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는 중국인 노인을 보고 든 생각

글/ 원산(遠珊, 호주)

[명혜망] 화창한 아침이었다. 우리 몇 명은 평소처럼 동공(動功)을 마친 후, 공원 관람석에서 온화한 연공 음악에 맞춰 다리를 틀고 앉아 정공(靜功)을 연마하고 있었다.

주위 환경이 매우 조용했는데 갑자기 우렁찬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저 멀리, 아가씨 한 분 계시네. 사람들이 그녀의 장막을 지날 때, 다 고개 돌려 아쉬운 듯 바라보네….”

눈을 뜨고 바라보니 70세가량 돼 보이는 중국인 노인이 관람석 오른편 난간 근처에 서서 우리를 등지고 목청을 돋우어 진지하게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는 중국인들이라면 모두 잘 아는 노랜데, 노인의 목소리는 아주 맑았고 듣기에 매우 아름다웠다.

이 나이에 노래 실력이 그렇게 좋다니, 평소 같았으면 나는 분명 속으로 칭찬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가 이 넓은 관람석에서 연공한 지는 벌써 3년이 됐다. 이 관람석은 공원 내 아래쪽에 있는 몇 개 경기장을 마주 보고 있고, 위에는 큰 지붕이 있어 햇빛과 비를 피할 수가 있다. 그래서 갑자기 비가 내릴 때면 경기장 주변 산책로를 걷거나 달리던 사람들이 비를 피하러 관람석으로 올라오곤 한다.

그들은 누군가가 위에서 가부좌하고 있는 것을 보면 조용히 옆으로 가서는 스트레칭이나 다리 누르기 같은 운동을 하거나 계단에 앉아 있곤 한다.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들은 우리 곁을 지날 때 검지를 입술에 대고 “쉿” 하며 아이에게 조용히 하라고 신호를 보낸다. 이것이 일반적인 호주 사람들 반응이다.

만약 늦게 온 사람이 테라스에서 태극권을 하면, 우리는 자발적으로 다른 쪽으로 이동하고 연공 음악 소리를 줄여서 서로 배려하며 최대한 방해하지 않으려 한다. 초기에 권투 반 사람이 꽤 많았을 때, 그들이 장소를 사용하고 싶어 하면 우리는 자리를 내어주곤 했다.

이 노인은 누군가 조용히 가부좌하는 곳에 와서는 목청껏 노래를 불렀는데, 자신의 행동이 뭐가 부적절한지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그날 내가 당시에 품었던 생각은 이러했다.

‘이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행동은 예전에 중국에서 온 일부 사람들에게서도 본 적이 있었다. 마치 그들은 주위 사람들의 수요나 감정에 대한 인식이 없는 것 같다.’

이로 인해 나는 많은 현지인이 일부 중국 관광객에 대해 불평하는 것을 연상하게 됐다. 아무 데나 가래침 뱉기, 공공장소에서 손톱 깎기, 기차 안에서 큰 소리로 통화하기, 밥 먹을 때 입을 다물지 않고 씹기, 통행로를 막고 이야기하기 등등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내가 노인과 그 중국 관광객들에 대해 보냈던 생각은 다분히 선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이는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행동처럼 단순한 것이 아니며, 모든 일에는 근원이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원인은 중국에서 수십 년간 야만적 당문화(黨文化: 공산당 문화)가 고대 전통 중국 문화를 대체해 버렸고, 이런 세뇌 속에서 중국인들은 모두 피해자가 됐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당초 당문화를 드러내는 이런 행동에 대해 가졌던 경멸에서 벗어나, 이 소중한 중국인들이 겪은 것에 대한 이해로 바뀌었고, 그들의 쉽지 않은 삶을 체득하게 됐으며, 진정으로 마음에서 그들을 포용하고 연민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당문화라는 주제를 말하자면, 나는 성장 과정에서 당 간부였던 아버지에게서도 이런 당문화의 발현을 봐 왔기 때문에 아버지의 언행을 못마땅하게 여길 때가 많았다. 우리가 친척 집으로 휴가 갈 때면, 나는 종종 타인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에게 특권이 있다고 여기는 아버지의 처신으로 인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아침, 아버지가 나보다 30분쯤 일찍 출근하러 나가셨는데, 내가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아버지가 아직 붐비는 정류장 인파 속에서 차 문 쪽으로 가려고 애쓰시는 모습을 봤다. 하지만 아버지는 비집고 들어가지 못하셨다. 허탈한 아버지 표정을 보면서 나는 연민이 생겼다. ‘사실 아버지도 참 힘드시구나.’

부모님이 호주에 여행 오셨을 때가 기억난다. 아버지가 낚시를 좋아하셔서 나는 자주 차를 몰고 아버지를 모시고 근처 큰 강가로 낚시를 하러 갔다. 한번은 아버지가 낚시하다가 부주의로 강가 얕은 도랑에 미끄러지셨다. 옆에 있던 호주 남자가 반응이 빨라 즉시 아버지를 끌어올려 주었다.

