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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 수련환경 수호와 수련생 교류에 관하여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기술 수련생을 보호하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기술 수련생은 사실 모두를 위해 반드시 봉사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넷에 안전하게 접속할 수 있도록 하려고 모두를 위해 자원해서 일하는 사람이다. 이런 작업은 시간이 많이 소요되며 동시에 안전 위험도 있을 수 있다. 그들은 우리가 대법 정보를 제때 얻게끔 하려는 것인데 이는 우리 수련의 가장 근본적 보장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보호하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사실 그렇게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기도 하다.

매우 급한 일이 아니라면 우리는 일이 있든 없든 기술 수련생의 집에 놀러 가서는 안 된다. 더욱이 할머니 수련생들은 자신과 타인의 안전을 위해 주의해야 한다. 노인의 승차카드는 국가 보안의 감시 장비가 감시하고 있기에 함부로 기술 수련생의 집에 사람을 데리고 가서는 더욱 안 된다. 게다가 국가 보안은 사무실에서 컴퓨터를 지켜보고만 있으면 우리를 따라 다니며 감청하고 감시할 수 있기에 우리는 서로 부를 때도 가명을 사용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이것 역시 반박해의 한 가지 방식이다.

우리 지역의 한 수련생은 모두를 위해 여러 해 동안 자료를 제공하며 기술 봉사를 했는데 할머니 수련생이 그의 이름을 말하는 바람에 박해당하고 있다. 집이 있어도 의지할 곳 없이 떠돌아다녀야 했고 가족은 어쩔 수 없이 이혼해야 했는데 지금 그는 타이라이(泰來) 감옥에 갇혀 있다. 고압적인 박해로부터 꿋꿋하게 걸어 나올 수 있을까? 살아나올 수 있을까? 이전에 그에게 의지했던 수련생들은 그를 위해 발정념은 하는가? 만약 모두 가명을 사용했더라면 박해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의지했던 수련생들도 신불(神佛)을 팔아먹는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며, 경찰도 더 큰 죄를 범하지 않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밖에 구세력이 우리를 박해하는 형식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좀 잘하지 못하면 두려워하도록 만들고 소침해지게 하며, 좀 잘하면 사람 마음을 갈수록 부풀리는 것이다. 사실 이 두 가지 방식 모두 마난에 빠진 것으로서 사악이 우리를 박해하는 수단이다. 기술 수련생과 자료점 수련생은 반드시 후자의 경우를 주의해야 하는데 이는 사람을 망치는 가장 은폐된 방식이다. 20여 년 동안 기술 수련생과 자료점 수련생은 처음엔 모두 안정되게 활동했다. 조금씩 다른 지역으로 범위가 확대되기 시작하자 구세력은 수시로 기술 수련생에게 두려움, 자아 등등의 사람 마음을 심어 모순을 갈수록 커지게 했고 최후엔 우리 지역의 이지적이지 못한 사람에게 일을 만들어 많은 사람이 연루되게 하고 박해받게 했다. 이것은 모두 피의 교훈이다. 어떤 기술 수련생은 신체적 박해를 당하고 어떤 사람은 심성이 어떠어떠하지만 사실 그 속에는 구세력이 정체를 겨냥해 그들을 박해하는 요소가 있다. 컴퓨터 기술을 여러 곳에서 꽃 피우기는 정말 어려운데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천지행(天地行)’에 들어갈 수 있도록 기술을 가르쳐서 압력을 분산해야 한다. 이는 정체 환경을 보호하는 것이고 기술 수련생 자신을 보호하는 것이기도 하다.

