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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수련자들의 4·25 기념행사에 시민들 지지

글/ 싱가포르 파룬궁수련자

[명혜망] 2025년 4월 22일 오후, 싱가포르의 일부 파룬궁수련자들이 홍림공원(Hong Lim Park)에서 진상 알리기 활동을 개최하며 ‘4·25’ 파룬궁수련자 베이징 평화 청원 26주년을 기념했다.

싱가포르 파룬불학회(法輪佛學會) 대표 황(黃) 씨는 대중에게 사건의 발단과 이후 격화된 잔혹한 박해에 대해 설명했다. 매년 이때면 전 세계 파룬궁수련자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4·25를 기념하고, 평화적이고 이성적인 박해 저항 정신을 계승하며, 각계각층이 선량함을 지지하고 중국공산당(중공)의 악행을 규탄하도록 격려한다.

'图1~3:二零二五年四月二十二日下午,新加坡部份法轮功学员在芳林公园集体炼功,纪念四·二五法轮功学员北京和平上访二十六周年。'
2025년 4월 22일 오후, 싱가포르의 일부 파룬궁수련자들이 홍림공원에서 단체로 연공하며 ‘4·25’ 파룬궁수련자 베이징 평화 청원 26주년을 기념했다.

'图4~6:民众向法轮功学员了解真相。'
시민들이 파룬궁수련자들에게 진상을 알아보고 있다.

26년 전인 1999년 4월 25일, 수많은 파룬궁수련자들이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 인근의 국무원 청원사무실에 평화적인 청원을 진행했다. 이들은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 자신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파룬궁이 국가와 국민에게 백 가지 이로움은 있어도 한 가지 해로움도 없다는 진실을 알렸다. 수련자들은 세 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첫째, 불법 체포된 톈진의 파룬궁수련자 40여 명을 석방할 것, 둘째, 헌법이 보장하는 합법적인 연공 환경을 보장할 것, 셋째, 파룬궁 서적 출판을 재개할 것이었다. 과정 내내 수련자들은 서거나 앉아 있었고, 구호나 현수막 없이 주변 교통이 원활하게 유지되도록 보장하는 등 질서정연했다. 그날 저녁 구금된 수련자들이 석방됐다는 소식을 듣자 사람들은 조용히 흩어졌다.

4·25 평화 대청원은 외부에서 “중국 청원 역사상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이성적이며 평화롭고, 가장 원만한 청원”이라고 불렸다. 이 사건은 평화롭게 마무리되어 국제사회의 광범위한 찬사를 받았고, 중국의 식견 있는 인사들에게 국가의 희망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당시 중공 당수 장쩌민(江澤民)은 파룬궁수련자들이 보여준 선량함과 자율성에 질투와 분노를 느끼며 잔혹한 탄압을 적극적으로 모의했다. 3개월 후, 전면적인 탄압이 시작됐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러분들이 하시는 일은 매우 훌륭합니다, 계속 이어나가 주세요!”

현장에서는 단체 연공, 진선인(眞·善·忍) 미술전시회, 노래 공연 등의 방식으로 시민들에게 진상을 전했다. 여러 민족의 시민들이 모여들어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하며 진상을 알아보고 사진을 찍었다. 한 싱가포르 젊은 중국계 시민은 자료를 나눠주던 파룬궁수련자에게 다가와 “여러분들이 하시는 일은 매우 훌륭합니다, 계속 이어나가 주세요!”라고 말했다.

한 중국인은 수련자들이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평화로운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으며 신앙 자유의 분위기가 매우 아름답다고 느꼈다. 두 명의 중국 여학생은 대법을 수련하는 선량한 사람들이 중국에서 박해받고 심지어 생체 장기적출까지 당하는 악행을 듣고 나서 이전에 가입했던 중공 소선대(소년선봉대) 조직에서 탈퇴하기로 결정했다. 한 중국 노년 여성도 기꺼이 이전에 가입했던 중공 소선대에서 탈퇴하며 재앙을 피하고 행운을 찾기로 했다.

다양한 민족의 시민들이 파룬궁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했다. 싱가포르인 지니(Genie)는 무료 9일 학습반에 참가해 다섯 가지 공법을 배우기를 희망했다. 두 명의 덴마크 젊은 여성은 수련자들이 어떻게 파룬궁을 수련하는지와 수련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경청했으며, 떠날 때는 진상 자료를 가져가며 얼굴에 기쁨의 빛을 발했다.