뜻밖에도 아버지가 물 위로 올라온 후 하신 첫마디는 “우리 공산당원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아!”였다. 나는 정말 깜짝 놀라 말했다. “아빠, 이미 탈퇴하지 않으셨어요?”

아버지는 나를 쳐다보며 대답하지 않으셨다. 보건대 이런 당문화가 중국인의 사상에 스며든 정도는 정말 얕지 않았다. 나는 큰 수건으로 아버지를 감싸 드리고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

방금 두 노인 이야기를 했다. 이 주제는 나에게 또 다른 노인을 생각나게 했는데, 그는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교수였고 역시 중국에서 왔다. 그는 젊은 바이올린 연주가의 연주 수준을 높이는 데 열중했고, 자신만의 독특한 교수 훈련법을 창안하여 교육 생애 동안 적지 않은 인재를 배출했다. 그는 직업정신이 투철했고 수강료도 욕심을 부리지 않아 나는 그를 매우 존중했다.

나중에 내가 ‘스즈키 교수법(Suzuki Method)’을 접한 후, 한 가지 의문이 늘 뇌리에 떠오르고는 했다.

‘왜 같은 20세기 중반에 성공한 바이올린 교육가인데 일본의 스즈키 교육법은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이 우수한 중국 바이올린 교수의 교수법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할 정도로 보급되지 않았을까?’

어느 날 교수님이 학생 학부모와 담소를 나누다가 자신이 외국의 여러 바이올린 연주 서적을 번역 출판했다고 언급했는데, 그중에 아주 유명한 갈라미언(Ivan Galamian)과 다른 유명 저자들의 책도 포함돼 있었다.

한번은 그가 해외 유명 바이올린 연주자와 통화하며 그에게 “당신의 책을 중문으로 번역해서 중국인들에게 보급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서양 바이올린 연주자는 “나는 당신에게 판권을 준 적이 없는데요!”라고 말했다.

교수님은 이 이야기를 미담처럼 말씀하셨지만,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태어난 사람이 들으면 매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저작권을 존중하는 것은 일반적인 상식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서 교수님 본인이 어떻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라, 중국이라는 큰 환경 아래서 매우 우수한 교사가 여러 가지 원인으로 인해 더 위대한 사업을 성취하는 데 제한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중국 학자들은 한때 저명한 첸쉐선(錢學森)이 지은, ‘왜 우리 학교에서는 항상 뛰어난 인재를 배출하지 못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토론한 적이 있다.

장웨이잉(張維迎) 교수는 말했다. “문제는 분명히 우리 체제와 제도에 있다. 창조력은 자유에 의존한다! 사상의 자유와 행동의 자유 말이다. 중국 체제의 기본 특징은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고 사람의 창조성을 말살하며 기업가 정신을 말살하는 것이다. 중국인이 가장 창조력을 발휘했던 시대는 춘추전국시대와 송대(宋代)였는데, 이는 우연이 아니다. 이 두 시대는 중국인이 가장 자유로웠던 시대이기도 하다.”

“지난 30여 년간 중국 경제는 전 세계가 주목할 만한 성취를 이뤘다. 이 성취는 서방 세계가 지난 300년간 발명하고 창조하여 축적한 기술의 기초 위에 세워진 것으로, 중국 경제의 고속 성장을 지탱한 모든 중요한 기술과 제품은 다 남이 발명한 것이지 우리가 직접 발명했던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단지 차익 거래자일 뿐 혁신자가 아니며, 우리는 단지 남이 지은 빌딩 위에 작은 다락방 하나를 얹었을 뿐이니 우리에게는 오만하고 잘난 체할 이유가 없다!”

책 ‘해체 당문화(解體黨文化)’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중공의 당문화 속에는 진화론의 약육강식 부분이 있어 사람들이 서로 알력 다툼을 하도록 부추기고, 인간 개체에 대한 존중을 제창하는 부분이 없으며, 천박함을 선전하여 개인적 행동에서 타인을 고려하지 않고 제멋대로 하며 자기 방식대로 편한 대로 하게 한다.”

“중국인이 예전에도 이랬는가? 중국은 예의지국(禮儀之邦)이라 불린 지 이미 수천 년의 역사가 있다. 중국의 ‘예악사어서수(禮樂射御書數)’라는 전통 육예(六藝) 중에 ‘예(禮)’ 자가 첫 번째인 것은 중국인이 예의를 중시하는 전통을 충분히 설명해 준다… 역사상 일부 유명한 ‘가훈’, ‘학규(學規)’ 중에는 일상적인 의식주와 처신, 대인관계 등 방면에 대한 대량의 예의 규범이 있었다.”

독립적 사고를 장려하고 신앙을 존중하는 자유 사회는 신이 지혜를 내려줄 만한 가치 있는 발명가를 배출할 수 있다. 반면 사상을 속박하고 언론을 봉쇄하며 고압적으로 사상을 통일하는 사회는 전문 기술상의 기능공과 지식재산권 존중 개념이 결여된 군중만 배출할 수 있을 뿐이다.

비교해 보라, 어떤 문화가 더 멀리 전파되고 사람들의 마음을 얻겠는가?

 

원문발표: 2025년 11월 29일
문장분류: 문화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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