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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는 집착심을 끊어버렸다

글/ 중국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안전을 위해 핸드폰 번호를 바꿨고 위챗도 삭제했다. 핸드폰도 구형 폴더폰으로 바꿨다. 그런데 1년 남짓 됐을 때 폴더폰이 망가졌다. 핸드폰 수리점에서는 그 기계에 바꿔 넣을 배터리가 없다며 수리를 거부했고, 하는 수 없이 아들(수련하지 않음)이 스마트폰을 사줬다. 남편(수련하지 않음)이 내게 새 핸드폰에 위챗을 설치하라고 했지만 나는 하지 않았다. 단지 핸드폰에 알림 설정을 해서 일어나 연공하고 발정념 했다.

하지만 이 핸드폰은 인터넷이 된다. 나는 예전에 여태껏 핸드폰을 가지고 해본 적이 없었고. 또 나는 할 줄 몰랐는데 아들이 핸드폰으로 인터넷 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동영상 보는 방법도 가르쳐줬다. 나는 내가 법공부를 하는 데 영향을 주지 않으리라고 생각하고 인터넷에 접속해서 동영상을 보는데, 각종 동영상이 많았다. 극, 음악, 요리 프로그램 등등. 나는 어려서부터 평극, 황메이시(黃梅戲), 민요 등을 좋아했는데 여기 들어오니 다 있었다. 유명한 사람이 부르고 연출한 것이라 좋다고 느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핸드폰 동영상에 미혹됐다. 식사 전후로 보는데 상도 치우기 전에 또 보고 자기 전에도 보고, 보면 볼수록 보고 싶었다. 때로는 법 공부하는데 졸렸다. 그런데 핸드폰을 들고 동영상만 보면 정신이 나고 졸리지도 않았다. 때로는 한 번 보면 1시간 넘게 보고, 따라서 흥얼거리기도 한다. 법을 배울 시간을 차지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떠한 물건이든 모두 물질로서, 당신이 듣게 되면 곧 부어 넣게 되고, 바로 당신의 신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당신이 보면 바로 들어간다.”[1] 사부님의 설법을 보고 자신과 대조해 느낌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보고 싶고, 보지 않으면 사람 마음을 유혹한다. 며칠 멈췄지만, 또 보기 시작했고 보다 보니 4개월을 봤다.

나는 1997년부터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대법을 수련한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원래 20여 년간 나를 괴롭혔던 두통, 복부통, 부인병, 온몸의 심각한 알레르기, 견주염 등 치료가 잘되지 않던 각종 고질병이 전부 사라졌다. 병이 없는 가벼운 몸이 된 것이다. 나는 대법의 소중함을 알고 있고 법을 배우고 연공을 하든,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든 평소 자신에게 엄격했다. 하지만 지금 어떻게 되었나? 마음이 동영상에 이끌려 보게 되었다.

동영상을 본 후 나는 화를 많이 내고 손자를 가르쳐도 인내심이 없어졌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화를 내며 떠들썩했다. 나는 손자가 둘 있는데, 올해 9살 된 쌍둥이다. 그 둘이 게임을 하는데 큰애는 TV로 둘째는 핸드폰으로 한다. 나는 손에 핸드폰을 들고 동영상을 보면서 큰소리로 두 아이에게 게임을 하지 말라고 했지만, 아이들은 전혀 듣지 않았다. 화가 나서 툭 하면 손자들을 혼냈다. 남편에게 핸드폰만 보고 아이(아이 부모가 이혼해 아이는 줄곧 우리와 함께 살고 있다)를 돌보지 않는다고 질책했다. 나는 늘 무서운 표정을 지었고 어투가 듣기 좋지 않고 수련인 같지 않았다. 집안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다들 웃음이 사라졌다.

비록 매일 법공부 하고 연공도 하지만 마음에 닿지 않았고 머릿속에는 동영상이 생각나서 억누르지 못했다. 속으로 생각했다. 동영상을 보더니 왜 이렇게 변했지? 정진하지 않고 태만해지고 법공부도 마음에 닿게 하지 못하고 있다. 사악(邪惡)이 틈을 타게 했다. 나를 정진하지 못하게 하고 태만하게 만들었다. 내 정력을 동영상 보는 데 소비하게 했다. 이것이 어디 수련인의 상태인가? 사부님께서 나를 보고 조급해하신다! 지금이 어느 때인데, 정진해도 따라가지 못한다. 어떻게 여유롭게 동영상을 보고 있는단 말인가?

어느 날 법공부를 할 때 사부님 말씀이 들어왔다. “사람의 전반 수련과정은 바로 끊임없이 사람의 집착심을 제거하는 과정이다.”[2] 사부님의 법은 순간 나를 일깨워주셨다. 나는 깨달았다. 동영상을 보는 것은 일종 집착심이다. 게다가 아주 강한 집착심이다. 나는 이 집착심을 제거해야 하고 그것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나는 수련인이고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초상(超常)적인 사람이다. 어찌 속인의 더러운 것에 집착할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 이 생명이 지상에 온 것은 모두 이 일을 위해서인데, 당신이 어찌 정진하지 않고 해이해질 수 있단 말인가? 기연이라, 만고의 기연이다! 얼마나 긴 시간이든, 모두 이 일을 위해 준비하고 고생하며, 소업하고, 고통 중에서 오늘날까지 걸어왔는데, 당신은 오히려 정진하지 않게 되었으니, 애석하지 않은가?! 하지만 이 일보는 오히려 관건적이라, 정진하지 않으면 끝장이다. 당신의 생명은 모두 이 한 시각을 위해서가 아닌가?”[1] 나는 마음에서 우러나 자신에게 말했다. ‘사악의 것을 가지지 않는다. 철저히 가지지 않는다. 그것이 나를 이끌고 가게 하면 안 된다.’ 법공부를 많이 하고 법에 녹아들어야 한다. 거울을 비춰보니 내 표정이 아주 무서웠다. 그래서 남편에게 말을 부드럽게 했더니 집안 분위기가 온화해졌다.

원고를 쓸 때까지 한 달 넘게 동영상을 보지 않았는데, 동영상을 보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고 보기도 싫었다. 단지 법공부만 더 많이 하고 싶었다.

대법을 배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부님의 대법이 나를 바로 잡아주어 처음처럼 수련하게 하고 채찍질해 주었으며 손해 본 시간을 보충해 주었다. 사부님께서 도와주셔서 나는 핸드폰 보는 집착심을 끊을 수 있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이 글을 쓴 것은 법공부를 마음에 닿게 하지 못하고 핸드폰 동영상을 보던 집착심을 폭로하려는 데 있다.

층차의 제한으로 잘못 깨달은 점은 수련생들께서 자비(慈悲)로써 지적해 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경문: ‘세계 法輪大法의 날 설법’
[2] 리훙쯔 사부님의 저작: ‘전법륜(轉法輪)’

 

원문발표: 2021년 7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7/21/42741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