20대의 싱가포르 젊은 남성은 자료를 받은 후 시선이 진선인 미술전시회의 그림에 머물렀다. 수련자가 그에게 ‘설법도(講法圖)’의 의미를 설명하자, 젊은이는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이에 수련자는 더 나아가 진상을 설명했는데, 파룬궁수련자가 왜 홍림공원에서 활동을 개최하는지, 1999년 4월 25일에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등을 포함했다. 젊은이는 자신이 들고 있는 자료를 진지하게 살펴보기 시작했다. 수련자는 그에게 파룬궁수련자들이 ‘진선인(眞·善·忍)’을 원칙으로 수련하면서 심성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연공을 통해 건강을 증진한다고 말하며, 더 많이 알아보면 반드시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완전히 수용하며 감사 인사를 한 후에야 자리를 떠났다.

어머니가 목격한 ‘4·25’, “선량함과 용기의 평화로운 표현”

2001년, 중공이 파룬궁에 대한 박해를 더욱 심화시키고 국내외에서 증오 선전을 적극적으로 부추기던 시기에, 젊은 후이신(慧心)은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섰다.

그해 중국 본토로 친척 방문을 갔을 때, 그녀를 뜻밖에 놀라게 한 것은 가정 불화로 부모와 수십 년간 남처럼 지내던 언니가 노부모와 함께 즐겁게 모여 있는 모습이었다. 알고 보니 어머니와 언니 모두 대법을 수련하고 있었고, 오랜 원한이 이미 연기처럼 사라졌던 것이다. 그날, 후이신은 《전법륜(轉法輪)》을 들고 읽기 시작했고, 인생의 수많은 의문들이 하나씩 풀리기 시작했다.

후이신은 현재 94세 고령인 어머니가 당시 목격했던 4·25에 대해 소개했다. “어머니는 1999년 1월부터 수련을 시작하셨어요. 연공한 지 2개월 만에 신경통이 완전히 사라졌고, 심지어 만리장성도 올라가셨어요. 이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죠.”

그녀는 계속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1999년 4월, 톈진의 한 잡지가 파룬궁을 비방하는 허위 기사를 실었고, 이후 부당하게 사람들을 체포하는 사건으로 발전됐어요. 이 과정에서 어머니는 계속 생각하셨어요. 중공 정권 치하에서 50년간의 피비린내 나는 폭력을 경험했고, 6·4 천안문 사건의 탄압 장면도 여전히 생생했죠. 1989년 6·4 학살 사건이 발생했을 때 중공 외교관의 부인이었던 어머니는 해외 주재 중이었고, 탱크가 톈안먼으로 진입하는 영상을 보셨어요. 파룬따파에 대해서는 비록 그 방대한 내용을 깊이 이해할 시간은 없으셨지만, 자신을 수년간 괴롭혔던 병이 파룬궁을 연마하면서 나았다는 것을 직접 체험하셨는데, 병원에서는 전혀 해결하지 못했던 문제였죠.”

“1999년 4월 25일 아침 7시가 조금 지나서, 어머니는 푸유가(府右街)의 청원사무실에 도착하셨는데, 그곳에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길게 줄을 서 있었지만 질서정연하고 조용하고 평화로웠어요. 모두들 조용히 서 있거나 앉아 있었고, 어머니는 한 자리를 찾아 《전법륜》을 꺼내 읽기 시작하셨어요. 무심코 고개를 들었을 때, 태양에서 화려한 색의 파룬이 날아오는 것을 보셨어요.”

“그날 저녁 9시가 좀 지나서 문제가 해결됐다는 소식을 듣고 사람들은 차례로 흩어지기 시작했어요. 떠나기 전에 어떤 수련자는 바닥의 쓰레기를 주워 비닐봉지에 넣었대요. 전체 과정이 매우 평화롭게 진행됐고, 구호도 없었고 소란도 없었답니다.”

당시 수련자들의 굳건한 지킴이 후이신에게 수련의 길을 걸을 기회를 주었고, 그녀는 오늘날 4·25의 도덕적 용기를 계승함으로써 후손들에게도 희망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믿는다. “진선인은 보편적 가치입니다. 어떤 길을 가느냐는 사람이 스스로 선택하는 겁니다. 사람이 계속 악해진다면 돌이킬 수 없게 될 텐데, 그것이 위험하지 않을까요? 저는 이 혼란한 세상에서 사람들이 모두 선량함을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신의 미래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4월 24일
문장분류: 해외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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