일이며, 당신의 일이 바로 그의 일이다.’(각지 설법2-2002년 워싱턴DC법회 설법) 우리는 무조건 그를 위해 발정념할 거야!’ 우리는 처음에 발정념을 끝낼 때마다 허리와 등이 시큰거리고 아파서 마치 기진맥진한 것 같았어요.”

나는 수련생들의 도움에 몹시 감사했고 사부님께서 우리를 구하시면서 겪으시는 어려움과 거대한 감당을 더욱 체득하게 됐다! 나중에 내가 이 두 차례의 옛일을 떠올리고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해주신 것을 생각할 때마다 늘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맺음말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지와 보호 아래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해 건강을 회복했을 뿐만 아니라 성격이 난폭하고 이기적인 사람에서 마음에 선량함을 품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했다. 중공 악당의 광적인 파룬따파 박해 때문에 20여 년간 나는 숱한 고난을 겪었다. 비록 아주 험난하게 걸어왔지만 마음속은 든든하고 즐거웠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대법의 지도, 그리고 수련생들이 한마음으로 도와준 덕분에 나는 오늘까지 올 수 있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살아난 내 경험은 파룬따파가 진정한 고덕대법(高德大法)이자 우주 대법임을 증명한다!

내 영혼을 정화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내 생명을 다시 빚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린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8/21/511165.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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