기술을 얘기한 김에 컴퓨터 기술 이외의 특수한 기능을 말해보겠다. 예를 들면 글쓰기이다. 사실 글 쓰는 일은 100분의 90 정도의 사람이 중학교 교육을 받았기에 극히 특수한 수련생을 제외하고 모두 쓸 수 있다. 사정을 명백하게 설명할 수 있으면 명백하게 쓸 수도 있으며 단순히 나열해 서술하면 되고 문학적 기초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장쩌민을 고소·고발할 때 많은 문장을 수련생 자신이 쓴 것처럼 매 사람이 책임감과 의무감을 가지고 현지의 박해를 폭로하면 된다. 자신의 수련 요소를 남에게 떠넘길 수 없으며 더욱이 자신이 감옥에서 당한 박해와 자신 또는 주변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납치된 사실을 맨 먼저 폭로해야 하는데 이는 우리 매 사람의 책임이다. 수련생이 수감되면 밖에 있는 수련생이 위험을 무릅쓰고 변호사를 선임하는데 수감되고 박해당한 수련생의 말 한마디도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수련생은 나와서도 모든 진상을 가슴에 묻어 두는데 당연히 써내야 하며 이는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바를 원용하는 것이고 자신을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천목이 열린 수련생이 보았는바 사악한 자를 폭로하지 않는 것은 박해를 승인한 것이고, 구세력의 배치를 승인하는 것으로 그들의 공간장에는 사악이 쇠사슬로 그들을 묶어 두고 수시로 박해하지만 폭로한 이후엔 쇠사슬이 풀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각개 항목이 곳곳에서 꽃이 피어나게 하는 것은 우리 대법 수련의 무형의 형식이며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이다. 모두가 어떤 사람에게 의뢰해서 쓰게 하는 것은 우선 대도 무형의 수련형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게다가 대법 수련의 무대는 매 개개인을 성취하게 하는 것이다.

한편 특수한 시기에는 서로 만나기도 매우 어려운데 한 사람에게 의뢰하면 적시에 사악을 폭로하기가 불가능하고 또 전면적으로 사악을 폭로할 수도 없게 된다. 모두 한 사람에게 의뢰해 쓴다면 구세력이 마난을 가중하지 않겠는가? 모두를 제고하게 한다는 핑계를 댈 것인데 그것이 물러서겠는가? 그뿐 아니라 지금 감옥의 통제가 이처럼 심한데 수련생들은 그 가명을 알면서도 이름을 부른다. 일을 부탁하려면 안전을 위해서도 책임져야 하지 않겠는가?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 길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이 해야 하는 항목이 아니다. 대법을 실증하는 모든 일은 매 사람의 심성 정도에 따라 자발적으로 한 것이지 남에게 의뢰하여서 한 것이 아니다. 사람마다 써내야 할 자신의 몫이 있으며 정말 쓰지 못하는 사람은 신변의 수련생을 찾아 수정을 받을 수는 있으나 항목을 전담하는 유형적인 형식으로 가서는 안 된다. 정말 쓸 수 없는 사람은, 예컨대 문장을 종합하는 사람이 자연히 있을 것인데, 써서 끝맺음해 줄 것이다. 솜씨 좋은 부인이라도 쌀이 없으면 밥을 짓지 못하지 않겠는가.

수련은 어떤 누구에게 의존해도 안 된다. 요 몇 년 사이 각지에서 협조인에게 의존한 결과 어떤 협조인은 구세력에 의해 사람 마음이 가중되는 박해를 당했다. 한 협조인은 사람 마음이 팽창해져 전 성(省)과 전국 범위로 협조하려고 했는데 얼마 전 감옥에서 사망했다. 성 내에서 협조인이라는 사람이 여러 사람을 이끌며 자금을 모으는 등등 대법 원칙에 어긋나는 일을 많이 했다. 우리는 전에 한 협조인에게 의존했었는데 결국 협조인의 집에 비밀 감시 장비가 설치됐고 그 집이 곧 함정으로 변해버렸다. 남도 망치고 자신도 해쳤는데 만약 이 협조인이 우리 지역에 산다면 개인적인 수련환경이 있겠는가? 협조인에게 의지하고, 자료점에 의지하고, 기능이 있는 수련생에게 의지하는 것도 다 마찬가지다.

사람마다 모두 책임자이며, 사람마다 법을 위해 책임져야 하고, 정체를 위해 책임져야 하며, 우리 자신의 수련을 위해 책임져야 하고, 우리가 구도해야 할 중생을 위해 책임져야 한다. 자신 몫의 책임을 감당하는 것도 자신을 성취하는 것이다.

