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부당한 징역형 이어 연금마저 박탈당한 전직 대학 강사, 노년에 의지할 곳 잃어

[명혜망](신장 통신원) 우루무치(烏魯木齊)시 파룬궁수련자이자 전 신장공학원(新疆工學院, 이후 신장대학교로 합병됨) 강사인 리샹훙(李向宏)은 ‘진선인(眞·善·忍)’에 대한 신앙을 견지했다는 이유로 20여 년간 중국공산당(중공)의 박해를 거듭 받았다. 그녀는 정신병원에 강제로 갇혔고, 두 차례에 걸쳐 총 14년의 부당한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며, 공직에서 해고되고 연금마저 박탈당했다. 현재 60세가 넘은 나이에 아무런 생활 수단 없이 홀로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리샹훙은 올해 63세다. 그녀는 상하이에서 대학원을 다니던 중 학업 스트레스로 인해 심각한 우울증을 앓게 돼 ‘살고 싶어도 살 수 없고,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1997년에 막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직후, 2년 동안 그녀를 괴롭히던 우울증이 신속히 완치됐고 그녀는 순조롭게 학업을 마칠 수 있었다. 취업 후 그녀는 ‘진선인’을 원칙으로 삼아 엄격하게 가르치고 정직하게 행동해 학생들에게 존경받고 동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정신병원에 강제로 끌려가 고문당해

1999년 7월 20일, 중공은 파룬궁에 대한 전면적인 박해를 시작했다.

같은 해 8월, 리샹훙은 파룬궁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베이징으로 청원을 갔다. 신장으로 돌아온 후 직장에서는 그녀에게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고, 매일 오전, 오후 각각 한 명의 교사를 그녀의 집으로 보내 책을 내놓고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도록 강요했다. 여름방학이라 응당 쉬어야 했지만, 장기간 강제 당직을 서게 된 교사들은 원망의 목소리를 높였고 학교 지도부 역시 거대한 정치적 압박을 받았다.

동시에 리샹훙의 아버지는 중공의 조작된 선전에 세뇌됐고, 딸이 직장에서 해고될까 봐 두려워 신앙을 견지하는 것을 ‘정신병이 있다’고 오해해 두 차례나 그녀를 정신병원에 보냈다. 그녀의 아버지는 해당 병원의 은퇴한 의사였다.

정신병원에서 리샹훙은 약물과 전기 충격 고문을 당했다. 의사는 그녀에게 혈당을 급격히 떨어뜨리는 주사를 놔 혼수상태에 빠지게 한 후 강제로 죽을 주입했고, 발목에 전극을 연결해 전기를 통하게 하며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했다.

리샹훙은 정신병원에서 두 번 탈출했다. 첫 번째는 주말에 부모님 집으로 데려가졌을 때 빠져나왔고, 두 번째는 병원 안에서 단식으로 항의해 풀려났다.

8개월간 감금돼 징역 3년의 부당한 감외집행 선고받아

2000년 8월, 리샹훙은 파룬궁 진상 자료를 배포했다는 이유로 납치돼 신장 류다오완(六道灣) 구치소에 감금됐다. 경찰은 여러 차례 그녀를 심문하며 위협, 공갈, 가족의 정을 이용한 회유로 ‘자료 출처’를 캐물었으나 모두 실패했다.

2001년 3월, 그녀는 구치소에서 박해에 항의하며 단식했다. 8일째 되는 날 감옥 병원으로 끌려가 강제로 수액과 음식물이 주입됐는데, 악도들은 거칠게 코를 통해 식도로 관을 쑤셔 넣었고, 여러 차례 기관지나 폐로 잘못 꽂아 폐 감염과 고열을 일으켰고 그녀는 결국 생명이 위독해졌다. 2001년 4월, 40일간의 단식 끝에 그녀는 취보후심(取保候審, 보석 상태에서 수사·재판을 받는 조치)으로 집으로 돌아왔고, 이때 이미 8개월간 감금돼 있었다.

그 기간에 법원은 비밀리에 그녀에게 징역 3년의 부당한 판결을 내렸다. 그녀가 항소한 후 중급법원은 원심을 유지했으나 감외집행으로 변경했다. 판사가 그녀에게 “연공하지 않고, 선전하지 않으며, 대법의 일을 하지 않겠다고 보증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녀는 단호하게 “할 수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직장에서는 즉시 그녀를 해고했고, 파룬궁과 ‘철저히 결별’하면 대우를 회복해 주겠다고 위협했다. 그녀는 이를 거절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 그녀는 법공부와 연공을 재개했고 고열이 신속히 가라앉으며 건강을 회복했다.

