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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을 기점으로 사고하다 

글/ 북아메리카 대법제자

[밍후이왕]

1. 중학교에서 대학교까지 나의 성장에 대법이 함께하다

저는 2008년부터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했지만 2011년 캘리포니아 페이톈 예술학교에 입학한 후에야 비로소 정진했습니다. 그곳에서 전통적인 중국 고전 무용과 문화, 역사를 배우고 또래 수련생들과 함께 성장했습니다.

대학교에 간 첫해 저는 매우 정진했습니다. 매일 ‘전법륜’ 두 강을 읽고 연공하고, 룸메이트를 소년선봉대(중국 공산당의 조직)에서 탈퇴하게 했으며 매주 두 번 학교 잔디밭에서 연공했는데 옆에 무료 교육 플래카드를 걸었습니다. 캠퍼스 주변에는 파룬따파의 무료 공법전수 관련 전단을 붙였습니다. 그해는 단지 일반인 열 명이 공법을 배우러 왔는데 최소한 열 명의 중생을 살린 것입니다.

하지만 1년 뒤에는 계속 정진하지 못하고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으며 연공도 하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가장 힘든 것은 제가 사는 곳은 다른 수련생들과 멀리 떨어져 있고 단체 법공부하러 갈 차가 없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대법 수련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대학교 마지막 해에 저는 또래 수련생들과 교류하면서 매체에 입사하기로 했습니다.

2. 언론사에 입사하다

언론사에 가입하기 전과 처음 시작할 때 저는 많은 교란을 받았습니다. 언론사는 중생을 구하는 힘이 워낙 강해 구세력은 더 많은 가입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방해는 나의 생각에서 비롯되었는데 먼저 일반 회사에서 일하면서 디자인에 대한 경험을 쌓고 멀티미디어 디자이너가 된 뒤 영문 따지웬에 가서 일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또, 제 친구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회사가 얼마나 좋으며, 회사 안에 배구장도 있고, 매 식사에는 뷔페가 푸짐하다고 알려줬습니다. 하지만 결국 매체에 입사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대학을 졸업한 지 일주일 만에 매체에 입사했습니다.

회사에 나간 지 첫 2주 만에 큰 충격을 받았는데 대학 시절 자신이 얼마나 오염됐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언론의 탄탄한 수련 환경에 힘입어 저는 수련자의 말과 생각, 행동 방식이 제가 매일 만났던 일반인과 대조되는 것을 느꼈습니다.

한 번은 동료에게 디자인 작품을 보냈더니 그는 따뜻한 말을 해 주었습니다. “고마워요. 당신이 지급한 노고에 많은 더(德)를 얻을 거예요.” 이 말이 제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저는 이 광고 디자인의 가치에 대해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 디자인 작품들이 구해야 할 중생들에게 위덕은 무한하고 값진 작품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달 후, 저는 영어 NTD 뉴스 진행을 맡게 되었는데 과거 촬영 경험 때문에 처음에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뉴스를 수시로 추적하는 편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정오 시간대 앵커를 찾으려고 애쓰는 뉴스 부서를 보면서 최선을 다해 앵커를 하기로 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설법을 배운 후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생각해 봤는가? 당신은 이 세상에 올 때 일찍이 나와 서약을 맺었고, 당신이 그런 중생을 구도하겠다고 맹세했기에 당신은 비로소 대법제자가 될 수 있었으며, 당신은 비로소 이 일을 할 수 있었다.”[1]

비록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 우리가 어떤 서약을 했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중생을 살릴 기회가 주어지고 적어도 해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왜 시도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아나운서가 사부님께서 배치해주신 것이라면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배치하지 않으셨다면 내가 하지 않았을 일이라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매일 TV에 나와 방송하면서 나의 모든 큰 집착이 드러났습니다. 방송할 때는 읽고 있는 단어에 집중하고 기사 내용을 알아야 합니다. 보통 내가 실수할 때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집착 때문입니다. 방송이 틀릴까 봐, 음이 깨질까 봐, 방이 너무 더워서 짜증이 날까 봐, 그 외에도 더 많은 것을 드러났습니다. 수련생은 이런 중요하지 않은 생각들은 숨겨진 집념이라고 교류해 주었고, 그 후 저는 방송을 개선했습니다. 저는 매일 방송을 마친 후, 시간을 들여 자신의 집착을 돌이켜보고, 그것을 없애려는 의지를 다졌습니다.