법은 매 사람에게 자료점이 곳곳에 피어나게 하라고 요구한다

우리 지역 나이 많은 남자 수련생 한 분은 네 번이나 납치당했다. 70세가 넘은 노인은 지적 장애가 있는 딸을 데리고 있어 자신도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수련하기 힘들었다. 우리가 어떻게 차마 그에게 자료를 맡도록 할 수 있는가? 만약 위험이 두려워 남에게 맡긴 것이라면, 그것이 수련인가? 물론 의뢰한 사람 의뢰받은 사람 모두 정법 수련을 바르게 걷지 못하고 구세력이 안배한 유형의 수련형식을 따랐다. 구세력이 배치한 길을 따르기만 하면 곧 막다른(죽음의) 골목인데 구세력의 안배 중에는 대법제자와 중생이 걸어나가게 하려는 생각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봤던 문장 한 편이 기억난다. A는 줄곧 자료점에 돈을 지원했고 매주 금요일이면 자료점 수련생이 A의 집으로 자료와 주간을 보내줬다. 하지만 주말에 A가 간절하게 기다려도 수련생은 오지 않았고 다음 주에야 보내왔다. A가 자료점 수련생에게 화를 내자 그는 돈으로는 과위(果位)를 살 수 없다고 말했다. A는 듣고 더 화가 났다. 수련생이 간 후에도 A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직 화가 나 있었다. 이때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찾으니 곧 잠이 들었다. 꿈에서 자신과 여러 수련생이 어두컴컴한 1층 계단 아래 빽빽이 들어차 있었는데 어떤 수련생은 자신의 천국에서 자신의 세계를 주재했다. A가 나도 자신의 세계가 있겠지? 하고 생각하자 A는 벌써 현판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세계에 와 있었다. 커다란 연화 좌가 보였는데 내 의자겠지 하고 생각하자 A는 이미 연화 좌에 앉아 있었다. 꿈에서 깨어나자 자신이 자료점 하나를 세워야 하며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사람이 신으로 되는 길’을 가야 한다고 깨달았다. 자료를 달라고 손을 내미는 사람은 자기 세계가 없었다. 노년 수련생이 정말로 자료를 만드는 데 어려움이 있다면 대면하여 진상을 알리면 더 좋지 않겠는가?

한 여성 수련생이 다년간 모두의 자료를 맡아 하다 이후 불법하게 여자감옥에 4년이나 수감됐다. 출옥한 후 그녀는 스스로 당당하게 박해를 폭로하는 글을 썼는데 파출소에 가서 신분증을 돌려달라고 요구했으며 경찰이 그녀를 2년 동안이나 미행했다는 사실도 썼다. 여러분 모두 알고 있듯 대규모로 자료점을 운영하자면 자금과 물자가 있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구세력에 의해 자만심이 커지게 될 수 있고, 돈과 물품을 쓰는 등등에서 여러 곳에 함정이 설치됐을 수도 있다. 자료를 만들지 않는 수련생의 의존심과 이기심, 두려움 등등을 강화할 수도 있고, 자료를 주고받으려면 사람이 오가야 하기에 안전위험이 따르게 된다. 결국, 수련생은 납치당하게 됐고 그 손실은 매우 심각하다. 피의뢰자도 엄중하게 박해를 당하게 되는데, 의뢰자가 신을 팔아먹는 죄를 범하게 하거나 자료를 제공하는 사람이 없으면 만들지도 수련하지도 못하게 한다. 만약 자료 만드는 사람이 진정으로 의뢰한 수련생을 책임진다면 어떻게 자료점을 꽃 피울 수 있는지 가르쳐 자립하게 해야 하고, 신을 향해 나아가게 해야 한다. 고기를 주는 것은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 주는 것만 못 하다.

사람마다 스스로 자료를 만들면 자기 생활과 법학습에도 영향 주지 않고, 금품으로 인한 함정에도 연루되지 않을 것이며, 자료를 주고받는 데서 오는 안전 위험도 없게 되고, 여러 가지로 안정적인 생활과 수련에 이로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이라는 점이다.

수년간 다른 수련생에게 의존해온 그런 수련생들로 인해 한 수련생이 감옥에 가게 되면 그들은 또 다른 수련생에게 의존한다. 다시 문제가 생기면 또 (누군가에게) 의존하면서 악순환을 반복한다. 자료를 만드는 많은 수련생이 수년간 줄곧 구세력의 길을 반복하면서 교훈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과 남을 해치는 구세력의 배치를 타파하지 못하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2000년에 말씀하시기를 곳곳에 가정 자료점을 꽃 피우라고 하셨다. 지금도 각 지역에 대형 자료점을 운영하는 수련생이 있는데 자료를 주고받는 형식을 수년간 계속하며 사람들을 걱정하게 한다. 눈에 잘 띄는 곳에 모여서 한담을 나누는데 사악은 어두운 곳에서, 차 안에서 다 보고 있다. 요 몇 년 개개인이 걸어 나오기가 쉽지 않은데 우리는 조사 정법하고 사람을 구하는 수련환경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할머니 수련생들과 휴대전화 안전에 관한 교류

집마다 휴대전화가 한 대 또는 여러 대가 있다 (사실 휴대전화는 도청기이기도 함). 몇 년 전 우리 지역 10여 명 수련생이 같은 시간에 납치돼 여러 사람이 여자감옥에 갇혔다. 한 사람은 보석으로 구치소를 나왔으나 오히려 심한 경제적 박해를 당했고 장쩌민 고소 건을 빌미로 또 납치돼 옥살이하다 구사일생으로 풀려났다. 듣기로 그녀들에게 일이 발생한 원인은 먼저 홀로 사는 할머니를 도청했고 그다음 관련된 사람들을 도청했으며 반년을 도청한 후 여러 사람을 납치했다고 한다.