감옥 병원에 있는 동안, 같은 병실에 있던 파룬궁수련자 쑨서우란(孫壽蘭)은 우루무치시 우라보(烏拉泊) 노동수용소에서 이송돼 온 사람이었다. 그녀의 무릎 아래는 노동수용소 감옥경찰이 전기봉으로 반복해서 전기 충격을 가한 탓에 상처가 곪고 감염돼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경찰은 ‘스스로 부딪힌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지만, 의사는 이를 단번에 간파하고 진짜 다친 이유를 밝히지 않으면 치료를 거부하겠다고 명확히 밝혔고, 이로 인해 쑨서우란은 감옥 병원으로 이송된 것이었다. (명혜망 기사 ‘신장 대법제자 쑨서우란, 참혹한 고문 받아 생사 불명’ 참조)

다시 부당하게 징역 11년형을 선고받고 장기간 독방에서 고문당해

2002년 2월 말의 어느 월요일, 리샹훙은 또다시 우루무치시 경찰에게 납치돼 쑤이모거우(水磨溝) 구치소에 감금됐다. 경찰은 번갈아 가며 그녀를 심문하고 잠을 재우지 않았다. 의학을 공부했다고 자칭하는 마(馬) 씨 성을 가진 남자 경찰은 심지어 “계속 잠을 재우지 않으면, 사람은 결국 정신이 혼미해지다가 사망하게 됩니다”라고 인정했다.

주말 저녁, 그녀는 어느 사무용 건물 4층으로 끌려가 ‘포박’ 고문을 당했다. 경찰은 납작한 밧줄로 그녀의 두 팔을 겹겹이 꽉 묶은 후, 두 팔을 등 뒤로 교차시켜 한계점까지 당겨 고정했고, 강제로 서 있게 하며 꽉 묶인 그녀의 팔을 끊임없이 벽에 부딪히게 했다. 뼈를 깎는 듯한 극심한 고통에 그녀는 통제할 수 없는 비명을 질렀다. 한참을 괴롭히다 밧줄을 풀어주고 다시 계속했다. 양(楊) 씨 성을 가진 경찰은 이전에 몇 명의 파룬궁수련자들도 이렇게 ‘모셨다’고 말했다.

이후 리샹훙은 부당하게 11년형을 선고받았다. 2004년 2월, 신장 여자 감옥으로 이송됐다. 감옥에서 그녀는 구타, 모욕, 수면 박탈, 24시간 교대 세뇌 등 고문을 당했다.

2007년 3월부터 2008년 초까지, 그녀는 거의 1년 동안 독방에 갇혔다. 독방은 길이 약 2.5m, 폭 1.6m 미만으로 빛이 전혀 들어오지 않는 밀폐된 공간이었다. 그녀는 수갑이 채워진 채 바닥 고리에 고정돼 거의 움직일 수 없었고, 귀가에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파룬궁을 비방하는 영상이 재생됐다. 그녀가 단식하며 항의하자 또다시 폭력적인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일반인은 보름만 갇혀도 몸이 망가지고 정신이 혼미해지는데, 그녀는 거의 1년 동안 갇혀 있었으니 그 고통은 상상하기 어렵다.

2012년 3월, 심장병이 자주 발생해 그녀는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장기적인 경제적 박해: 근속 연수 초기화, 연금 박탈, 의지할 곳 없는 노년

20여 년 동안 리샹훙은 육체적, 정신적 고문뿐만 아니라 무거운 경제적 박해도 감당해야 했다.

· 2001년 첫 번째로 부당한 징역형을 선고받은 후, 신장공학원은 즉시 그녀를 해고했고 16년의 근속 연수와 이미 납부한 연금은 모두 초기화됐다.

· 같은 해, 그녀의 남편은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이혼을 요구하며 아이와 가족의 모든 재산을 가져갔다. 그녀는 거의 빈손으로 집을 나왔고, 남은 4000위안조차 경찰에게 빼앗겼다.

· 2021년 암 방사선 치료와 심장 수술로 입원했지만 공비 의료 혜택을 잃어서 십여만 위안의 치료비는 모두 가족이 부담해야 했다.

· 현재 그녀는 퇴직 연령에 이르렀지만 연금이 박탈돼 아무런 수입이 없다. 홀로 생활하며 노년 생계에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리샹훙이 중공에게 박해받은 더 많은 기사는 명혜망 기사 ‘신장공학원 교사 리샹훙, 부당하게 징역 11년형 선고받아’, ‘전 신장공학원 여교사 리샹훙이 당한 박해 경험’, ‘전 신장대학교 교사 7년간 투옥돼 심신 손상’ 참조)

 

원문발표: 2026년 6월 20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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