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혜망](허난성 통신원) 허난성 쉬창(許昌)시 파룬궁수련자 바이훙민(白鴻敏)은 단지 ‘진선인(眞·善·忍)’ 신앙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중공(중국공산당) 인원에게 여러 차례 납치와 감금을 당했다. 그는 일찍이 4년 강제노동을 당했고, 또 4년 불법 형을 선고받았으며, 이 기간에 각종 고문 학대를 당했다. 2025년, 바이훙민은 신앙 때문에 다시 신정(新鄭)시 법원에서 8년 억울한 판결을 받았다. 최근 소식에 따르면, 그는 또 허난성 정저우(鄭州) 감옥으로 납치돼 계속 박해받고 있다.
바이훙민은 올해 62세로 원래 쉬창시 농업국 직원이었다. 1996년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그는 엄격하게 ‘진선인’을 준칙으로 자신을 요구했고, 사람이 소박하고 선량하며 남 돕기를 즐겨 직장, 가정, 이웃 간에 공인하는 좋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1999년 7월 20일 장쩌민(江澤民) 집단이 파룬따파에 대한 전면적인 박해를 일으킨 이래, 그는 더는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없게 됐다.
다음은 바이훙민이 중공 악당에게 박해당한 사실을 간략히 서술한 것이다.
여러 차례 납치, 구류돼 반년 넘게 감금
1999년 10월, 바이훙민은 쉬창시 공안국 웨이두(魏都)분국 정보과(政保科) 경찰 원젠웨이(文建偉) 등에게 납치돼 쉬창시 구치소 사형수 감방에 불법 감금돼 미친 듯한 구타를 당했다. 한 달 후, 경찰이 심문할 때 그는 단호히 감방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고, 경찰에게 조서에 구치소에서 박해받은 사실을 명시하고 만약 의외의 사고가 발생하면 그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경찰은 사고 책임을 질까 두려워 그를 구류소로 옮겨 보름간 감금하고 벌금 2천 위안을 갈취한 후에야 풀어줬다.
2000년 2월, 바이훙민이 직장에서 회의할 때, 쉬창시 공안국 웨이두분국 여경 류쑤핑(劉蘇萍)이 파룬궁수련자인 척하며 그에게 전화를 걸어 유인한 뒤 이른바 ‘규합’이라는 명목으로 불법 감금했다. 그는 먼저 구치소에 한 달간 감금됐고, 이후 구류소로 이송돼 3개월간 불법 감금됐으며, 결국 생활비 900위안을 갈취당한 뒤에야 풀려났다.
2000년 7월, 바이훙민이 베이징에 가서 파룬궁을 위해 청원하다 경찰에게 납치됐다. 쉬창시 공안국 웨이두분국 경찰은 직장에 강요해 사람을 베이징으로 보내 그를 쉬창으로 납치해 오게 했다. 도중에 경찰은 흥청망청 먹고 마셨는데, 왕복 비용 6천 위안을 전부 직장에서 부담하게 했고, 직장은 나중에 이 비용을 바이훙민에게 떠넘겼다. 이후 그는 다시 한 달간 불법 감금당했다.
2000년 10월, 쉬창시에 파룬궁 진상 전단이 나타나자 경찰은 책임자를 찾지 못해 “누군가 신고했다”라고 거짓말하며 바이훙민을 집에서 강제로 납치해 이유 없이 한 달간 불법 감금하고 300위안을 갈취한 뒤 풀어줬다.
노동수용소에서 4년간 박해, 고문 학대당해
2001년 1월, 바이훙민은 쉬창 고향으로 돌아가 설을 쇠려다 쉬창시 공안국 웨이두분국 경찰에게 납치됐고, 이후 허난성 제3노동수용소로 납치돼 3년 불법 강제노동 처분을 받았다.
노동수용소 기간에 바이훙민은 신앙을 견지해 독방 감금, 장시간 수면 박탈, 매달아 묶기, 고무 곤봉 구타, 전기충격, 반복적인 밧줄 묶기(상승·上繩) 및 초과 노동 강요 등 갖가지 학대를 당했다.