할머니 수련생 한 분이 휴대전화 안전에 주의하지 않고 그 지역 및 외지 수련생과 통화하는 바람에 4년이나 옥살이를 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와서도 여전히 마찬가지였다. 지금 수련생들이 개인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이 수련생을 도와 일하는데 그 집에서는 휴대전화 사용 중에도 수련생의 실명을 부른다. 그녀에게 가명을 부르라고 하면 그녀는 못마땅해한다. 자발적으로 일하던 몇몇 수련생이 갑자기 일에 참여하지 않게 됐는데 원인은 이런 안전위험 때문이었다. 또 한 노년 수련생은 휴대전화를 옆에 놓고 몇이 함께 각지의 여러 가지 민감한 문제를 큰 소리로 말하다가 갑자기 전화기를 끄지 않은 것을 발견하고 그녀에게 말해줬다. 그러자 그녀는 장담하며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라고 했다. 그것은 대법과 수련생이 손실을 봐도 두렵지 않다는 것 아닌가! 사실 중국의 수련환경은 두려움이 없을 수 없으며 단지 법을 위하고 수련생을 위해 책임을 맡은 그런 수련생들이 중요한 때 자신의 안전을 내려놓은 것일 뿐이다. 실천이 증명하듯 두렵지 않다고 말하는 그런 사람은 진짜로 일할 때는 두려움이 많은 사람인데 사심을 버리지 않으면 두려움은 자연히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심이 없어야만 두려움이 없을 수 있다.

전화 도청기는 구세력이 까마득한 예전에 외계의 과학기술을 이용해 대법을 파괴하고 대법제자와 중생을 훼멸하려고 배치한 도구이다. 우리는 사부님의 제자인데 어떻게 중국의 이런 험악한 환경에서 좌우를 살피지 않고 거리낌 없이 함부로 행동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사부님과 맞서고 사악과 한 무리가 된 것이 아닌가? 경찰조차 할머니들과의 왕래를 줄이라고 경고하는데 경찰은 이들 할머니를 통해서 우리의 정황을 모두 알게 되는 것이다. 그럼 사악의 하수인이 된 것 아닌가? 우리는 배신자가 좋지 않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실제로 이미 배신자가 되고 신불(神佛)을 팔아먹는 작용을 일으키고 있는데 구세력이 당신을 가만 놔두겠는가?

여러분이 알고 있듯 10년 전 사악은 노년 수련생은 거의 박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노년 수련생들은 한번 되짚어봐야 한다. 최근 몇 년 사이 왜 80세 넘은 노년 수련생이 형벌을 당하는가? 왜 감옥에 갇히고 박해받는가? 그것이 범죄인가? 마침내 우리는 신의 길을 가는 사람이며 속인이 아니기에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더욱 높은 각자일수록 속인의 이치를 더욱 파괴하지 않으며 조금도 건드리지 않는다.”[1] 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구세력은 신불을 팔아먹은 죄로 노년 수련생을 박해하는 것이다. 이것에 대한 교류를 희망하며 노년 수련생들도 여기에 해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실 그것 또한 진정한 당신 자신이 아니며 당신의 공간장에서 남을 해치고 자신도 해치는 대뇌와 심장을 가진 썩은 귀신이다. 언제쯤 중시하고 그것이 당신 자신이 아님을 구별할 수 있겠는가, 또 그래야만 자신의 공간장을 청리할 때 그것을 해체해 버릴 수 있다.

자신이 어떻게 수련하는가는 결국 자신의 책임을 다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문제이다. 우리 모두 법을 스승으로 삼아 함께 좋은 수련환경을 만들어 가길 진심으로 바라며, 수련생 모두가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 안정된 생활과 수련, 사람 구하는 길을 잘 걷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법에서 벗어난 곳이 있다면 수련생께서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을 대표하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여 ‘비학비수(比學比修)’하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1년 6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6/21/42715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