3. 매번 발정념 할 것을 정하다

매체에 가입하기 전에 저는 자다가 일어나 발정념(發正念) 하는 일이 거의 없었으며 다른 시간대의 발정념을 놓쳐도 보충하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발정념 하는 끈기가 없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제거하려는지 잘 모르고 발정념의 효과도 잘 몰랐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발정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일종의 정체 상태에 빠졌고 자신을 향상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와 교류했는데 어머니가 페루의 한 수련생의 심득교류를 알려 주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 수련생에게 션윈이 페루에서 어떻게 첫해에 좋은 성적을 냈냐고 물으셨습니다. 이 페루 수련생은 첫 번째는 발정념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데 한 번이라도 놓쳤다면 반드시 보충해야 하는데, 만약 한 번이라고 놓쳤다면 곧 사악이 교란할 기회가 생기는 것이라고 했답니다.

수련생의 교류를 듣고 자신을 제고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부터 정해진 시간마다 모든 발정념 시간에 깨어날 수 있었고 놓친 발정념도 시간을 연장해 보충했습니다.

4. 전통문화와 가치관을 기초로 하여 자신의 사상을 지도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알다시피 전반 인류의 문화는 신이 배치한 것으로, 이 길은 신과 긴밀히 연결되고 통해 있는 것이다. 천당으로 되돌아가려면, 당신이 이 길에서 걷지 않으면 어떻게 걸어가겠는가? 현대파 의식, 그 괴상한 모습, 그런 모양의 두발, 큰 귀걸이를 뚫어 넣고, 코에도 링을 걸고 마약을 흡입하면서 그가 신의 그곳으로 가려고 하는데,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여러분 알다시피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오로지 그 전통의 길이야말로 비로소 신과 가장 가까운 것인데, 왜냐하면 그 길은 신이 배치한 것이기 때문이다.”[2]

제가 대학에 다닐 때 유행하던 귀를 뚫었는데, 규범에 맞지 않는 귀의 가운데 위치에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다 이렇게 귀를 뚫으니 ‘왜 안 해, 이건 대학 때의 경험인데’라고 생각했습니다. 내심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저의 집착으로 어쨌든 귀를 뚫었습니다.

매체에 와서도 여전히 큰 귀고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방송을 시작할 때 카메라 앞에 드러나는 게 불편해 머리카락으로 귀를 가려보려 했습니다. 느낌이 이상했지만 큰 귀걸이를 떼어낼 생각은 안 했습니다.

어느 날 귀가 붓기 시작했고, 귀의 통증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은 큰 귀고리를 떼는 것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집에 돌아가 귀고리를 빼내려 했지만, 나사가 끼었습니다. 마루에 앉아 한 시간 동안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지만, 귀가 더 아플 뿐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큰 귀걸이를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빼낼 수가 없어서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사부님, 저는 이 보석을 빼려고 합니다. 영원히 큰 귀고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드립니다.” 10분 후 저는 큰 귀고리를 뺐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반성했습니다. 고대에는 이렇게 괴이한 위치에 귀를 뚫는 것이 비정상이었을 것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저는 영어 NTD 앵커 중 한 명이라는 점입니다. 앞으로 인류가 대법의 위대함과 중생을 살리는 데 있어서의 NTD의 강한 힘을 보게 되면 그들은 우리의 복장과 외모를 모방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제가 이렇게 현대적인 발상과 이상한 피어싱을 하고 있다면 저는 사람들에게 똑같은 이상한 습관을 복제하도록 이끌지 않겠습니까?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방면에서, 매체를 꾸리는 이 방향성에 있어서, 문화 기점에서, 그리고 보편적인 가치를 파악하는 이 척도에서, 전통문화를 기초로 해야 한다.”[3]

대법제자이자 언론인으로서 전통문화를 이해하고 전통문화로 돌아가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모더니즘(관념)이 곳곳에 깔리면서 사람들은 갈수록 도덕적 지침서를 찾기 어려워지는데 우리는 반드시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도덕적인 전통에 입각하는 데 있어서 저는 아직도 많은 것을 개선해야 합니다. 일의 다른 한 방면에서 저는 디지털 디자이너이기도 합니다. 사부님께서 우리 언론을 전통에 기초로 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저는 디자인 영감을 어떻게 얻을까 고민해 왔는데, 전통과 현대를 구분하기 힘들 때도 있지만 우리의 일사일념이 모두 법을 스승으로 삼을 때 대법의 지혜 또한 우리를 지도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사부님의 크나큰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사부님을 실망하게 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경문: ‘2016년 뉴욕법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경문: ‘대법홍전 25주년 뉴욕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경문: ‘2018 씬탕런과 따지웬 법회’

(2021년 에포크타임스 NTD 매체 법회발언고)

 

원문발표: 2021년 5월 2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1/5/28/426238.html
영문위치: http://en.minghui.org/html/articles/2021/6/1/1934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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