그를 ‘전향’시키기 위해 노동수용소는 또 그에게 ‘양 통구이(烤全羊)’라는 고문을 가했다. 양손과 양발을 묶어 고정하고 막대기를 끼워 사지가 하늘을 향하게 한 채 장시간 매달아 놓은 뒤, 전기봉, 경찰 곤봉 및 주먹과 발로 번갈아 가며 때렸다. 장기간의 학대로 바이훙민은 신체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고, 몇 달 후에는 밥그릇조차 들기 매우 어려웠다.
2004년 1월, 바이훙민의 3년 불법 강제노동 기한이 만료됐으나, 쉬창시 공안국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 우두머리 먀오중카이(苗仲凱)는 그에게 수련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강요했다. 바이훙민이 ‘보증’ 쓰기를 거부하자 1년 형기를 불법적으로 연장해 박해했다.
4년 불법 형 선고, 감옥에서 고문 학대당해
2011년 6월 28일, 바이훙민과 타오즈리(陶智麗) 부부는 집에서 쉬창시 공안국 파룬궁 박해 주요 책임자 쉬리나(徐麗娜, 음역) 및 난관(南關)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고, 집안의 개인 물품을 강제로 빼앗겼으며 방문에는 봉인 딱지가 붙었다. 두 사람은 이후 쉬창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타오즈리는 한 달간 감금된 후 풀려났고, 바이훙민은 구치소에서 단식으로 박해에 항의하다 강제 음식물 주입을 당했다.
이후 쉬창시 웨이두구 법원은 가족에게 알리지 않은 채 비밀리에 바이훙민에게 4년 형을 불법 선고했다. 2011년 12월 말, 그는 핑딩산(平頂山) 감옥으로 납치됐고, 그 후 다시 허난성 정저우 감옥(신미 감옥)으로 이송돼 계속 박해받았다.
여러 정보에 따르면, 정저우 감옥은 장기간 파룬궁수련자에게 작은 나무 의자에 앉히기, 장시간 쪼그려 앉히기, 수면 박탈, 독방 감금, 강제 음식물 주입, 구타, 전기충격, 지지기, 모욕적인 학대, 폭염 노출, 독극물 투입 의심, 손톱 뽑기, 모욕적인 체벌 및 강제 노역 등 갖가지 학대 수단을 가했는데, 수법이 잔혹해 심신에 극심한 손상을 입혔다.
2015년 6월 27일, 바이훙민은 4년 억울한 옥살이를 마쳤다.
또다시 8년 불법 형 선고
2024년 6월 19일, 바이훙민은 정저우의 셋집에서 미행해 온 정저우시 징바(經八)로 파출소 경찰에게 납치됐고, 허비(鶴壁) 모 세뇌반, 정저우시 제3구치소로 차례로 납치돼 감금 박해를 당했다.
2025년 2월 26일, 바이훙민은 정저우시 관할 신정시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았고, 이후 8년 불법 형과 벌금 2만 위안을 선고받았다. 그는 정저우시 중급법원에 항소했다. 2025년 9월경, 정저우시 중급법원은 부당한 원심 유지 판결을 내렸다.
2026년 1월 중순 소식에 따르면, 바이훙민은 이미 정저우 감옥으로 납치돼 박해받고 있다.
허난성 정저우 감옥(신미 감옥)
주소: 허난성 신미시 쑹산다다오(嵩山大道) 동단 61호, 우편번호 452370
전화: 0371-69812601, 0371-69812604
감옥장: 청원가오(程文高) 18237485333 (주소: 쉬창시 둥청구 웨이우다다오 양광화수 12호동 203실)
부감옥장: 장위수(蔣與術) 13838228687, 0371-69812888 (주소: 허난성 중무현 바이사주퇀 위싱다다오 북측 첸청로 동측 룽양로 서측 닝신위안 12호동 1유닛 601실)
원문발표: 2026년 1월 19일
문장분류: 중국소식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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