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해엽운향(薤葉芸香)
[명혜망] 북유럽 복지 사회주의의 선구자로서 스웨덴은 줄곧 서방 좌파들이 추앙하는 모범이었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스웨덴에 일어난 방향 전환을 언급하는 사람은 드물다.
반세기 이상 동안 스웨덴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보편적 사회복지 모델을 실행했고 높은 세금과 높은 정부 지출의 국가 모델을 채택해 전 국민 의료, 교육, 연금, 육아 보조금 등 광범위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했다. 정부가 시민에게 일생을 아우르는 사회 보장을 제공해 고도로 평등한 사회 구조를 형성했다.
스웨덴은 평등과 함께 비교적 높은 경제력(1인당 GDP 약 59,000달러)과 높은 경제 경쟁력을 유지했기에 널리 성공적인 모델로 인정받았고, 서방 선진국 좌파들이 다투어 모방하는 본보기가 됐다.
사실 스웨덴의 1970~1980년대 ‘사회주의 실험’은 오히려 경제 침체를 초래했고 교훈을 얻은 후 오늘날 이 북유럽 국가는 자본주의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 오늘날 스웨덴의 1차 의료 클리닉 절반 가까이가 민간 사업체다. 고등학교의 3분의 1이 사립으로 2011년의 20%보다 훨씬 높다. 사립 학교는 심지어 증권거래소에 상장될 수도 있다.
· 많은 유럽 국가가 세금을 인상하고 있지만 스웨덴은 3년 연속 세금을 인하했다. 스웨덴의 최고 소득세율은 1980년대의 거의 90%에서 현재 거의 50%로 떨어졌다.
· 자본주의 개조로 스웨덴은 정부 규모를 축소할 수 있었고, 정부가 세금을 대폭 낮추게 해 기업에 활력을 제공했으며 창업과 경제 성장을 촉발했다.
· 현재 스웨덴의 총 공공 사회 지출(의료, 교육 및 모든 복지 지출 포함)은 국민총생산의 24%로 떨어져 미국과 비슷해졌으나 프랑스와 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에서는 이 비율이 30% 이상이다.
· 국제통화기금의 2026년 4월 예측에 따르면 2030년까지 스웨덴 경제는 매년 약 2% 성장할 것으로 예상돼 성장 속도가 미국과 대체로 비슷하며 프랑스와 독일의 두 배에 달한다.
즉 스웨덴의 성공은 사회주의 실천이 아니라 자본주의 개조 덕분이다.
그러나 복지 사회주의의 선구자가 자유 경제로 회귀하는 동시에 서방 자본주의의 옥토인 미국 일부 주와 도시는 스웨덴의 전철을 밟으며 사회주의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워싱턴주와 이 주 최대 도시인 시애틀은 눈부신 경제적 성과를 거뒀다. 태평양 연안의 이 땅은 과거 스타벅스,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코스트코 등 대기업을 잉태해 첨단 기술과 물류 분야에서 세계적 흐름을 선도했으며, 국내외 기술 인재를 대거 유치해 경제가 활기차게 발전했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주 정부가 자본이득세 신설, 최저임금 인상, 주택 개입 정책, 높은 에너지세, 저탄소 연료 기준 등 기후 정책과 같은 매우 사회주의적인 성향의 정책을 내놓으면서 수많은 대기업이 시애틀을 탈출하고 인재가 유출돼 주 정부는 수지 불균형의 수렁에 빠졌다.
현재 시애틀과 워싱턴 대부분 지역은 심각한 사회적, 경제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노숙자 범람, 핵심 상업 지구의 혼란, 심각한 예산 적자 지속, 공립학교 학업 성취도 지속적 하락, 기술 채용 주기 둔화 등이다. 공공 안전, 재정 안정, 경제 활력이 동시에 악화됐고 도심 공실 증가, 유동 인구 감소, 고용 감소, 주민 소득 감소가 나타났다.
역사는 항상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스웨덴은 1970~1980년대에 정부 지출을 대폭 확대하고 세금과 규제를 늘려 사회주의 성향이 최고조에 달했다. 그 결과는 오히려 민간 기업의 일자리 창출 중단, 실질 임금 정체, 이케아(IKEA), 테트라팩(Tetra Pak) 등 대기업들의 해외 도피, 장기 재정 적자, 인플레이션 및 통화 위기를 초래한 것이었다. 다양한 위기가 끊임없이 누적돼 마침내 1990년대 초에 심각한 금융 위기가 터졌고 중앙은행 금리가 한때 500%까지 치솟았다. 사회주의적 확장은 성공을 가져오지 못했고 오히려 심각한 경제적 쇠퇴를 낳았다.
자본주의 개혁은 스웨덴에 오늘날의 번영과 안정을 가져다줬고 사회주의 실패의 그늘에서 벗어나게 했다. 그러나 과거 실패한 실천이 여전히 더 많은 서방 국가와 지역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앞 수레가 뒤집히는 것을 보고 뒤 수레가 거울로 삼아야 하거늘 왜 사람들은 항상 끊임없이 전철을 밟는 것일까? 이른바 ‘이상이 너무 매력적이라서’일까? 아니면 다른 속셈이 있는 자들의 속임수가 너무 깊어 끊임없이 사람들을 오도해서일까? 사람은 왜 역사를 거울삼아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올바른 선택을 하지 않는 것일까?
원문발표: 2026년 6월 20일
문장분류: 시사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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